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 8. 내면의 거울 ~ 9. 호숫가의 한적한 마을

in #kr-novel7 years ago

8. 내면의 거울
면담이 끝나고 타블렛 같은 장치를 하나 받았다. 사용법이 무엇인지,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도 알려주지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되는걸까. 오늘 밤은 어디서 자는걸까. 나는 이제 무엇을 하고 싶은가.

밖으로 나오니 광장이 있었다. 사람들이 활발하다. 제각각의 언어로 웅성거린다. 바로 앞에 들어간 석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아마 같은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만난 모양이다. 어쩌면, 내가 강제로 찢어낸 옛 이웃을 만나진 않았을까.

나는 구석의 벤치로 향한다. 걷는 도중 보니, 하나 둘씩 벤치에서 일어나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향한다.

벤치에 앉아서 타블렛을 확인하기 전에 잠깐 생각을 한다. 나는 왜 이곳에 왔는가. 이 곳은 무엇인가. 박사는 무얼 하고 싶은 것인가. 내가 박사였다면, 내가 내뱉는 폭언을 그처럼 무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여전히 묻는다. 나는 왜 화가 났을까.

타블렛을 무릎에 얹고 버튼을 찾는다. 기계에 친숙하지 않은 사람도 있을텐데, 왜 이런 방식을 취했을까. 이런 생각을 비웃듯 화면이 저절로 켜진다. 거주를 원하는 구역을 선택하라고 한다. 구성원의 수, 사용하는 언어의 비율, 구성원들이 가진 취미 등 다양한 정보가 나열되어 있다.추천하는 구역도 있다. 내 정보에 대해 어떻게 알고 추천한다는지 모르겠다. 나에겐 호숫가의 한적한 마을이면 충분한데, 이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 모두 있으니 그런 호사는 불가능 할 것이다.

"이장님, 한참 찾았잖아요."

익숙한 억양. 고개를 들어본다. 사람들이 보인다. 내 가족들이 보인다. 앞으로 들을 일 없으리라 했던 호칭이 너무나 반가웠다.

더 나은 삶을 찾아 떠났으니, 기꺼이 놓아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내가 한심하다. 진정 이들을 가족이라 생각했다면 오히려 원망 해야했다. 나를 기다리지 않음에 아쉬워 해야했다.


9. 호숫가의 한적한 마을
이동하며 들으니 마을 사람들은 하나같이 마을에 대해 이야기하고 마을의 누군가가 찾아오면 꼭 알려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하지만 요청은 거부당했고, 교대로 이 국경이라 할 수 있는 곳에서 마을 사람들을 찾았다고 한다.

속으로 다시 한번 이들에게 사과한다. 그리고 감사한다.

앞으로 지낼 곳에 도착했다. 이동하면서 본 풍경은 충격적으로 거대한 구조물의 연속이었다. 면적이 이렇게나 큰 구조물을 본 적이 없다. 이토록 많은 사람을 모았으니 어느정도는 예상했지만 조금 과했다. 살짝 화도 나고, 박사의 말도 안되는 재력에 감탄했다.

"실망하셨죠?"

깜짝 놀랄거란 말이 따른다. 박사가 사람을 세뇌시키는 것이 아니라면, 표정을 속일 수는 없다. 이들은 진정 행복한 사람들이다.

들어서니 엘리베이터가 가득했다. 벌써부터 숨을 쉬기 힘들었지만 손에 이끌려 이동한다. 빌딩은 위로도 높았고, 지하로도 깊었다. 숨이 멎을 것 같다. 석도 비슷한 표정이다. 석의 가족과 나를 제외한 사람은 모두 웃고 있다.

화장실 같은 곳에 도착했다. 화장실 안에 엘리베이터가 있다니 이 얼마나 이해하기 힘든 구조인가. 또 다시 손에 이끌려 밖으로 나간다. 자연이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길은 호숫가의 산책로로 변한다. 내벽은 정교하게 배경에 녹아들어 도저히 이 곳이 건물 안이라는 생각을 할 수 없다. 보는 각도에 따라 내벽이 다르게 보여 어느 위치에서도 자연스러운 자연경관을 볼 수 있다. 해가 뜨고 지는 것까지 자연스럽다고 한다. 산책로에서 빠져나가는 오솔길은 화단을 지나 오두막의 입구로 이어진다. 담도 없이 촘촘하게 둘러서있는 오두막들이 자연경관과 구분되지 않는 내벽의 역할을 대신한다.

산책로를 따라 공중화장실이 여럿 있다. 처음 도착한 화장실처럼 화장실의 기능과 엘리베이터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한다. 각 층은 제각각 다른 풍경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그 층의 구성원들이 합의 하에 결정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살 오두막을 안내받았다. 혼자 살기엔 크지만 아늑하다. 모든 집은 4인가구를 기준으로 만들어져있는데, 가족 구성원이 4인을 초과하면 두 채 사이에 통로를 만들어준다고 한다. 담이 없어서 가능한 일이다.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이 곳에서 사는데 필요한건 모두 타블렛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첨단 시설과 호숫가의 한적한 마을, 아늑한 오두막이라니 박사에게 품었던 적개심이 한심하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을만큼 놀랍다.



1. 외국인 노동자 석
2. 낚시대로 얻은 가족 ~ 6. 새장 속의 자유

묘사가 충분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아무쪼록 재밌게 읽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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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내공이 약한 탓인지 소설이 좀 어렵게 느껴집니다.ㅠ.ㅠ 그래도 여기까지 읽으니 제목을 사육이라고 지으신 이유를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도 같습니다. 새장 속의 자유 챕터도 더 잘 이해가 가고요. 음.. 맞게 이해한 거겠죠? ^^;;

제 소설이 근본도 없음이 문제죠. 자유와 사육에 대한 글을 쓰다 문득 소설의 형식을 빌려 이야기하고 싶어 구석에서 먼지가 쌓여가는 글을 재구성해서 다시 쓰는 글이니까요.

앗,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너무 뻘쭘해집니다. ^^;;; 저도 소설의 소자도 모르는 사람이니 제 댓글은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ㅠ.ㅠ

사실 공간 묘사할 때 신이 나서 썼는데, 막상 써놓고 보니 어디서 본거 같기도 하고... 싶어서 조금 슬펐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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