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용 장군의 국경선에 봄이 오다) 32 김용배 중령과의 이별

in #leedaeyong6 years ago (edited)

전쟁이 발발한 지 1년이 지났다. 그간 죽을 고비를 몇번이나 넘었다. 전쟁은 중부전선에서 점차 고착되고 있었다. 1951년 6월 22일 제7연대 부연대장 김용배 중령의 송별회가 열렸다. 화천 구만리 발전소 북방 약 10 킬로미터 지점인 우장동이었다. 천막안에 초라하게 야전 술상이 준비되었다. 서울에서 보급차편으로 사온 소주병이 여기저기 놓아지고, 구운 오징어와 사과조각 그리고 레이션에서 나온 튀긴 다시마와 자반생선이 쭈그러진 야전식기에 담겨져 있었다. 술잔은 반합뚜껑이었다.

이대용은 평생 김용배 중령을 가장 존경했다. 사관학교 생도때 김용배 중령과 인연을 맺어 중대장으로 그의 밑에서 복무를 했다.

이대용은 1951년 1월 22일 경기도 용인군 백암리에서 함께 막걸리를 마셨던 때를 떠 올렸다. 김용배 중령은 1950년 10월 10일 부인이 아들을 출산했다는 소식을 불과 얼마전에 들었고, 이름을 송조(松朝)로 지으라고 전갈을 보냈다고 했다. 소나무 같이 지조있고 아침처럼 신선하게 살아가라는 뜻과, 조(朝)자가 시월십일(十月十日)을 모아쓴 글자라 그렇게 지었다고 이야기 했다.

취기가 꽤 돌자, 그는 일제때 지원병으로 나가 일본군에서 근무한 것을 후회한다고 했다. 어린 마음에 단지 군인이 되고 싶어 지원병이 되었는데 크게 실수했다고 하면서 한숨을 지었다.

그는 어렸을때 부모가 강제로 정해준 조강치처를, 어른이 된 후 이혼하고 자기 마음에 드는 처녀에게 새장가를 다시 들었다. 송조는 두번째 부인의 소생이었다.

이대용은 그 두가지만 제외하면 훌륭한 인간의 전형이고, 군계일학의 뛰어난 군 지휘관이었다고 평가했다.

1950년 6월 22일 정오를 지나 김용배 중령이 들어오면서 송별연회가 시작되었다. 일제히 일어나 그를 맞이했다. 김용배는 5연대장으로 부임하게 되어 있었다. 그는 육군사관학교 5기생으로 키는 1미터 67 정도였다. 체중은 약 72킬로그람 정도되었다. 검은 눈은 항상 광채를 발했으며, 어떤 때는 부처님 처럼 인자해보이기도 했고, 어떤 때는 태산을 삼킬 것 같은 호걸의 기개를 담고 있기도 했다. 그러나 전투를 할 때는 이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살인마의 살기도 능가할 정도로 무서운 눈빛의 보유자였다.

그는 어질고, 용감하고 지혜로운 군인으로 거의 모든 것을 다 갖춘 가장 이상적인 지휘관이었고 인재였다, 침착함은 태산과 같았고, 조용함은 수풀속 같았다. 일단 유사시 행동은 바람같이 빨랐고, 적을 무찌를 때는 이글거리는 불길처럼 맹렬했다.

그는 모든 부하로 부터 깊은 존경을 받았고 상관으로 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그리하여 그의 육군사관학교 동기생들이 거의 대부분 소령이었는데, 김용배 중령은 벌써 연대장 보직을 받고 대령으로 승진했던 것이다.

국경선에 밤이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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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very remarkable article sir.
wonderful works @wisdomandjustice

과거의 실수를 인식하고 있어서만은 아니겠죠? 완벽한 군인이었군요

침착함은 태산 같고, 조용함은 수풀, 행동은 바람같고, 적을 무찌를 때는 이글거리는 불길처럼 ...
관운장이 생각납니다.

이대용장군님 이야기 들으며 잠깐 쉬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어질고 용감하고 지혜로운데, 반성할 줄 아는
존경을 받을만한 인물이신 것 같습니다.

김용배 중령님은 낭중지추 같으신 분이네요. 아랫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윗사람들에게 인정받아 진급도 빠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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