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적 글쓰기 –번외편] 극한 글쓰기

in #kr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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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창 시절부터 글쓰기에 비범한 능력을 뽐내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화려한 글쓰기로 당시 위정자를 풍자했고, 그 죄목으로 투옥된다. 옥살이도 그의 글쓰기에 대한 열정을 꺾을 수 없었다. 옥중에서 희곡을 하나 완성했는데, 그것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그가 옥중이 아니었어도 그런 성공작을 쓸 수 있었을까.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난 그렇다, 라고 답할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글쓰기에 대한 그의 집착이다. 환경은 부수적인 것이었다. 어떤 환경이었든, 그는 글을 썼을 것이고, 그의 재능은 꽃을 피웠을 것이다. 누구 얘기냐고? 프랑스 작가 볼테르 얘기다.

 극한 상황에서 환경은 아랑곳하지 않고, 걸작을 쓴 작가들은 볼테르 말고도 많다. 사마천은 옥중에서, 그것도 궁형을 당한 상태에서 <사기>를 썼다. 옛 중국의 감옥은 지금의 환경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열악했다. 게다가, 궁형까지 당했다. 신체적 고통은 물론이거니와, 정신적 충격은 더 했을 것이다. 어쩌면, 스스로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글쓰기에 집착했는지도 모르겠다. 2년간의 옥고를 치르고 나온 사마천은 약 8년 후에 방대한 <사기>를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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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들 말고도, 포로 상태에서 <동방견문록>을 쓴 마르코 폴로, 옥중에서 <세계사 편력>을 쓴 네루. 그리고 우리나라에선 두루마리 휴지에 빼곡히 글자를 써내려간 서간을 모아 출간된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신영복 선생이 있다.

 이 작가들은 아마 달나라에 데려다 놨어도 글을 썼을 것이다. 진짜 작가란 이런 사람들이다. 영감이 안와서 글이 안 써진다거나, 글 쓰는 환경이 나쁘다던가, 하는 볼멘소리를 하는 사람은 애초에 글쓰기에 대한 열망을 의심해 볼 수밖에 없다.

오늘 날의 극한 환경

 글쓰기의 극한 환경의 예로, ‘옥중 집필’ 얘기를 많이 했는데, 어쩌면 그것은 오늘 날의 장애물에 비하면 경미한 어려움일 수도 있다. 사마천이나 볼테르의 염장을 좀 지르자면, 방해물 내지 열악한 환경은 오히려 글 쓰는 이의 투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감옥은 다른 것을 하거나 즐길 수 없기 때문에 글쓰기에 몰입할 수도 있다.

 오늘 날 가장 극한 환경은, 글쓰기 말고 감각적인 재미를 추구할 수 있는 도구가 많다는 점에 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유혹’이 많다는 것이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옆에 끼고 살며 비생산적인 활동에 몰입한다. 다운받은 핫한 영화를 미뤄두고 글쓰기를 시도하는 건 무척 어렵다. 스티븐 킹은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TV는 글 쓰는 사람에게 백해무익한 물건이라고 말한다. 그것도 저것도 아니면, 그냥 쉬고 싶다. 머리를 굴리고 문장을 떠올리는 게 골치 아프다. 안락의 유혹은 달콤하다.

 또 다른 어려움은, 너무 바쁘다는 것이다. 전업 작가에게는 해당이 안 되는 얘기겠지만, 어디에서 쓰느냐 보다 언제 쓰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글 쓸 시간을 확보하기 어렵다. 낮엔 직장에서 전투를 벌이고, 밤엔 육아 때문에 틈을 내기 어렵다. 그래도 글쓰기에 꽂힌 사람들은, 우수한 쇼트트랙 선수가 자그마한 틈을 파고들어 앞 선수를 추월하듯이 작은 틈을 찾아내고야 만다. 재즈 카페를 운영하던 하루키가 하루 일과를 마치고 들어와 부엌 식탁에서 소설을 썼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전업 작가가 되기 전에 쓴 하루키의 첫 소설은 ‘키친 테이블 노블’이다. 이 말이 요즘은 ‘키친 테이블 라이팅’으로 확장되었다. 비전업 작가가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난 후에 하는 글쓰기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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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역시 집에 있을 때는, 육아로 글을 쓸 시간을 확보하기 어렵다. 하지만, 아이가 낮잠을 잘 때나 밤에 잠이 든 후에 어렵게나마 글을 쓰는 시간을 갖는다. 하지만 난 어제 오늘, 나로서도 도저히 어쩔 수 없는 극한 글쓰기 환경을 마주했다. 바로 가족 여행이다.

 가족 여행의 가치를 폄훼하거나, 억지로 여행을 갔다는 의미가 아니다. 난 기꺼이, 즐겁게 가족 여행을 떠났다. 하지만, 여행지에서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으려는 열망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것이 문제면 문제인 것이다. 여행 중에 글 쓰는 틈을 내보려 했지만, 여간해서 어려웠다. 이동 중엔 운전대를 잡고 있었고, 낯선 곳에 갔을 때는 아이들에게 한시도 눈을 떼서는 안 되는 것이다. 아이들이 겨우 잠이 들었을 때는, 하루 일과에 지친 내 몸이 따라주질 않았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은, Am 2시 43분이다. 지금도 여행 중이다. 아내와 두 딸은 잠이 들었고, 난 호텔방 구석에서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다. 어제 잠을 이겨내지 못한 시행착오를 넘어서기 위해 핫식스를 들이켰다. 타우린과 카페인의 힘을 빌어, 나만의 틈을 찾아내고자 한 것이다. 이 글을 잠자기 전에 마무리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우리는 옥중에 있거나, 궁형을 받진 않았지만, 옛날과는 또 다른 ‘극한 글쓰기’에 몰려 있다는 얘기다. 그것들을 넘어서서 (글쓰기에 열망을 가진) 우리가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아마추어와 프로의 간극

 내가 사랑하는 소설, 필립로스의 <에브리맨>에는 우리 모두가 가슴에 새겨야 할 문장이 나온다.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

 글쓰기를 사랑하는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하는 태도가 여기 있다. 난 숙련된 기계공처럼, 컨베이너 벨트 옆에서 무심한 얼굴로 능숙하게 나사를 돌리는 제조공처럼 글을 쓰길 원한다. 내 기분과 상관없이, 소에 쟁기를 연결해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논으로 나가는 농부처럼 쓰길 원한다. 뭔가 느낌이 오길 기다리는 게 아니고, 틈만 나면 앉아서 글을 쓰는 사람. 그냥 단순 노동을 하듯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다. 이런 사람은 글쓰기 행위에 어떤 기분이나 감정도 개입되지 않는다. 다만 키보드에 손을 올리고, 백지를 향해 전진할 뿐이다. 백지에 한 고랑 한 고랑 쟁기질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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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좋아하는 공자의 말이 있다. 공자가 70세를 일컬어 한 말 이다.

종심소욕 불유구(從心所慾 不踰矩) -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를 어기지 않는다.

 노동하듯 글을 쓰다보면, 공자의 말을 좀 바꿔서, ‘쓰고 싶은 대로 써도 망작이 나오지 않는다.’ 정도의 글쓰기 수준이 될 것이고, 그런 역량은 다시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가는’ 글쓰기로 이어질 것이다.

 결국 필립로스의 말은, 우리의 도달점임과 동시에,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방법도 되는 것이다. ‘그냥 일하러 가는’ 행위를 통해 ‘그냥 일하러 가도 되는’ 수준의 글쓰기 역량을 기른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는 글쓰기, 환경을 탓하지 않는 글쓰기를 할 준비가 되었는가. 네, 라고 대답한 사람은 함정에 걸려든 거다. 준비가 되지 않아도,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가자.


[문학적 글쓰기] 연재목록

#(네 번째) 글쓰기의 소재 찾기 : https://steemit.com/kr/@kyslmate/4f2pnm

#(번외편) 글쓰기의 절대 고수 : https://steemit.com/kr/@kyslmate/5ggbee

#(세 번째) 글쓰기 필터와 논리적 구성에 대하여 :
https://steemit.com/kr/@kyslmate/3v5agv

#(두 번째) 글쓰기와 구체성 : https://steemit.com/kr/@kyslmate/7mzwch

#(첫 번째) 글쓰기와 문체에 대해 : https://steemit.com/kr/@kyslmate/3zmw1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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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역시 영감으로 쓰여진 글은 그냥 쓴 글과는 구별되는 뭔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네 맞아요. 많은 달인의 경지가 그렇듯 글쓰기도 어느 수준에 이르면 영감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고 믿습니다ㅎ

오마주 프로젝트 통해서 글을 접했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ㅎ 앞으로 자주 뵈어요^^

여행 중에도 틈틈이 글을 쓰시려하다니 대단하세요. :)

그래도 여행이니 좋은 거 많이 보시고 맛난 거 많이 드시고 오셔요. :D

네 간만에 코에 (칼)바람도 넣고 맛난 거도 많이 먹었어요^^ 아이들도 좋아했구요. 감사합니다ㅎ

제가 아는 최고의 옥중에서 글쓴이는 사도바울이네요. ㅎㅎ
글 쓰는게 일이면... 머리가 정말 아플거같아요. 전 독자의 입장이라 행복합니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도바울은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은 위대한 죄수였죠^^

돌아만 다니지말고 글좀써서 남기라고 윗분이 감옥에 두신걸지도 모른단 생각이 문득 드네요. ㅎㅎ

네 섭리가 있었겠지요?^^ 바울이 남긴 서신들이 직접 다닌것보다 아직까지 더 큰 영향을 끼치고 있으니까요.

글의 서문을 읽다가 유시민 선생님의 항소이유서가 생각이 났어요 ㅎㅎ
(지금은 다른 이슈를 통해 논란이 많지만..)
저도 글을 쓰지만 글쓰는 일은 항상 어려운 것 같아요..
모니터에 깜빡이는 커서가 큰 시련으로 다가올 때도 많고..
머릿 속에 가득한 것들을 옮겨적다보면 적당한 단어와 문맥이 떠오르지 않을 때도 많고..
하지만 주변 분들이 쓰다 보면 는다는 말을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포기하지않고 계속해보려 합니다 :)

좋은 글 잘 읽고 가요! 팔로우 꾹 누르고 갑니다 ^^

유시민 작가의 항소이유서를 쓴 과정은 참으로 레전드죠ㅎ 네 포기하지 않고 쓰는 게 유일한 지름길인 것 같습니다! 함께 성장해가요^^ 자주 뵈어요!

오늘 이 글에서 저는 발자크를 떠올렸습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

네 많은 비평가들이 발자크의 서툰 문장을 지적하지만, 엄청난 속도로 지치지 않고 글을 써내는 재주엔 탄복할 수밖에 없습니다ㅎ

오늘 하루 가장 추운날이 될꺼같아요!
완전 무장하고 하루를 시작했네요! ㅠㅜ
감기 조심하세요~~

추운데 오늘도 오셨군요. 감사합니다ㅎ

오늘의 글쓰기 강연 잘 들었습니다~ 역시... 프로입니다. 가즈앗!!

아직 프로되려면 멀었습니다. ㅎㅎ 조선생님도 가즈앗!!^^

가즈앗!! ㅋ

많은 도움이 되었네요 감사해요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글쓰는 이에게 tv는 백해무익한 물건이라고 치면, 저는 스팀잇을 하면서 tv를 끈었습니다. ㅋㅋㅋ
즐거운 하루 되세요~~~
오늘 작은아이 field trip동행했더니 완존 피곤 ㅜ.ㅜ 해요~~

그렇죠? 스티밋하면 TV볼 시간이 없어져요ㅋㅋ
아이들 장단맞춰 놀아주다보면 어느새 내 에너지 고갈! 힘내시고 밤에 회복하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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