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는 오후] 4. 추억은 비틀거리며 어제처럼 다가온다 - 유하의 <비틀즈>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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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시 읽는 20세기소년 한재연(@witism)입니다.

저도 한때는 소년이었고, 그때는 20세기였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소년은 청년을 지나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20세기엔 소년이었고, 21세기 지금은 중년입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시를 읽고 마음이 움직이면 누군가와 그 시를 나누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죽은 시인의 사회’를 지나 ‘헬조선’에 이르러서 이젠 찻집에서 혹은 술집에서 시를 논하는 것은 참 드문 일이 되었습니다. 그 드문 일은 이곳, 스티밋에서 해보고 싶습니다. 어쩌면 블록체인과 비트코인과 4차 산업혁명에 관한 대화로 웅성거리는 이곳에서 함께 시를 읽자고 하는 권유는 뜬금없게 들리기도 하겠지요. 그러나 그 뜬금없는 일을 오래 지속하면 제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분이 생길 것이라 믿습니다. 인류는 아주 먼 옛날부터 시를 짓고 함께 즐겼으니까요.

저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는 한, 꾸준히 시를 소개하고 감상을 나누는 일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이 일련의 작업을 이름하여 <시 읽는 오후>라고 지었습니다. 하루를 다시 시작하기에도 뭔가 늦은 것 같고, 그렇다고 해서 하루를 마치기에도 너무 이른 그 언저리의 시간에 시 한 편 읽어 보면 어떨까요?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을 시는 유하의 <비틀즈>입니다.



비틀즈는 사라지고
예스터데이―
비틀즈 목청만 남아
가버린 어제를 산다

어제를 부르는 비틀즈와
비틀즈를 부르는 어제의 그리움

예스터데이―
비틀즈를 흥얼거리던 여인은 사라지고,
비틀즈 노래만 남아
그녀의 어제로 나를 데려간다

― 유하,「비틀즈」,『세운상가 키드의 사랑』, 문학과지성사, 1995, 82쪽.



아마도 비틀즈를 모르는 분은 없을 겁니다. 비틀즈를 아는데 <예스터데이>를 모르는 분도 없을 겁니다. 어쩌면 지구에서 가장 유명한 노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노래는 제목 그대로 ‘어제’의 세계를 우리에게 아련하게 들려주고, 그 세계가 오늘 무참하게 파괴되었음을 알려줍니다.

이 시는 비틀즈의 <예스터데이>를 배음으로 삼아 어제를 노래합니다. 유하 시인은 이렇듯 다양한 문화적 기호를 시적으로 변용하는 것에 능숙합니다. 시적 상상력을 단계별로 나눠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지금 나(시적 자아)는 비틀즈의 <예스터데이>를 듣는다.
  2. 그런데 이 목소리는 이미 ‘어제의 것’이다.
  3. 비틀즈는 가고 목소리만 남았다.
  4. 음반 속에 남은 목소리만이 어제의 비틀즈를 살고 있다.
  5. 비틀즈가 <예스터데이>를 부르지만 그 노래를 듣는 나 역시 어제의 일을 떠올린다.
  6. 나의 과거는 어제처럼 생생히 떠오르고, 그 기억은 비틀즈의 <예스터데이>를 소환한다.
  7. 어제처럼 생생한 과거의 연인은 <예스터데이>를 흥얼거렸다.
  8. 연인은 사라지고, 그녀가 흥얼거리던 <예스터데이>만 남았다.
  9. 그래서 비틀즈의 <예스터데이>를 들으니 나는 어제로 돌아간다.
  10. 어제로 돌아간 나는 그녀의 어제를 만난다.

저는 위와 같은 시적 상상에서 10번이 가장 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평범한 시인이라면 ‘노래 속에서 어제의 그녀를 만난다’라고 썼을 겁니다. 그러나 유하 시인은 ‘어제의 그녀’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어제’를 만납니다. 그런데 ‘그녀의 어제’로 간 나는 ‘지금의 나’입니다. 둘은 만날 수 없지요. 비틀즈의 <예스터데이>와 그녀가 흥얼거리던 <예스터데이>와 내가 떠올린 어제가 이중 삼중의 겹으로 ‘어제의 세계’를 환영처럼 만들어냅니다.

어제의 세계는 오늘 신기루에 불과합니다.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죠. 하지만 손으로 잡을 듯이 생생합니다. 기억이란 이렇게 참혹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노래를 들을 때, 어제로 돌아갑니까?
순식간에 생생한 기억 속으로 들어갔을 때, 만감이 교차하지요.
그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왔을 때, 지금의 세계는 어떠한가요?




저에게 힘이 되는 업보팅, 팔로우, 리스팀, 댓글 모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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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글을 쓰시는 군요.
팔로우합니다.

네, 안녕하세요? 저도 팔로우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하하하 감사합니다.

모래요정 바람돌이가 하루에 한가지 소원만을 들어주는것처럼
짱짱맨도 1일 1회 보팅을 최선으로 합니다.
부타케어~ 1일 1회~~
너무 밀려서 바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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