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술] 위스키 라이프의 시작, 오사카 산토리 위스키 하우스

in #stimcity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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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는 내게 맛없는 술이었다. 맥주, 사케, 진, 보드카, 나라별 전통주 등등 거의 모든 종류의 술을 좋아하고 찾아 마시는 나지만 유일하게 위스키는 열외의 술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처음 위스키를 접한 게 인도였기 때문이다. 모르는 사람이 많을테지만 인도는 위스키 최대 소비국이다. 처음 인도가 위스키 소비량 1위란 사실에 의아했는데 영국의 식민지였던 역사와 12억이나 되는 인구수를 조합해보니 어느 정도 납득이 되었다. 실제로 인도 여행을 하며 만난 친구들이나 인도 생활을 하며 만난 친구들도 위스키를 즐겨 마셨다. 대신 그들이 먹는 술은 미국이나 스코틀랜드에서 만든 위스키가 아닌 인도 내에서 직접 만든 저렴한 위스키이다. 이 이야기까지 듣고나면 인도가 위스키 최대 소비국인 이유를 완전히 납득하게 된다. 인도에서는 소비량만큼이나 생산량도 엄청난데 영국의 한 리서치에 의하면 2017년 위스키 판매수량 세계 탑 텐 중에 인도 위스키가 7개나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오피서스 초이스, 맥도웰, 로얄 스태그 등등이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 내게도 친숙한 이름들이다. 아마 나의 첫 위스키는 맥도웰아니면 로얄 스태그였을 거다. 만 원도 안되는 돈에 750ml 한 병을 살 수 있으니 그 위스키의 품질이 얼마나 별로인지는 뭐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런 위스키를 위스키라고 인도에 머무는 몇 년 동안 마셨으니 위스키를 좋아할래야 좋아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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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회사를 관두고 프리랜서로 찔끔찔끔 일하던 시절, 친구 h의 제안으로 절친 p가 사는 오사카를 방문했다. 술꾼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혼술을 하느냐, 안하느냐. 술을 잘 먹고, 술을 마실 때 잘 놀지만 혼술을 거의 하지 않는 부류가 꽤 있다. 그들은 여러 명이 술을 마시고 만들어내는 에너지와 흥겨운 분위기를 좋아하는 거지 술 자체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술꾼 제 1의 조건은 혼술이다. 우리 셋 다 혼술을 즐기는 술꾼들이었으니 당연히 우리의 여행도 술에 초점이 맞춰졌다. 미노 브루어리, 산토리 맥주 공장, 야마자키 증류소가 우리의 여행 리스트에 포함되었다. 위스키는 딱히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 당시에 일본 위스키 붐이 일었을 때라 일본이 위스키를 정말 잘 만드나 싶은 궁금증에 야마자키 증류소를 가려했던 거였으나 촉박한 일정에 이미 예약이 끝나 갈 수 없었다. 소규모의 특색있는 지역 맥주와 대기업의 운영하는 거대한 맥주 공장은 그 규모와 맥주의 종류, 분위기까지 확연히 달라서 비교하는 즐거움이 있었으나 '일본 위스키'에 대한 호기심을 지울래야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일본 위스키를 마실 수 있는 바를 찾다 오사카 산토리 위스키 하우스를 알게 되었다. 산토리 위스키 하우스는 위스키 갤러리와 다이닝 식당인 www.w 위스키 바틀바 3개의 존으로 구성되어있다. 위스키 특유의 매력과 맛, 즐거움을 다양한 체험을 통해 삶에 녹아들 수 있게 제안하고 위스키 문화의 창조적 발전을 목표로 하는 곳이라고. 오사카 시내인 우메다의 그랜드 프론트 오사카 빌딩 안에 위치한 산토리 위스키하우스는 '집' 보다는 '박물관'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는 곳이다. 입구부터 이어지는 갤러리는 형형색색의 위스키 원액부터 오크통 뿐 아니라 이제는 출시하지 않는 산토리 초창기의 오래된 위스키나 지금까지 발매된 희귀한 위스키와 과거의 포스터와 트로피 등이 전시되어 있어 산토리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야마자키 증류소가 1923년에 설립되었으니 그 역사가 벌써 100년이 다 되어가는 만큼 재미있는 볼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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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식당을 들어가기 전에는 50~70년 동안 위스키를 품었지만 이제는 은퇴한 오크통을 해체해 재사용해 만든 각종 테이블과 의자, 펜, 부채, 코스터 등을 판매하는 인테리어 용품점도 있어 위스키 마니아들의 팬심을 자극한다. 그 당시에는 그다지 관심이 가지는 않았는데 위스키를 좋아하게 되고 오크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오크통이 위스키의 품질을 결정짓는 다는 걸 알게된 지금은 뭐라도 하나 사오지 않은 걸 후회한다. 갤러리와 인테리어용품 공간은 크지는 않지만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식당 자체는 그다지 특별하지는 않다. 바틀을 줄지어 세어놓고 맥주 탭이 있는 바와 음식과 술을 즐길 수 있는 테이블석으로 나눠져 있어 우린 테이블에 앉았다. 다이닝의 이름은 www.w(포 더블유)인데 water, woods, wind, whisky의 앞글자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맛있는 위스키가 만들어지기 위해서 물과 바람, 나무가 중요하다는 뜻이겠지만 그 이름에서 나는 맑은 물이 흐르는 어디 깊은 숲 속에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아래서 유유자적하게 위스키를 마시는 모습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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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좋아하지만 위스키에 문외한인 세 명이 동시에 고른 건 하이볼이었다. 산토리는 하이볼 전용술인 가쿠빈을 개발한 회사인만큼 하이볼로는 정평이 나있는 곳이 아닌가. 치타 하이볼, 하쿠슈 하이볼, 히비키 하이볼을 각자 마셨다. 동네 일식집에서 먹던 달고 밍밍한 하이볼과 차원이 달랐다. 자체 제작한 아름답고도 청량한 유리컵에 얼음과 함께 찰랑거리는 하이볼은 단맛이 과하지 않고 상쾌했고 맛이 상당히 좋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술이 좋으면 하이볼 역시 이렇게 맛있어질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음식 역시 훌륭했다. 고구마 튀김과 다양한 안주를 한 번에 맛볼 수 있는 플레이트까지 평범해 보이지만 술과의 궁합을 세심하게 신경쓴 음식이었다. 우리는 연신 맛있다는 환호성을 지르며 기분 좋은 시간을 보냈다.

거의 일주일이나 되는 시간동안 물심양면으로 즐거운 술투어를 이끈 p에 맛있는 술과 음식을 대접하고 싶어 며칠 뒤 우리는 산토리 위스키 하우스를 다시 방문했다. 가츠산도와 각종 튀김에 하이볼을 먹으며 배를 채운 다음 위스키 테이스팅 투어에 도전했다. 산토리 위스키 하우스에서는 일본 위스키와 세계 위스키 테이스팅 투어가 있어 5잔의 술을 조금씩 맛볼 수 있다. 산토리는 일본 회사인데 왜 미국이나 아일랜드나 스코틀랜드의 위스키를 함께 판매하는지 의아했는데 알고보니 오랜 세월 동안 산토리가 다양한 회사와 인수 합병을 하며 몸집을 키운 전략과도 관계가 있었다. 영국 위스키 모리슨 보모어 뿐 아니라 미국의 최대 위스키 회사인 짐빔까지 사들여 산토리의 증류주 사업을 담당하는 자회사의 기업명도 빔산토리 그룹으로 변경하고 세계 3위의 주류업체로 등극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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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위스키가 궁금해서 방문한 곳인 만큼 우리는 '일본 위스키 투어' 테이스팅을 주문했다. 글랜캐런 잔에 가쿠, 야마자키, 히비키, 치타, 하큐수까지 산토리에서 만드는 5종의 위스키가 담겨있었다. 우리는 각자 한 잔을 들어 꿀꺽 한모금을 마셨다.

"으으, 독해"

인도에서 위스키를 먹을 때는 늘 물을 섞어마시거나 얼음을 섞거나 뜨거운 물을 섞어 마셨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위스키의 맛과 풍미를 더 높여주기 위해 소량의 물을 섞어 먹는다지만 인도 위스키는 그 품질을 가리기 위해서 물을 섞어 먹는 게 합리적이었다. 그래서 위스키를 그 무엇도 섞지 않고 니트로 먹은 게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그 감상은 그저 '독하다.'였을 뿐 이다. 다시 천천히 하나 하나 입을 적시며 그 맛을 음미하고 차이를 구별하려고 골똘히 생각하고 노트에 그 맛이 어떤지를 적어가며 평가를 했다. 독주를 잘 못마시고 먹어본 적이 없는지라 목넘김이 좋은 걸 선호하는데 히비키와 치타가 그나마 목넘김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위스키가 맛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5잔의 테이스팅 세트를 먹으며 맛을 구분하려는 시도를 시작으로 위스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런저런 경험을 차곡차곡 쌓으며 위스키 경험치는 계속적으로 확장되었다. 위스키 특유의 매력과 맛, 즐거움을 다양한 체험을 통해 삶에 녹아들 수 있게 제안한다는 산토리 위스키 하우스의 가치가 내게 유효하게 작용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 위스키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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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도 배워야 맛을 알겠더라구요~

처음 먹을 때는 이렇게 좋아하게 될 줄 몰랐는데 좀 먹어보고 많이 배우니까 더 흥미가 붙더라고요 :-)

여기 한번 가보고 싶네요

여기 좋았어요! 나중에 다른 후기들을 찾아보니 라프로익 18년이 15,000원 정도였더라고요...몰라서 못먹은 게 아쉬워요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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