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참여] 소설 "죽비" 3장 죽비 효과 (feat. @kmlee님의 이벤트 "범죄를 예측할 수 있는 사회")

in #kr-philosophy7 years ago (edited)

이름을 써주신 @tata1 님 고맙습니다.


총 4부 중 오늘은 3부입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0^

소설: 죽비



지난 이야기:
욱하는 성격과 폭력성향 때문에 크고 작은 폭행사고에 자주 휘말렸던 상민은 누나의 손에 이끌려 "죽비 프로그램"에 등록하게 된다. "죽비"는 폭력성과 분노조절 장애 등으로 우발적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 범죄자가 되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프로그램이다. 신체 내에 폭력성향이 증가하면 이를 몸안에 이식된 마이크로칩이 감지하고, 왼손 새끼손가락에 이식된 막에 전기 자극을 보내어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죽비: 한 쪽 끝이 갈라진 대나무 막대기. 명상을 하는 수행자의 마음이나 자세가 흐트러질 때 어깨를 내리쳐서 주의를 환기시키고 다시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

3장. 죽비 효과



일찍 출발한 덕분에 약속 시간까지는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밤사이에 눈도 많이 녹아있었고, 웬일인지 길도 막히지 않아서 상민이 운전하는 차는 겨울바람을 가르며 달리고 있었다. 그때 상민의 오른쪽 차선에 있던 차가 깜빡이도 켜지 않은 채 갑자기 상민의 앞쪽으로 무리하게 끼어들었다. 재빨리 브레이크를 밟은 덕분에 앞 차를 들이받지는 않았지만 상민의 몸이 운전대 쪽으로 확 쏠렸다.

 "아니, 뭐 이런 새끼가..."

씩씩거리며 경적을 울리려던 상민은 멈칫했다. 왼손 새끼손가락이 묵직하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고 녀석 참 신기하네.
'죽비 프로그램'에 등록한지 한 달. 새끼손가락은 그가 욱할 때마다, 자신이 미처 깨닫기도 전에 신호를 보냈다. 그 '선생님'의 말이 맞았다. 새끼손가락의 전기 자극 덕분에 자신이 화가 나 있다는 걸 인지하게 되면 분노를 효과적으로 가라앉힐 수 있었다.

상민이 새끼손가락에 정신이 팔린 사이 그의 앞으로 끼어들었던 차는 어느새 다시 옆 차선으로 파고들며 저만치 앞서가고 있었다. 새끼손가락의 '죽비'가 아니었다면 아마 예전처럼 경적을 울리고, 뒤를 바싹 따라붙고, 옆 차선으로 넘어가서 창문을 내리고, 고함을 지르고, 그랬을지도 모른다.

새끼손가락의 경고는 언제나 정확했고 끈질겼다. 묵직하게 움직이는 약한 신호를 무시하고 계속 화를 내게 되면 전기 자극은 점점 더 세졌다.

한 번은 식당에서 발레 주차요원이 그의 차를 빼오다가 뒤 범퍼를 긁어버린 적이 있었다. 그가 가장 아끼던 차였다.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는 주차요원에게 온갖 동물 새끼들을 찾으며 고함을 지르는 동안 아마 그의 새끼손가락은 찌릿찌릿 신호를 보냈을 것이다. 허나 머리 끝까지 화가 나 있던 그는 그 신호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걸 느끼지도 못할 만큼 분노에 휩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주차요원에게 막 손찌검을 하려는 순간 그는 "헉."하며 숨을 멈추고 말았다. 새끼손가락 끝에서 마치 망치로 내리치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찌릿한 그 통증은 팔꿈치를 지나 어깨까지 저릿하게 만들었다. 갑작스러운 통증에 자기 손을 내려다보던 상민은 그제야 얼굴이 사색이 되어버린 채 죄송하다고 울먹이는 주차요원과 둘러서서 웅성거리는 주변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서서히 숨을 골랐다. 어깨까지 치고 올라오던 통증은 멎었지만 새끼손가락 끝은 아직도 불에 덴 듯 욱신거리며 경련을 일으켰다. 통증을 멈추기 위해서라도 화를 가라앉혀야 했다. 어차피 긁힌 건 물어준다고 했으니 불쌍한 주차요원에게 고함을 질러봤자 자기 손만 아플 뿐이었다.

 "그래, 뭐. 그쪽도 일부러 긁은 건 아니니까."

갑작스러운 태세 변환에 주차요원은 놀란 것 같았다. 내친김에 사과하러 나온 식당 매니저에게 그를 해고하지 말라고 부탁까지 해줬다. 주차요원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머리가 땅에 닿게 인사를 했다.

그날 저녁, 컴퓨터로 자신의 '죽비' 계정에서 정보를 확인하던 상민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자신이 극심하다고 느꼈던 그 고통이 2.3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전기 자극의 고통이 최대 10까지라고 말했었다.

**********

 "화를 멈추지 않으면 이 행동대장의 전기 자극은 점점 더 세집니다. 그래서 멈출 수밖에 없게 되죠."

그는 연필꽂이에서 볼펜을 하나 꺼내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이 왼쪽 끝은 전기 자극이 0.1입니다. 그게 시작이지요. 하지만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면 고통은 더 커집니다."

그는 오른손 검지 손가락을 볼펜 왼쪽 끝에 댄 채 오른쪽으로 조금씩 이동시키며 말했다.

 "처음엔 그저 찌릿찌릿, 욱신욱신했던 것이 나중엔 도끼로 찍는 듯, 망치로 내리치는 듯 아프게 되지요. 거기에서도 분노의 폭주를 멈추지 않으면 고통이 극에 달하다가," 그의 손가락이 어느새 볼펜의 오른쪽 끝에 다다랐다. "마침내는 펑 터지고 맙니다."

상민의 벙찐 표정을 본 그는 별거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걱정하실 건 없습니다. 이 고통의 최대치가 10인데, 거기까지 가는 일은 거의 없거든요."

그는 볼펜의 왼쪽 끝부분을 오른손 검지로 톡톡 두드렸다.

 "대부분의 폭력성향은 여기에서 멈춥니다. 기껏해야 3 정도죠."

그의 검지 손가락이 볼펜 위를 미끄러지듯 이동하더니 중간 부분에서 멈췄다.

 "잘해야 5, 6. 웬만한 광기도 여기에서 다 막을 수 있습니다. 눈이 뒤집히는 살인 충동은..."

그의 손가락이 볼펜의 오른쪽 끄트머리 부근에서 멈췄다. 그는 잠시 아무 말도 없이 허공을 응시했다.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니, 기억해내는 건가. 마치 몸은 여기 놔둔 채 영혼만 다른 곳에 가 있는 듯했다. 그는 갑자기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흔들었다. 좀 전에 어디에 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이제 다시 현실로 돌아온 듯했다. 그는 상민을 보며 말했다.

 "눈이 뒤집히는 살인 충동도 막을 수 있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실시한 지난 3년간 단 한 번도 실패는 없었습니다."

**********

2.3밖에 안 되는 고통이 이 정도라면, 앞으로 그가 어떤 광기에 휩싸이든 그의 폭력과 폭주를 막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사실 이 '죽비' 덕분에 그는 완전 새 인생을 살고 있었다.

친구들도 "요새 성격 좋아졌어."라고들 했고, 복도에서 마주치면 슬금슬금 피하던 직원들도 먼저 인사를 해왔다. "이사님 요새 좋은 일 있으세요?" "연애하시나 봐."하며 농을 건네기도 했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누나가 굉장히 좋아했다.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작에 해줄걸..."하고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했다. 내가 어린애야, 머릴 쓰다듬게? 라며 누나의 팔을 치웠지만 내심 싫지는 않았다. '죽비' 이후의 상민은 새 사람이 됐다.

급기야 거래처 사장님이 그에게 자신의 조카를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공부만 하느라 혼기를 놓쳤다며. 사진 속의 그녀는 무척이나 예뻤다.

상민은 콧노래까지 부르며 그녀와 만날 약속 장소로 차를 몰았다.

**********

약속시간이 30분이나 지났는데 그녀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상민은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내려다 봤다. 예전 같았으면 벌써 짜증을 내고도 남았을 텐데, 지금은 '죽비' 덕분인지 이 정도로는 짜증도 나지 않았다. 어쩌면 사진 속 그녀가 예뻤기 때문에 화가 안 나는 걸 수도 있었다.

어디까지 오는지 문자를 보내볼까 생각한 순간 카페 문이 열리고 그녀가 걸어 들어왔다. 상민은 손을 번쩍 들어서 자신이 앉아 있다는 걸 알렸다. 사진을 미리 받아서 얼굴을 알고 있었던 그녀는 상민을 금세 알아보고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상민 쪽으로 걸어왔다.

가슴이 뛰었다. 사진보다 실물이 열 배는 더 예쁜 것 같았다. 상민은 테이블 밑으로 왼손 새끼손가락을 살며시 만졌다.

새끼손가락의 경고만 잘 들으면 돼. 그럼 모든 게 다 잘 풀릴 거야. 다 잘 될 거야.
상민은 자리에 앉는 그녀를 보며 활짝 웃어 보였다.


내일 마지막 장 "새끼손가락의 경고"가 이어집니다. 많이 기대해주세요.

지난 글 보기

소설 죽비: 1장. 범죄자가 되는 걸 막아드립니다

소설 죽비: 2장. 산타 할아버지의 행동대장


@kmlee 님의 이벤트 원글:
@kmlee 님께서 멋진 이벤트를 열어주셨는데요. 무려 총상금 150스팀!! 주제는 "범죄를 예측할 수 있는 사회"고요, 해당 주제에 대해서 형식과 횟수에 상관없이 글을 써주시면 됩니다. kr-philosophy 태그를 넣어서 작성해주시면 된다고 하네요. 저는 소설을 써서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벤트]망상이 현실로; #1. 범죄를 예측할 수 있는 사회 - 총 상금 150 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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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rom Clean STEEM activity supporter

재미있는 이벤트네요.
1편부터 정주행할게요. ^^

정주행 고맙습니다. :)
그냥 토론글을 써도 되는데, 저는 소설쓰는 게 더 재미있어서 소설로 했어요. 형식 상관없이 글 쓰시면 되니까 이벤트에 참여해 보세요. :)

글을 정말 잘쓰시는 것 같습니다 ㅎㅎ1장부터 정주행!

지난 글까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내일 마지막장도 기대해주세요. :)

잘 읽었습니다. 브리님. :)

읽고 나니 저고 막 써보고 싶은 의욕이 무럭무럭 나네요. ㅎㅎ
설정이 좋아서 글이 엄청 짜임새가 있는 거 같아요. :)
너무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다음 편도 기대하고 있을 게요. ^0^ tip!

초코님도 소설 잘 쓰시니 한번 참여해 보세요. :)
참, 대화체 들여쓰기 따라해봤습니다. 가독성이 더 좋아진거 같아요.
이 팁, 저 팁 모두 고맙습니다! :)

안 그래도 보면서 '엇 들여쓰기다'했어요. :)

흥미롭게 한순간에 읽었습니다
벌써 내일이 기다려집니다
감사합니다 ^^

항상 읽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마지막장까지 열심히 쓰겠습니다. :)

다음편이 너무 기대되요.. 정말 실제로도 있었음 하는 바램이..
너무 욱하는 세상이 되어버려서...
얼른 올려주시와요~^^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열심히 써서 올릴게요. :)

잘보고갑니다..시간나면 정주행해야겠네요^^
자주 올려주세요 자주찾아뵐께용
친구해요

반갑습니다. 저도 팔로우했어요. :)

정말 한편의 소설을 보는듯 합니다! ㅎㅎ 오늘도 재밌는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설 맞습니다. 전문작가는 아니지만.. ㅎㅎ
재미있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

죽비!
최근 급등락 장세에 출시되었으면 대박났을 상품인 것 같습니다. ㅋㅋ

ㅎㅎ 그럴까요?가끔은 저를 깨우쳐주는 죽비가 있었으면 싶기도 해요.

으악 넘 재미있어요 브리님 ㅎㅎ
새끼손가락의 경고..
이름부터가 기대됩니다 ㅎㅎ
근데 정말 실제로 이렇게 죽비 프로그램이 있다면
세상이 어찌 바뀔지... 한번 상상해보게되네요..
화와 분노가 없는 세상 .....
마냥 좋을것 같긴 하지만
또 그 부작용도 분명이 있을거라고 보는데
생각해내려고 해도 잘 생각이 안나네요 ㅎㅎ

저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화가 날때 날 멈춰주는 게 있으면 좋겠어요. ^^;
명상을 해야하는데..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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