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여행기] 하늘을 담은 거울/ 유럽 여행기를 끝마치며

in #tripsteem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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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직각으로 쳐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하늘을 되비친 내 마음이 빼곡하고 복잡하다. 아름답지만,

성 이냐시오 성당(Chiesa Di S. Ignazio Di Loyola A Campo Marzio)에 들어가면 거울이 설치되어 있다. 사람들이 모여서 그 거울을 보는 것이 궁금했다. 천장이 되비친 모습을 보라고 놓아둔 것 같다. 목을 뒤로 젖혀 보기 불편할 것이니 이렇게 살펴보라는 배려인지 아니면 다른 철학적 의도가 있는지 모르겠다. 불편한 것을 배려한 것이라면 실패다. 비교하기 위하여 고개를 젖혀 다시 보면서 확인하는 것이 인간의 당연한 습성이기 때문이다. 거울 속에 비친 천장의 되비침을 본 순간 주역의 천택리(天澤履)와 택뢰수(澤雷隨)의 괘상(卦象)이 떠올랐다.


배낭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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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마음과 거울, 천택리와 택뢰수)와 관련된 다른 내용을 남겨둡니다.


불교 인식론자들은 생각의 발생이 있다는 것이다. 재미있다. 생각(生覺)을 풀어서 해석하면 일어나고(生) 자각(覺)한다는 뜻이다. 그러고보니 생각의 발생은 동어 반복인 셈이다.

生生之謂易
낳고 또 낳는 것을 변화라고 말한다.

이해하자면 간단하다. 온통 채워져 있으면 생각이 일어날 틈조차 없는데 무슨 생각이 일어날 것인가? 중국 도가(道家) 사상가들이 그렇게 강조하는 ‘허무(虛無)’란 공허함이 아니라 ‘텅 빈 충만’이다.

깨달음을 곡해하여 “나는 깨달았어!”라는 우월 의식을 갖는 순간 번뇌마(魔)에 빠지는 것과 같다. 특별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 행동은 하느님을 믿으면 천국에 가고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면죄부를 얻어 마음대로 행해도 된다는 식의 어리석은 태도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이미 모두가 천국의 존재이므로,

유명한 카르마의 법칙, 천도무친(天道無親)의 재해석은 다음과 같다.

善因善果 惡因惡果
선한 행동은 선한 결과를 불러오고
악한 행동은 악한 결과를 불러온다.

천도무친(天道無親)이기 때문에, 운명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마음의 주인이 행해야만 하는 실천적 근거로 결론지어진다. 그러나 슬프고 안타까운 것이 과보(果報)는 시차(時差)가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선한 행동을 하면서도 부당한 대우를 받아 한탄하였던가?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악한 행동을 하고도 잘살고 있는가? 그러니 과보(果報)의 시차가 바로 불평등의 원인이다. 카르마의 법칙은 공평하나 이 빌어먹을 시차가 존재하기 때문에 신뢰받지 못한다. 신뢰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무시당한다. 무한한 무의식의 저장고는 몸과 마음의 ‘복합 개체’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얻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번 생의 결과가 이번 생에 바로 나타난다면 평등할 것이다. 그러나 다음 생에 나타난다고 하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다음 생에 내가 이전 생을 안다는 보장이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망각은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답답하다. 자신의 행동을 절대 잊어버리지 않고 그 행동의 결과가 어떻다는 것을 확실히 안다면 함부로 악을 행동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따라서 삶이 불평등이고 그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우리는 평등해야 함을 부르짖지만, 그렇다고 과연 평등을 바랄까?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평등’이란 똑같다는 뜻인데 똑같다면, 삶이란 존재할 수 없다. 똑같다는 것은 일치를 뜻하고 일치는 조금도 차이가 없다는 것인데 차이가 없다면 ‘인식’이라는 작용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차이를 통해 우리는 인식하는 것이고 인식하지 않는 것은 생명, 즉 살아간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불평등하니까 삶이 있고 생명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천도무친(天道無親)이다. 이것을 평등으로 이해한다면 힘들어진다.


나는 간혹 동서양의 고대 수행자들이 왜 그렇게 고통을 감내하고 살아갔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부처도 그렇고 내가 그들의 유적을 찾아다녔던 프란치스코, 이냐시오, 그리고 베네딕토도 귀족이었다. 그런데 왜? 풍요로운 생활을 마다하고 고난의 길을 택하였을까? 그들은 번뇌를 소멸시키기 위해 아이러니하게 정신과 육체의 번뇌를 직접 자신에게 가했고 오히려 이를 즐겼던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고통을 즐기는 마조히스트(masochist)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고통에 탐닉하지 않았다. 무친(無親)하고 평온(平溫)하였다.

지금은 조금 이해가 된다. 내가 어리석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천도무친(天道無親)과 카르마의 법칙을 실(實)답게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의 행위에서 제대로 알고 하는 행위가 도대체 얼마나 있을까? 그리고 ‘나’를 전 우주의 어떤 존재 아니, ‘하느님’ 보다 사랑하기 때문일 것이고, ‘나’라는 실체가 없음(무아無我)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생명은 불평등이기 때문에 다만 ‘조화로움’을 지향할 뿐이다. ‘조화로움’을 이루는 과정이 바로 ‘수행’이고 위대한 영혼들이 그렇게 부르짖고 실천했던 ‘삶의 태도’이다.




우리는 항상 번뇌의 바람을 품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번뇌가 원래 그런 것이라면 애써 소멸해야 할 이유도 없다. 다만 번뇌에 메어있지 않으면 된다. 어렵지만,



나는 항상 번뇌의 바람이 분다. 그리고 번뇌를 집착하고 사랑하고 있다. 젊은 날의 사랑했던 그 시절의 연인처럼,

번뇌가 바람이라면 붙잡을 수 없는데 붙잡으려고 용을 쓰는 내가 안스럽기도 하다. 결국 소멸할 것인데,


번뇌가 곧 깨달음이다

번뇌가 소멸해야 깨달음인데 번뇌가 깨달음이라면, 우리의 삶의 태도는?

소멸되는 것을 소멸시키려하니 문제였다. 본래 한 물건도 없었다지 아마?



성 이냐시오 성당과 예수회 본원에서 이냐시오가 업무를 보던 사무실과 침실을 둘러보았다. 의자가 빈 곳이 그가 마지막 숨을 거둔 장소라고 한다. 여기가 침실 겸 묵상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이냐시오 성인의 신발, 우리는 결과에 상관없이 항상 걷고 또 걷고 걸어가야 한다. 만레사 동굴에 보관된 500년 넘은 그의 밥그릇과 이 신발이 나에게 감동을 준다.

바로 적용되는 카르마의 법칙이 아닌 것이 어렵고 복잡할 뿐이다. 그러니까 계산대로 지금의 인생이 진행되지 않으니까 속상하다.



이곳에서 열리는 검투사 경기를 보러 찾아드는 5만 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었다. 경기장은 또한 해상 전투를 재현하거나 고전극을 상연하는 무대로도 사용되었다. 검투사들은 보통 노예나 전쟁 포로 중에 운동 실력이 출중하고 용맹하게 잘 싸우는 이들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서로 결투를 벌이거나 다양한 종류의 동물을 사냥해 보여 로마 관중들을 즐겁게 해 주었다. 이렇게 살아간다는 것은 위험이 따르는 일이었으나, 검투사가 되면 이득도 있었다. 다른 노예들보다 생활환경이 훨씬 나은 군대식 학교에서 훈련을 받을 수 있었고, 승리를 거둔 검투사들은 영웅 대접을 받음으로써 한편으로는 일체감과 애국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포심을 심어주기 위한 정치적인 목적으로 건립되었다.
콜로세움

콜로세움은 전쟁 같은 삶을 상징하는 것일까? 그러나 그 전쟁을 즐기는 검투사처럼 인생에 애착을 갖는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생이 좋으니까,

콜로세움으로 가는 길에 로마의 유적들이 많이 모여있다. 군데군데 거리에서 버스킹도 하고 과거의 유적을 보며 사진 찍는 사람들을 보면서 인생무상을 다시 생각한다. 전쟁과 재난의 폐허를 그대로 간직한 이곳에 ‘나’가 모르는 사람들이 살아갔고 그들에게 새겨진 ‘기쁨과 슬픔’도 여행자는 상관하지 않는다. 남아있지 않기때문이다. 이 거리는 낭만과 즐거움이 있는 축제 분위기이다. 인생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


로마에서 40년 동안 같은 가족이 운영한다는 오픈 도어 서점(Open Door Bookshop)에 들러서 두 권의 책을 샀다. 그리고 몇몇 로마의 고서점들도 구경하였다. 분위기가 좋았다. 인사동이 도시화 되면 로마와 같은 모습일 것이다. 아니지, 인사동은 현대의 건물에 무늬와 분위기만 고풍스럽게 꾸몄다. 그렇다고 인사동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폐허가 되어 아무도 살지 않거나 휑하니 아무도 없는 것보다 낫다. 건물과 거리는 그곳에 사람이 살고 걸어다녀야 생명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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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여행기] 하늘을 담은 거울/ 유럽 여행기를 끝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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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이 녹아있는 여행기 오늘도 정말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르바님이신가요? 감사합니다.

아 이것이 진심 정성이 담긴 여행기 입니다.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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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논문 완성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steemzzang.com에 처음 들어가봤습니다. 코인이 zzan으로 찍히는게 신기하네요. 글을 여기서 쓰면 양쪽다 보팅받는 것인가요? 뭐가 뭔지.... 고마와요. 근데 여기서도 보팅하랴 스팀짱에서도 보팅하랴 번거롭지 않으세요? 너무 복잡한 세상이 되는 거 같습니다.

좀 번거롭긴 한 것 같습니다.
요즘 토큰이 너무 많아져서 관심을 좀 놓으려고 해요. 정신이 너무 없어서요.ㅎㅎ

"예의"가 중요한 거군요. 저는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더 싸가지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가끔 내가 제일 불행하다는 생각이 불쑥 들때 누가 건드리면 확 싸가지가 나가더라고요.ㅠㅠ 7월은 좀 더 예의를 지켜야겠습니다.

네. zzan 태그를 달면 이곳과 별도로 토큰보팅을 또 받습니다. 단, 보팅게이지는 함께 줄어들어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특정토큰용 부캐를 따로 만들어서 게이지 관리를 하지요. 저도 처음엔 막 복잡했는데 몇번 해보면 감이 확 올거에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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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ve a nice day and keep up the good work!

불평등하니까 삶이 있고 생명이 있는 것이다.

어설픈 독해력으로 보니까 이 말이 요지네요.
삶은 어쩔 수 불평등으로 존재합니다.

여행자의 삶이라 굳이 집착할 대상도 이유도 없다는 말이 조금은 쓸쓸합니다.
자유로운 영혼 피터님~~~

오~~~ jjm , zzan 태그도 달았네요. 이제 zzan 으로 보팅 할게요. 조금 모었습니다. ㅋㅋ

jcar 토큰으로도 보팅 요청 하고 갑니다. ^^

댓글 지워진 거 같은데 해결하신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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