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적 글쓰기 –일곱 번째] ‘이 정도는 쓸 수 있겠다’는 글에 대한 고찰(2)+문장에 대한 썰
쓸 가치가 있는 글
‘이 정도는 나도 쓸 수 있겠다’라는 말에 숨은 두 번째 의미를 알아보겠다. ‘나도 쓸 수 있겠다’고 되뇌는 말 이면엔 ‘쓸 가치가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 글을 읽어보니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 써볼 만한 가치가 있는 글이다.”
누구도 쉽기만 한 초등학생의 글을 보고, 이 정도는 나도 쓸 수 있겠다, 고 읊조리진 않는다. 그런 말은, 보통 괜찮은 글을 발견 했을 때, 혹은 훌륭한 평가를 받는 작가가 쓴 글을 보면서 하는 생각이다.
난 어떤 작가들의 글을 보면서, ‘(아, 좋다) 이 정도는 나도 쓸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진 적이 있다. 이 정도는 나도 쓸 수 있겠다! 라는 말은 그 글을 얕잡아 보는 표현이 아니다. 오히려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았다는 표현이 더 적당할 것이다.
내게 그런 희망을 주었던 작가는, 소설가 ‘레이먼드 카버’다. 대표작은 단편소설집 <대성당>이다.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큰 감동을 받았었다. 그의 단편들은 일상의 흐름을 담담이 표현하면서 깊은 울림을 주었다. 스펙터클한 스토리 없이도 이런 소설을 쓸 수 있다니!
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생각을 했다.
‘이런 소설을 쓰고 싶다!’
‘이런 평이한 문장들로 이루어진 소설이라면 나도 쓸 수 있겠다!’
어찌나 평범한 문장들로 이루어졌던지, 단편 소설 하나를 읽고 보통 기억에 남는 문장 하나쯤은 있기 마련인데, 카버의 단편들은 기억나는 문장들이 없었다. 다만, 문장들이 합심하여 만들어내는 일상적 이야기에 깊은 공감과 먹먹함만 남았다.
위키 백과에서 찾아낸 그에 대한 여러 평가 중 하나를 싣는다. 이 말은 전적으로 내가 느낀 것과 일치한다.
미국 문단은 카버를 ‘미니멀리즘 소설’의 정점이라고 평가한다. “실제로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작품을 쓰겠다”고 천명한 미 대륙의 국민시인 워즈워스 이후 일상어로 작품을 쓰는데 성공한 이백년만의 작가로 미국 문학사는 그를 기록하고 있다.
-캐리 스클레니카, <레이먼드 카버- 어느 작가의 생>. 위키백과 재인용
평범하고 이해하기 쉬운 문장으로 이루어진 소설이라고, 이 정도는 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얼마나 엄청난 착각이었는지 깨닫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음 대화들은 ‘레이먼드 카버’ 소설에 대한 내 평가를 드러내기 위한 은유들이다.
“다음 요리는 5성급 호텔의 수석 주방장이 캐비어를 재료로 만든 요리입니다. 하나에 금테를 두르는데 2돈 이상의 금이 들어간 화려한 접시에 플레이팅 했습니다.”
“(음식을 먹은 후) 아, 역시 멋지군요. 훌륭한 요리입니다. 맛도 좋고 보기도 좋습니다.”
“다음 요리는 이름난 쉐프는 아니지만, 생선 요리로 잔뼈가 굵은 요리사의 요리입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고등어가 주재료입니다. 화려하진 않아도 깔끔하기 이를 데 없는 흰색 사기 접시에 플레이팅 했습니다.”
“(음식을 먹은 후) 아, 이거 정말 고등어로 요리한 게 맞습니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맛이군요. 이 요리를 우리 집에서 꼭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후자가 레이먼드 카버 소설에 대한 내 평가다. 전자와 후자의 상황 중에 음식을 먹은 사람이 어느 쪽에 더 감명을 받고 흥분하고 있는지 느껴지시는가.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 고등어로만 요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레이먼드 카버’의 글을 예로 든 것을 보고 지독한 ‘일상어 성애자’ 군,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오해다. 우리의 일반적인 선입견과 달리, 평범하고 쉬워 보이는 문장으로 쓴 글도 이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음을 말하기 위함이다.
훌륭한 요리사의 요리를 내 주방에서 재탄생 시키고 싶다는 평가는, 그 요리를 얕잡아 보는 말이 아니라 최고의 찬사인 것이다.
이 글의 시작점이 된 경구로 다시 돌아가 보자.
“좋은 글은, 누군가가 봤을 때 나도 이 정도는 쓸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글이다.”
이 경구는, '이해하기 쉬운 글'과 '쓸 가치가 있는 글' 이라는 두 가지 의미로 풀어볼 수 있다는 얘기를 지금까지 했다. 이제 조금 세부적으로 들어가서 문장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무딘 회칼로 오징어 회를 뜨려는 시도
단문/복문, 1형식/2형식/… 등 문장의 구조나, 문장을 구성하고 있는 성분들로 문장을 분류하는 방식은 널리 알려져 있다. 난 좀 다른 기준, 즉 문장의 수준에 따라 문장을 분류해보려고 한다. 이 같은 시도는 무딘 칼로 오징어 회를 써는 것과 같다. 잘 들지 않는 칼은 흐물흐물한 오징어의 표면에서 미끄러져 옆에 서 있는 사람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 오징어 회 한 점 얻어먹으려고 기다리다가 칼침 맞는 사태가!(세상 가장 불쌍한 사나이) 하지만, 한 번은 해보고 싶었던 시도이기에 완전히 객관적으로 분류되지 않을 것들을 해체하여 분류해보고자 한다.
평이한 문장/ 미문/ 단단한 문장
우리는 이해하기 쉬운 문장을 써야 하지만, 좋은 글을 쓰려면 평이한 문장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 ‘단단한 문장’을 써야 한다. 홀로 따로 떼놓고 볼 때는 별로 차이가 없어 보이는 쉬운 문장들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편의상 ‘평이한 문장’과 ‘단단한 문장’으로 구분해본다. ‘평이한 문장’은 누구라도 쓸 수 있는 문장이고, ‘단단한 문장’은 어느 정도 글쓰기 훈련이 된 사람이 쓸 수 있는 문장이라고 정리해본다.
부연
- 문장 속의 호응 관계가 맞지 않거나 문법이 틀린, 오문 내지 비문은 논외로 한다. 이 글에서 얘기하는 평이한 문장과 단단한 문장은 둘 다 기본적인 문법과 호응 관계를 잘 지킨 문장들이라고 전제한다.
- ‘글쓰기 훈련이 된 사람’에 대해 글쓰기 정규 과정을 거쳤거나 어떤 형태의 라이센스를 갖고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많이 써 본 사람을 일컫는다.
평이한 문장은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개성을 드러내거나 울림을 주기엔 역부족이다. 별다른 고민 없이 일상을 시간 순서대로 나열했다고 하자. 사용된 문장은 비문도 오문도 아니다.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하지만, 글에 매력이 없다. 평이한 문장은 쉽게 읽히지만, 다른 문장들과의 연결이 헐겁다. 언제 튕겨나가도 이상하지 않다.
단단한 문장은 화려하진 않지만 주변의 다른 문장들과 톱니바퀴처럼 조응한다. 혼자 떼어놓고 봤을 때는 알 수 없던 ‘단단함’이 다른 문장들을 서로 떠받들고 지지하면서 드러난다. 그 자리에 그 문장 말고 다른 문장을 쓰면 맛이 살지 않을 것 같다. 글의 내용을 충실히 전달하는데 모자람이 없을뿐더러, 매력적이기 때문에 흡인력도 갖는다. 영양과 맛을 모두 잡은 요리 같다고나 할까.
단단한 문장이라고 하면 흔히 개인기가 뛰어난 축구 선수 같은 문장을 떠올린다. 그 문장 하나만 떼어놓고 봤을 때, ‘그뤠잇!’이라고 외칠 수 있는 비범한 문장 말이다. 하지만 이런 비범한 문장들뿐만 아니라 평범해 보이는 문장도 얼마든지 단단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고, 글에서 빛을 발할 수 있다.
평이한 문장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려는 시도로 인해 글 쓰는 사람은 때때로, ‘미문(美文)’에 도달하게 된다. 수식어가 많고 도드라지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 문장은 아름답게 느껴진다. 실제로 글 속에서 글을 돋보이게 하는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미문은 글 전체를 잡아먹는다. 다음 패션 업체 종사자와 소비자의 대화를 들어보도록 하자.
“이 벨트 정말 멋지죠? 7캐럿짜리 다이아몬드가 박히고 금사슬로 연결된 벨트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겁니다.”
“와 정말 그러네요. 화려하고 아름답네요.”
“고객님께만 특별한 가격으로 모시겠습니다. 고객님의 품격을 높여줄 거라 확신합니다.”
“네? 이거… 저보고 착용하라고요? 이걸 차고 거리로 나가라고요? (이거 실화냐.)”
“뭐 보통 입는 옷들은 이 벨트와 어울리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냥 포기하기에도 아깝지 않습니까.”
“네 아깝다고, 거리의 원숭이가 될 순 없지요. 제가 어떤 옷을 입어도 이 벨트만 도드라져 보일 것 같네요. 전 저의 패션에 어울리는 소품을 원해요. 제 옷을 살려 줄 수 있는 소품 말이죠.”
“음, 그런 소품은 평범해 보일 수도 있는데 괜찮나요?”
“네 전 제 패션 전체가 조화롭고 풍요롭게 느껴지길 바랍니다. 그렇게 할 수 없는 소품이라면 버려야죠.”
수식어와 번지르르한 말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미문은 멋지고 화려한 벨트와 같다. 아무리 멋져 보이는 문장이라도, 글 전체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면 곤란하다. 글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훼방을 놓는 문장은, 7캐럿짜리 다이아몬드가 붙어 있더라도 과감하게 버리는 것이 옳다. 화려한 게 문제가 아니라, 그 문장이 글 전체와 얼마나 조화를 이루느냐가 관건이다.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화려한 문장은, 미문(美文)이라는 평가 이상을 받긴 어려운 것이다.
문장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야 개인의 취향과 기호가 있어서, 내 눈에 좋은 문장이 좋은 문장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것은 ‘평이한 문장’이고, 이것은 ‘단단한 문장’이다! 고 명쾌하게 제시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다. 그래서 문장을 수준에 따라 나누어보려는 시도는, ‘무딘 회칼로 오징어 회를 뜨려는 시도’와 같은 것이다.
다만 글을 오랫동안 읽어온 사람이라면, 어떤 글들을 읽을 때, 음, 이 글은 단단하군, 이 글은 좀 헐거운데? 정도의 느낌은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 느낌이 든다는 것은, 곧 문장이나 글의 수준을 드러내는 일정한 기준이란 게 존재한다는 말이 아닐까.
평이한 문장과 단단한 문장은 글 속에서 문장들이 어떻게 조응하는지를 봐야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이기에 세세한 예시를 제시하기보다, 직접 보면서 판단하고 느껴보시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이 스티밋 공간만 하더라도 하루에 수백 개의 글이 쏟아지기 때문에.
평이한 문장/ 미문/ 단단한 문장이라는 나름의 분류는 보는 사람에 따라 더 세분화될 수도, 전혀 다르게 명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이 분류는 나의 지극히 주관적인 시도이다. 이 인간은 좋은 문장을 판단할 때 이런 걸 고려하는구나, 정도로 받아들여주면 좋겠다.
P.S.
처음에 90%를 완성했던 이 글은, 미처 완성하지 못한 10% 때문에 앞의 50% 분량만 선공개 했습니다. 그래서 이 두 개의 글이 합쳐져야 비로소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전체 맥락을 짐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좋은 글이나 좋은 문장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것을 보고, 아 이 사람은 완벽한 문장을 구사하겠네? 와 같은 허무맹랑한 생각을 할 분은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매번 운동장에 나가지만 10년 동안 첫 골을 신고하지 못한 조기축구회 총무 아저씨도, 챔피언스 리그에 출전한 선수나 좋은 선수의 요건에 대해 ‘전문가처럼’ 떠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벽 3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깜깜한 어둠 속에서 가끔 아이가 뒤척이는 소리가 납니다. 노트북에서 나오는 불빛은 무대 위에서 막 춤추고 내려온 제 손을 비춥니다. 제게 있어 글을 쓰는 행위란, 금수를 놓는 과정입니다. 구석구석 빠짐없이 바느질을 하려고 하지만, 완성된 후엔 바느질이 들어가지 못한 공간이 보이고, 언제 생긴 지 모를 보풀도 보입니다.
언제나 제 역량의 한계는 저를 따라다니는 그림자처럼 반갑지 않은 손을 내밀겠지만, 이렇게 쓸 수 있다는 것이 그저 행복합니다.
[문학적 글쓰기] 연재목록
(일곱 번째) '이 정도는 쓸 수 있겠다'는 글에 대한 고찰 (1)
(번외편) 당신은 글쟁이입니까
(여섯 번째) 의식의 흐름을 이용한 문장 연습과 시 쓰기
(다섯 번째) 글쓰기 프로세서- 입력에서 출력까지의 과정
(번외편) 극한 글쓰기
(네 번째) 글쓰기의 소재 찾기
(번외편) 글쓰기의 절대 고수
(세 번째) 글쓰기 필터와 논리적 구성에 대하여
(두 번째) 글쓰기와 구체성
(첫 번째) 글쓰기와 문체에 대해
슬램덩크를 이해하기는 쉽지만, 만들기는 어렵지요. 기본적으로 저는 '쉽고 잘씀' 의 예시를 슬램덩크의 기준으로 판단하기 때문에(10년 전에 글을 배울 때 가르치는 사람이 들었던 예시입니다.) 슬램덩크 예시를 사용할 때가 많습니다.
슬램덩크와 글쓰기라~~ 색다르고 신선한 비유네요ㅎㅎ
매번 잘보고 갑니다.
글쓰는 방법을 지도 받으면 좋겠어요.^^&
네 감사합니다ㅎ 스티밋은 좋은 글쓰기 장입니다^^
월리엄 시드니 포터, 제임스 조이스. 말고도 수많은 단편 소설 작가가 있지만, 저는 유독 이 둘을 좋아합니다.
그들의 문장은 하나 같이 평이하지요.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것처럼 보이는 거지만 ㅋㅋㅋ
제가 곧잘 흉내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매번 듭니다. ㅋ
그런데, 쉽지 않음 또한 매번 느낍니다. ;)
오늘도 좋은 글 잘봤습니다!
ㅎㅎ 네. 그런 작가들의 글은 마치 잡힐 듯 가까이 왔다가 다가가면 흩어져버리는 고기 떼 같지요.
그래도 좋고 쓰고 싶은 글을 만나면 잠시나마 희망을 주니 좋습니다.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ㅎㅎ
오늘은 글 속에 퐁당ㅋ
기다렸다 일부러 2편의 글을 한번에 읽었어요.
소울메이트님의 온기가 느껴져서 좋네요.
쏠메님은 참 좋은 쌤일 것 같아요.ㅎ
용기를 주는 이야기를 들려주시니까요.
저의 글을 읽는 이들이 ‘이 정도는 쓸 수 있겠다’ 하면 좋겠어요. 열심히 써야겠다 생각도 했구요.
네 마담님은 늘 열심히 쓰시죠ㅎㅎ
좋은 선생님도 상대적인 거 같아요. 마다님에게 더 필요한 용기가 있나요? 이미 용감하시면서요^^
와~ 백종원이 글로 요리를 하며 알려주는 탄탄한 느낌의 글이였습니다~ ^^
요리 비유가 많이 쓰이긴 했죠ㅎㅎ 탄탄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주 간단하고 보통의 단어 조합으로 적는 문장인데 파장이 이루말 할 수 없을 때가 있는 것 같아요. 그건 단지 흉내내기로는 역부족이고, 삶을 살아내면서 건져올린 경험과 그를 수반한 체득, 그리고 강직한 마음이 있을 때 비로소 실현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네 말씀하신 것처럼 그런 파장을 주는 문장은 삶에서 얻어낸 통찰을 바탕으로 만들어지지요. 삶의 정수가 담길 때 평범한 문장으로도 감동을 끼칠 수 있는 거죠. 좋은 의견 주셔서 감사합니다^^
죽었다 깨어나도 난 이런 글 못 씀^^
이 정도는 나도 쓸 수 있는 글을 써야하는데. 실패네요:)
허허, 센스가 갑입니다요. 내 그릇의 사이즈를 아는 게 도의 시작이라고 어디서 들었습니다^^
짱짱맨 호출에 출동했습니다!!
감사합니다ㅎ
아~~~ 점점 어려워지는군요. 단단한 문장이라는게 딱 감은 왔는데, 그죠. 다른 사람의 문장을 보면서는 알겠는데, 내걸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은 모르겠습니다. ㅜㅜ 또 고민을 부르는군요 ㅜㅜ
에빵님 단단하시지 않나요?ㅎㅎ 행복의 파랑색는 주변에 있었지요^^ 또 고민하면. 이루어집니다ㅎ
감사하게 잘 읽었습니다^^
어떤 부분에선 정말 공감하기도 했고요. 종종 '이 정도면 나도 써 볼만 하겠는데' 하는 생각을 하다가 직접 써보면서 깨닫게 돼요. 평이하고 유려한, 그리고 단단한 문장과 이야기는 치열한 고민 끝에서 나온다는 걸요. 문학적 글쓰기 연재 역시 오랜 시간이 만들어 준 거겠죠. 선생님의 글쓰는 삶 응원하고, 응원받고 그러고 있습니다. 감사해요 ^^
공감해주셔서 기쁘네요ㅎㅎ 평이하면서 유려하며 단단한~~ 불가능한 임무 같은데 지향점이 아닐까 싶네요ㅎㅎ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애플님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