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할 수 없는 것들

in #kr-pen7 years ago (edited)

붉게 물든 커다란 보름달이 아무 것도 없는 남색 하늘 위에 떨어질 듯 말듯 아슬하게 떠서 노을같은 빛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진한 옥색인 줄 알았던 바다는 가까이갈 수록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반짝이고, 붉은 빛이 감도는 밤하늘 아래에서 나는 유유자적 홀로 헤엄친다. 얼마 안 가 멀리서 집채만한 배가 나를 실으러 온다. 의심없이 올라 타, 나아가는 배 위에서 내려다 본 수심 깊은 곳에는 까맣고 하얀 고래들이 온 몸뚱아리를 내비치며 헤엄치고 있었다. 고래라며 소리쳤지만 다른 선객들은 관심도 없다. 그런데 보면 볼 수록 고래가 거대한 도미나 우럭의 모양으로 변하고 말더니 얼마 안 가서는 대왕 오징어까지 무리를 지어 나타나 바다가 거대한 수족관을 연상시킨다.

깨고 나서 이게 무슨 꿈인가 싶었다.

@kimthewriter 님 글에서 본 안시호, @hello-sunshine 님 글에서 본 고래, @sintai 님 글에서 본 붉은 달, @crawfish37 님 글에서 본 도미, @brianyang0912 님 글에서 본 크루즈의 총 집합이었다. @myhappycircle 님이 얼마 전 스팀잇에 관한 꿈을 꾸셨다는데 내 꿈도 스팀잇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대왕 오징어라니. 오징어는 대체 출처가 어디인지 기억을 더듬어 본다. 한달 쯤 전에 @lovehm1223 님 글에서 오징어순대 사진을 보고 참 먹고 싶었는데 그게 도무지 잊혀지지 않았나 보다.

나 자신에 대한 심오한 물음들 나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해답은 자기안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뜻하지 않게 던져진 이 세계와, 이곳에서 우연처럼 만나 손잡은 타인들로부터 우리는 천천히 해답에 다가가게 될 것이다.

@dmy 님이 소개해주신 책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의 저자의 말에 나오는 구절이다. 내가 그간 혼자서 비공개로 글을 써온 이유도 내 안에서 해답을 구하기 위해서였고, 속에 있는 말을 토해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말하는 사람도 나, 유일한 청중도 나. 스스로가 가장 큰 친구이자 고민 상담가였으며 재판장이었다. 그래서 내가 해답을 찾았을까. 오히려 이 스팀잇 세계에 던져져 예상치 못한 많은 사람들의 손을 잡으며 ‘나는 이런 사람이었구나’, ‘이런 것이 하고 싶었구나’ 를 새로고침 해나가는 중이다.

그 대신 이 곳에서는 속에 있는 말을 토해낼 수가 없는 것이다. 이해 받기는 커녕 손가락질 받을 거라는 두려움, 익명의 힘을 빌리기엔 현실 속 지인이 나를 찾아낼 것 같은 두려움, 지우지 못하는 과거의 흔적으로 미래에 재단당할 것이 또 두려움. 이렇게까지 쫄보였나 싶기도 하다. 그런데 자꾸 이 글을 읽는 당신들에게 마음이 열리고, 마음이 새어 나가려 하니 문제인 것이다. 감당할 수도 없을 거면서.

쓰고 나니 마치 큰 비밀이라도 간직한 미스테리물 주인공인 줄. 사실 별 것도 없다. 사생활과 속사정을 풀고 싶은데 못그래서 답답하다는 이야기다. 그런 것들을 소설인 듯 써 내려가면 좀 어떨까 싶어 글 서두에 어제의 개꿈을 문학적으로 표현해 보았는데, 독서하지 않은 자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다. 아무래도 나는 자아성찰과 정신승리하는 글이나 써야할 것 같다(그래도 오늘이야말로 kr-pen 태그를 사용해볼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은 비단 개인 사정뿐이 아니다. 나는 지난 경험을 사실감이나 진정성 있게 풀어내지 못한다. 내 ‘여행기’의 글투가 다른 글과 유독 다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실제로 기억이 잘 안나기도 하지만, 과거를 회상하는 것은 내겐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라서 그렇다. 그리워할 용기.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뜬 구름 잡는 이야기만 늘어 놓고 있다. 그래도 글을 쓰는 것 자체는 좋다. 허공에라도 나의 마음을 전하는 것 같아서.

IMG_0794.JPG

@springfi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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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r Up! 댓글이 많은걸 보고 궁금해서 왔습니다!

  • from Clean STEEM activity supporter

볼 때마다 반갑습니다! 정체는 모르지만...

@springfield님 제 고래포스팅으로 인해 꿈에 고래가 나왔다니... 미소가 절로 지어집니다. 그만큼 이웃을 생각해주는 마음씨가 고우신 분이셔요.

스팀잇 커뮤니티에서 활동시작하면서 느낀점은 서로 끌고 댕겨주는 의리가 있어서 참 좋아요. 다른곳에선 보기힘든 경우죠. 누군지도 잘모르고 익명으로 소통하기에 어쩌면 각자 마음속 깊숙한곳에 있는 생각들을 오히려 더 쉽게 꺼내어놓을수있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서로 알고지내는 사이라면 더 힘들수도 있거든요. 가쉽이 되고 부메랑이 되어서 돌아올수도 있으니까요.

같이 아르헨티나에 산다면 집으로 불러서 맛난거 마구 먹여주고싶네요. 원래 요리사셔서 제 음식이 입에 맞으실지는 모르겠지만서도... ㅠㅠ

@hello-sunshine 님 :-) 덕분에 꿈에서라도 멋진 고래들을 보았네요! 오늘은 아마 톳 두부무침을 먹는 꿈을 꾸지 않을까요 ㅎㅎ 헬로선샤인님 블로그 구경하면서 왠지 행복해지더라구요. 그걸 많은 분들이 느끼셨음 좋겠고 저 역시 앞으로도 선샤인님의 글과 사진을 계속 보고 싶은 마음이예요 :-)

사실 스팀잇이 익명의 공간이라고 생각했는데 많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글을 읽게 되면서 마음이 많이 가까워져서.. 정말 이웃처럼 느껴지거든요. 그러다보니 또 조심하게 되는 것들이 생기네요. 더 잘하고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책임도 들고요. 선샤인님이 아르헨티나 계실 때 저도 여기 있었을텐데 ㅎㅎ 서로를 몰랐어서 그랬지 우리는 정말 이웃이었네요! 사진으로만 봐도 맛있는 선샤인님의 음식을 먹어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

원글 쓰신분이 댓글 고맙다고, 추천하셨네요. 댓글에 보팅하고 갑니다

스프링님 글에는 항상 느린듯하지만 강한 무언가가 느껴지네요. 응원합니다:)

코코님! 코코님이 좋게 봐주시니 제가 힘이 많이 나네요. 정말 감사드려요. 저도 곧 응원하러 가겠습니다 :-)

분위기에 안 맞게 죄송하지만 아마 망원경으로 육지를 살펴보셨으면 산수유 나무가 보였을거에요.

아 이거 무슨말인지 알아들어버림... 아까 사운드클라우드에서 들어봐가지고...

@morning 님도 당하셨군요. 노래가 아니라 최면술인것 같던데요. 이틀내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아요. 안들은 귀 삽니다.

아.. 산수유.....

공범자이시면서 제 3자처럼 멘트치지 마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댓글까지 챙겨보십니까 ㅋㅋㅋㅋㅋㅋ

읔ㅋㅋㅋㅋㅋ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kmlee님 ㅋㅋㅋㅋㅋㅋ 겨우 잊고 있었는데... 우리가 스팀잇이란 한 배를 탄 사이라고 그렇게 강조했는데.. 세이렌 산수유에 유혹되어 너도나도 바다에 뛰어들게 생겼습니다.

거대한 산수유 나무가 등대처럼 우리를 이끌어주지 않을까요?

등대인가요 블랙홀인가요...

연옥입니다.(단호)

연옥 ㅋㅋㅋㅋ 아 내 얘기지.. ㅠㅠ

아닠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째서 여기에서도 산수유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공감되는 말이네요. 제가 그래서 영화리뷰와 먹스팀만 올립니다...언젠가는 꺼내겠다 다짐하지만 그게 언제 다가올지, 아니면 끝까지 막아놀지...그래서 은연중에 조금씩 드러내고 있습니다. ㅎㅎㅎ

이터널님! 공감해주시다니 반가워요 ;ㅁ; 그래선지 자신의 사진이나 사생활을 드러내신 분들이 정말 대단해 보이더라구요. 근데 사실 그렇게 숨길 것도 없는 것 같고 말이죠. 자기한테나 대수로운 일이지 남들한텐 아 그래? 하고 말 일인것 같아요 ㅎㅎㅎ

사진이나 사생활과 속에 있는 감정은 다릅니다. 페이스북에 사진 올리는 일은 쉽지만, 일기는 쓰기 어렵습니다. 일기라 해봐야 초등학생이 쓸만한 "오늘은 밥을 먹었다. 참 맛있었다." 수준의 글을 남기지요.

페이스북에서도 뒷통수만 내고 있었습니다. 일기는 쓰지 않고 남들이 쓴 일기를 몰래 훔쳐보고 다녔죠.ㅎㅎㅎ페이스북에 언제 접속했더라...

겉으로 껍데기를 드러내는 것보다 나만의 감정을 담은 일기를 쓰게 한다는 것이 스팀잇의 매력인 것 같아요.

익명성이 주는 축복이지요.

사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이야기하고 싶은데 자꾸 뭔가를 숨기려 하니 속시원히 말할 수가 없는 것이죠. 사진이나 사생활을 오픈하는 것은 익명이 주는 자유를 포기하는 것 같고 훗날 후회하게 될 것이 걱정되고요. 천상 연예인은 못할 팔자입니다. 아..어차피 못하지.

마치 복면가왕을 보는 듯한 느낌이네요. 언젠가는 저도 연예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 이곳에서요.ㅎㅎㅎ

그런 말 농담으로라도 하면 친구들이 그러대요. 응, 개그맨도 연예인이지... 아. 이터널님께 하는 말은 아니고요. 네. 아니예요..

저 말고 다른분을 지칭하는 것으로 알겠습니다...개그맨 무시하면 못써요. ㅎㅎㅎ

좀 올려 봐요. 풀봇 좀 때려 보게요.

무섭...가왕이 되면 벗도록 하겠습니다.

얼굴에 땀띠날 듯...

저는 한국에 있습니다.^^

글 쓰는것 자체를 좋아 하시니 행복이라 생각이 듭니다~ 계속 화이팅! 하세요~^^

스마트컴님 :-) 맞아요. 글 쓸 수 있는 것도 좋은데 읽어주시는 분들도 계시고 함께 이야기도 나누니 행복한 일이지요.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고 싶네요. 스마트컴님도 화이팅 :-)

앗!! springfield님!ㅎㅎㅎ
제 블로그에 올렸던 책을 기억해주시고, 언급해 주시니
부끄럽기도 하고, 반갑고 좋기도 합니다ㅎㅎ
스팀잇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나'를 새로고침하는 것에
많이 동감합니다ㅎㅎㅎ 표현도 참 마음에 들어요. 새로고침.

그리워할 용기.
저도 때때로 그리움 앞에서 주저하고, 두려워할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springfield님이 그리움 앞에서 용기를 가질 수 있기를 응원할게요.

@dmy 님 :-) 저 구절이 그렇게 와닿더라구요. 드미님 아니였으면 저 평생 몰랐을 거예요. 감사해요. 제가 현실에선 굉장히 여유롭고 외딴 삶을 살고 있기에 스팀잇에서 배우는게 한두가지가 아니예요. 힘에 부칠 때도 있지만 ㅎㅎㅎ 새로고침할 때마다 성장해 있었으면 좋겠어요 :-) 스팀잇에 글쓰면서 잊어버린 시간과 사진을 처음으로 꺼내 볼 때가 종종 있는데... 그리움은 여전히 두렵네요. 언젠가는 적응이 되겠지요?

두려워마시고 끄집어내세요! 아무말이나 괜찮으니까
생각보다 세상은 그렇게 간단하게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답니다..아마도요?
그러다보면 온전한 자기자신을 내놓게 될 수 있지 않을까합니다^^

천재님! (리자님이 그렇게 부르시니 당황하는 모습이 기억나서 일부러 ㅎㅎㅎ) 아무 말이야 전부터 하고 있지요. 아무렇지 않은, 아무 말이 아닌 것을 풀어내려니 어렵답니다. 근데 또 풀어내면 아무것도 아닐 것 같아서 자꾸 유혹이 들고요. 타인을 간단히 평가하느냐 아니냐는 그 사람의 그릇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스팀잇엔 훌륭하신 분들이 많이 계시니 저도 이리 마음이 열리나 봅니다 :-)

으아니ㅠ 자려고 누웠더니 스프링필드님마저 저를 놀리시는군요ㅜㅠ
아무말이 아닌 말은 익명성에 기대어 용기를 내보세요ㅎㅎ
의외로 사람들이 고민하는건 비슷한게 많답니다!
혼자가 아닌 공감을받을때 마음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지리라 생각합니다. 여기계신분들은 누구나 그럴테구요

글이란 게 그렇죠. 순간의 감정은 그때가 지나면 다양하게 해석될 수밖에 없잖아요. 거기에 기억 보정까지 되니까 의식도 무의식도 둘 다 정확히 모르지요. 중요한 건 그때의 경험이 지금 나에게 어떻게 읽히는가 아닐까요. 그때의 나보다는 지금의 내가 훨씬 중요하잖아요 :) 흑역사 좀 쓰면 어떻습니까. 쓰고 후회되면 리스팀 열 개쯤으로 밀어내면 되죠ㅋㅋ

@kimthewriter 님 :-) 그때의 경험이 지금 나에게 어떻게 읽히는가가 중요하다.. 과거의 흔적을 보면 다만 그리워하거나 후회할거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제 패러다임에 지진이 나는 것 같네요. 과거에 쓴 글도 결국엔 계속 숨쉴 수 있게 되는거군요. @kinthewriter 님이 하신 저 말씀에 꽂혀 지금 열심히 제 마음대로 해석중입니다 ㅋㅋㅋ 리스팀 열개도 기억하겠습니다 ㅋㅋㅋ

리스팀 열개 아이디어 완전 좋은데요 ㅎㅎㅎ

해외에 있으면 느끼는 감정도 포함이라 생각됩니다~
힘을 내요 슈퍼파월~~

에드워드님 :-) 해외에 있는데 공감대를 형성할 사람도, 알고 지내는 한국인도 없어 갖게 되는 자유로움과 외로움도 있기는 해요. 하지만 한국에 있을 때와 비하면 여긴 제게 무릉도원이랍니다 ㅎㅎ 에드워드님도 힘을 내요 슈퍼파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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