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에 대한 오래된 고백

in #kr-cat6 years ago


고양이.jpg




기억이라고 썼다가 고백으로 바꿨다.






10년도 더 된 이야기이다.


대학 생활 중 1년을 중국에서 보냈다. 기숙사에 살았고, 한국에서 함께 간 친구와 한 방을 썼다. 그 학교는 대륙반과 유학생반이 나뉘어져 있었는데, 대륙반은 말 그대로 중국의 대륙 학생들이 수업을 받았고, 유학생반은 대만, 마카오, 홍콩 학생들을 중심으로 가뭄에 콩 나듯 한국 학생들과 일본 학생들이 있었다. 1년간 유학생반에서 수업을 들으며 생활했는데, 그곳의 한국인 언니 오빠들과도 친하게 지냈다.

친했던 언니 중 한 명은 고양이를 워낙 좋아해서 중국에서 키우던 고양이를 두 마리나 부모님 집에 데려다 놓았고, 매일같이 자기 고양이에 대한 일화를 늘어놨다. 고양이앓이가 심해서 중국에서도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 했지만, 키우는 몫은 부모님이기에 더 이상 고양이를 데려갈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무슨 날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언니는 우리에게 고양이 한 마리를 사다 주었다. 한국의 오일장 같은 시장에서 사 왔다고 하면서 태어난 지 한 달도 안되었을 법한 고양이를 품에 안고 기숙사 방을 찾아왔다.

지금 같으면 우리가 키우겠다고 한 것도 아닌데, 왜 마음대로 사다주냐고 한 마디쯤 했을 것도 같은데, 어렸던 나는 얼떨결에 고양이를 받고 말았다. 그 날로 고양이는 우리의 기숙사 방에 기거하게 되었고, 친구와 나는 공동 집사가 되었다. 손바닥에 올려놓을 수 있을 정도로 작았던 고양이는 우리의 시선을 피해 구석으로 숨어들었다. 물을 주려고 해도 쳐다보고 있으면 나오질 않아서 속이 답답했다. 그런데 꼭 자고 있으면, 침대 위로 올라왔다. 어떻게 알았냐면, 자다가 눈을 떴는데, 레이저 빛 내뿜는 고양이의 눈과 마주쳤기 때문이다. 새끼 고양이인데도 고양이라는 존재 자체가 익숙치 않았던 나는 뭔가 무서워서 잠이 오질 않았다. 눈을 감아도 레이저 눈이 보이는 듯했다.

그때도 나는 커피를 좋아해서 라떼나 카푸치노 같은 이름을 지어주고 싶어 했다. 결국 무늬와 색에 가장 어울리는 게 카푸치노라는 결론이 지어졌고, 고양이 이름은 그대로 푸치가 되었다. 이케아에서 샀던 수납상자의 큰 뚜껑을 뒤집어 화장실을 마련했다. 마트에 장을 보러 갈 때마다 사료와 간식 사는 재미에 빠졌고, 그렇게 싫다고 벗어대던 옷을 사서 귀엽다고 사진을 연신 찍어대기도 했다. 이빨이 나느라고 밤마다 엄지발가락을 깨물었는데, 자다가 아파서 깨면서도 나는 그런 푸치를 귀여워했다. 푸치는 폭풍 성장했고, 나는 어느새 고양이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약속된 1년이 다되어가는 것이 문제였다.


친구는 부모님이 허락하지 않으셔서 못 데려간다고 못을 박았다. 부모님은 고양이가 요물이라고 하셨다. 아빠는 고양이를 데려오면 집을 나가겠다고 엄포를 놓으셨다. 국제전화로 부모님한테 대들고 화내고 울기를 몇 날 며칠을 반복했다. 지금 생각하면 부모님이 뭐라 하시든 무조건 데려갔을 것 같은데, 어린 날의 나는 왜 그렇게 어리버리하고 바보 같았는지 지금의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나다.

결국, 한국에 사는 유학생 중에 고양이를 키워줄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다음 카페에서 고양이를 키웠던 경력이 있는 학생이 키우겠다고 연락이 왔다. 한인타운에서 만나 푸치를 전해주었다. 한국에서 돌아온 후 그 학생에게 싸이월드 1촌 신청을 하고 랜선으로나마 푸치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유학생활의 기간은 정해져 있고, 그 친구도 다른 주인을 찾아주고 한국으로 돌아온 듯했다. 그렇게 그 이후를 알 수 없게 되었다.

무턱대고 고양이를 선물해 준 언니에 대한 원망, 더 이상 푸치를 볼 수 없다는 것의 아쉬움, 끝내 데려오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뒤섞여 오랫동안 나는 푸치를 마음에 담아두었다. 나는 내심 그 언니를 탓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전부 내 몫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건 한참 후였다. 그 이후로 길고양이만 보면 마음이 쓰였고, 마트에서 간식을 사다가 고양이가 자주 다니는 길목에 놓아둔 적도 많았다. 고양이들을 위한 것이었는지, 나의 마음이 편하고자 한 것이었는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사실은 그래 놓고도 언젠가는 키우고 싶다는 미련을 못 버리고 있는 나인데, 다시 키우게 된다면 반드시 자식처럼 키워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함께 할 거라고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다짐을 혼자서 하곤 한다. 그래서 준비가 되기 전에는 키울 수 없고, 키우지 않을 계획이다. 그렇게 지금은 고양이를 좋아해도 쉽게 키울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남의 집 고양이를 염탐하며 좋아요나 누르는 랜선 집사가 되었다.






고양이는 강아지와 다르게 표현이 직접적이지 않다.


안아주려고 하면 도망가놓고, 밖에 나가면 문 앞에서 그렇게 울곤 했다. 겁이 많아서 도망도 잘 가고, 주인을 할퀴는 것도 일상다반사다. 오라고 해서 오지도 않고, 가라고 해서 가지도 않는다. 골목길로는 잘도 다니면서 넓은 길을 건너는 것은 두려워하고, 곧잘 차 밑으로 숨어든다.

그래서 나는 고양이가 사람 같고, 나 같다고 느꼈다. 사람들은 세상을 경험하게 되면서 모두 조금씩 겁을 먹기도 하고, 상처도 주고받으면서 좋아도 싫은 척, 싫어도 좋은 척하며 경계를 치면서 살아간다. 무조건 밝은 모습보다는 이런 경계심이 솔직한 인간의 민낯이 아닌가 생각했고, 고양이에게서 그런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는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하지만, 그 모든 행동들은 정이 없어서 그런 것도 아니며, 자신을 표현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은유적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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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눈이 마치 제 눈을 보는 것 같아 예전에는 다가오면 털이 서는 느낌이었는데, 길고양이에게 부비부비를 당한 후로는 돌변했습니다 ㅎㅎㅎ

저는 아리와 개똥이를 랜선으로 집사들을 고용(구독)해서보고 있어요 ㅎㅎㅎ랜선집사이시면 다 아는 냥이들일 수도 있겠네요!

이터널님도 랜선집사이시군요! 아리와 개똥이는 모르는 아이들이네요. 전 몇몇만 집중적으로 봐요 ㅋㅋ 로니 로아, 순구 살구, 두두 시루 이 세 집을 제일 자주 보고 있어요. 스팀잇에서는 옐로캣님네 지영이 장군이 ㅋ

관찰남 채널도 구독해보세요. 개똥이도 귀엽기 그지 없지만 집사분도 만만치 않게 귀엽...ㅎㅎㅎ둘의 캐미 보는 재미가 있어요

이 고백글, 정점에서 끝이 나네요..! 기억 속의 고양이들을 떠올리며 읽어가다가 '다만 은유적일 뿐'이라는 문장을 만나고 그 여백에서 기억들이 대신 자리를 가득 채웠어요.

고양이를 무척이나 사랑하면서도 고양이 알러지 때문에 2시간이 지나면 눈물 콧물, 재채기를 다 쏟아내고 정신이 아득해져도- 제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는 고양이를 꼭 삶에 들여보려고 해요. :))

고양이를 통한 몽상가님의 고백, 잘 읽었습니다. :)) 장 그르니에가 고양이를 한껏 찬양한 글이 함께 떠오르네요!ㅎㅎㅎㅎ

알러지가 있으시군요. 조심하셔야겠어요ㅠ 전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보면서 고양이의 시선은 무얼까 궁금해하곤 했었는데, 장 그르니에의 고양이 묘사는 어떠한가요. 읽어보고싶네요. :)

제가 이탈리아 여행 때 유일하게 들고 갔을 정도로 애정하는 책인 장 그르니에의 『섬』 에 '고양이 물루'라는 목차가 있답니다 ㅎㅎㅎㅎ짧은 대목을 소개하자면 이렇습니다. :))


물루는 행복하다. 세계가 저 혼자서 끝없이 벌이는 싸움에 끼어들면서도 그는 제 행동의 동기가 한갖 환상일 뿐임을 깨달으려 하지 않는다. 놀이를 하되 놀고 있는 제 스스로의 모습을 바라볼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

그를 바라보는 것은 나다. 조그만 빈틈도 없이 정확하게 몸을 놀려 제가 맡은 역할을 다하고 있는 그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황홀해진다. 매순간 그는 제 행동속에 흠뻑 몰두해 있다. 먹고 싶은 것을 보면 그는 부엌에서 나오는 음식 접시에서 눈을 뗄 줄을 모른다. 그의 눈에 가득 찬 욕망은 치열하다 못해 벌써 음식 위로 튀어 올라가 앉는 것만 같다. 그가 무릎 위에 몸을 웅크릴 때도 제가 가진 모든 애정을 남김없이 쏟아가며 웅크린다.

행동에 빈틈이라곤 찾아보려야 찾아볼 도리가 없다. 그의 행위는 몸놀림과 일치하고 몸놀림은 식욕과, 식욕은 그의 이미지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야말로 끝없는 연쇄 조직처럼 일사불란하다. 고양이가 다리를 반쯤 편다면 그것은 다리를 펴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고 또 다리를 꼭 반쯤만 펴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희랍 꽃항아리들의 가장 조화로운 윤곽에도 이토록 철저한 필연성은 없다.


곧바로 몽상가님의 취향에 쏘옥 들어갈 것 같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정말 고양이를 오래도록 지켜본 사람이 쓸 수 있는 글이 아닐런가 싶네요. 리리님 추천이라면, 믿음이 갑니다. ㅎㅎㅎ 서점갈때 한권 집어들어야겠군요.:)

그곳의 한국인 언니 오빠들과도 친하게 지냈다.

저 몽상가님 형님인 줄 알고 있었는데...
굉장히 새롭고 참신한 기분입니다 지금.

ㅋㅋㅋㅋ뭐 성별이 중요한가요. 스팀잇 안에선 그저 스티미언일 뿐입니다! :D

관계의 책임을 어디까지 져야할 지 곰곰히 생각해봅니다. 고양이 스스로가 감당해야할 관계라는 것과, 주인으로서 책임져야할 관계라는 것 사이의 접점을 항상 고민하게 됩니다.

반려동물이라는 것이 사실 "의존적"인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닐진대, 돌보아주어야할 것과 어느 정도 겹치게 되면 종종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네 저도 많은 고민과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야생의 동물이라면 스스로 먹이를 찾아나서면서 적응해서 살아남기도 하고 척박한 환경 속에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기도 하죠. 사람이 사는 도시 특히 집안으로 들어오게 되면, 동물이 의존적인 태생이 아니지만 돌바주어야하는 의무는 당연한게 아닌가 싶어요. 생각하다보니, '반려동물'이라는 개념은 언제부터 생겨난걸까 궁금해지기도 하네요 ㅎ

반려묘에 대한 기억을 정성스레 적어주셔서 감동스럽게 읽어봤습니다. 고양이도 강아지도 매력덩어리들이예요.~

ㅎㅎ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그들의 매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어느날 기르던 강아지가 사라진적이 있어요.
부모님이 물어보지도 않고 다른집에 제가 모르는 시골 어디에
갔다고하더라구요. 그 날이후로 제가 끝까지 책임질수있고 잘해줄수있을때 기르려고 아직 못기르고 있네요 ㅎㅎ.
그이후로 강아지랑 동물이랑친해지기 좀 힘드네요 ㅎㅎ

어릴때 그런 일화를 가진 분들이 꽤 있으시더라고요. 아파트에서 키우기 쉽지 않은 부분도 있으니 어른들이 시골로 내려보내는 경우가 많았던 듯 해요. 사람맘속 알기 어려운 것 만큼이나 동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해요 ㅎㅎ

저도 비슷하게 키우던 고양이를 다른분께 입양보낸 적이 있었죠. 담담하게 있었는데 방청소하다가 고양이가 좋아하던 방울이 떨어지며 또르르 굴러가는 모습에 억눌려있던 눈물이... 지금은 할아버지가 되었거나 무지개다리를 건넜겠네요.. T^T

정말 떠나보낼 때 보다 떠나고 난 후 마음 속에 더 오래도록 남아있네요ㅠㅠ

중국에서 키우던 고양이가 아직까지 마음속에
남아 있네요. 어떤 기억은 평생을 따라 다니는것
같아요. 특히 동물들에 대한 기억이 그런것 같아요.
푸치 는 좋은 사람들만나 잘 살았을 거에요
복이 많은 아이니까요^^

감사해요. 사실 옐로캣님 아이들 훔쳐보며 대리만족하기도 해요. ㅎㅎ 모든 고양이를 아끼고 잘 거둬들이면서 또 좋은 주인을 찾아주시기도 하는 모습 너무 멋지십니다. :)

글 잘읽었습니다. 처음 들르네요.
전 사실 반려동물을 키우지도 않고 관심도
없었는데 kr-pet 큐레이터분 덕분에 관심도 생기고
중국에서도 길가든 시장이든 모이면 한참 보게 되네요
고양이에 표현이 직접적이지 않은건 이번에 알았네요.
푸치는 그래도 생각해 주는분이 있어 행복한 녀석입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다른 분들 포스팅덕에 더 생각해보게 되기도 하고 그르네요. ㅎㅎ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

우리 해피 별명이 해피 초코라떼인데요. ㅋㅋㅋ 다만 은유적일 뿐이라는 말에서 P님이 보입니다. ㅎㅎㅎㅎㅎㅎㅎ

에빵님 오랜만에 뵈어요!! 초코라떼도 귀여워요. ㅋㅋ 제가 아주 돌려말하기 수법이 전공입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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