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N클럽 공모전 <봄날의일기> - 농구쟁이

in #kr-diary6 years ago (edited)

“나야~~~ ㅋㅋ”
뜬금없이 신랑에게 톡이 왔다. 왜이래.
“응.... 너구나~~~~~ 그래서 뭐?? 어쩌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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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온다. 사진을 보내고 메시지를 보냈는데 사진이 늦게 온거다. 농구하러 가는 것도 모자라서 가서 뛰는 모습을 보라구? 당신은 욕심쟁이야...

사실 말은 이렇게 해도, 가서 신랑이 뛰는 모습을 가끔 보는데, 좋다 그모습이. 운동을 시작하고 그 ‘맛’을 알기 전에는 농구는 신랑을 잡아간 내가 알 수 없는 어떤 것이었다. 농구는 신랑에게, 책이고, 요가였다.

내가 죽자고 따라다녀 내 남자친구가 되고, 거기다가 한 살 어리고,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하고도 1학년 2학기... 나는 4학년 2학기에 이미 취업을 해서 회사생활을 할 때, 대학교 1학년생을 남자친구로 만들었다는 소식을 들은 나의 친구가 한마디 한다.

“뭐? 대학교 1학년? 야... 언제 키워 잡아먹을래?”

대학교 농구 동호회 소속이었던 신랑이 어느날 말했다.

“미안해. 이번 주에는 집에 못갈 거 같아.”

장거리 연애를 하며 연휴만 되면 남자친구를 볼 생각에 들떠 있다가 너무 실망스러운 마음에 그 이유를 물었더니 기막힌 대답을 한다.

“이번 주부터 합숙 들어가거든, 다음 달에 전국 대회야.”

순간, 농구선수랑 연애하고 있다는 착각을 했다. 농구 특기생도 아니고, 대학교 써클에서 농구하는 주제에 합숙이라니... 거기다 전국에서 그런 대회를 주최하는 인간들이 있다니... 그렇게 신랑이 졸업할 때까지 각종 농구대회를 치르고 뒷바라지 하며 나도 그 동호회 명예회원으로 등록되었다.

결혼을 하고는 직장인 농구 동호회에서 농구를 했다. 주중 1회 주말 1회, 아이가 없을 때는 같이 가서 나는 옆에서 딴짓하면 그만인데, 아이가 태어나고 부터 끊임없이 부딪혔다. 주중에 가는거야 뭐 야근한다 치고 이해 하겠지만, 주말에 애기랑 둘이만 저녁시간을 보내게 하는 그가 얄미웠다. 많은, 일하는 엄마들은 알겠지만, 일 하는게 차라리 나을 정도로 아이 보는게 힘들다.

아이를 다른 데 맡기고 일을 해야 해서 마음은 찢어지고 미안하지만, 육아도 훈련이 필요하다. 출산휴가 후 바로 일을 하던 내게 휴일은 공포였다. 아이를 보는 방법을 몰랐다. 신랑이 없으면 그 공포는 오롯이 내 것이었는데, 나는 농구 가는 신랑이 싫은게 아니라, 그 공포를 나에게만 맡기고 나가는 신랑이 밉고 야속했다.

여기 와서도 줄곧 농구를 나간다. 아이가 아파도 내가 아파도, 심지어 둘째 낳고 그렇게 몸이 힘든데도 농구는 빠지지 않고 나갔다.

어느날 지인이, “신랑은 농구선수야 그지?” 라기에, “농구선수는 돈 벌면서 하죠, 우리신랑은 지 돈 써가면서 해요. 그냥 농구쟁이”

농구쟁이는, 황금같은 주말 저녁에, 농구하러 가면서, 그들이 가정에서 가족들과 할 수 있는 수많은 활동과 의미있는 시간들에 대한, 모든 기회비용을 놓치거나 잃어버리는, 이기적인 모든 남편과 아기아빠들을 비하하기 위해 내가 붙인 별명이다.

페이스북은 중동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쿠데타로 이끌었고, 해외에 흩어져 사는 모든 농구쟁이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으기도 했다.

우리 둘째가 6개월 쯤인가? 느닷없이 신랑이 호치민표를 끊었다며 같이 가자고 했다. 베트남에서 농구대회가 있다고. 하루종일 농구할거라 관광은 힘들겠지만 같이 가자... 는 말에 여행하는 기분으로 갔는데, 진짜 하루죙일 농구만 했다. 아시아 지역에 흩어져 있는 농구쟁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대회. 6:30분부터 밤 9:30까지... 유모차를 끌고 그 후덥지근하고, 오토바이의 엄청난 소음과 매연을 견디며 큰아이와 홀로 관광을 하다가 왔다. 모유수유를 하던 시기라, 회식 자리에서 맥주 한잔 할 수 없었던 끔찍한 시간... 나에게 호치민은 그러한 도시로 기억된다.
그 이후에도 홍콩, 싱가폴까지 다녀왔다. 농구 대회 참여 하시느라..ㅋㅋ

어느날 친하게 지내던 동생이 내게 물었다.

“언니, 그런 대회에 참여하고 하면 펀딩(funding)은 어떻게 해요?”
“응.. 각출(各出)이야ㅋ”
“!!!”

그러니 내가 농구쟁이라고 하지 ㅋㅋ

요새는 너무 바빠서 농구를 자주 빠지고 힘들어 하는 신랑에게 얼마 전에 이야기 했다.

“농구도 가고 그러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해... 끝나고 맥주도 한잔씩 하구...”
“너 나 농구 가는거 싫어하잖아.”
“넌 어떻게 십년 넘게 이야기해도 못알아 듣니? 니가 농구가는게 싫은게 아니라, 농구 갈려고 니가 놓치는, 혹은 버리는 시간들에 대한 너의 그 무심함이 싫은거야!”
“역시... 말 참 잘해...”

그러니 날 화나게 만들지마, 말로는 안되는 거 너 알잖아. 때리지 않아서 고마워 ㅠㅠ

“나는 떡을 썰테니, 너는 글을 쓰거라...” 라고 석봉이에게 말하는 어머니의 심정으로 신랑에게 이야기 했다.

“그렇게 좋은 농구 계속 하면서 행복하게 살아... 나도 내가 좋은 책 읽고 글 쓰면서 우리 애들 클 때까지 열심히 애들 키울 테니까...”

예전에는 농구쟁이들 농구 끝나고 맥주 한잔씩 할 때 자주 가곤 했는데 요새는 안간다. 한국 커뮤니티가, 여기도 경기가 안좋아지면서 동력을 잃었고, 농구 동호회에 나오던 한국 사람들도 많이 철수하고, 또 그만큼의 여유도 없어진건지, 갈수록 사람이 없어진다.

어제 내 베프랑 콘도 내 스벅에서 수다를 떨고 있는데 한 무리의 한국 남자들이 들어와서는 나를 보고 수근대서 양껏 째려봐주고 수다에 집중하는데, 갑자기 내 옆에 누가 훅~ 들어온다.

“Hi there~~??”

라고 친구가 말하길래 화들짝 놀라 보니 우리 신랑이다. 세상 반갑다.

“무슨 일이야?”
“어 저기, 한국에서 출장오신 분들”

아까 내가 째려봤던 사람들이다ㅠㅠ. 공손하게 일어나서 인사한다.

“아 반갑습니다. 000 와이프예요...”
“아 한국 사람인지 일본사람인지 궁금해서 막 쳐다봤어요. 불편하셨죠?”
“아 아니요, 전 제가 이뻐서 쳐다보는 줄 알았어요. 하하”
“하하하하하(그건 아님)”

집에 와서 물어봤다. 항상 밖에서 그런 일이 있으면 나는 물어본다. 신랑의 반응이 너무 재미있어서.

“그 사람들이 나 이쁘다 안그래?”
“어 그랬어. 마닐라 바닥에서 제일 이쁘대”
“ㅋㅋㅋㅋㅋㅋㅋㅋ”
“왜 맨날 그런거 물어봐?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중요해?”
“어, 내 남편이 나한테 넘 무심해서 남들이 관심 주는게 좋다 왜?”
“넌 어떻게 십년 넘게 이야기 해도 그걸 못알아 듣냐? 무심한게 아니야~~”

공돌이 답게 창의력은 부족해도 응용력은 좀 있다.

“그걸 다르게 표현해봐. 정확히 답을 넣어서, 나처럼.”
“음... 사랑해?”
“에잇 진짜... 생각 좀 하고...!!”
“많이 사랑해??”
“됐어!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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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구기 종목을 좋아하진 않지만, 구기 종목을 상당히 좋아하는 친구들이 꽤 있습니다. 그 녀석들에게는 운동과 친목의 장이더라고요. 농구를 통해 사람들이 잘 맺어지기도 하고요. 그래서 아마도 이제는 운동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않나 싶습니다.

그나저나 한국 커뮤니티가 동력을 잃은 것은 조금 안타깝네요. 타지이자 고향의 느낌을 모두 가지고 있지 않을까 짐작되는데, 조금은 덜 외롭고 서로 북돋아주는 나날들 되시길 기원합니다.

손목스냅 확인하고, qrwerq님의 글에 위로가 살짝 됨ㅜ 한국 커뮤니티가 동력을 잃은건 물론이고 자꾸만 왔다가 가는 사람이 많아지니 남아있는 사람들이 마음을 닫아요. 우리신랑은 처음에는 사람들 만나고 하는걸 즐긴다 생각했는데 진심 농구를 좋아하더라구요. 요새은 한국팀이 너무 재미없다길래, 제가 아는 필리핀 친구 소개해줘서ㅜ필리핀 팀에 나가서 뛰어요. 덕분에 주 3회로 늘었다는 ㅋ 거기 소개하면 한국팀 주말에는 안갈 줄 알았는데ㅜ 앗싸 금요일 추가요~ 이럼서 가요 ㅎㅎ

북키퍼님 두분다 사랑하는 마음 이쁩니다^^
저돛 축구쟁이?남편 있어요. 제가 말할때는 듣지도 않더니 여름에 더위먹고 좀 쉬더라구요^^;
그래도 신랑도 숨쉴 구멍, 낙이 있어야 되니 건강에도 좋은 운동이 취미인걸 다행으로 알고 즐기라고 하려구요^^

축구쟁이 ㅋㅋ 욱이 농구쟁이도 더위를 한 번 먹어봐야 ㅋ

^^농구는 더울땐 실내에서 하시겠쥬?
애가 아파도 북키퍼님이 아파도
~여기서 눈물 찔끔 했어요^^

실내에서 하는데 더운날은 고역입니다ㅜ 비싼 체육관은 에어컨을 틀어주는데, 지들이야 에어컨 있어도 땀 나니까ㅡ에어칸 안트는 싼 체육관을 자주가는데, 가서 앉아있다가는 더위와 모기에 만신창이가 됩니다ㅜ 그래도 좋다고 갑니다ㅜ

근데 그 열정이 가족이 아닌 사람이 보기에는 왜 이렇게 멋진가요. 제가 그만큼 뭐에 미쳐본적이 없어서 그런가봐요^^;;

그래서 남편에게 이야기 해요. 좋은거 행복한거 하며 살아~ 라구요^*^

ㅋㅋㅋ이러니 저러니 해도 알콩알콩하시네요~저희 남편은 음...자전거쟁이였는데 제가 같이 안타줘서 게임쟁이가 되어 버렸어요..; ㅋㅋㅋ

자전거쟁이 ㅋㅋㅋ 아 너무 재미있어여. 나중에 “~쟁이” 이벤트 하나 열어야겠어여 ㅋㅋ

ㅋㅋㅋ쟁이 이벤트 괜찮은것 같아요!ㅋㅋㅋ

남편 뒷모습 간지^^ 훈남일듯
운동하는 남자 멋져용 술먹는것보다 낫죠

훈남... 이었죠 ㅋㅋㅋ

“그 사람들이 나 이쁘다 안그래?
”어 그랬어.“

농구쟁이 이야기를 큭큭 거리며 읽다가...
댓글에 아시아 농구쟁이 모임에 대해 넘 웃겼다고 쓰려 생각했는데..
결국 북키퍼님...예쁨 인증 글이었다니!!!
@leeja19님은 스팀잇 대표 미남
@bookkeeper님은 스팀잇 대표 미녀..
두분 축하드려요^^ ㅎㅎㅎ

아니요~ 우리신랑이 답을 항상 저렇게
해여. 연애할 때도, 응 버스안에서 니가 젤 이쁘대, 응 테크노마트에거 니가ㅡ젤 이쁘대 등등 저 놀리려고 그러는거에여. @leeja19님 미남인증은 인정!! 미녀인증은 개그드립으로 확정!

북키퍼님도 개그 드립아니고 미녀인걸로... ㅋㅋㅋ

아하하하.. 이게 머죠??? ㅋㅋㅋㅋ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저 남잔줄알겠네요.. ㅋㅋㅋ

ㅎㅎㅎ 리자님은 스팀잇 인기인이라 모르는 분 없을 거예요!
리자님이 미남이라는 사실도요^-^♡
히히히

자꾸 이리 몰아가시면....
전....
미남 인기인인걸로..
현실세계에서 못해보는거 여기서라도 해봐야겠습니다. ㅋ

리자님을 모르면 간첩이죠 여기서는^^

간첩이 너무 많습니다... ㅋㅋ

ㅋㅋ 솔로들 염장질르러 나오셨군요..
또한 제가 갱년기임을 실감하는 훌륭한 일기입니다..ㅠㅠ

ㅋㅋ 떨림이 없는 룸메이트의 대화입니다. 갱년기라니요 농담도 잘하십니다!!

남의집이야기가 왜 이렇게 재밌죠 ㅎㅎㅎㅎ 다들 비슷비슷하게 살고있구나하면서 위안을 받기도하는 것 같아요. 저희집에도 가끔 말이 안통하는 무심이가 한명있거든요 ㅋㅋㅋ

가끔 말이 안통하다니 실화입니꽈~~? ㅋㅋ 우리는 거의 안통해서 5분 대화를 자제한다는 ㅎㅎ

남편님 뒷모습이 너무 멋진데요!!ㅎㅎㅎ
주말 낮에 북키퍼님 글을 보며 깨소금향을
느끼고 잇습니다.....크읍...ㅋㅋㅋ

울 유코짱도... 빨리 시집보내야하는데...
ㅎㅎㅎㅎㅎ

저 시집 있어요!! 최근에 산거....(근데 반이상이 사랑....관련..ㅡ_ㅡ..잘못산듯...)

갑자기 무슨 소린가 했네.. ㅋㅋㅋ
유코짱 시집도 사보십니까???
이런... 감성쟁이~

뒷모습 ㅋㅋㅋ 유코짱님 시집 보내기 이벤트 함 할까요 리자님??

시집 있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칼릴지브란부터해서....종합셋트까지...

와~ 시집 읽는 뇨자~ 시집 보내는 프로젝트 저도 동참할께욥~

ㅋㅋㅋ 농구쟁이라니....
저는 혼자 일호랑 있을때 한글학교 회식도 빨리 들어오라고 난리를 쳤었죠. 그때 왜 그랬나 몰랐는데 북키퍼님 글을 읽어보니 저도 저혼자만 일호를 계속 봐야하는 공포때문에 난리를 쳤었던것 같네요.
지금은... 어디 좀 나가도 될거 같은데... 같이 나갈 친구가 없어서 못나가는 신랑을 보면 좀 짠.. 하네요.

우리 신랑은 공돌이도 아닌데... 말로 표현을 하진 않네요. ㅋㅋㅋ

남들보다 일찍 이렇게나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길러내고 있으니 남들보다 더 빨리 본인의 삶을 찾아 날아 가실거니 짠해마세요!! 공돌이 아닌건 글 쓰신거 보고 대춘 짐작했지요 ㅎㅎ @sadmt 님은 공대생인데 글쟁이랍니다. 그것도 아주 매력적인 ㅎㅎ

저도 그리생각하는데 친구들보다 뒤쳐지고 자기 생각보다 뒤쳐지는것같으니 자꾸 더 우울해 하더라구요. 거기다 대고 나이 좀 많다고 꼰대짓할뻔했으나 걍 그렇구나... 하고 놔두고 있네요.

쌔드엠티님네도 놀러함 가봐야겠네요. ㅎㅎ

ㅋㅋㅋㅋㅋㅋㅋ

저희 시어른쪽 다른 식구들(신랑 친가 외가)에겐 저희도 비밀이었죠. 그런데지금은 다 아시는것같아요. 첨부터 걍 말했어야했는데...

알고 보면 북키퍼님댁 어르신들도 다 비밀을 가지고 계시는거 아닌가요?

아뇨..: 우리집은 엄마랑 딸들만 알아요.ㅋ 민증 깔 일 없으니 다른 어른들은 모르고 ㅎㅎ 아까 그 댓글 ㅋㅋㅋ 로 마무리합니다

서로 존중해주면서 살아가는것부터가 부부로서의 시작이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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