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러블리 본즈 by 앨리스 세볼드 ㅡ 그들이 다시 '가족'이 되기까지

in #kr-book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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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살해됐다. 남은 우린 다시 ‘가족’이 될 수 있을까.



이 책은 미국에서 2백만 부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이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책 겉표지를 넘기면 수많은 매체와 비평가들이 이 책이 얼마나 좋은 가에 대해 써놓은 찬사가 가득하다. 사람 마음이란 게 이상해서, 남들이 좋다고 하면 “어디 얼마나 좋은가 한번 두고 보자.”하는 심리가 생긴다. 그래서 감동받지 않을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책장을 넘겼다. 그 덕분인지 처음에는 별로였다. 이거 계속 읽어야 하는 걸까 잠깐 고민도 했다. 그러다가 훅 빠져버리고 말았다. 이 책이 왜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았는지 충분히 알 것 같았다. 거기에 나의 작은 찬사도 소심하게 보태 본다.

책의 화자가 이미 죽은 소녀라는 것은 책의 첫머리에 나온다. 수지 새몬. 그녀는 14살의 나이에 성폭행당한 후 살해된다. 이 소설에서 수지는 자신이 어떻게 죽었고 범인이 누구인지 앞부분에서 독자에게 다 밝히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CSI 드라마가 아니었다. 경찰은 범인에 대한 단서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었고, 이젠 그녀의 가족이 발 벗고 나서서 범인을 찾는데 주력한다. 범인을 찾아다니느라 가족의 울타리는 무너지고, 가족이 있던 자리엔 그저 허허벌판만이 남았다. 그녀는 천국과 지상 사이인 Inbetween(이 곳도 일종의 천국이지만)에 머물면서, 지상에 남은 가족이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 어떻게 망가져가는지 지켜보게 된다. 수지의 죽음으로 인해 와해되고 무너졌던 한 가정이 다시 서로를 보듬어 안고, ‘한 가족’이 되어가는 이야기, 라는 건 사실 너무 식상한 소감문이지만 이 보다 더 적당한 문장을 찾기가 힘들다.

수지가 죽은 후 수지의 가족은 생각지도 못했던 또 다른 싸움을 하게 된다. 바로 '피해자의 가족으로 살아가기'이다.

Of everyone in the family, it was Lindsey who had to deal with what Holly called the Walking Dead Syndrome – when other people see the dead person and don’t see you.
When people looked at Lindsey, even my father and mother, they saw me. Even Lindsey was not immune. She avoided mirrors. She now took her showers in the dark. (p. 59)

우리 가족 중에 홀리가 말하던 ‘살아있는 좀비 신드롬’과 싸워야 했던 건 바로 린지였다. ‘살아있는 좀비 신드롬’이란 누군가를 봤을 때 그 사람을 보는 게 아니라 죽은 사람을 떠올리는 현상이다. 사람들이 린지를 볼 때면, 심지어 우리 엄마 아빠 조차도, 모두 나를 떠올렸다. 린지도 예외는 아니었다. 린지는 거울을 안 보기 시작했다. 이제는 샤워할 때도 어둠 속에서 했다.

동생 린지는 범인으로 의심되는 동네 사람 집에 몰래 숨어 들어가 단서가 될만한 그림을 훔쳐온다. 하지만 이렇다 할 결과도 없이 오래 지속된 범인 찾기에 지친 엄마는 그림 볼 생각을 안 한다.

“I’m going to pick up Buckley,” my mother said.
“Don’t you even want to look at this, Mom?”
“I don’t know what to say. Your grandmother is here. I have shopping to do, a bird to cook. No one seems to realize that we have a family. We have a family, a family and a son, and I’m going.” (p. 184)

“난 네 동생 데리러 갈게.” 엄마가 말했다.
“엄마는 이게 뭔지 보고 싶지 않으세요?”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하니? 네 할머니도 와 계시지, 장도 봐야 하지, 닭고기도 요리해야 하지. 여기 가족이 있다는 걸 아무도 모르는 거 같아. 여기 가족이 있다고. 가족이랑 아들이 있어. 그러니까, 엄마는 동생 데리러 나갈 거야.”

가족이 있다. 남아 있는 가족이 있다. 딸이 죽었어도 여전히 장을 봐야 하고, 밥을 지어야 하고, 밥을 먹어야 한다. 남은 아이들은 학교에 가야 하고, 학교가 끝나면 어린 막내를 데리러 가야 한다. 부모는 그 가족을 돌봐야 한다. 딸이 죽었어도.


한국어판 <러블리 본즈> 표지. 영화화됐다는 걸 강하게 어필하는 띠지가 붙어 있다. -_-;;
출처: 교보문고

살인과 같은 커다란 사건이 발생하면 대개 사람들은 엽기적인 살인행각과 피해자에게 집중한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범인을 잡아서 감방에 처넣을지(!)를 얘기한다. 그간 보아왔던 CSI와 같은 숱한 형사 드라마들은 사건 해결을 위해 범인을 잡는 데에 골몰해왔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도 범인을 잡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영화 내내 맴돈다. 인기리에 방영됐던 드라마 ‘시그널’에서도 오래된 미제사건을 통해 범인을 밝히지 못한 범죄에 대해 그렸었다. 그런데 정말로 범인만 잡으면 끝인 걸일까? 범인만 잡으면 사건이 해결되고 모두가 행복해지는 걸까?

누가 이런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는지 알아내고, 범인을 잡아서 단죄하는 것은 분명 필요하다. 죄를 저지르면 반드시 죗값을 치르게 된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고, 범인의 또 다른 후속 범죄를 막는다는 차원에서도 그렇지만,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도 이 사건을 뒤로하고 다시 자기 삶으로 돌아갈 수 있는 마무리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가족이 죽었는데 어떻게 죽었는지, 범인은 누구인지, 어느 하나 밝혀지지 못한다면 이들은 결코 그 사건에서 헤어나지 못할 테니까. 하지만 피해자의 가족에겐 범인을 잡는 것이 그 ‘마무리’의 시작은 될 수 있어도 끝은 될 수 없다. 범인을 잡은들, 범인이 무기징역이나 사형선고를 받은들, 아니 사사로이 범인을 잡아서 고문하고 고통스럽게 죽여서 복수를 한들 죽은 피해자가 살아 돌아올 리 없으니까. 범인이 도망을 갔든, 감옥에 갔든, 죽었든 상관없이 ‘사랑하는 사람이 살해됐다’는 상실감과 충격을 껴안고 살아가야 하는 건 바로 피해자의 가족이니까 말이다.

이 책에서는 그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수지의 엄마와 아빠, 여동생 린지, 막내 남동생 버클리. 그들이 어떻게 슬퍼하고, 어떻게 견뎌내는지,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아픔 속에서도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가는지 보여준다. 마치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쓰레기와 잔해들을 치우고 주춧돌을 하나씩 놓아 집을 다시 짓듯이, 가족의 일원을 끔찍한 사고로 잃은 후 다시 일어서는 남은 가족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한 가지 신선했던 건 화자가 수지였기 때문에 죽어서 저승에 가 있는 그녀의 감정도 보여준다는 거였다. 죽은 수지의 입장에서 보자면 역으로 사랑하는 모든 가족을 잃고 자기만 홀로 살아남은 셈이었으니까.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 서서히 무너져내리는 부모님과 동생들을 보면서 슬퍼하고, 그들을 그리워하고, 그럼에도 자신이 없더라도 잘 살아갔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애틋하게 그려지고 있다. 수지가 자신과 가족을 이해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게 참 좋았다.

When my father’s car pulled into the drive, I was beginning to wonder if this had been what I’d been waiting for, for my family to come home, not to me anymore but to one another with me gone. (p. 316)

아빠의 차가 집 앞에 들어섰을 때, 난 이게 내가 그토록 기다려온 순간이 아니었나 생각했다. 우리 가족이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 이젠 더 이상 나한테 오는 게 아니라, 내가 없는 우리 가족이 서로서로에게 돌아오는 순간.

이 책을 읽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사랑하는 사람을 황망히 잃어버리고 살아도 사는 게 아닐, 세월호를 비롯한 현실에 있는 피해자들의 가족들이 떠오른다. 그들도 서로가 서로에게 돌아오고, 다시 '가족'으로 일어설 수 있길 진심으로 바라 본다.


한국어판 제목: 러블리 본즈
영어 원서 제목: The Lovely Bones
저자: 앨리스 세볼드 (Alice Sebold)
특이사항: 동명의 영화도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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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포스터. 출처: 다음영화


Disclaimer) 본문에 실린 인용은 제가 직접 번역한 것으로, 한국에 출간된 번역본과는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저는 책을 영어 원서로 읽고 있기 때문에 한국 출간본에서 어떻게 번역되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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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님의 글을 읽고 단장지애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자식 잃은 슬픔은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과 같다. 자식 잃은 슬픔을 표현 할 수 있는 말이 있을지.

불이님 말씀처럼 남아 있는 가족들만이라도 가족으로서 다시 설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죠.
오늘도 좋은 책과 글 감사합니다. ^-^ tip!

단장지애, 맞는 말씀입니다. 상상도 못할 슬픔이죠. 그런데도 피해자 가족을 막무가내로 비난하는 일이 빈번하니.. ㅠ.ㅠ

읽어주시고 팁까지 주셔서 고맙습니다.

읽고나면 분노와 슬픔이 깊이 밀려올것 같은 느낌...영화도 있다고하니 같이보면 좋을 것 같네요.

전 영화는 못 봤는데, 영화보다는 책이 낫다고 소철님이 그러시네요. 차분하게 시간을 두고 보셔도 좋을 겁니다. :)

가을이니...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책이랑 친하진 않지만... 가을이니!

네, 가을이니까.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고 우리는 책읽고. :)

가슴을 후벼파는 아픔이 있을 듯 한데 그래도 읽고 싶어 지네요. ^^ 읽고 싶은 책이 점점 늘어나요. 무엇을 읽어야 하나 찾고 고민하지 않아도 되어서 너무 좋아요 ㅎㅎ 좋은 글 진심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많이 행복하세요~

저도 읽고 싶은 책 리스트가 너무 길어요. -_-; 그래도 행복해하며(?) 하나씩 격파해가고 있습니다. ㅎㅎ

전 책을 읽은 뒤에 가끔 영어 오디오북으로 또 듣거든요. 영어공부도 할겸.. 그런데 이 책은 너무 마음 아파서 오디오북을 또 듣다가 그만뒀어요. ㅠ.ㅠ 슬프긴 하지만 무조건 눈물을 짜내는 책이 아니라, 생각하게 만드는 좋은 책이에요.

격파!! 라는 말씀에 빵 터져요 ㅎㅎ 아.. 오디오북으로도 들으시는 군요. ^^ 그런 열정이 있으셔서 영어와 국어 모두 잘 하시는 거군요. 멋지세요. ^^ 아파서 못 들으셨다니 ㅠㅠ 책으로 읽으며 생각하는 것으로 ^^ 만족 할꼐요~ 감사해요 브리님~

현실과 다르지 않는 이야기인 것 같아요.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피해자가 보호 받고 희망을 다시 품고 살아갈 수 있어야 하는데 피해자의 낙인 속에서 빛은 커녕 어둠을 걷고 상처 받는 부분이 많은 것 같아서 속상할 때가 많은데 그런 부분에서 읽으면서 공감이 되었습니다.

특히 피해자의 가족으로 살아가기에서 생각에 잠겨보았습니다.

네. 피해자를 또한번 죽이는 일들이 빈번하죠. 남의 일이라고 너무 쉽게 판단하고 쉽게 비난하면 안 되는데요. ㅠ.ㅠ

살떨리는 감동으로 보았던 느낌.. 지금도 몸으로는 기억하지만.. 브리자매님의 꼼꼼하게 전달해주신 글로.. 새록새록 기억납니다..
개인적으로 영화가 소설만 못했던 기억과 함께..

기억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책 읽어보셨군요. 영화도요. 전 영화는 못 봤어요.

읽으면서 슬프고 감동적이고 아프고 그랬답니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면 어떤 감정일가요?
막연하게 머리속으로 그려지는 감정 밖에 떠오르는게 없지만 그런 일을 당하는걸 상상하는것 조차 두렵군요....

삶이 힘들어도 그런 일이 내게 아직 생기지 않음만으로도 무조건 감사해야 할것 같습니다.

왠지 슬픈 책은 읽기가 좀 두려워지네요...

맞아요. 슬픈 책은 읽기가 두렵죠. 그런데 마냥 슬프기만 한게 아니라 감동도 있고 많은 걸 돌아보게 해줍니다. 기회가 되신다면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네 bree님 조언 기억하겠습니다.
많이는 아니더라도 조금씩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앗!! 이 책 도서관에서 빌려왔다가....몇 장 읽다가....반납기한이 다 되어버려서 눈물을 머금고 반납한 책!! 아무래도 다시 빌려와야겠어요~ㅋ

그러시군요. 아마 다시 빌려서 읽으시게 되면 또 눈물을 머금으게 되실지도... 슬퍼서요. ㅠ.ㅠ

죽음이라는 생물학적 의미는 같다고 할 수 있겠지만
살해 되었다는 말은 그 죽음을 더 처참하게 합니다.
본인이나 가족이 예측할 수도 준비할 수 있는 시간도 없는
갑작스럽고 고통스런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열 네살 소녀의 죽음을 사이에 두고
다시 가족으로 만나기까지
그들이 보듬어야 했을 상처의 깊이를 짐작합니다.
브리님의 독후감이 아니면 접근하기 힘들었을 내용
생생하게 공감합니다.
감사드려요.

소설의 좋은 점 중 하나인 것 같아요. 모르고 지나쳤을 수도 있는 타인의 일들을 깊이 공감하게 만드는 거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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