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인상들 - 구스타브 모로의 팔레트

in #kr-pen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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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가 빚은 색이 누워있다.


여기는 구스타브 모로가 쓰던 팔레트 앞이다. 그가 죽은 지 117년이 흘렀고, 나는 파리의 미술관을 돌면서 수 천장의 그림을 맛보던 참이었다. 이 지점을 축으로 두고 시간의 반대쪽에는 구스타브 모로가 살아서 이 팔레트를 쓰고 있다. 그는 일생의 대작인 쥬피터와 세멜레를 그리는 한편, 그의 집을 미술관으로 개조하는데 몰두하고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유언장에다 이렇게 썼다.




“개인으로의 나는 잊어주세요. 대신 미술관이 문을 열면 내 평생 작품들을 함께 감상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내가 꿈꿨던 세상을 분명 이해할 겁니다.”




나는 그 해 가을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쉐 미술관에 모아 놓은 전세계 대가들의 그림들을 소중한 보물이라도 되는 듯 눈에 담았다. 그러나 오랑쥬리 미술관에 갔던 날, 내가 보았던 모든 그림을 잊었다. 완만한 곡면의 벽을 따라 피어있는 아름다운 수련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수면 위에 드리워진 서늘한 수양버들과 조각조각 부서지는 푸른빛에 빠져 있노라면 기억이 한 순간에 소멸해버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며칠 후 구스타브 모로 미술관에서 나는 모네의 그림도 잊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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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돌 말린 나선형 계단


“나는 내가 만지는 것이나 눈으로 보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나는 오로지 내가 보지 않는 것, 내가 느끼는 것만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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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꿈꾸었던 방


구스타브 모로는 나를 신비와 모험의 세계로 안내한 은밀한 칩거자였다. 높은 천장과 나선형 계단으로 이루어진 전시공간을 거닐었다. 그림 앞에 설 때마다 그 이야기 속에 숨어 있는 욕망과 감정이 튀어나왔다. 그가 꿈꾸었던 세계는 텍스트로만 이해했던 신화와 성서가 아니라 바로 삶이었다. 모험과 갈등, 위기와 기회, 사랑과 배신, 빛과 어둠,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순간들이 녹아 있었는데, 그 안에 무엇이 꿈틀거리든 전체적으로 조망하면 진화하고 있는 세계였다. 그런 점에서 그는 색으로 신화를 빚는데 성공했다. 그리하여 색과 신화는 그 자신보다 오래 살았고, 지금은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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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피터와 세멜레의 가장 아랫부분





파리의 인상들


끝과 시작을 붙여볼까?
먹고 산책하고 노을을 본다
단골이 되고 싶은 가게를 나열한다
여행 속의 여행 - 니스에서 수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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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브 모로의 팔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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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개조해서 만든 마술관이라니
너무 의미가 깊은 곳일 것 같아요~!!
팔레트마저 작품이 되는 멋진 곳이네요^^

모로가 평생을 지냈던 생가라서 그런지 더 의미있었습니다:)

팔레트를 사용하다보면 머리카락이 떨어져서 물감과 같이 굳어버릴 때가 있죠. 혹시 저 팔레트에도 모로의 머리카락이 남아있다면 영화 '쥬라기월드'처럼 부활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상상해봤습니다.ㅎㅎ

진짜 팔레트에 머리카락 하나 쯤은 떨어졌을법 하네요. 땀 같은 게 섞여있을지도! ^^

미술관이 저택 안 작업실 같기도 하고 너무 좋으네요.

아버지가 부유한 건축가였대요. 모로는 태어난 집에서 쭉 살다가 죽기 전에 자신의 그림을 위한 미술관으로 개조했답니다. 멋지죠?

역시는 역시네요....ㅎㅎ

집을 개조해서 만든 구스타브 모로 미술관, 직접 가서 느껴보고 싶을 정도로 인상적인 곳이네요. :-) 보얀님께서 담아주신 사진만으로도 두근두근합니다. ㅎㅎㅎㅎ 중간중간 인용해주신 구스타브 모로의 언어가 포스팅에 새겨져 있어 더욱 생생히 읽었어요. 감사합니다!

몽마르뜨르 미술관도 저택을 개조한 느낌이어서, 방방 마다 조금씩 전시가 되어 있는 게 너무 좋았어요. 방문을 여는 게 킬링 포인트였어요!! 그 행위에 이미 미술관 그 이상이 되어, 아티스트의 집을 방문한 듯한 기분이 들었거든요. 어떤 방문을 열자 빛이 가득한 아티스트의 널찍한 작업실이 나왔는데- 그 순간의 감동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답니다. :-) 구스타브 모로의 미술관도 꼭 가보고 싶어요-!

리리님 직접 방문을 열고 들어간다면 어떤 그림이 방 안에 있을 지 심장이 두근거릴 것 같아요. 몽마르뜨 미술관에는 안가봤는데 다음에 꼭 가볼게요 ^^

보얀님 덕분에 가고싶은 곳이 생겼네요. 다음에 파리에 가야할 이유가 더 늘었습니다. ^^

정말 파리는 늘 가고 싶은 도시예요 ^^ 방문하시게 되면 영감 많이 받으시고 좋은 시간 되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팔레트도 작품인줄 알았어요.

확대해서 찍어놓으니까 팔레트도 하나의 작품처럼 보이네요:) 팔레트가 이런 식으로 전시되어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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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트마저도 저렇게 예술작품스럽다니요......! 역시 예술가는 다르네요.

저도 팔레트가 예뻐서 한참 보고 있었답니다:)

모네는 들어봤는데 구스타브 모로는 처음 들었어요. 멋진 예술가인 것 같아요.

예술가인 동시에 훌륭한 스승이었다고 합니다. 모로의 제자 중에 마티스도 있었다고 해요:)

창작의 고통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특이한 혹은 괴이한 그들만의 감성과 감각이 멋진 작품들을 만들어 내는 거겠지요?

루브르, 오르세, 오랑주리까지는 저도 가본 곳이라 신나서 따라왔는데..
구스타프 모로는 잘 모르네요.ㅜㅜ
아직도 모르는 예술가가 이렇게 많은지...
모로는 종교화를 그리는 사람이었나봐요.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가 다음에 제대로 감상해 볼 날이 오길 기다려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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