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 essay] 울타리 밖의 괴물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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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 시간이었다. 주제는 이웃나라와의 갈등 사례였다. 그 즈음 야스쿠니 신사의 폭발 사건이 있었다. ‘야스쿠니 신사’는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의 해묵은 갈등 요소라, 마침 들려온 뉴스를 아이들과 나누게 되었다. 야스쿠니 신사 화장실에서 폭발물이 터졌다. 유력한 용의자는 CCTV에 찍힌 한국인이었다. 일본 당국은 이 용의자에 대해 자세한 조사를 할 예정이라는 얘길 전하자, 한 아이가 "잘했구나."라고 내뱉었다. 아이의 반응은 거의 반사적이었다. 난 아이를 향해 물었다. 뭘 잘했다는 거지? 테러 한 것? 아니면 그 대상이 일본인이라는 것?

 난 수업의 주제를 잠시 돌렸다. 일본에도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산다. 그들도 가족이 있고, 테러를 당해 죽게 된다면 슬퍼할 친구들이 있다. 그 점에선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다. 그런 일본인들이 갑자기 한국인이든 누구에게든 테러를 당해 죽는 것이 정당한지를 물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아이들의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여 화석화된 관계의 설정이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처음에 아이들은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지만, 수업이 끝날 때쯤 거의 모든 아이들은 테러의 피해자가 될 뻔 했던 사람들이, ‘일본인’이기 이전에 ‘인간들’이라는 점에 동의하기에 이르렀다.

 테러는 일본인을 대상으로 행해질 때도 정당하거나 기뻐할 일이 아니라는 것, 야스쿠니 신사 폭발 사건의 범인이 누구로 밝혀지든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테러범은 엄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 결론에 이르기까지 교사의 말 몇 마디로 아이들의 두터운 편견을 깰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질문하고 답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아이들은 조금씩 단단히 굳은 생각을 깨나간다.

 아이의 무의식적이고 즉각적인 반응이 그 아이의 것만이 아님을 안다. 그래서 난 두렵다.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타자화’하고 있다. (타자화의 정의는 타인을 대상화하고 물화시키는 것이다. 동등한 인격을 가진 존재로 보지 않는다는 말이다.) 어떤 사회에서는 내부의 결속력을 위해 타자화의 전략을 쓴다. 이 전략은 '우리'와 외부를 경계 지음으로 내부의 우월성을 고취하는 대표적인 전략이다.

역사 속의 괴물, ‘타자화’

 나치가 이 방법을 썼다. 이런 의문이 든 적 없는가. 히틀러와 나치는 600만명에 이르는 유대인을 학살했는데, 히틀러의 명령을 수행했던 사람들은 모두 비정상이었단 말인가. 최소한의 사고 기능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다른 사람을 잔인하게 학살하는 일에 동참할 때 죄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한나 아렌트가 ‘악의 평범성’으로 설명하기도 하였으나. 그것은 유일한 해답이라기보다는 복합적인 원인 중의 주요한 하나로 받아들이는 것이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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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에 나치의 월간지인 《신국민(New volk)》을 홍보하기 위한 포스터 포스터에는 "유전적으로 허약한 사람들은 평생 동안 우리 국민들 돈 6만 마르크를 허비한다. 시민들이여, 그 돈은 바로 당신들 돈이다"라는 말이 적혀 있다. -사진 출처: 네이버포스트 <우생학의 폐해>

 나치는 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타자화 전략’을 오랫동안 진행했다. 유대인으로 대표되는 다른 민족에 대한 ‘타자화’ 이전엔, 우생학을 바탕으로 정신병자, 불치병자, 장애인 등에 대한 차별과 탄압이 이루어졌다. 나치는 아리안족의 위대함과 우수성을 전시하는 한편, 심신이 약한 사람들에 대해선 딱지를 붙이고 출산을 제한하는 등의 탄압을 진행했다. 7만명의 정신병자를 살해하기도 했다. 그 결과 나치 하의 독일 사람들은, 세상엔 우수한 종의 사람과 그렇지 않은 종의 사람이 존재한다는 인식이 생겼다. 그런 인식은 자연스럽게 유대인 박해로 이어졌다.

 나치 독일의 군인들은 유대인을 죽일 때 사람을 죽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삶의 해부’라는 부제가 달린 테렌스 데 프레의 「생존자」라는 책에선 나치의 군인들이 실제로 유대인을 죽이는 것을 벌레 죽이는 것쯤으로 여겼다고 증언한다.

 이렇게 나와 다른 어떤 대상에 대한 ‘타자화’의 결과는 끔찍하다. 미국과 유럽은 IS의 테러 공포로 극우 정당과 정치인이 인기를 끌고 있다. 안전에 위협을 느끼는 사람들은 극우 정치인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백인과 유색 인종, 백인과 멕시코인을 경계 짓고, ‘우리’가 아닌 사람들은 모두 적이라고 외친다. 위험한 타자화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담은 소설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그 중 하나를 소개할까 한다.

연을 쫓는 아이

 아프가니스탄에 사는 두 종족, 파쉬툰과 하자라. 80% 비율을 차지하는 파쉬툰은 하자라를 멸시한다. 같은 이슬람이지만, 파쉬툰은 수니파, 하자라는 시아파이기 때문에 종파적인 갈등도 상당하다.

 ‘연을 쫓는 아이’에 등장하는 주인공 아미르와 그의 친구이자 하인인 하산은 각각 파쉬툰과 하자라인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가 종족 갈등과 거기서 파생되는 ‘타자화’에 대한 문제다.

 아미르와 하산은 둘도 없는 친구지만 계층적인 차이를 갖고 있다. 아미르는 둘이 있을 땐, 하산과 격이 없이 어울리지만 다른 사람들이 집에 놀러오면 하산을 멀리한다. 아미르는 사회적으로 천대받는 하자라인과 친구처럼 어울리는 것이 다른 사람들 눈에 좋게 보이지 않는다는 걸 어릴 적부터 체득하고 있었다.

 이처럼 뿌리 깊게 스며든 타종족에 대한 멸시 내지는 ‘타자화’를 이 소설에선 형상화하고 있다. 이 소설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종족이, 국적이, 그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는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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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보

 역사 속에서 타자화의 악마성을 목격한 인류는 다시 타자화 전략이 먹혀들고 있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세계화를 외치고 장벽을 허물자고 외치던 미국과 일부 유럽 국가들이 이젠 장벽을 치고 있다. 나와 너를 나누고, 우리와 외부를 경계 짓는 작금의 상황은 아이러니하기 그지없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타인을 ‘타자화’한다. 후진국에서 일을 구하러 이 땅에 온 외국인을,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나보다 가난하고 나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나보다 덜 중요한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어떤 이도 '타자화'의 혐의를 벗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린 민족이나 국민이기 이전에 인간이다. 어떤 국적을 가졌든, 어떤 생김새를 가졌든, 우린 모두 존엄하지만 서로가 필요한 인류다. 그 사실을 기억한다면 서로를 긍휼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최소한 우리 내부에서 경보 정도는 울리게 되지 않을까.

 누군가, “울타리 밖에 괴물이 있다!”라고 외치면, 우리는 두려워하기 전에 한 번쯤 의심해봐야 한다. 울타리를 치는 그 손을 말이다. 그 손이 가리키는 우리 안의 진짜 괴물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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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토보내시나요?^^ 저는 골든티켓에서 남은 치킨을 먹고있습니다!
골든티켓(@goldenticket)도 관심 가져주세요^^

치킨~ 부럽습니다^^

연을 쫓는 아이! 저도 참 감명깊게 읽은 소설입니다 ㅎㅎ
인간과 그 인간이 속해 있는 사회를 분리함으로써 미워함을 정당하게 만들어 버린다는 점이 참 무섭더라구요..
인종 뿐만 아니라 성, 성적 지향 마저도요 :)
좋은 글 감사합니다. kyslmate님!

네, 인간 그 자체가 아니고 그를 둘러싸고 있는 외적인 것들로 그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장면은, 우리가 참 많이 보는 모습이죠.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팔로우합니다. 자주 뵈어요.^^

참 무서운 일이죠! ㅠㅠ 저도 늘 경계하면서 살려고 노력하고 있답니다 ㅎㅎ 저도 팔로우 하겠습니다 자주자주 뵈어요 ^^

네 감사합니다! 불토되세요ㅎㅎ

어쩌면 인간이라는 종 자체가 타자화를 원하는 종족일지도 모릅니다. 먹이를 위해 옆 마을 사람들을 학살하고 영토를 넓히던 역사를 보면 우리의 핏속에 폭력의 열망이 들끓고 있다고 느껴지네요. 뻐꾸기가 태어나자마자 알을 떨어뜨리는 것처럼, 우리도 태어나서 사람을 미워하도록 만드는...

네 우리 안에 폭력성, 다른 이를 짓밟고 올라가려는 근성이 있지요. 그게 교육과 문화의 힘으로 순화되어 함께 어우러져 가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인간의 내면에 무엇이 있든 서로를 긍휼히 여기고 연대하려는 노력 속에서 더 나은 사회가 이루어져 가리라 믿어요.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타자화의 맞는 예인진 모르겠으나.. 갑자기 제가 생각했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유시민 작가님이 생각나네요. 대구에서 자랐고 부모님도 선거만 했다하면 1번을 찍으시는 분들 밑에서 자라다보니...아무것도 모르는 전 1번이 제일 좋고 다른 사람은 다 이상한 사람인줄 알고 살았습니다. 이모와 막내 삼촌이 노무현을 지지한다며 그럴때 무슨 잘못된 병이라도 걸린 사람처럼 생각되었던 저의 20대 초반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그때 대통령을 탄핵 하겠다는둥.. 해보라는 둥... 국회의원들이 서로 몸싸움 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 대통령이 잘 못되서 저렇구나... 유시민 보건복지부장관은 대체 의료 현실에대해 알고 장관을 하는거나? 머하는 사람이지? 하며 부모님과 같이 욕하기 바빴었는데....
세월이 지나고 30대가 된 지금... 참 부끄러웠네요. 내 울타리 밖의 그 사람들이 괴물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네 정치를 생각할 때 leeja19님의 경험처럼 극단적인 타자화 현상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내가 지지하는, 혹은 내가 속한 쪽 말고는 다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 더 나아가서 서로를 미워하고 증오하는 것. 우린 쉽게 보아왔습니다.
이데올로기는 사람을 쉽게 미워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전쟁을 하고 죽음을 불사할만큼이요. 우리가 같은 인류라는 걸 기억하라는 주문이 정치권에 대해서는 참 순진한 바람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경험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울메이트님 혹시 선생님이신가요? 아이들에게 편견을 버리고 유연성있는 사고를 기를수 있도록 교육하시는 멋진 선생님이시군요. 타인을 대상화하지 않는 다는 것은 존중과 이해를 의미하는 것이 되겠군요. 기회가 된다면 연을 쫓는 아이도 읽어보고 싶습니다. 영어판은 서점에서 본듯한데 우리 아이들에게도 추천해주겠습니다.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주변에서 듣는 이야기, 부모님이 갖고 있는 생각에 따라 편견을 가지는 경우가 많지요. 굳은 마음을 깨뜨리는 게 교육의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연을 쫓는 아이 참 재밌어요. 꼭 읽어보세요. 감사합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타자화에 대한 경계가 필요하다는데 공감합니다.
예로부터 집단의 단결력을 강화시키는데는 외부의 적을 만드는게 제일 효율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정치적인 의도가 다분한 일종의 모함이죠. 이것을 극복하는 인류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네 역사속의 많은 비극이 타자화라는 괴물에 의해서 생겨났지요.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세계에서 어쩌면 필연적인 일이었을 수 있지만, 이제 우린 인류애도 알고 공동번영에 관해서도 아는 지구인들이니, 작은
교실에서나마 희망을 걸어봅니다. 감사합니다^^

울타리밖의 괴물의 시점에서 볼때 우리도 울타리밖의 괴물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필리핀에 살면서 한국인을 경계하는 버릇이 생겼는데요. 처음 타국에 와서 도움의 손길을 뻗었을지도 모를 그들에게 미안해지고 경건해지는 마음입니다.

네 나와 우리를 제외한 외부를 나와 다른 존재라고 느끼게 되면 안이든 밖이든 서로가 괴물이 되는 것이죠. edwardcha888님은 타국에 사시니 그런 감정을 더 절실히 느끼시겠습니다.

'타자화' 아직도 우리 시대에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어제 본 영화 속에서 느낀 것이 그것이였군요. '연을 쫓는 아이' 왜 제 책장에 꽃혀 있는 거죠?ㅎㅎㅎ언제 샀는지 기억도 안나는데 주인을 잘못 만나 버려지고 있었네요. 읽게 되면 꼭 '타자화'를 상기하며 봐야겠습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 안에 나와 다른 사람들을 경계짓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요. 많은 영화, 소설의 주제이기도 하죠.^^ 그 책을 갖고 계시군요. 저도 그 책이 한창 인기를 끌때는 왠지 피했는데, 읽고 나서는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좋은 책입니다.ㅎ

안녕하세요 @kyslmate
저의 대문이벤트에 당첨되어 알려드리러 왔습니다!
https://steemkr.com/kr/@ceoooofm/2n6zek
참고 부탁드립니다!
혹시 또 원하는 이미지가 있으시면 말씀해주시면 참고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행운이! 가만보자, 노트를 두고 펜을 들고 글을 쓰는 이미지이면 됩니다ㅎ 타자기여도 좋구요. 전 안경을 씁니다. 전체적으로 밝은 분위기면 좋겠네요. 머리위로 새 한마리 날아다니고, 책상위에 고양이 한마리 엎드려있어도 좋구요ㅋ '소울메이트의 문학 잡화점' 문구가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나올지 기대됩니다!

헤헤 요구사항이 많았네요. @ceoooofm님이 자유롭게 그려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오~! 무슨느낌인지 감잡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타자화가 타자를 배척하는 것 자체에만 목적을 두는게 아니라 타자화를 통해 내부의 결속을 공고히 하려는 것이 진정한 목적이기에 더욱 무서운 일이지요.

네 그래서 그같은 행위가 사라지지 않고 역사와 일상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건가 봅니다. 아주 손쉽고 원초적인 결속 방법이라 온전한 철학이 없는 지도자들과 집단이 빠지기 쉬운 함정인 거 같습니다.

지도자에게는 함정이 아니죠. 지도자들은 알고도 이용하니...

네 그 말씀이 더 정확한 얘기가 되겠네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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