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는 오후] 왜 우리는 아플 때 겸손해지는가? - 장정일의 <병>
“근 몇 달”은 아니고 지난 며칠 동안 몸이 아파 제대로 운신할 수 없었다. 지금도 다 나은 것은 아니지만, 디지털 시대의 표현법을 따르자면 90% 정도 원상태로 회복한 듯하다. 누군가는 몸이 아프면 위의 시처럼 책도 읽을 수 없고 꿈도 꿀 수 없으며 “사랑도 관심도 없”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경우엔 책도 띄엄띄엄 읽을 수 있고, 꿈은 더 많이 꾸었으며 “사랑도 관심도” 이전보다 더 생겼다. 그 차이는 아마도 “아지랑이 같은 무기력”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중2 수학여행 도중 얻은 폐렴으로 정신이 오락가락했을 때나 몇 해 전 신종플루 의증으로 병원에서 수액을 맞으며 누워있을 때에 내가 느꼈던 것은 분명 “아지랑이 같은 무기력”은 아니었다. “아지랑이 같은 무기력”은 눈앞이 캄캄할 정도로 육신이 아플 때 생기지 않는다. 그것은 마음의 병과 상관있다. 아지랑이는 봄날에야 피어오르는 것. 쾌청한 봄날 생기는 마음의 병이란 무엇이던가. 육신은 어디로든 뛰쳐나갈 수 있는데 마음은 운신의 폭이 너무 좁은 것. 그래서 생기는 무기력. 그런 때에는 이웃의 간염도 죽음도 내 알 바 아닌 것이 된다.
몸이 아픈 와중에 오랜만에 장정일의 시를 찾아 읽게 되었고 이 시는 내게 적잖은 위로를 주었다. 굳이 유마힐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앓는 세상을 볼 수 있으려면 나 역시 앓아야 한다. 근 며칠 침대에 누워서 몸조리를 하는 동안 세상은 슬픈 소식으로 가득하였다. 몸이 아파 마음이 약해졌기 때문일까? 나는 어느 때보다 겸손해져서 “막일꾼 박씨”의 운명을 헤아리듯이 나의 삶과 죽음도 포개어보았다. 그래 놓고 보니 정말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렇게 시를 읽고, 시에 대해 쓰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