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주 프로젝트] '극한 글쓰기' - 영감이 필요없는 글쓰기를 하고 싶다면

in #kr6 years ago (edited)


오늘은 요새 글쓰면서 많은 도움이 됐던 글을 소개합니다.
소울메이트님이 평소 올리시는 글 하단에는,
영감이란 매일 일하는 것이다 라는 보들레르의 말이 쓰여있습니다.
그 말이 참 인상적이라 기억하고 있었는데, 3개월전에 쓰신 이 글도 맥락을 같이합니다.
저도 이 글을 읽으며 매일 숙련된 기계공이 나사를 조이듯,
영감이 필요없이 창작을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을 꿈꾸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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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글쓰기



 학창 시절부터 글쓰기에 비범한 능력을 뽐내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화려한 글쓰기로 당시 위정자를 풍자했고, 그 죄목으로 투옥된다. 옥살이도 그의 글쓰기에 대한 열정을 꺾을 수 없었다. 옥중에서 희곡을 하나 완성했는데, 그것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그가 옥중이 아니었어도 그런 성공작을 쓸 수 있었을까.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난 그렇다, 라고 답할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글쓰기에 대한 그의 집착이다. 환경은 부수적인 것이었다. 어떤 환경이었든, 그는 글을 썼을 것이고, 그의 재능은 꽃을 피웠을 것이다.

 누구 얘기냐고? 프랑스 작가 볼테르 얘기다.
극한 상황에서 환경은 아랑곳하지 않고, 걸작을 쓴 작가들은 볼테르 말고도 많다. 사마천은 옥중에서, 그것도 궁형을 당한 상태에서 <사기>를 썼다. 옛 중국의 감옥은 지금의 환경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열악했다. 게다가, 궁형까지 당했다. 신체적 고통은 물론이거니와, 정신적 충격은 더 했을 것이다. 어쩌면, 스스로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글쓰기에 집착했는지도 모르겠다. 2년간의 옥고를 치르고 나온 사마천은 약 8년 후에 방대한 <사기>를 완성한다.






이들 말고도, 포로 상태에서 <동방견문록>을 쓴 마르코 폴로, 옥중에서 <세계사 편력>을 쓴 네루. 그리고 우리나라에선 두루마리 휴지에 빼곡히 글자를 써내려간 서간을 모아 출간된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신영복 선생이 있다.

이 작가들은 아마 달나라에 데려다 놨어도 글을 썼을 것이다. 진짜 작가란 이런 사람들이다. 영감이 안와서 글이 안 써진다거나, 글 쓰는 환경이 나쁘다던가, 하는 볼멘소리를 하는 사람은 애초에 글쓰기에 대한 열망을 의심해 볼 수밖에 없다.





오늘 날의 극한 환경



 글쓰기의 극한 환경의 예로, ‘옥중 집필’ 얘기를 많이 했는데, 어쩌면 그것은 오늘 날의 장애물에 비하면 경미한 어려움일 수도 있다. 사마천이나 볼테르의 염장을 좀 지르자면, 방해물 내지 열악한 환경은 오히려 글 쓰는 이의 투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감옥은 다른 것을 하거나 즐길 수 없기 때문에 글쓰기에 몰입할 수도 있다.


오늘 날 가장 극한 환경은,

글쓰기 말고 감각적인 재미를 추구할 수 있는 도구가 많다는 점에 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유혹’이 많다는 것이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옆에 끼고 살며 비생산적인 활동에 몰입한다. 다운받은 핫한 영화를 미뤄두고 글쓰기를 시도하는 건 무척 어렵다. 스티븐 킹은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TV는 글 쓰는 사람에게 백해무익한 물건이라고 말한다. 그것도 저것도 아니면, 그냥 쉬고 싶다. 머리를 굴리고 문장을 떠올리는 게 골치 아프다. 안락의 유혹은 달콤하다.


 또 다른 어려움은, 너무 바쁘다는 것이다. 전업 작가에게는 해당이 안 되는 얘기겠지만, 어디에서 쓰느냐 보다 언제 쓰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어떤 사람들은 글 쓸 시간을 확보하기 어렵다. 낮엔 직장에서 전투를 벌이고, 밤엔 육아 때문에 틈을 내기 어렵다. 그래도 글쓰기에 꽂힌 사람들은, 우수한 쇼트트랙 선수가 자그마한 틈을 파고들어 앞 선수를 추월하듯이 작은 틈을 찾아내고야 만다. 재즈 카페를 운영하던 하루키가 하루 일과를 마치고 들어와 부엌 식탁에서 소설을 썼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전업 작가가 되기 전에 쓴 하루키의 첫 소설은 ‘키친 테이블 노블’이다. 이 말이 요즘은 ‘키친 테이블 라이팅’으로 확장되었다. 비전업 작가가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난 후에 하는 글쓰기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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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 테이블 라이팅
비전업 작가가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난 후에 하는 글쓰기





아마추어와 프로의 간극


 내가 사랑하는 소설, 필립로스의 <에브리맨>에는 우리 모두가 가슴에 새겨야 할 문장이 나온다.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

 글쓰기를 사랑하는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하는 태도가 여기 있다. 난 숙련된 기계공처럼, 컨베이너 벨트 옆에서 무심한 얼굴로 능숙하게 나사를 돌리는 제조공처럼 글을 쓰길 원한다. 내 기분과 상관없이, 소에 쟁기를 연결해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논으로 나가는 농부처럼 쓰길 원한다. 뭔가 느낌이 오길 기다리는 게 아니고, 틈만 나면 앉아서 글을 쓰는 사람. 그냥 단순 노동을 하듯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다. 이런 사람은 글쓰기 행위에 어떤 기분이나 감정도 개입되지 않는다. 다만 키보드에 손을 올리고, 백지를 향해 전진할 뿐이다. 백지에 한 고랑 한 고랑 쟁기질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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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공자의 말이 있다. 공자가 70세를 일컬어 한 말 이다.

종심소욕 불유구(從心所慾 不踰矩)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를 어기지 않는다.

 노동하듯 글을 쓰다보면, 공자의 말을 좀 바꿔서, ‘쓰고 싶은 대로 써도 망작이 나오지 않는다.’ 정도의 글쓰기 수준이 될 것이고, 그런 역량은 다시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가는’ 글쓰기로 이어질 것이다.

 결국 필립로스의 말은, 우리의 도달점임과 동시에,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방법도 되는 것이다. ‘그냥 일하러 가는’ 행위를 통해 ‘그냥 일하러 가도 되는’ 수준의 글쓰기 역량을 기른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는 글쓰기, 환경을 탓하지 않는 글쓰기를 할 준비가 되었는가. 네, 라고 대답한 사람은 함정에 걸려든 거다. 준비가 되지 않아도,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가자.


Written by @kyslmate


  • 이 글은 오마주 프로젝트 로 재 발굴한 글입니다.
  • 오마주 프로젝트는 한 달이 지난 자신의 글, 타인의 글로 누구나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 오마주 프로젝트는 @armdown 님과 @stylegold 님 아이디어로 시작되었습니다.
  • 이 글의 저작권은 @kyslmate 님에게 있습니다.
  • 이 글의 SBD 수익은 원저작자에게 전달됩니다.
  • 원글링크 : [문학적 글쓰기 –번외편] 극한 글쓰기
  • 글에 더 집중할 수 있게 이미지를 흑백으로 변경하여 적용해보았습니다.
  • 소울메이트님 비롯하여 글을 쓰시는분들께 - 문단앞에 <div class=text-justify>를 붙여주시면, 이 글의 편집처럼 문단 양끝이 화면에 딱 맞게 된답니다.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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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경아님, 제 글을 세련된 편집과 함께 다시 보게 되다니! 감회가 새롭고 기쁩니다^^ 이 프로젝트는 경아님의 수고가 많이 필요한 특별한 방식의 큐레이팅네요! 깔끔하게 정돈된 편집덕에 문학 잡지의 한 꼭지를 읽는 듯한 느낌도 받습니다.
제 글을 멋지게 재조명해 주셔셔 감사합니다!!ㅎㅎ 양끝을 맞추는 팁도 꼭 필요한 거였어요!

글의 느낌이 잘 전해졌는지 모르겠어요!ㅎㅎ 오마주로 소개하는 글들은 기존글에 신선한 느낌을 불어넣고 싶은데, 글의 느낌을 해칠까봐 고민이 되기도 합니다..ㅎㅎ
이 글이 제가 준비하는 전자책에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ㅎㅎ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사자는 발톱만으로도 알 수 있다.
(익명으로 보낸 뉴턴의 답안을 보고)

-요한 베르누이 -

"대체 누구의 발톱이지" 생각했는데, 역시 @kyslmate 님이시군요.

오. 요한 베르누이의 문구가 가슴에 팍 꽂히네요!^^ 예전에 공차다가 발톱이 빠진 적이 있는데 그 이후론 발톱이 못나게 자라네요.ㅎ 못난 발톱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ㅋ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스팀잇을 하러간다.

분야를 떠나서 '~~잘하는 법'을 보면.. 특히 창작 쪽은 답은 하나인것 같아요. '그냥 해라!' 이 말을 여러가지 버젼으로 들려줄 따름이죠. 그런데 이 당연한 말을 자꾸 망각하게 됩니다. 이렇게 잘 쓰여진 문장으로 또 한번 새삼스레 마음에 새기게 되네요.

맞아요 그냥 하는거. 그냥 매일 해보는거 그게 꾸준함이고 열정이지요 뭐!ㅎ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꿀팁 감사합니다! 문단 끝이 들쭉날쭉해서 보기 안좋았는데 다음 글에 꼭 사용해보겠습니다. :)

오늘도 좋은 글 소개 감사합니다. :D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는 글쓰기, 환경을 탓하지 않는 글쓰기를 할 준비가 되었는가. 네, 라고 대답한 사람은 함정에 걸려든 거다. 준비가 되지 않아도,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가자.

제가 얼마전에 그랬네요...!!
키친 테이블 라이팅...
꾸준함의 다른 말로 들리네요.
꾸준히 하다보면 언젠가 발전하겠죠?
그래도 스팀잇을 하면서 십수년만에 제대로 글을 쓰는 것 같아요.
글을 쓰는 재미를 느끼는 것 같아요.
그리고 동시에 글을 읽는 게 재미있어요.
너무 재밌어서 스라밸이 아슬아슬할 정도...

저도 그렇게 푹 빠져들었던거 같아요. 여긴 피드백이 활발하고, 읽을 것들이 넘치니까요ㅋ
게다가 그림 같은것들 올리면 엄청 반응이 뜨겁거든요!ㅋㅋ
제가 자주 쓰는 표현이 있져. "어리둥절할정도로 칭찬이 난무하는 곳이다"

맞아요. 여긴 정말 피드백이 활발하고 읽을 것들이 넘쳐나요!
ㅋㄷㅋㄷ

어리둥절할정도로 칭찬이 난무하는 곳이다

그러게요.
여기엔 칭찬해주시는 분들이 정말 많은 것 같아요.

감사 할 따름...

글을 쓰는 것이 마치 숨쉬기와 같이 느껴지는 경지네요..ㅎ 글쟁이들의 지향점이죠.

모피어스김님, 저는 그런 경지는 과연 어떤것일지 상상도 안되요ㅋㅋ
편안한 저녁 되시구요..!!ㅎㅎ

저도 키친테이블 라이팅이예요:)
끝에 가르쳐준 태그 필요했는데 감사합니다!

원글이야 이미 예전에 본 글이지만, 큐레이팅, 정말 세련되게 잘하시는군요. ;)

우유님 찬사를 날리고 가셨네요ㅋㅋ
감사합니다!!ㅎㅎ 이렇게 매력적인 프로젝트가 참여율이 참 저조해요..세상속상함요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속상하네요. 그래도 지속적인 활동 부탁을 드려 봅니다. ;)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

매일 쓰다보면 날카로워져서 항상 칼날을 갈지 않아도 되는 경지에 이르는 것 같습니다 :) 맞아요.. 그냥 쓰면 되죠.

멋진글이 멋진 레이아웃과 만났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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