[이벤트 참여] 소설 "죽비" 4장 새끼손가락의 경고 (feat. @kmlee님의 이벤트 "범죄를 예측할 수 있는 사회")
이름을 써주신 @tata1 님 고맙습니다.
드디어 마지막 편입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0^
소설: 죽비
지난 이야기:
욱하는 성격과 폭력성향 때문에 크고 작은 폭행사고에 자주 휘말렸던 상민은 누나의 손에 이끌려 "죽비 프로그램"에 등록하게 된다. "죽비"는 폭력성과 분노조절 장애 등으로 우발적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 범죄자가 되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프로그램이다. 신체 내에 폭력성향이 증가하면 이를 몸안에 이식된 마이크로칩이 감지하고, 왼손 새끼손가락에 이식된 막에 전기 자극을 보내어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죽비' 프로그램으로 인해 화를 내지 않는 새 인생을 살게 된 상민은 거래처 사장님의 조카와 소개팅을 하게 됐는데...
죽비: 한쪽 끝이 갈라진 대나무 막대기. 명상을 하는 수행자의 마음이나 자세가 흐트러질 때 어깨를 내리쳐서 주의를 환기시키고 다시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
4장. 새끼손가락의 경고
긴 생머리에 포근해 보이는 짙은 회색 스웨터를 입은 그녀는 무척이나 생기발랄해 보였다. 그녀는 탁자 위에 놓인 자기 얼굴만큼이나 커다란 머그잔을 두 손으로 감싸쥔 채 상민에게 말을 건넸다.
"오래 기다리셨죠? 정말 죄송해요."
"괜찮습니다. 사과를 벌써 몇 번째 하시는 거예요?"
그녀가 도착한 이후로 상민의 얼굴은 계속 싱글벙글했다. 까만 머리에 흰 피부, 빨간 입술. 어릴 때 읽었던 백설공주 동화가 떠올랐다. 상민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숙녀분이 늦으실 때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 아니겠어요?"
"고맙습니다. 실은 출발은 일찍 했는데, 어제 온 눈이 녹아서 저희 아파트 앞 길이 완전 진흙탕이 됐더라고요. 흙탕물이 차에 다 튀어서 정말 보기 흉했거든요."
"눈은 얼어도 문제, 녹아도 문제네요. 겨울엔 어쩔 수 없지요."
"저도 그래서 경비원 아저씨한테 한소리 하려다가 겨우 참았어요."
뭐라 대꾸할 말이 없어서 상민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녀는 자신 앞에 놓인 머그잔을 두 손으로 감싼 채 왼손 손가락으로 토토톡 머그잔을 두드렸다.
"아무튼 그래서, 오는 길에 세차장에 들르느라고 좀 늦었어요. 그 꼴로 돌아다닐 수가 없어서..."
상민은 한쪽 눈썹을 살짝 치켜떴다.
"어차피 집에 가는 길에 또 지저분해질 텐데요. 오늘까지는 여기저기 진흙탕이 많을 수도 있는데."
"그럼 내일 또 세차하면 되죠, 뭐."
그녀는 별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상민은 궁금해졌다.
"차를 좋아하시나 봐요. 아니면 성격이 깔끔하셔서 그런가? 하하."
"둘 다죠. 좀 깔끔하기도 하고, 차도 굉장히 아끼고요. 이런 성격 싫어하시나 봐요?"
그녀는 마지막 질문을 하며 조심스레 상민의 얼굴을 살폈다. 상민은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에요. 깔끔하면 좋죠. 그리고 저도 차 엄청 좋아합니다. 애칭도 지어줬는 걸요. 벤이라고."
"어머, 저랑 똑같으세요! 제 차 애칭은 샌디예요. 호호호."
그녀는 오른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상민도 덩달아 웃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어 무척 기분이 좋아졌다.
"이름까지 지어주고 나면 정말 친구 같이 느껴지지 않나요? 한 번은 주차요원이 제 차를 빼오다가 차 뒤를 긁었는데 진짜 화가 나더라고요."
그녀는 그 말을 듣더니 정색을 하고 물었다.
"어머, 세상에.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어떻게 하긴요.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어쩌겠어요. 변상해주겠다기에 그러라고 했죠. 그래도 긁힌 모습을 봤을 땐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
"당연하죠. 어휴~, 세상에 주차요원이 차를 긁다니, 말이 돼요? 그건 주차요원 자격이 없는 거죠."
그녀는 새초롬한 얼굴을 찌푸리며 자기 일인 양 화를 냈다.
"어떻게 그런 운전 실력으로 주차요원할 생각을 했을까요? 뻔뻔하기도 하지."
그녀는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양 손으로는 다시 머그잔을 움켜쥐고 손가락으로 토토톡 머그잔을 두드렸다. 버릇인 듯했다.
상민은 뭔가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상한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가만히 있으려 해도 자꾸 뭔가가 마음에 걸렸다. 오랜만의 소개팅이라 긴장을 해서 그런가? 그는 자신의 불안한 감정을 애써 무시하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초짜였나 봐요."
"차가 긁히면 진짜 짜증 나잖아요. 저도 작년에 엄마네 집 앞에 주차해놨을 때 누가 차 옆면을 날카로운 걸로 주욱 긁고 지나간 적이 있어요."
"아이고, 저런. 다른 차가요?"
"아니요. 다른 덴 멀쩡한데 몸체 가운데만 긁었더라고요. 차로 부딪힌 게 아니라는 뜻이죠. 뭐 칼이나 송곳 같은 걸로 긁었는지 좌악~."
그녀는 지금 다시 생각해도 화가 치민다는 듯 인상을 쓰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곤 손가락으로 머그잔을 톡톡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거기가 마침 CCTV도 없는 곳이었거든요. 안 잡힐 줄 알고 일부러 그런 거예요."
상민은 마른 혀로 아랫입술을 핥았다. 정말 이상했다.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는데 계속 불길한 느낌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마치 사진에 핀트가 맞지 않는 듯, 혹은 그림에 구도가 어긋난 듯했다. 분명 뭔가가 이상한 것이 있는데, 그게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상민은 실체를 알 수 없는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며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쳐줬다.
"참, 세상에 미친놈들이 많아요. CCTV도 없었으니 범인은 못 잡으셨겠네요."
"제가 또 그런 건 못 참거든요. 있는 인맥 없는 인맥 다 동원하고, 근처에 주차된 차량 블랙박스까지 다 뒤져서 결국 잡아냈어요. 근데..."
그녀는 토토톡 머그잔을 두드리며 한숨을 크게 푹 내쉬었다.
"글쎄 잡고 봤더니 고삐리인 거 있죠?"
그녀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굴리며 나지막이 말했다.
"잡으면 아주 죽여버리려고 했더니..."
예상치 못했던 과격한 말에 놀라 상민은 농담을 던졌다.
"설마 진짜 죽이신 건 아니죠?"
그 말에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상민을 바라봤다. 머그잔을 두드리던 손가락도 멈춰 있었다. 상민은 자신이 너무 심한 농담을 한 것 같아 당황했다.
"어... 제 말은..."
"... 죽이진 않았어요."
그녀는 차가운 조용히 목소리로 말했다. 알 수 없는 눈빛으로 그를 지그시 바라보던 그녀는 시선을 창 밖으로 돌렸다. 아련한 과거의 일을 떠올리는 듯했다. 멈췄던 손가락으로 다시 머그잔을 두드리며 그녀가 작게 읊조렸다.
"그냥 좀... 혼내줬죠."
그때 상민의 눈에 뭔가가 띄었다. 머그잔을 두드리는 그녀의 손가락이 어딘가 이상해 보였던 것이다. 손가락을 바라보던 상민은 뒷머리가 쭈뼛 서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약지 손가락은 일정한 리듬으로 움직이지 않고 간헐적으로 투둑, 툭, 투두둑 움직이며 머그잔을 두드리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의지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경련이 일어나는 것처럼. 혹은 전기 충격을 받는 것처럼. 찌릿찌릿. 움찔움찔.
그의 시선이 어디로 향했는지도 모른 채 그녀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두 손으로 머그잔을 들어 올렸다. 순간 상민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머그잔을 입 근처까지 들어 올리자 그녀의 손이 더 잘 보였다. 경련이 일어나듯 움찔거리는 약지 손가락 뒤로 숨어있던 새끼손가락이 보였다. 그녀의 왼손 새끼손가락은 손톱이 있는 끝부분이 뭉텅 잘려나가고 없었다.
= 끝 =
지금까지 "소설 죽비"를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곧 영어로 번역해서 영어 버전도 올려볼까 합니다.
지난 글 보기
소설 죽비: 1장. 범죄자가 되는 걸 막아드립니다
소설 죽비: 2장. 산타 할아버지의 행동대장
소설 죽비: 3장. 죽비 효과
@kmlee 님의 이벤트 원글:
@kmlee 님께서 멋진 이벤트를 열어주셨는데요. 무려 총상금 150스팀!! 주제는 "범죄를 예측할 수 있는 사회"고요, 해당 주제에 대해서 형식과 횟수에 상관없이 글을 써주시면 됩니다. kr-philosophy 태그를 넣어서 작성해주시면 된다고 하네요. 저는 소설을 써서 참여하고 있습니다.
Cheer Up!
단편으로 끝난 건가요? 참 재미있네요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아직 장편엔 도전을 못 해봤어요.
습작들이 전부 단편/중편입니다. ^^
제가 권유한다면 장편보다는 단편 중편을 계속 시도하시길....한정된 분량에 메시지를 함축하는게 고급기술이죠. 장편은 문제가....대부분 의욕적으로 쓰다가 한도 끝도 없이 늘어나고...그러다 포기하는 코스!^^
그렇군요.
저도 중단편이 제게 맞는 거같아요.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참, 슬랙(slack) 메시지 확인해보셨나요? 아직 안 보셨으면 Kr방에 가보세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
마지막도 흥미롭게 잘 끝내셨내요. ^-^
읽으면서 속으로 계속 ‘상민! 새끼 손가락을 봐바’ 하면서 읽은 거 같아요. ㅎㅎ
쓸때는 제멋에 취해서 "나 이러다 등단하는 거 아냐?" 이러면서 썼는데..ㅎㅎㅎ
쓰고 나서 보니 왜이리 부끄럽죠? ㅎㅎㅎ
그래도 주말 내내 이 이야기 상상하며 잘 놀았네요. :)
원래 글은 자신감으로 쓰는 거죠. :)
그나저나 e북은 등록 되셨나요??
ㅎㅎ 그런가여.
아, 제가 말씀 안 드렸던가요? 등록됐습니다. ^^;;
알라딘 아이디와 비번을 잊어서 찾아헤매는 과정이 있었지만 무사히 등록했답니다.
다음주까지 반납해야하는 책이 2권 있어서 그거 먼저 읽고, 이건 크리스마스 연휴에 읽으려고요.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 :D
다행이네요. :)
감사히 잘읽었습니다! 완결 축하드려요 다읽었습니다ㅎㅎ:)
읽느라 수고하셨어요. 글이 꽤 긴데.. ^^;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1장부터 정독하고 왔습니다 ㅎㅎ 번역가로 많은 글을 접하셔서 그런지 소설도 정말 수준급이신것 같아요
칭찬해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네요. ㅎㅎ
1장부터 읽어주시다니, 정말 고맙습니다! :)
^^ 흥미진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반전 이었습니다. 👍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반전을 노리고 구상하긴 했는데 제대로 구현을 못한거 같아 좀 아쉽네요.
어떻게 끝날지 궁금했는데
역쉬ㅋㅋ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감시합니다
계속 읽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글 쓰는데 많은 힘이 됐답니다. :)
헉! 이렇게 무서운 스토리였나요?
담엔 장르를 먼저 밝혀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읽어야지요. ㅋㅋ
아, 그런가요? ㅎㅎ
어두운 얘기일거라고 짐작은 했는데 이렇게 결과가 나올줄 저도 몰랐어요. 반전을 넣으려다보니 더 그렇게 된거 같아요. ^^;
오늘이 마지막편이군요 ㅠ
그녀의 손가락!! 뭔가 무서워요 ㅎㅎㅎ
영어로도??👍👍👍
처음 계획과 달리 호러가 돼버렸어요. ^^;
영어로도 한번 써보려고요. :)
오마이갓.
저 소오름 돋았습니다 브리님...
진짜 공포소설읽는듯하게 등이 쭈삣쭈삣 서는거 있죠!!!
브리님 진짜 벌써 책한권 내신 작가님 아니셔요??
글을 끌고가시는 능력이 장난이 아니셔요 정말로....
왕팬입니다!!!
설마 한 권만 냈겠습니까? ㅎㅎㅎ
소설가는 아니고요. 그냥 책 읽는 걸 좋아하고, 글쓰는 걸 좋아하다보니
글재주가 좀 생긴 것 같습니다.
실력에 비해 과하게 칭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