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자격과 소문의 벽

in #kr-pen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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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에 자격이란 있는가? 우선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작가만을 소설가로 보는건 너무 편협하고 보수적인 시각이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반지의 제왕, 해리 포터, 셜록 홈즈와 같은 소설들은 신춘문예를 통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소설들이 유명해지고 영상화까지 되어도 문학으로 인정하기 싫어하는 보수적인 사람들이 있지 않는가. 성공하고도 이토록 박한 평가를 받는데, 신인이었다면?

수입을 얻느냐, 얻지 않느냐를 기준으로 삼을 수도 없다. 예술가들은 사후에 비로소야 인정 받는 경우도 흔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전업이냐, 취미냐로 나눌 수 있는가? 취미로 소설을 쓰는 사람은 취미일 뿐 소설가로 부르기에는 부족할까? 전업 소설가의 삶이라는게 보통은 아주 어려운 길이다. 취미로 소설을 쓰는 사람은 그 어려운 길을 포기한 사람일까? 그 어려움을 겪어야만 소설가라면, 화려하게 등단하여 처음부터 부와 명예를 손에 넣은 소설가는 소설가가 아닌게 된다. 그래서 전업이냐, 취미냐도 자격을 판별할 척도로는 부족하다.

그렇다면 써낸 소설의 수는 어떤가? 작품에 따라 분량이 다르다고 하면 글자수는 어떤가. 이는 따져볼 여지도 없다. 분량이 같다고 같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도 아니며, 작가가 자신이 쓴 모든 글을 대중에게 내비치지도 않는다. 내비친다 하여도 바뀌는 것은 없고. 출품 주기 또한 유용한 정보는 될 수 없다. 출품과 출품 사이를 오롯이 집필로 보내진 않으니. 하지만 이 문제는 조금 더 중요하다. 학창 시절에 과제로 시를 한편 써낸 적 있는 사람을 시인이라 부른다면 대부분의 사람이 시인이며 소설가가 된다. 이게 무슨 문제냐고 하실 독자분도 계실 것이다. 본문은 계속해서 소설가에 부여된 권위를 깎아내고 있으며, 소설가라는 호칭을 더 많은 작가들에게 돌리고 있으니까. 그렇지만 호칭은 구분을 위해 존재한다. 그렇지만 누가 명확한 기준을 정할 수 있을까?

그래서 소설가의 자격이란 굉장히 모호하다. 그렇다면 모호한 소설가의 자격 대신 소설의 자격을 살펴보자. 소설은 무엇인가? 무엇이 글에 소설이라는 지위를 부여하는가? 이것 또한 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실은 그래. 구분해서 뭘 하겠는가? 시대가 지나면서 사람들은 자연스레 많은 직업을 가지는데. 소설가도 언젠가는 호칭으로써의 기능을 상실할 것이다. 아니, 이미 그러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논리를 따지자면 이렇겠지만, 내 주관은 다르다. 남을 향한 내 주관이 아니라 나를 향한 내 주관을 품는건 내 자유이니 억지로 바꿀 필요도 없고, 바뀌기가 쉽지도 않다. 그 주관이란 무엇이냐 하면, 나는 이청준의 소문의 벽을 읽고 나면 내 글을 소설이라 부르고 싶지 않아진다. 소설 대신 내 글과 소문의 벽을 구분할 적당한 표현이 필요하다고 느낄 정도로. 아마 독자분들은 내 프라이드를 아실 것이다. 나는 프라이드가 있는 사람이고, 그래서 이게 열등감이나 자격지심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사실 아무리 프라이드가 없다고 해도, 대가의 작품을 읽은 것으로 좌절할 정도라면 어떻게 지금도 이렇게 글을 쓰고 있겠는가.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왜 이청준이며, 왜 소문의 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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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의 소문의 벽은 못 읽어봤지만, 읽다보니 쓰고 싶지 않아지는 경우도 이해 갑니다...

정말 누가 시인이고 누가 소설가일까요. 저도 생각하던 것이었기에 글을 읽는 내내 공감했습니다.

SNS상에는 가짜뉴스라는 장르의 소설가가 넘쳐나기도... ^^;;

아이고...

금강경에도 그런 표현이 있지요. 그 이름이 소설이고 그 이름이 시일뿐이겠지요. 우리는 being 그 자체를 때로는잊고 살지요. 그러다보니까 이름붙이는게 편한가 봅니다. 그게 족쇄일지도 모르지요. 어쩜 행복한 족쇄일수도 있구요. 프라이드가 있다는 것은 어찌보면 존재 그 자체를 인정하는 것일수도 있겠습니다.

이청준의 '소문의 벽'을 일단 읽어야겠다 싶네요 ^^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왠지 어려울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참 근본적인 질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시인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라 생각이 들구요.
사실, '누구나 시인'이라는 말에는 다소 오류가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입니다만, 그렇다고 정체를 명확하게 지시할 수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래도 글을 쓰고 있는 순간만, 시인이 되었다, 소설가가 되었다가 사라지는 것이 시인과 소설가를 변별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은데, 또
그렇게 말하기에도 자존감이 쉽게 허락하지 않는 부분도 있으니 말입니다.

잘 보고 갑니다.

+) 그래서 스팀잇에서 '지워지지 않는 글'을 쓰기가 더 어렵게 느껴지네요...ㅎㅎ

어려운 문제네요. 사람마다 느끼는 단어의 무게감이 다르니 말입니다.

등단의 과정과 소설가의 자격을 논하는 문제는 문단 안에서도 논쟁의 화두가 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이른바 정통소설만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할 수 있다는 현실을 비춰보았을 때, 다른 나라에선 소설의 붐을 이끌고 있는 장르소설이 온전한 소설로 대접 받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하며 현 등단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인터넷의 발달로 누군가가 쓴 소설이 타인에게 읽힐 통로가 많아졌다는 시대적 변화를 수용하여 소설가의 등단과 자격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문학작품이 끼치는 사회적 영향을 알고 있기에 소설가나 작가의 문턱을 더욱 높이게 되는 건 아닌지 생각이 들었습니다만은 정말 구분이 모호한 것이 사실이네요 : ) 읽으면서 많은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소설가냐 아니냐를 나누기보다 소설을 써서 돈을 버는(혹은 돈을 버는게 목적인) '프로'소설가와 '아마추어'소설가로 분류하면 되지 않을까요?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소설가 라던지요.

소설가 그 자체를 논하기 보다는 수식어를 바꿈으로써 범위를 넓히는 것이 더 아름다워 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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