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칠십에

in #stimcity3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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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칠십에 무엇을 이루면 기쁠까? 무엇을 얻으면 마음이 흡족할까? 무슨 영화를 보면 좋을까?



그가 오스카를 탔다. 그의 나이 칠십하고 다섯에 세계 최고의 배우가 되었다. 그게 모두 그 나이가 되어야 얻는 성취라면 두말할 것 없이 기쁘겠지만, 누군가는 나이 스물에도, 서른에도, 마흔에도, 오십에도 얻는 성취이니 그의 나이 칠십은 영광스러운 만큼 민망스러울 수도 있겠다. 게다가 꿈이나 꾸었을까? 모든 배우의 열망이기는 하겠으나 그것을 칠십에 얻는 꿈을.



일본의 어떤 이가 젊어 역학을 공부하고는, 자신의 운이 칠십대에야 시작된다는 것을 깨닫고 그때부터 준비하며 기다렸다 딱 칠십에 사업을 시작하여 큰 성공을 이루었다는 얘기를 듣고 '아, 그런 인생도 있구나.' 하고 본 나의 팔자가 그와 같다는 걸 알게 되고는 절망에 빠졌던 적이 있다. 칠십이라니. 이렇게 새파란데.



아득한 마음으로 어머니께 물었다. 어머니 나이 삼십에 칠십이나 되어야 운이 트인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마음이 어떻겠냐고. 어머니는 그래도 기쁠 것 같다고 하셨다. 칠십에라도 무언가 이룬다면 얼마나 기쁘겠냐고.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그건 이미 산 날이 많아 그럴 거라고. 기다릴 날이 별로 남지 않아 그럴 거라고. 칠십에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삼십년을 기다리고 싶지는 않다고. 그건 너무 가혹하다고.



누구나 오늘 성공하고 싶고 지금 이루고 싶다. 조금 양보해서 내일이나 내년, 몇 해 안에 이뤄내고 싶다. 그것이 노력으로 되는 것이라면 좀 더 이를 악물고 하루라도 당기고 싶다. 그러나 운은 정해져 있고 시간은 박자를 놓치지 않는다. 기다림은 사람의 몫이고 운명은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그러니 이십대의 그에게 당신은 칠십하고 다섯에 오스카를 받을 거라고 예언해 준들 재수 없다며 소금 세례를 받지나 않음 다행이겠지. 그러나 그는 칠십에 이룬 오스카가 기쁘다.


"작품 선택 기준이 60세 넘어서 바뀌었어요. 그전에는 이걸 하면 성과가 좋겠다고 나름 계산했죠. 그런데 60세 넘어서 저 혼자 약속한 게 있어요. 난 그냥 사람을 보고, 사람이 좋으면, 그걸(대본) 갖고 온 프로듀서가 내가 믿는 사람이면 하리라 했죠. 그때부터는 제가 사치스럽게 살기로 결심했어요. 제 사치는 (끼고 있는 반지를 가리키며) 이런 게 아니고, 내 인생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으면 사치스러운 거 아닌가요.

저도 (배우를 한) 세월이 오래돼서 이제 대본을 읽으면 딱 알아요. 이게 진짜 이야기인가 아닌가. '미나리'는 굉장히 순수하고, 진지하고, 진짜 이야기였어요. 대단한 기교가 있어서 쓴 작품이 아니고 정말로 진심으로, 정말로 이야기를 썼어요. 그게 늙은 나를 건드렸어요.

그래도 또 제가 잘 안 넘어가요. 그래서 감독을 만났는데 '요새 이런 사람이 있나?' 그랬어요. 그래서 한 거예요. 그리고 나는 안목은 중요치 않은 거 같아요. 안목은 서로 다 다를 수 있거든요. 안목을 믿는다는 건 계산이 있는 건데, 난 그 사람의 진심을 믿었어요."

_ 韓배우 첫 오스카 윤여정 "절실하게 연기…배우로 죽을 터"



그는 오스카 트로피를 들고는 진심에 대해 말했다. 진짜에 대해 말했다. 안목에 대해 말하며 그건 진심과 진짜를 가릴 줄 아는 눈이라고 말했다. 그건 육십에 얻은 그의 지혜이다. 진심이 담긴 이야기, 진짜를 말하는 이야기를 연기하는 것은 어렵다. 배우가 진심이 아니면 진짜가 아니면 그것을 흉내 낼 수 없다. 그것은 그의 말처럼 내 인생을 내 마음대로 살아 본 사람만이, 그 사치스러움을 지켜내 본 이들만이 할 수 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는 것. 그것은 지혜다. 그렇게 살지 않으면 인생을 내 마음대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것에 무슨 연기가 필요할까? 자신의 삶 그 자체인 것을.


"나는 살기 위해서, 살아가기 위해서 목숨 걸고 한 거였어요. 요즘도 그런 생각엔 변함이 없어. 배우는 목숨 걸고 안 하면 안 돼. 훌륭한 남편 두고 천천히 놀면서, 그래 이 역할은 내가 해 주지, 그러면 안 된다고. 배우가 편하면 보는 사람은 기분 나쁜 연기가 된다고, 한 신 한 신 떨림이 없는 연기는 죽어 있는 거라고."



쌀독에 쌀이 있던 때보다 떨어졌던 때가 더 많았다는 그는 그 삼십년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먹고 살아야 했으니까. 그것이 자신의 연기 비결이라고. 절실함이 사라지면 연기는 끝이라고 말했다. 절벽에 서서 진심이 아닌 사람이 있을까? 목숨 건 순간에 절실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그런 시간을 삼십년, 사십년 살 수 있을까? 내 나이 칠십에 무슨 영화를 보려고.



그렇게는 살 수 없을 것 같다. 십년이 남았더라도 그렇게는 살 수 없을 것 같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오늘이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이기 때문이다. 진짜는 바로 이 순간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다 살다 칠십에도 그러고 있다면 그때에도 바로 오늘이기 때문에, 바로 지금이기 때문에 절실할 것이다. 언제나 매일매일을 내 마음대로, 내 마음을 다해 살았기 때문에 안목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진짜와 진심을 가리는 안목을.



900년을 거슬러 온 마법사가 내 나이 칠십이래 봐야 새파랗게 젊은 날의 하루이지만. 오늘과 상관없이 기다려야 하고 살아가야 하는 머나먼 세월 뒤의 일이라면 오스카라 할지라도 나는 단호하게 거절하리라. 다만 오스카 따위 없더라도 오늘 진심을 만나고 오늘 진짜의 이야기를 살 수 있다면 그것은 삼십년 뒤에도, 내 나이 칠십에도 그렇게 살고 싶다고, 그런 상으로 얻는 오스카라면 기꺼이 받겠다고, 민망해도 함께 진심을 다한 이들을 위해 받아 보겠노라고 말하고 싶다.


"상 타서 보답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영화 찍으면서 아무 계획한 것도 없고 여기까지 올 일도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여기 온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 응원하니 눈 실핏줄이 다 터졌어요. 너무 힘들어서. 그 사람들은 성원인데 (내가 상을) 못 받으면 어떡하나가 됐죠."



얼마 전 꿈을 꾸었다. 문학상을 받는 꿈이었다. 꿈에서 여기가 노르웨이냐고 물었다. 노벨상인 줄 알고. 꿈속의 그는 헬싱키라고 말했다. 헬싱키 문학상. 그런 건 꿈에만 있다. 꿈에서 부랴부랴 연설을 준비하다 시상식이 끝나버렸다. 영어로 된 연설을. 그래도 어디 갔었냐며 트로피는 전달을 받았다. 다행이다. 마법사가 연기는 할 줄을 모르니 오스카 받을 일은 없지만 글은 맨날 쓰니 내 나이 칠십에 받을 건 문학상이리라. 그러나 칠십에 문학상을 받기 위해 오늘을 희생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그때에도 그대들과 함께라면, 매일매일을 진심으로 살아온 모두와 영광을 나누기 위해 기꺼이 시상식에 참여하리라. 미리 준비된 영어 연설문을 꼬옥 쥐고서.



봄에 피는 미나리는 벌레와 질병에 저항력이 강하고 생명력이 끈질기며 정화력이 강하다고 한다. 그리고 그에게 오스카를 안겨준 영화 미나리 속 그의 이름은 '순자'이다. 칠십하고 다섯의 봄에 가짜에 저항하며 진심으로 삶을 정화해 온 순자는 오스카를 받아 안았다. 봄의 선물처럼.



내 나이 칠십에도 글을 쓰고 있을까?
내 나이 칠십의 봄에도 우리는 서로의 글을 읽고 있을까?
내 나이 칠십에도 여전히 나는 진심일까?

내 나이 칠십에. 내 나이 칠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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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즈덤 레이스 + Movie100] 013. 미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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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mmerlin님

랜덤 보팅 당첨 되셨어요!!

보팅하고 갈께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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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믿지는 않지만 70에 뭔가 이룰수 있다 말해주면 감사히 믿을것 같아요 ^^ 꿈을 꾸니까 살아있는 것이죠. 나이는 우스운 것이고 오늘이 단 하나의 날이죠.

이루실 겁니다. 무엇이든!

꿈을 응원하고 함께 하고 싶습니다
가까운 현재에 꼭 꿈이 이루어질 겁니다!!^^

우리 모두에게 가까운 현재이길!

'내 나이 칠십에'에 대한 느낌은 내 현재 나이가 몇 살이냐에 따라 다를텐데, 이왕 느끼고 깨달을 거라면 조금 더 일찍 하면 좋겠다 싶습니다.

이미 하고 계신 게 아니라면 지금 바로 함께 하시죠!

내 나이 칠십이 아닌 육십에 제 자신에게 사치를 부리려고 준비 하고 있습니다. 스팀이 만배 가기를...

하고 싶은 일을 칠십이 아닌 팔십까지 하고 죽고 싶네요.
열심히 사치부리면서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전까지는 못 죽습니다. 고자리로 다시 돌아올 테니까요. 삶의 사치를 마음껏 누리시죠!!

아무 것도 이루지 못 하더라도, 평화롭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평화를 이루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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