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사육 12. 요순시대

in #kr-novel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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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외국인 노동자 석
2. 낚시대로 얻은 가족-6.
7. 선문답
8. 내면의거울 -9.
10.생태계 -11.


12. 요순시대

"어떤 사람도 내가 걷고 있는걸 본다면 다음에 내딛을 발이 어떤 발인지 압니다."

다섯 걸음 걷고 다시 홱 돌아서 다섯 걸음. 당연히 사람이 걷는 모습을 보면 다음에 내딛을 발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미처 발을 다 내딛기도 전에 뒷발을 다시 뻗는 모양새와 발소리, 속도를 고려하면 남자의 기분이 어떤지도 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를 속이지 않고는 정확하게 답할 수 없습니다."

걸음걸이와 다르게 남자의 말소리는 가라앉아있다. 단순히 생각에 잠기어 발걸음이 자연스레 빨라졌는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어떻게 살아있는지 물었습니다."

남자는 대답하지 않고 의자를 가져와 털썩 주저앉더니 팔에 힘을 뺴서 무릎 위에 늘어놓고 목을 젖혀 등받이 윗편에 얹고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숨을 폭 내쉬고 띄엄띄엄 말을 시작했다.

"두 사람이 내가 앉아있다가 일어나서 어느 다리를 먼저 뻗을지 내기를 한다고 합시다. 편의상 두 사람은 각각 다른 선택을 한다고 하겠습니다. 이는 분명 50%의 승률을 가지는 내기는 아닙니다. 내기하는 사람은 나의 습관을 아는 사람일 수도 있고, 관찰력이 좋은 사람이라 제가 의자에 앉는 모습을 분석해서 예측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내기를 설명할 때 어떤 수를 써도 좋다는 말을 덧붙히거나 내기의 보상을 크게 잡으면 내가 일어서려고 할 때 소리를 꽥 내질러서 자연스레 익숙한 다리부터 뻗도록 할 지도 모릅니다. 한쪽 다리에 돌을 던져서 돌을 피하기 위해 그 다리를 먼저 움직이도록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 내기에서 100% 이길 수는 없습니다."

옷을 갈아입고 싶다. 몸이 너무 축축하다. 몸을 일으키고 싶지만 양팔을 쓸 수 없으니 쉬운 일이 아니다. 평소에 운동을 좀 해야했다. 남자는 영문 모를 말을 이어간다.

"하지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살아있습니다."

나는 악을 쓰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하라 요구한다.

"그럼 이렇게 할까요."

깍지 낀 손이 턱 하고 떨어졌다. 손이 너무 저렸다. 그래서 그냥 누운 자세로 있었다.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튀어오르듯 일어서서 칼을 찾으러 달려나갔다. 칼을 쥐고 몸을 돌려서 다시 튀어나가려는 순간, 나는 한번도 사람을 해친 적이 없으며 폭력을 휘두른 적도 없이 항상 온화하게 살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칼을 내려놓았다.

"이제 아시겠습니까?"

이제야, 감이 온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중국의 고사에 따르면, 태평성대에는 임금의 이름조차 알 필요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라가 자연스레 평화롭고 풍요로울 순 없습니다. 아마도, 그 어느 왕보다도 많은 일을 했을 것입니다. 백성들의 삶에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이 개입하고 있었겠죠 ."

남자는 갑자기 고개를 푹 떨구더니 눈을 감고 다리를 꼰다. 한손은 그대로 무릎에 얹어놓고 한손은 허벅지 위에서 손가락만 까딱거린다. 흔적도 남기지 않고 말끔하게 밀어낸 수염과는 대조적으로 너저분한 머리를 하고 있는 남자는 건전지가 다 된 시계처럼 한참을 까딱거리다 폐에 머금은 담배연기를 내뿜듯 길게 숨을 뽑아내고는, 두손을 거두더니 마치 기도하듯 깍지를 꼈다가 이내 언 손을 녹이듯 한손으로 다른 손의 손가락, 손등, 손목을 차례로 힘있게 쥐더니 기지개를 펴고 양팔을 뒤로 뻗어 의자 등받이를 만지작거렸다. 마지막으로 양팔을 교차해서 양 팔뚝을 붙잡고 당기더니 개운해졌는지 다시 숨을 폭 내쉬고 왼손을 뻗어 입근처로 가져갔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남자의 몸과는 달리 얼굴은 가끔씩 눈이 침침한지 한번씩 눈을 찌푸리는 것 외에는 평화로워 보였다. 움직임을 멈추고 잠시 허공을 응시하던 눈을 다시 나에게로 옮긴 남자는 다시 말을 시작했다.

"아마도 당신은 지금 그렇다면 자유는 어딨냐고 묻고 싶겠죠. 한번 눈부심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빛에 눈부심이라는 성질은 없습니다. 그저 시신경에 손상을 입힌 강한 빛을 피하려는 본능을 가진 개체들이 생존에 유리했기에 우리는 눈부심이라는 느낌을 갖게 되었습니다. 고통은 어떤가요? 총알에는 고통이라는 성질이 내제되어 있습니까? 고통, 눈부심 모두 실체가 없습니다. 그저 느낌일 뿐이죠."

남자는 처음 만났을 때와 달리 말이 많다. 역시 그 날은 지쳐있었던 것이다. 남자의 말을 이해한다. 하지만 총알에는 모든 것이 담겨있다. 총알의 궤적에 있는 사람은 고통 받을 것이며, 높은 확률로 죽을 것이다. 어쩌면 목숨을 잃을, 혹은 목숨을 잃지 않더라도 슬퍼할 주변 사람들이 있으며, 그 총알을 만든 사람이 있다. 그 총알을 들어있는 총의 방아쇠를 당긴 사람이 있다. 그 총을 만든 사람이 있다. 활을 처음으로 만든 사람이 있다. 돌을 처음으로 던진 사람이 있다. 돌을 처음으로 무기로 사용한 사람이 있다. 지구가 있다. 우주가 있다. 태초에 빛이 있었다. 눈이 부시다.



연재를 시작한 이후로 가장 오래토록 글이 없었네요. 하루, 이틀꼴로 올리다가 지난번부터 확연히 늦어졌습니다. 앞으로 조금 더 부지런히 쓰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여러분들이 내 머릿속을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러한 문체가 굉장히 불편하다고 생각은 합니다. 묘사력까지 부족하니 더욱 읽기가 쉽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직관이라는 것이 의식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닌만큼 '의식을 글로 옮긴다'고 할 때는 생략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의식적인 생각 또한 문자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니 이러한 말은 변명이 될 수 밖에 없지만 내 나름의 욕심이니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러다 안 그래도 인기 없는 소설 완전히 망하겠다는 생각은 듭니다...

이런 불친절한 소설 읽어주시는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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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 소설은 해석을 하면 안될거 같아서 느끼려고 합니다. 그랬더니 오늘은 "나"의 허탈함과 무기력함이 느껴지네요. 그 허탈함과 무기력함은 아마도 "남자"와 관련이 있겠지요.
마지막 부분을 보니 시도 잘 쓰실 것 같은데요. 언제 한번 도전해보시죠. ^^

육성으로 웃었습니다 ㅋㅋㅋ 결국 스팀잇 문학왕도 포기하셨어...

정말 심각한 상황이 아닌가 싶어서 하나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지난 연재분 중 일부를 인용하겠으니 글에서 묘사하는 것이 무엇이라 느끼셨는지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바람이 얼굴에 닿는 기분이 들었다. 눈을 감고 있지만 빛이 느껴진다. 부력에 떠받쳐지던 몸이 포근하게 가라앉는 느낌이 든다. 이제 주마등이 시작되는 것인가. 아무 것도 시작되지 않았다. 내 입에서 나온 뜨거운 숨결이 닿아야 할 내 얼굴엔 정체 모를 공기만 와닿는다. 분명 무언가는 일어났다. 여전히 감은 눈은 빛을 느낀다. 내 공허한 삶에 주어지는 주마등은 이런 형태인가.
자연스럽게 호흡한다. 혹 사후세계가 실존하며 나는 지금 사후세계로 온 것인가. 서서히 눈을 뜬다. 보여선 안 될 천장이 보인다. 영혼은 정말로 육체로부터 해방되어 영으로서 떠도는 것인가. 내가 누구인지 되짚어 본다. 명확히 기억하고 있다. 내 가설이 틀렸다. 골치가 아팠다.

특히나 묘사를 잘 했다고 생각한 장면이라 더욱 여줍고 싶습니다. 이 장면조차도 난해한 것이라면 정말로 문체를 바꿔야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인물의 심리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처음에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던 것도 이해가 될 수 있지만 기본적인 상황 묘사조차도 전달이 안 된다면 심각한 문제겠죠!

일단 전 문학왕도 아니고요. ㅠ.ㅠ 그냥 한 사람의 독자로 생각해주세요.

작가님의 소설은 제가 이해하기엔 좀 난해했습니다. 그래서 한번 두번 더 읽으며 이런 표현인가?하고 곱씹은 적이 많지요.

위에 설명하신 부분도 처음엔 어리둥절했고요. 두세번 읽었을 때는 구조가 돼서 응급처치나 수술대로 옮겨진 상황이 아닐까 추측했습니다.

문체의 문제라기 보다 설명의 보폭을 좀더 줄여주시면 어떨까 합니다. 큰 걸음 따라가기가 버거울 때가 있거든요. 제가 지금 긴 글을 못 써서.. 나중에 다시 댓글 달겠습니다.

바쁜 시간 쪼개서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포스트 후에 미흡하다 여긴 부분은 메모해놓고 넘어가고 있으니 나중에 정리해서 다시 올릴 땐 조금 더 나은 형태로 선보일 수 있을겁니다.

오늘도 4번정도 읽은듯 하네요 ㅎㅎ
아직 완전 처음부터 읽은것이 아니라 내용파악하려면
시간을 거슬러가야되서 좀 늦겠지만
행동묘사만큼은 동영상을 보듯 생생했습니다.
고동색나무 재질의 의자를 상상했는데, 아무튼 재미납니다.

처음부터 읽으셔도 어리둥절하실 글을 그대로 4번이나 읽으셨다니 인내심에 존경을 보냅니다. 감사합니다.

ㅎㅎ난독증이라 할순 없지만, 글을 오래 읽는것이 버거웠던 적이 있습니다.
반복적 독서와 글 읽기는 생존과 하고자하는 공부를 하기위해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거쳐 굳어버린 버릇같은겁니다^^;;
제것이 된 내용들도 2번은 읽어야하니...ㅎㅎ
후회없는호기심과 합당한시간을 바꾸는 셈이네요 ㅎㅎ

독서 속도와 실력은 관계가 없답니다. 막상 지성인들은 한 문장, 한 문장을 오히려 더 느긋하게 곱씹으면서 읽곤 하더라구요.

지...지성인분들은 참 대단하십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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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아주 천천히 음미를 해야 하는데,
지루함이 있기는 하지만 깊은 사색의 여유로움이 있어서
오히려 재미가 있습니다,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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