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사육 10 -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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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외국인 노동자 석
2. 낚시대로 얻은 가족-6.
7. 선문답
8. 내면의거울 -9.


10. 생태계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었다. 원하는 물건이 있으면 타블렛으로 주문할 수 있으며, 발품 팔며 물건을 사고 싶으면 쇼핑몰이 구성된 층이 있다. 원한다면 매장을 관리할 수도 있다. 원한다면 청소를 할 수도 있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 교육이 필요한 것이 있으면 타블렛으로 아주 쉽게 정렬된 문서를 받아볼 수 있다. 자신이 자신 있는 분야가 있으면 교육에 지원할 수 있었다. 매뉴얼을 통해 교육 받고 필기시험과 면접을 거쳐 교육자로 인정받는다. 교육자들은 활자로는 교육이 부족한 이들을 위해 실습을 돕는다.

밖에도 있던 기성품은 모두 무료이며 대부분의 정보도 공짜로 제공되지만 그 외의 것들은 모두 토큰을 통해 이루어진다. 토큰은 매주 지급되며 매달의 끝에 각 분야에서 모인 토큰을 집계하여 순위를 공개한다. 가령 출판 전반에 얽힌 관심의 정도를 엿볼 수 있고, 내가 좋아하는 장르, 내가 좋아하는 특정한 작가에 대한 관심까지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생필품이 무료라는 것 하나만으로 예술이 수요와 공급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더 이상 비난의 대상이 아니다.

같은 층에 살고 있는 마을 사람들은 노래를 만들고 있다. 석도 생계를 위해 장사를 하던 것이지, 장사를 진정 업으로 삼고 싶진 않았던 것이리라. 가족들이 합주, 합창을 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노래를 만들고 공급자를 찾는다. 공급자는 제각각이다. 밖에서 있었던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광고로 수익을 내며 이를 원작자에게 배분하는 공급자들도 있으며 물리적으로 음반을 판매하여 수익을 배분하는 이들도 있다. 단 훨씬 넓고 자유롭게 경제적 활동이 이어진다. 저작권자에게 연락하여 다양한 방식의 계약을 맺어 커버곡을 내기도 하고, 작곡가가 멜로디를 공개하고 보컬, 연주자를 찾기도 한다.

설비가 필요하면 요청한다. 기성품과 다른 무언가를 생산하고 싶다면 박사측에 기획안을 제출한다. 기성품과 다른 점을 분석하여 생산될 가치가 있으며 공공의 이익을 해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적은 수수료로 생산해준다. 시제품을 생산하고 수요를 확인하면 추가적으로 계속해서 공급해준다. 이러한 제품들도 마찬가지로 인기를 얻으면 다양한 공급 방법과 계약에 따라 토큰이 오고간다.

새로운 스포츠도 탄생한다. 더 이상 수요에 메달리지 않아도 원하는걸 할 수 있다. 실패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예상 수요가 부족하다고 도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나는 생산적인 활동엔 별로 관심이 없다. 이 곳에서 누릴 수 있는 다양한 취미들에도 관심이 없다. 나는 그저 이 곳이 어떻게 기능하는지 궁금하다. 무엇이 이런 일을 가능케하는지, 밖에서는 지금 이 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는지 알고 싶다.

무엇보다도, 살고 싶지 않다.


11. 자살과 탄생
치안은 어떻게 유지되는지 궁금했다. 식칼을 품고 밖으로 나갔다. 여전히 나를 반겨준다. 사람들은 내가 자유롭게 정보를 얻을 수 있어 집에서 원하는 공부를 하고 있는 줄로 알고 있다. 해가 질 때까지 요즘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듣는다. 취미를 위해 다른 곳에서 지내고 있는 사람도 있고 마찬가지로 취미를 위해 온 사람도 있다.

아무도,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는다. 정상이 아니다. 바로 옆에 미친 놈이 칼을 품고 있지만 경계하지 않는다. 벤치에서 자는 사람들도 있다. 모두가 잠들고 나를 지켜보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칼을 꺼냈다. 벤치에서 자는 이에게 다가갔다. 등에 칼을 겨누었다. 천천히 칼끝을 움직인다. 옷에 닿은 것 같다. 여기서 조금만 힘을 주면 이 사람은 죽을 것이다. 이 사회는 불안정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자고 있는 이의 얼굴을 확인했다.

내 오두막으로 돌아왔다. 올가미를 메달았다. 의자 위에 선다.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들어 다시 내려온다.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죽을 이유도 충분하다. 생물적 본성인가. 곰곰히 생각해본다. 내가 죽어있는 모습을 볼 가족들은 죄가 없다. 아마도 끔찍한 꼴일 것이다. 박사측이 확인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연락을 취한다. 나는 죽을 것이며, 누군가 보기 전에 시체를 치워달라고 한다.

다시 의자 위에 선다. 또 다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또 다시 내려왔다. 생물적 본성이 이처럼 강한 것인가. 하지만 정신이 혼란한 사람은 생물적 본성에 반하여 자살을 택하곤 하지 않는가. 나는 살고 싶지 않다. 살아 있을 이유가 없다. 무기력하다. 우울하다. 화도 난다. 죽을 이유가 충분하다. 문득 박사측의 사람들이라도 내 시신을 수습할 사람들은 무슨 죄인가 싶었다.

이게 아마 마지막 미련이었을 것이리라. 집에 있는 가구들을 가지고 관을 만들었다. 꽤나 알록달록한 관이 되었다. 뚜껑을 닫고도 앉아서 팔을 움직일 여유 공간을 두어 관이라는 이름이 어울리진 않는다. 아무튼 내가, 죽어서 들어있는, 타인에게서 끔찍한 죽음을 격리하는 곳이 관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두꺼운 옷을 빈틈 없이 껴입었다. 머리만 덮는다면 이제 아무도 끔찍한 꼴을 보지 않을 수 있다. 혹시 몰라 관뚜껑에 열지 말고 처리해달라고 써붙혔지만 혹시 몰라서 이렇게 한다. 죽는 순간에야 답할 수 있다. 나는 정말 착한 사람이다. 옷 하나를 찢어 머리를 담을 주머니를 만든다. 안에 비닐봉지를 덧대었다. 문득 물 속에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관에 물을 부었다. 접착제와 머리 주머니를 갖고 관에 앉았다. 뚜껑을 닫았다.
목을 둘러 접착제를 발랐다. 이제 머리 주머니를 붙히면 비닐봉지 안의 산소가 다할 때 내 숨도 다 할 것이다. 봉지를 뒤집어썼다. 접착제 냄새와 산소의 고갈 중 무엇이 내 숨을 먼저 빼앗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몽롱한 상태로 죽을 수 있겠다. 죽음은 두렵지 않지만 고통은 싫으니까. 마지막으로 양손을 깍지 끼고 손바닥을 뒷목에 붙힌다. 이제 무엇도 내 죽음을 막을 순 없다.

물 속에 평온하게 누웠다. 봉지는 튼튼했다. 분명 머리가 물에 잠겼는데 물은 새지 않는다. 묘한 재미가 있었다. 역시 마지막 미련을 해결하니 죽음은 쉽다. 나는 생물적 본성을 이겨냈다. 눈을 감는다.
바람이 얼굴에 닿는 기분이 들었다. 눈을 감고 있지만 빛이 느껴진다. 부력에 떠받쳐지던 몸이 포근하게 가라앉는 느낌이 든다. 이제 주마등이 시작되는 것인가. 아무 것도 시작되지 않았다. 내 입에서 나온 뜨거운 숨결이 닿아야 할 내 얼굴엔 정체 모를 공기만 와닿는다. 분명 무언가는 일어났다. 여전히 감은 눈은 빛을 느낀다. 내 공허한 삶에 주어지는 주마등은 이런 형태인가.

자연스럽게 호흡한다. 혹 사후세계가 실존하며 나는 지금 사후세계로 온 것인가. 서서히 눈을 뜬다. 보여선 안 될 천장이 보인다. 영혼은 정말로 육체로부터 해방되어 영으로서 떠도는 것인가. 내가 누구인지 되짚어 본다. 명확히 기억하고 있다. 내 가설이 틀렸다. 골치가 아팠다.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본능적으로 움직이려고 했다. 그 순간 알았다. 내 다리는 젖어있고 손은 접착제로 붙어있어 움직일 수 없다.

이 사실에 당혹감을 느낀건 처음이다. 나는 살아있다.



늦었습니다. 기다리셨을 분들에게 죄송합니다. 꼴에 잠시 회의감을 느꼈습니다. 아무쪼록 재밌게 읽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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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죽으려고 한 거죠? 제가 이해를 잘 못해서 죄송합니다. ^^;;

죽으려고 하다가 살아있다는 걸 알고 당황하는 마지막 부분은 참 흥미롭네요.
잘 읽었습니다. ^^

아직 부족하군요. '죽고 싶구나'하고 자연스레 읽히고 싶었습니다. 혹 개연성이 부족한가 싶어 걱정이 되네요. 장면에서 장면으로의 전환이 빠르며 내면묘사로만 흘러가는만큼 심리 묘사가 더욱 치밀해야했습니다.

무릇 이런 이야기는 이야기꾼이 직접 할 이야기가 아니라 관객 중 하나가 "엣헴, 그건 말이지."하면서 설명할 이야기지, 직접 밝힐 것은 아니지만 아직 그런 독자분들을 거느리기엔 부족한 사람이라 설명 드리겠습니다.

한 개인의 내면의 붕괴는 다양한 방식으로 일어납니다. 주인공은 오래토록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않은 이입니다. 어떤 연유인지 가진 돈이 있어 혼자 살며 그저 생각하는 것 외에는 특별한 활동을 하지 않죠.

필연적으로 찾아올 공허함을 산책하며 자신이 도운 이들을 만나며 채웁니다. 여기서 값싼 동정심에 도운 것이 아니라는 숭고한 존재이고 싶어하는 자신과, 이들의 삶의 질을 높힌건 분명하다는 우월감이 항상 충돌합니다. 이들을 가족이라 여기고 싶어하며, 동시에 우월감을 느끼는 것은 충분한 자괴감을 만들어냅니다.

계속해서, 박사의 존재는 주인공에게 여러가지를 느끼게 합니다. 박사는 분명, 자신처럼 공허감을 채우기 위해 사람을 모은 것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아무런 정서적 유대도 형성하지 않으니까요. 박사가 숭고한 뜻을 가지고 진정 사람들을 돕고 싶었던 것이라면 자신보다 훨씬 위대한 인간입니다.

주인공이 우월감을 느끼며 자괴감과 동시에 자신의 가치를 입증해주던 가족들은 더 이상 자신의 도움이 필요 없습니다.

박사가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인간을 이용하려든다면, 거기에 대항할 수단은 없으며 주변 사람들을 지킬 수 없을 것입니다.

사회의 질서가 어떻게 유지되는지 궁금해서 가족이라 부르는 이의 등에 칼을 겨누어보았습니다. 조금 더 밀어넣으면 큰 부상을 입힐 수 있을 것이고 사회의 질서를 해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때까지 그 이의 얼굴을 보지 않았습니다. 가족을 수단으로써 대한 것이죠.

이 외에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며 독자분들이 나름의 당위성을 찾으시고 자연스레 납득하실거라 생각했는데 부족했던 모양입니다.

아, 우리 약속했던게 있었죠. 글을 찬찬히 읽으시면 모든 단서가 글에 있습니다. 다시 한번 읽으십시오.

제 내공이 부실한 탓입니다. 이렇게 설명해주시게 만들어서 정말 죄송하네요. ㅠ.ㅠ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약속 지킵시다 ㅎㅎ

아주 흥미진진한 스토리인데요.
계속 쭈욱 읽어보겠습니다.
끊지마시고 계속 스토리 올려주시길 바래요.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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