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시, 패션계의 큰 별이 지다.

in #kr6 years ago



이 곳에 계신 분들 중 지방시 라는 디자이너를 모르는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 “티파니의 아침”에서 오드리 햅번이 까만 원피스에 진주 목걸이를 하고 한 손엔 베이글을 들고 있는 장면을 모르는 분은 없겠죠. 그 장면에서 오드리 햅번이 입고 있는 원피스를 만든 디자이너가 지방시 입니다.


5.16.27.png



세계인의 마음을 훔친 오드리 햅번을 더욱 빛내준 바로 그 옷을 만든 지방시가 타계했습니다. 저는 패션 전공도 아니고 그저 예쁜 옷을 좋아하는 소비자이기 때문에 그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좋아하는 디자이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은 저에게 마음 아프게 다가옵니다.

1952년 지방시가 자신의 레이블을 만들고 난 후 지금까지 60년이 넘는 시간동안 그의 이름, 그의 브랜드는 전세계적인 사랑을 받으며 명품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과하지 않은 여성스러움과 억지스럽지 않은 우아함이 그의 시그니처가 되었죠. 그의 디자인에서 느껴지는 이미지를 조금이나마 갖고 싶은 마음에 그의 옷을 사는 사람이 비단 저 뿐만이 아닐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방시를 비롯해서 여러 분야의 거장/대가 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을 보면서 많은 자극을 받습니다. '과연 나는 이 세상을 떠나면서 어떠한 평가를 받을까? 나는 이 세상에 무엇을 남기고 떠날까?' 를 생각하면 밤에 잠이 잘 오지 않습니다. 지방시나 다른 거장들처럼 어마어마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눈을 감는 걸 꿈꾸는 게 아닙니다. 다만, 저는 이 세상에 저만의 legacy 를 남기고 떠나고 싶다는 매우 ‘원대한’ 소망이 있습니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저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을 해야할지 사실 감도 안 잡힙니다. 그저 하루하루 제 앞에 놓여지는 일들을 처리하면서 또 하루를 보내겠죠. 요새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머릿속이 과부하에 걸린 느낌입니다. 하지만 예전에는 하루살이처럼 내 눈앞에 보이는 나무 한 그루를 베기 위해서 헐레벌떡 뛰었다면, 요새는 시야를 넓혀서 큰 숲을 보고 저 숲 전체를 관리하려면 나는 뭘 해야할까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리고 제가 내일 당장 이 세상을 떠날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하루를 충실히 살면서 언제가 될지 모르는 저의 legacy 를 남기고 떠날 그 날에 대비하고자 합니다. 음… 이렇게 쓰고보니까 왠지 모르게 유언장 같은 느낌이 들어서 흠칫 하네요 ㅎㅎ 전 오래오래 살고 싶습니다 !


5.20.47.png



공교롭게도 오늘 제가 입은 원피스와 코트 모두 지방시입니다. 원피스는 3년전, 코트는 5년 전에 산 옷인데, 지난 1년동안 한번도 안 입었던 옷이거든요. 그러다가 지난 주말에 옷방 정리를 하다가 구석에 박혀있던 이 옷들을 발견해서 반가운 마음에 꺼내놨다가 오늘 입었습니다. 출근할때까지만 해도 지방시의 타계 소식을 몰랐는데… 점심 전에 소식을 듣고는, ‘과연 내가 오늘 이 원피스와 코트를 입은 게 우연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번 주는 그의 옷들을 하나하나 꺼내 입으며 저만의 방식으로 하늘의 별이 된 지방시를 추모하고자 합니다.

Rest in peace, Hubert de Givenchy, " L’éternel apprenti ".

Sort:  

지방시... 많은 유명 브랜드 중에서도 참으로 세련된 동시에 독특했던 것 같은데. 이렇게 큰 별이 지는군요

맞아요, 최근들어서 독특하고 키치하게 좀 변한 느낌이 있어요! 그래도 그분이 지향했던 이미지와 남기신 아름다움은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소중히 간직할거라 생각합니다 :)

부디 만수무강하시어 서울님의 레거시를 남기소서!

만수무강하겠사옵니다 ㅎㅎ 100살까지 끈질기게 살아내서 제 이름을 세상에 새기고 떠나고 싶어요 +_+ 그리고 afinesword 님의 레거시도 지켜봐야죠 :)

낮에 검색어에 올라와있는 걸 봤는데, 타계소식이었군요. 90년대에 은퇴하긴 했지만 패션계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디자이너 한명이죠. 문득 오드리햅번의 영화가 보고싶어지기도 하네요.

LVMH 에 넘기고나서 이런저런 개인적인 일에 몰두했다고는 하는데... 확실히 지방시가 현역일 때의 느낌은 나지 않죠 ㅜㅜ 지방시 은퇴 후 그의 브랜드을 맡은 여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이 너무 그와는 다른 분위기를 추구했기 때문이겠지요. 그런 점에 있어서 지방시는 안타깝게도 후계자 양성에 실패했네요.. 그래서 전 엄마가 80년대 후반부터 갖고 있는 옷 (=지방시가 직접 자신의 레이블을 디자인할 시절의 옷) 을 보고, 그때의 느낌과 비슷한 옷을 고르려고 해요 :)

거장이 또 이렇게 가는군요. 뉴욕 5번가 티파니 본점에 breakfast in tiffany에서 나왔던 식당을 열었어요. 음식은 그저 그렇지만 사진빨은 정말 잘 받는 모양입니다.

그나저나 오드리 햄번 너무 매력적이네요~

전부 다 티파니블루 색상으로 인테리어된 카페 말씀이시죠?! 친구들 사이에서 핫하길래 작년 연말에 가봤어요! ㅎㅎ 전 오픈 30분전에 갔는데도, 줄이 길더라구요 ㅠㅠ 맛은..... 말씀하신대로 그냥저냥이지만, 커트러리도 그렇고 화사한 색상도 그렇고 한번쯤가서 사진 한장 박기엔 좋더라구요 ㅎㅎ

'과연 나는 이 세상을 떠나면서 어떠한 평가를 받을까? 나는 이 세상에 무엇을 남기고 떠날까?' 를 생각하면 밤에 잠이 잘 오지 않습니다....다만, 저는 이 세상에 저만의 legacy 를 남기고 떠나고 싶다는 매우 ‘원대한’ 소망이 있습니다.

Cele님의 '원대한 소망'을 응원합니다!
밤에 잠이 잘 오지 않을 정도로 고민하신다니, 그 진정성이 확 와닿네요. 매우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시면서도, 말씀대로 나무보다는 숲을 보시고자 하시니 대단하세요. 평생 나무만 보다가 일생을 마치는 사람들도 수두룩하니까요.

어제는 문득 '인생이 짧다'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가능한 빨리 숲을 보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남기고픈 legacy가 무엇인지 알게 될 테니까요^^

응원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사실 제 주변 지인한테는 이런 얘기 잘 못해요.. 아무래도 쑥스럽고, 저도 제가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 있다는 걸 스스로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 물론 지금 저는 나이도 창창하고 실패를 덜 겪어봐서 이런 목표를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있지만,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고나면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스스로 저런 말을 뱉을 용기조차 못 낼 때가 다가오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짧은 인생' 이니까, 한정된 시간 자원 속에서 저만의 legacy 를 남기고 싶어요. 어마어마한 건 아니더라도, 가족/지인 외에 저를 기억해주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고, 이 사회에서 '나' 라는 사람이 존재했었다는 얕은 흔적만이라도 남기고 싶은게... 큰 욕심이긴 하겠죠? ㅎㅎ 그렇지만 좌절하기 직전까지만이라도 꿈꾸려구요 :) 수지님, 우리 함께해요 ㅎㅎ

mylifeinseoul looks like you copy / pasted some content of this post from this article:
Modern version HAAAA Glory to God
Please consider to avoid plagiarism!

위의 댓글에 있는 링크 "절대" 클릭하지 마세요! Scam 이예요! 외부 사이트로 넘어간다고 나오네요!

'티파니의 아침'을 읽었을 때, 내가 상상했던 도시의 화려한 생활이나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서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영화를 찾아봐야겠어요. 일가를 이룬 분들은 돈 말고 다른 지향점이 있어서 매력적인 것 같아요.

티파니의 아침 줄거리가 생각보다 좀 암울하죠 ㅠㅠ 뭔가 따뜻한 느낌의 로맨틱 코미디일 줄 알았는데, 많이 어두워서 저도 영화 보면서 놀랐어요. 하지만 그러한 줄거리와는 별개로 영화에서의 오드리 햅번은 아주아주아주 아름답고 청순하더라구요! ㅎㅎ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아름다움. 부러웠어요 :)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만들어내는 분들이 존경스러운 이유죠^^.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은 유형이든 무형이든 소중한 것 같아요.

우연 이라기에 너무 밪아 떨어진 날이네요.
어머니의 옷도, @mylifeinseoul님이 그 기억을 바탕으로 사신 옷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합니다.
왠지 판도라 백 보다는 훨씬 오드리 헵번의 드레스에 가까울 것만 같은 기분이 드네요 :)

그럼 또 의미 있는 하루 되세요!

그 모든걸 우연이라고 받아들이기에 너무 이상할정도로 신기하다 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날이었어요. 그리고 오늘은 위대한 과학자인 스티븐 호킹이 하늘로 올라가셨네요.. 마음이 아픕니다.

오드리 햅번의 LBD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방시의 손길이 닿았던 옷들이어서 그런지, 저도 엄마도 애착이 많이 가는 옷들이예요 :) 그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옷이 촌스러운 느낌이 하나도 안난다는 게 신기합니다 ㅎㅎ

저는 사실 패션테러리스트라서 유명한 디자이너, 특히 패션계의 유명한 디자이너들이나 브랜드는 잘 모릅니다만, @mylifeinseoul 님께서 언급하셨으니 한번 살펴보아야겠네요. (하지만 역시 패알못이라...)

사실 시(詩)도 마찬가지로, 시인들은 각자의 영역을 세계에 남기고 싶어 합니다. 여러가지 실험들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지요. 그 실험들이 항상 언어의 극한을 추구한다거나 전위적이지는 않습니다만, 일종의 유산을 남기고 싶어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근원적으로 사람들은 왜 이러한 욕구를 가지고 있는걸까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는 아침입니다.

최근의 지방시 컬렉션은... 생전의 지방시가 추구했던 이미지와는 매우 달라졌어요! 그래서 요즘 지방시 옷들을 보신다면 살짝 난해하다라고도 생각이 드실거예요 ㅠㅠ

말씀하신대로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러한 욕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이라도 남기는데.. 라는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니겠죠? ㅎㅎ

전 전혀 모르고 있는 이름이었네요 ... 지방시 ...
새로운 것을 알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전 뭘 남길수 있을까요? ...
왠지 글이 박제되는 이곳 스팀잇의 포스팅 하나하나가
제 인생의 끝에 남겨질 수 있는 하나의 그림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살짝 멋진 일이 아닐까요 ^.^;;

요호님의 글과 리스팀해주시는 글들은 항상 챙겨서 보고 있어요 ! 글과 댓글을 통해 남겨주시는 요호님의 모든 생각과 의견은 지금 이 순간에도 스팀잇의 멋진 화폭으로 남겨지고 있네요 ㅎㅎ

Coin Marketplace

STEEM 0.19
TRX 0.14
JST 0.030
BTC 60035.79
ETH 3187.54
USDT 1.00
SBD 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