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14. 소피의 선택 by 윌리엄 스타이런 - 인간이 견뎌내야 할 전쟁의 광기

in kr-book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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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전쟁의 폭력과 광기, 인간의 잔인함을 낱낱이 드러내는 소설이다. 전쟁은 우리의 인간성을 짓밟고, 우리에게 도저히 할 수 없는 선택을 강요한다.

이야기의 배경은 1947년 미국 뉴욕 브루클린이다. 남부 출신으로 작가가 꿈인 22살 청년 스팅고는 회사에서 해고된 후 브루클린의 한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간다. 같은 아파트에는 아름다운 폴란드 여인 소피와 다방면에(특히 문학과 음악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유태인 네이썬이 살고 있다. 이 책은 이들의 우정과 사랑, 그리고 상처를 다루고 있다.

처음에 읽을 땐 세 주인공의 우정과 사랑만을 다루는 책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읽다 보니 나치 수용소도 나오고, 아우슈비츠도 나오고, 한 인간(소피)의 처절한 선택과 그 선택을 강요한 시대/역사/우리 인간의 민낯도 드러났다. 한 때 결혼은 미친 짓이라는 말이 유행했었는데, 이 책을 보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든다. 전쟁이야말로, 미친 짓이다.

도대체 아름다운 여인 소피는 어떤 과거를 숨기고 있는 걸까. 스팅고는 그녀에게 점점 빠져들지만 그녀에게는 자신이 도저히 감내해낼 수 없는 엄청난 과거의 그림자가 배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알고 보니 그녀는 나치 수용소에 감금됐던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곳에서 그녀는 어떤 일을 겪었던 걸까. 그녀의 존재를 뿌리째 뒤흔드는, 강요받았던 ‘소피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출처: 교보문고

읽기 전에는 이런 어두운 내용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책 분위기가 계속 어둡기만 한 것도 아니다. 처음 앞부분 스팅고를 묘사한 부분에서는 실실거리면서 읽었으니까.

영어는 어려운 편이었다. 모르는 단어가 많아서 단어를 찾느라 문장 진행이 많이 더뎠다. 영어로 읽는 건 영어 독해 상급자에게만 권하고 싶다.

1982년에 같은 제목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영화 평도 상당히 좋다. 이 영화로 주인공 소피 역할을 맡았던 메릴 스트립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 LA 비평가 협회 여우주연상, 뉴욕 비평가협회 여우주연상, 전미 비평가 협회 여우주연상 등을 휩쓸었다.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젊은 시절 메릴 스트립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를 깨우는 책 속 몇 마디



1))

“Such a language!” she groaned, and in mock pain clutched her brow. “Too many words. I mean just the words for velocite. I mean ‘fast.’ ‘Rapid.’ ‘Quick.’ All the same thing! A scandal!”
“‘Swift,’” I added.
“How about ‘speedy’?” Nathan said.
“‘Hasty,’” I went on.
“And ‘fleet,’” Nathan said, “though that’s a bit fancy.”
“‘Snappy’!” I said.
“Stop it!” Sophie said, laughing. “Too much! Too many words, this English. In French is so simple, you just say ‘vite.’” (p 71)

“뭐 이런 언어가 다 있어!” 소피는 이마를 부여잡으며 고뇌하는 시늉을 했다. “뭔 놈의 단어가 이리도 많은지. 빠르다는 말만 해도 그래. Fast, rapid, quick. 모두 다 같은 말이잖아. 정말 말도 안 돼!”
“swift도 있어.” 내가 덧붙였다.
“speedy는 어떻고?” 네이썬이 말했다.
“hasty도 있지.” 내가 거들었다.
“fleet도 빼먹으면 안 되지. 조금 고상하긴 하지만.” 네이썬이 말했다.
“snappy도 있고.” 내가 말했다.
“그만!” 소피가 웃으며 말했다. “너무 많아! 영어는 단어가 정말 많아. 불어는 참 간단하거든. 그냥 vite라고만 하면 돼.”
(폴란드인인 소피가 영어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장면)

흔히들 우리말의 위대함에 대해서 말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게 단어의 풍부함이다. 예를 들어, 영어로는 red 하나만 말할 수 있지만 우리말에서는 “빨갛다, 뻘겋다, 발갛다, 붉다, 불그스름하다, 새빨갛다, 시뻘겋다, 불그죽죽하다, 발그레하다, 발그스름하다.”등 다양한 어휘로 색깔을 표현할 수 있다는 거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폴란드 여인인 소피가 같은 논리를 영어에 들이대고 있다. 프랑스어에 비해서 영어는 같은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가 많다는 것이다. 우리말의 풍부함을 영어로 온전히 표현하기 힘들다고 푸념하듯이, 어떤 이들은 영어단어의 풍부함을 불어로 온전히 옮기기 힘들다고 생각할까?

2))

“People acted very different in the camp, some in a cowardly and selfish way, some bravely and beautifully – there was no rule. No. But such a terrible place was this Auschwitz, Stingo, terrible beyond all belief, that you really could not say that this person should have done a certain thing in a fine or noble fashion, as in the other world. If he or she done a noble thing, then you could admire them like any place else, but the Nazis were murderers and when they were not murdering they turned people into sick animals, so if what the people done was not so noble, or even was like animals, then you have to understand it, hating it maybe but pitying it at the same time, because you knew how easy it was for you to act like an animal too.” (p. 311)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행동했어. 겁쟁이가 되는 사람도 있었고, 때론 용감하고 아름답게 행동하는 사람도 있었지.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은 방식으로 변하지는 않았어. 하지만, 스팅고, 아우슈비츠는 정말로 끔찍한 곳이야. 뭐라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끔찍스러운 그런 곳이야. 그곳은 “품위 있게, 우아하게, 인간답게” 행동할 수 있는 곳이 아니야. 세상 다른 곳에서는 그럴 수 있지만, 그곳에서는 아니야. 만일 누군가가 정말로 고귀한 행동을 한다면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그건 찬사를 받을 일이지. 하지만 나치는 살인마들이야. 살인을 저지르지 않을 때는 우리를 인간이 아닌 동물로 만들어 버렸지. 그러니 그곳에서 누군가가 그다지 훌륭하지 못한 일을 저질렀다면, 심지어 비인간적인 일을 저질렀다면 그걸 이해해줘야만 해. 증오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 사람을 불쌍히 여겨줘. 왜냐하면 그곳에서는 어느 누구라도 너무나 쉽게 동물이 될 수 있거든.
(소피가 아우슈비츠 감옥에 대해서 스팅고에게 말해주는 장면. 그곳에서 자신이 끔찍한 강요에 의해 비인간적인 선택을 했었다는 복선.)

3))

Auschwitz itself remains inexplicable. The most profound statement yet made about Auschwitz was not a statement at all, but a response.
The query: “At Auschwitz, tell me, where was God?”
And the answer: “Where was man?” (p. 560)

아우슈비츠는 여전히 설명이 불가한 곳이다. 아우슈비츠에 대해 언급된 말들 중에 가장 심오한 말은 진술이 아니라 대답이다.

질문: 말해주세요, 아우슈비츠에서 신은 어디에 있었나요?

거기에 대한 대답: 사람은 어디에 있었는가?


한국어판 제목: 소피의 선택
영어 원서 제목: Sophie's Choice
저자: 윌리엄 스타이런 (William Styron)
특이사항: 메릴 스트립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영화 제목도 <Sophie’s Choice (소피의 선택)>이다.


Disclaimer) 본문에 실린 인용은 제가 직접 번역한 것으로, 한국에 출간된 번역본과는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저는 책을 영어 원서로 읽고 있기 때문에 한국 출간본에서 어떻게 번역되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책을 소개하기 위해 전반부의 줄거리만 일부 제공될 뿐 본 독후감에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독후감] 지난 독후감들 최근 5개 링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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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구덩이 by 루이스 새커 -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지는 당신에게
10. 네버웨어 by 닐 가이먼 - 때로 모험은 아주 가까운 곳에서 시작된다.
11. 벌들의 비밀 생활 by 수 몽 키드 - '나'를 찾아가는 여행
12. 러블리 본즈 by 엘리스 세볼드 - 그들이 다시 '가족'이 되기까지
13. 트러블 by 게리 D. 슈미트 - 불행을 껴안고 함께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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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nk you.

소피의 선택이라는 책은 생소합니다. 영화로도 제작되었었군요. 제목만 같은게 아니라 내용도 같은 거겠죠?

다채로운 언어표현은 여러나라에서도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인간의 세부적인 감각을 언어로 묘사하다보니, 더 구체적이고
더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각나라의 다양한 언어를 서로 1:1 매칭 시키기 어려운 점은
나라별로 자신의 감각을 느끼고, 바라보고, 해석하는 방식이 조금은 차이가 있어서
그런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잠시 드네요.

영화도 같은 내용입니다. 꽤 오래전 영화에요. :)

어쩌면 @kmlee님 말씀처럼 한 언어가 다른 언어보다 뛰어나다고 자랑하는 게 유치한 일인지도 모르겠어요. 눈에 대한 어휘가 수십개라는 에스키모의 언어가 우리말보다 더 우수할까요? 드미님 말씀처럼 나라마다, 문화마다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방식이 다른 거겠죠. 그게 언어로 나타나는 거고요.

영어를 한글로 옮길 때도 불편한게 많지요. 언어에서 자긍심을 찾는건 참 유치합니다.

ㅎㅎ 그런가요? 어릴 때부터 항상 듣던 얘기라 유치하다고까진 생각 못했어요. 하지만 원서를 읽기 시작하면서 영어도 상당히 풍부한 언어구나라는 걸 깨달았죠.

  ·  2 years ago (edited)

Murder kill homicide 등 영어도 다양한 어휘가 있지요. 각각의 어휘는 조금씩 용도가 다르기도 하구요. 서로의 문화를 존중해야지요!

쓰고 보니 예시가 하필...

ㅎㅎㅎㅎㅎㅎ

오늘도 역시 읽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게 만드시네요~ ^^
브리님께서 알려주시는 책들은 모두 리스트에 적어두고 있어요~
오늘도 마음의 양식까지 빵빵하게 채워보렵니다 ^^ 즐거운 하루 보내셔요~~

이번 책은 "러블리 본즈"보다 조금 더 어렵고 긴 책이었어요. 원서도 길었는데 한글 번역본은 1,2권으로 돼있더라고요. 혹시 읽으시게 되면 참고하세요. :)

다양한 언어가 있어서 표현함이 다양하다고 생각했는데..
불어는 표현의 다양함이 없군요...
처음 알았네요. ㅎㅎㅎ
역시 불이님의 독후감은 믿고보는 독후감 입니다.^_^
오늘도 역시 잘 보았습니다.

항상 찾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도 불어는 잘 몰라서, 책에서 그렇다 하니 그런가 합니다. ㅎㅎ

아… 저는 오래전 영화로 봤어요. 메릴 스트립이 너무 예쁘다고 느꼈던 영화이기도 해요. 보고 나서 아팠어요. 많이. “전쟁이야 말로 미친짓” 이라는 브리님 말에 격하게 공감합니다. 책으로 읽으면 훨씬 좋을거 같아요. 기회가 되면 책으로도 읽고 싶네요.
오늘도 좋은 책 진심 감사합니다.
행복한 밤 되세요~ 브리님~ :)

영화로 보셨군요. 소설 속에서 소피가 굉장한 미인으로 나와요. 스팅고가 한눈에 반하는. 처음 메릴 스트립이 소피역이라고 해서 의외였는데 젊은 시절 메릴은 참 예쁘더군요.
영화를 보셨으니 책이 더 잘 읽히겠어요. :)

@bree1042 님의 글을 읽으면, 항상 아,,, 이책은 봐야돼.. 라는 생각그리고, 잠시나마 책속에 스밀 수 있는 상상에 빠집니다~ ^^;
오늘도 참 많이 고맙습니다~!!

이 책은 좀 무겁고 길어요. 한국어책은 2권으로 돼있더라고요. 읽으면 좋은 책이긴 한데, 저도 좀 어렵게 읽었어요. ^^;

메릴 스트립 주연 영화라고 하니 책보다 영화가 더 땡기 :) 언어에 대한 이야기도 상당히 재밌고요.
그리고 본문에 말씀하신 전쟁은 미친짓이다. 엄청 공감하고 갑니다. 전쟁은 결코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지요.

오늘도 유익한 책 소개 감사드립니다. ^-^

사실 전쟁에 대한 얘기를 더 많이 적었었는데, 좀 무거울까봐 뺐어요. 책 속 글귀도 더 적었던 걸 지웠고요.

영화는 못봤지만 평이 좋아요. 책보다 영화로 보시는 것도 좋을 거 같아요. 책은 사실 좀 길고 어렵거든요.

정말 존경하지 않을 수 없군요. 저는 원서로 된 쉬운 책 하나를 붙들고 3개월을 넘게 읽는데...반성해야겠어요. 오늘도 좋은글 감사드려요~^^

저도 원서 읽는데 시간 오래 걸려요. 이렇게 길고 어려운 책은 한달 정도 걸리는 거 같아요.

처음 원서 읽기 시작했을 때는 저도 1년에 한권 읽을까 말까 했어요. 재미와 속도가 붙은 게 몇년 안 돼요. ^^;

오늘도 독후감 잘 보고 갑니다.^ㅁ^
오늘 하루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ㅅ^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울곰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

거기에 대한 대답: 사람은 어디에 있었는가?

참.... 가장 간단하고 적절하면서도 마음이 아파오는 대답입니다. 책을 꼭 읽어보고 싶게도 만들구요.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네. 정말 읽다 보면 "전쟁은 미친 짓이다"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떠올라요.
아직도 지구 상 어딘가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참 슬픈 일이죠. ㅠ.ㅠ

브리님 글을 읽고 생각해보니 정말 우리나라는 표현이 풍부한 것 같아요 ㅎㅎ 그래서 영어로 번역해둔 걸 봤을 때 감흥이 떨어질 때도 있더라고요. 그런 점은 아쉬워요. 오늘도 브리님의 정성 가득한 독후감 재미나게 잘 읽고 갑니다 :D

우리나라 말이 특히 의성어, 의태어가 발달했죠. 모음의 변화에 따라 말의 느낌도 달라지고요. 깡총깡총 - 껑충껑충 처럼요.
하지만 본문에 나와있듯이 영어도 다양한 뉘앙스를 나타내는 단어들이 많지요. 아마 언어가 발달한 분야가 달라서 그런가봐요.

매번 좋은 책 많이 추천해주시는데 올해가 가기 전에 그동안 추천해주셨던 책중에 한권이라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네요 ㅠ 맨날 수학책만 들여다보는 것이 가끔은 좀 답답할때가 많아서요

앗, 댓글 달아주신 걸 못보고 지나쳤네요. 늦게 댓글 달아서 죄송해요. ^^;;
(실은 분명히 댓글을 단 거 같은데 안 보이네요. -_-;;)
요즘에 워낙 바쁘시니까 깊이 고민하는 책 말고 가볍게 읽을 책으로 시작하시는 것도 좋을 듯 싶어요.
바쁜 일상에 책이 행복한 도피처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