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별을 본다. 외롭지 않으려고. / 001

in #kr6 years ago (edited)

별을본다_01.jpg
ⓒkim the writer







   ……하늘은 붉었다.
   정원에 흐드러진 라일락과 아직 피지 못한 라벤더도 금빛 찬란한 붉은색으로 물들어 바람개비와 함께 실바람에 반짝거렸다.

   나는 모래사장에 앉아 흙장난에 열중이었다. 내 작은 손은 장난감 포클레인으로 덤프트럭에 모래를 퍼 담느라 바쁘게 꼬물거리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나타난 또 다른 작은 손이 덤프트럭을 가로채갔다. 어린 지미였다. 지미는 나를 약 올리기라도 하듯 내 주위를 어지럽게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덤프트럭에 가득 담았던 모래알이 혜성처럼 긴 꼬리를 반짝이며 사방에 흩뿌려졌다.

   “지미! 돌려줘!”

   나는 붉은 하늘을 배경으로 정신없이 도는 지미에게 소리쳤다. 지미는 까르르 웃을 뿐 멈추지 않았다.

   “하늘을 봐! 하늘이야!”

   나는 고개를 더 높이 들어 지미의 머리 위로 펼쳐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모든 게 돌고 있어! 모든 게 돌고 있다구!”

   하늘을 빈틈없이 메운 것은 저물어가는 해와 구름이 만들어낸 해 질 녘의 노을이 아니었다. 선명하게 가로 새겨진 붉고, 하얗고, 노란 줄무늬가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천공을 가득 메우고 있는 그것은 하늘 그 자체였다. 색색의 줄무늬들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흘러가며 소름 끼치는 장관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빼앗긴 하늘 그 가운데, 원래 떠 있어야 할 태양보다 몇십 배는 더 큰 붉은 눈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직경 40,000km의 붉은 태풍이 커피 속에 부드럽게 퍼지는 크림처럼 기묘하고 기분 나쁜 움직임으로 모든 걸 집어삼킬 듯 시속 432km로 소용돌이치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우주는 왜 끝없이 넓을까.

   나는 눈을 떴다. 순간, 하마터면 몸을 움직일 뻔했다. 자유롭게 뛰놀던 어린 시절은 이제 오간 데 없이 끔찍한 현실만 남았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실 오래 걸려도 상관없었다. 내게 시간만큼 많이 남은 건 없으니까. 그럼에도……, 그럼에도 나는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진실로 믿진 않았다. 내가 처한 상황과는 무관한 생각이었다.

   내 생각……. 그래, 내 생각을 말해 볼까.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다. 자유야말로 인간이 존엄성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도구일 것이다. 자유는 크게 보면 두 가지로 나뉜다. 정신의 자유와 육신의 자유. 이 뻔한 두 가지가 합쳐져야 흔히 말하는 자유의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두 자유는 사상과 행동의 자유라는 다른 이름으로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하면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두 자유는 분리할 수 없는 신경망처럼 얽혀 있기 때문이다.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자의 사상이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협소한 범위의 사유만 가능한 자의 행동은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어쩌면 그들은 누군가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대체 자유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자유로운 생각을 하고 자유로운 행동을 할 가능성을 지니고 태어나지만, 사회는 교묘한 방법으로 그 가능성을 제한한다. 어려서는 가정, 조금 더 크면 학교, 더 나아가서는 사회라는 틀이 교육이라는 도구를 통해 책임, 의무, 배려를 자유의 원천에 혼합한다. 그렇게 해서 일어난 화학 반응은 원초적이었던 자유를 인간 사회에 걸맞은, 아니 요즘은 한발 더 나아가 생태계 전체를 고려하는 세련된 자유로 탈바꿈시킨다. 세련된 자유는 직장 상사의 부당한 대우와 인격모독을 참아내는 자유다. 당장 주먹을 날려 앞니를 세 개쯤 부러뜨리고 공공에 밝혀 사회적으로 매장하고 싶더라도 밥벌이를 계속하는 자유를 누리기 위해 참는 자유를 택하는 자유다. 법의 허점을 이용하는 자유를 택하는 자유, 그런 자들을 응징하는 자유를 택하지 않을 자유, 우리가 행사하지 않은 만큼 소수의 권력자에게 돌아간 자유를 그대로 방치해두는 것을 택하는 자유다.

   헛소리. 그딴 게 다 무어람. 인간이 존엄성을 유지하려면 인간이 원래 행할 수 있는 기능이 온전하게 작동해야 한다. 사고 기능에 이상이 생긴 자가 어찌 정신의 자유, 사상의 자유를 누리겠는가? 운동 기능에 이상이 생긴 자는 또 어떠한가. 걷고 말하고 먹는 기본적인 행동은커녕 얼굴에 날아든 파리를 내쫓을 능력조차 없는 자가 진정 자유롭다고 할 수 있는가? 고매한 정신의 자유만 보장된다면 육체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고 말할 수 있는가? 똥오줌을 가릴 수 없어 다른 이에게 치부를 보여야 하는 일은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품위와는 거리가 멀다. 장애는 창피한 게 아니라고? 사회 구성원들은 누구나 어떤 식으로든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이니 괜찮다고? 그런 허울 좋은 말이 정녕 머리가 아닌 가슴에 와 닿는다면 당장 침대에 누워 똥오줌을 누고 타인의 손을 빌려 뒤처리를 해결해 보라. 장애로 인해 교육이 제한되고 경험이 제한되고, 그로 인해 정신과 사상의 성장이 제한되는 일을 겪어 보라. 떼려야 뗄 수 없는 두 가지 자유의 결합이 온전히 꽃피우지 못하고 시들어버린다. 모두가 제한된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항변은 필요 없다. 그는 최소한의 존엄조차 제힘으로 지켜내지 못하고 있으니까.

   내가 감금증후군이라는 빌어먹을 놈에게 자유를 빼앗긴 것도 벌써 20여 년이다. 이름도 잘 지었다. 감금증후군이라니. 이 증상은 숨을 쉬고 대사 작용을 하는 것 외에는 운동 기능을 모두 상실한 육신에 멀쩡한 정신이 갇힌 걸 말한다. 파리와 거미가 눈앞에서 자신을 위협해도, 강도가 눈앞에서 가족을 해쳐도, 지진으로 온갖 집기가 쏟아지고 가구가 쓰러지고 지붕이 무너지는 걸 봐도 꼼짝도 못 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증상이다.

   할 수 있는 게 전혀 없는 건 아니다. 환자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눈동자를 움직이고 눈꺼풀을 깜빡일 수 있는 정도의 자유가 주어진다. 또 하나는 사유의 자유다. 이것은 그 반대를 택할 수 없다는 점에서 불공평한 자유의 대표다. 생각할 수 있는 자유는 누릴 수 있지만 생각을 멈출 자유는 전혀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자유가 하나 더 있다. 듣는 자유다. 청각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온갖 소리를 인지한다. 보고 듣고 생각할 수 있는 자유. 왜 이런 것들에는 개별적으로 온오프 스위치가 없는 걸까.

   침대 위에서 빈둥거리며 무료한 일상을 보내본 적 있는가? 벽지에 그려진 무늬가 몇 개인지 세어볼 만큼 지루한 시간을? 이것은 외출 금지 처분이 내려진 철없는 10대의 불만 가득한 주말 밤과는 차원이 다르다. 오직 침대라는 한정된 공간에 시체처럼 누워 눈앞에 보이는 한정된 광경만 볼 수 있다. 물론 보호자의 친절로 TV를 볼 수도 있다. 안락의자에 앉아 한 손에는 리모컨을, 다른 한 손으론 감자칩을 집으며 이리저리 채널을 탐색하는 호사는 누리지 못하지만. 때로는 음악을 듣거나 오디오북을 들을 수도 있다. 원치 않는 부분을 넘기거나 할 수는 없지만.

   창밖으로 자전거나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지나가는 팔팔한 애들을 보며, 시원하게 나자빠져 아스팔트 위에 얼굴을 긁어먹거나 별안간 튀어나온 자동차에 치여 허공을 붕 날아가기를 염원하는 것도 마냥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남는 시간에는 생각을 해야 한다. 대게는 이런저런 것들을 상상한다. 어느 날 갑자기 병이 낫는다면. 그냥 낫는 게 아니라 초능력이라도 생긴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무슨 초능력이 좋으려나? 투시력으로 여자들 알몸을 훔쳐보는 것도 재밌을 테지. 슈퍼맨 같은 초인적인 힘이 더 나으려나. 다시 환자 신세가 될 일은 없을 테니까. 게다가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건 놓칠 수 없는 능력이지. 대신 제약이 따른다면 어떨까? 하늘을 날 수는 있지만 감금증후군은 계속되는 거지. 중력 때문에 사지를 축 늘어뜨리고 날아가는 모양새는 좀 우습겠지만 지금보다는 백배 낫지 않을까.

   딜레마를 놓고 고민할 때도 있다. 예를 들자면, 다시 일어나 정상인으로 1년 살다 죽는 것과 이 상태로 100살까지 살다 죽는 것. 이런 상태에 오래 있으면 망설임 없이 정상인으로서의 1년을 선택하리라 생각하겠지만 내 경우는 꼭 그렇지 않다. 100살까지 살면 이 세상이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두고 볼 수 있으니까. 호기심을 충족하는 데는 때론 절대적인 시간도 필요한 법이다. 그렇다면 정상인으로서 사는 시간을 늘리면 어떨까? 1년이 아니라 10년으로. 반대의 경우는 50살로 줄여 보자. 선택이 더 어려워졌을까 쉬워졌을까.

   앞서 말한 대로 육신이 온전치 못하면 이게 문제다. 나처럼 어린 나이에 환자가 되면 상상의 토대는 저렇듯 매우 빈약할 수밖에 없다. 열성적인 엄마 덕분에 각종 교양 채널과 학습 채널을 섭렵하더라도 정신의 비약적인 성장을 주도하기에는 턱없다. 직접 부딪혀 얻는 것이야말로 어린아이를 성인으로 키워내는 훌륭한 비료 아닌가. 내게 결핍된 게 바로 그거다. 무언가를 경험할 수 있는 능력. 사지를 움직여 돌아다니고 보고 듣고 배우고 도전하고 깨지고 울고 웃을 기회. 그것이 빠진 인생은 대체 뭐란 말인가? 그런 걸 삶이라고 부를 수는 있단 말인가? 공상은 지루한 수업 시간의 버팀목이지만 그 수업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면 무슨 대책을 세워야 할까. 아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수는 없다. 우리는 물론, 우리를 둘러싼 세상은 유한함을 숙명처럼 안고 태어났으니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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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한번 병원에서 장기간 입원하셨던 적이 있나요.
어떻게 이런 제재를 떠올리고 소설을 쓰시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역시 단편 소설을 쓰는 작가님의 상상력일까요..
감금증후군이라는 소재를 토대로 자연스럽게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의 범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네요.
다음편도 계속 읽어보겠습니다.

만두님 오셨군요. 감사합니다 :) 한 보름 입원한 적은 있습니다만 별로 관계가 없어 보입니다. 그땐 진짜 죽다 살아나서 지루해할 틈이 없었어요. 아파서...ㅠㅠ 소재나 영감은 뭔가 따로 하지 않아도 저절로 옵니다. 평소에 무의식이 정보를 수집하고 가공하다가 이거다 싶으면 툭 던져주는 것 같네요.

존경스런 무의식이네요.. ㅋㅋㅋㅋ 역시 작가분들은 다른걸까요.. 재밌게 계속 읽어보겠습니다 :)

보자마자 마음에 든 제목이었는데 예측하지도 못한 이야기가 시작되어서 다음편이 매우 궁금해지는군요. 눈은 떴지만 사지를 전혀 사용할 수 없었던 그녀는 감금증후군이었을까.. 하는 개인적인 기억도 더듬어보게 됩니다. 정상인 10년, 그 반대는 50년... 아무래도 저는 10년을 택하겠어요. 신체의 자유를 이미 너무나 누려왔고,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을 포기하진 못할 것 같아요.

스프링필드님 첫댓글 감사합니다! 여기서 개인적인 사연을 연결시킬 수 있는 독자가 있으리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는데...! 궁금하긴 하지만 개인적인 일이니만큼 더 묻진 않겠습니다 🤔🙄🤐😶 전뇌공간이 발달해서 우리 모두 통 속에 든 뇌로 살아가기 전까진 저도 신체의 자유를 포기하진 못할 것 같네요. 아니 사실 지금보다 더한 자유를 누려보고 싶어요. 아이언맨 정도의 능력이면 만족할 듯...

문학적인 감성을 키워서 마치 내 일이 아닌냥 글 써보고 싶네요. 늘 어디서도 할 수 없는 이야기가 많아 답답한데 말이죠. 온전히 풀어낼 능력이 없어 그런 건지도 모르지만 ㅎㅎㅎ 주인공은 슈퍼맨인데 @kinthewriter 님은 아이언맨이군요. 왠지 히어로들은 다 섹시한 순정마초인 것 같아요 ㅎㅎㅎㅎ

순정마초ㅋㅋㅋ 슈퍼맨은 이번 시리즈에서 좀 비호감이 돼서 아이언맨이면 충분해요. 두뇌가 섹시해서 부럽... 스프링필드님 개인적 기억은 지금도 충분히 풀어내실 수 있을 텐데요. 포스팅거리가 많아서 밀려있는 거 아닌가요. 맛집 리뷰만 해도 아직 한참 남았을 것 같은데ㅋㅋ
그런데 대역폭 문제는 해결하셨나요?🤔

제가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스파업밖에 없겠더라고요. 저 뿐만 아니라 많은 뉴비들이 동시간대에 같은 문제를 겪었어서.. 포스팅 거리가 많은 건 좋은데.. 포스팅마다 주제와 글투가 너무 달라서 다중인격이 되어가는 느낌입니다 ;ㅁ;

내면의 다중인격은 글로 풀어낼 수밖에 없습니다. 파워업해서 계속 힘써 주시죠 :)

몸에 갇혀 육체의 자유를 억압당한 모습이, 교묘한 방법으로 사람의 자유를 제한하는 사회와 병치되면서 은유적 설정이 아닌가,도 생각해봅니다. 주인공은 다행히 생각하는 걸 좋아하는 인물인 것 같습니다. 생각하는 거라도 즐기지 않으면 버틸 수도 없겠지요.

어떻게 보면 이야기 속 주인공은, 그가 아무리 찌질하고 평범한 인물이어도 어떤 한 가지 측면에선 반드시 초인적인 부분이 있지요. 그에 비해 현실 속 우리는 그저 평범하기만 해서 각자의 삶에서도 주인공이라 느끼는 게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실 저도 혼수상태에 빠진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쓴 적이 있습니다. 이십대 초반이었죠. 그때 제가 그린 혼수상태의 사람에게 접근하는 방식과 차이가 있어, 더 흥미롭게 읽혔습니다. ^^ 그것과 감금증후군은 또다른 양상이겠지만요.ㅎ

작가들에게 꼭 한 번은 거치게 하는 매력적인 설정인 것 같습니다 :)

육체의 자유를 잃은 주인공이 느끼는 답답함과 괴로움이 너무 잘 표현된거같아요. 만약 내가 저 상황에 놓이면 어떨까 상상해보며 읽었는데 못버틸거같네요. 다음 편이 기대됩니다:)

여러 번 생각해 봤는데 저도 못 버틸 것 같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편에서 또 뵐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

다루기 꽤나 어렵지만 무척이나 끌리는 주제로군요. 앞으로 어떻게 이어나가실지 무척 기대됩니다:)

보통 끌리는 주제들이 다루기 어렵더군요. 그래도 어찌어찌 해냈습니다.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편도 함께 하시죠! :)

행동의 자유를 뺏긴 환자의 이야기라니... 몰입해서 단숨에 읽어버렸습니다! 벽에 붙은 벽지의 무늬까지 다 외워버릴 정도의 지루함이 얼마나 괴로울지 상상도 못하겠네요. 으으..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기대하며 기다리겠습니다 :)

육신이 멀쩡하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누구에게 감사한지는 모르겠지만... 다음 편에서 또 뵙겠습니다. 찾아 주시고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몸은 자유롭지만 뭔가 저 주인공에 공감이 되는거 같아요. 몸이 자유로우면 감금증후군이 아닌걸까요.

우리는 시스템에 갇혀 있으니 주인공만큼은 아니더라도 답답한 신세는 맞지요...

다양한 생각들이 오고 갔어요... 한때 공포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던 제 몸에서부터 또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달려갔어야 했던 응급실에서 느꼈던 두려움과 공포와 저에게서 나와야 했던 기도까지... 그 뒤로 그때 만약에.... 이라는 물음표를 끊임없이 던져 보기도 했었죠. (김사하죠.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니까요. ) 그때 가졌던 생각중 하나가 과연 육체의 자유가 없는데 왜곡되지 않는 정신의 자유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뭐 이런 생각... 또 초능력... 하나를 잃었으니 다른 하나는 뭔가 보통 이상의 것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은 없는 것인가? 하는... 에고... 횡설수설 하는거 같네요. ㅋㅋ

마블 히어로 중에 데어데블을 아시는지 모르겠네요. 시력을 잃고 초능력을 얻었죠! 아무튼 초능력까진 아니더라도 신체의 기능 일부가 상실했을 때 그 보상으로 나머지 감각이 더 발달한다고 들었습니다...만 저는 아무리 초능력이 좋아도 뭔가를 잃고 싶진 않네요😂 저도 응급실 실려가서 수술 받은 경험이 한 번 있는데 병원, 법원, 경찰서만 안 가도 덜 가도 성공한 인생이라는 말을 실감합니다.

저도요 ㅋㅋ 초능력은 그냥 따라올 뿐 ㅋㅋ 뭐 이렇게요^^;;

헉! 작가님 응급실 수술은 잘 되신 건가요? 지금은 괜찮으세요?
병원 총량의 법칙이 있어서 이번 생에는 병원 가는 일은 이미 다 써버린 걸로 했으면 좋겠습니다.

몇 달 뒤에 한 번 더 갔습니다. 그땐 다행히 입원 치료로 끝났죠. 평생 안고 갈 후유증이 짐으로 남긴 했지만 겉보기 등급은 멀쩡해서 그럭저럭 정상인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 병원 총량의 법칙이란 게 실존했으면 좋겠네요😂

후유증 ㅠㅠ 하루빨리 사라질 수 있기를 진심 바랍니다.🙏
이제 병원 가시는 일 없이 건강하시길 두손 모읍니다. 🙏

감사합니다 :) 다른 걸로 병원 갈 일만 없었으면 좋겠네요. 해피서클님도 늘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스티븐 호킹의 휠체어가 필요하겠군요.

그걸로는 부족해 보이고 아이언맨 수트가 시급합니다. 조종은 마크로스에서의 뇌파 연결로...

감금증후군이라니, 흥미로운 설정이네요. 다음 이야기는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합니다.

기대해 주셔도 좋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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