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PEN클럽 공모] 모쪼록 사랑하기 좋았던 날..

in #kr6 years ago (edited)

221.jpg


모쪼록 사랑하기 좋았던 날..


<1>

겨울이 지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봄날 어린햇살들이 카페 창문을 앞다투어 깨고 테이블 위로 쏟아져 내린다. 하지만 내 생각과 감각은 잠시 후 가야 할 5시간의 학원 강의라던가 마감이 코앞으로 다가온 보안동향 분석 보고서에게조차 여지를 내어주지 않고 있다. 그저 얼마 전이라면 의식조차 하지 않았을 그녀의 입술에서 나오게 될 단어의 조합들을 유추해보며 언제 올지 모를 그녀에게 집중되어 있을 뿐이다.

(2)

나와 S의 인연의 시작은 2년 전쯤이었을 거다. 대학교 1학년, 여느 때와 같이 축구라는 열정 하나로 뭉친 동아리에서 S를 처음 만나게 된다. 이는 S와 나의 역사적인 첫 만남이었지만 흔한 멜로 영화에서 나오는 예의 그것과 같은 각본, 연출 따위는 당연히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지구라는 조그만 별에 서로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 전부였을 뿐. 그리고 1주 뒤, 내 인생이 영화라면 시나리오 작가에게 항의하고 싶은 사건 중 하나였던 발목인대 부분파열 사고가 나 축구를 그만 두게 된다.

(3)

보통 영화나 드라마 속 두 주인공의 만남은 예의 그 강렬한 무언가가 발산되거나 미묘한 기류라도 흘러준다. 만약 우리에게도 굳이 그런 게 있었다면 두 번째 만남이었을 거라고 짐작해 본다. 때는 바야흐로 1학년 2학기 학교 총 엠티, 공대생에 대한 배려를 받아 나는 문과 여학우들과 합석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맞은편에 앉은 사람이 S라는걸 발견한다. 엠티라는 주변환경 덕에 당연한 수순으로 음주를 하며 서로를 알아가게 되었고, 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피라미드도 이렇게 차근차근 쌓으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양의 술병이 쌓여갔다. 그날 난 S가 우리 학교라는것, 나보다 선배인데다 1살 연상이였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4)

만약 그날, 내가 술에 취해서 특유의 주사로 여기저기 번호를 동냥해오고, 다음 날 일어나 알파벳, 자음 혹은 모음으로만 저장된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 안부 인사를 받을 정도로 난리를 피우며 놀지 않았다면 S와 나는 좀 더 이 소설의 시작을 빨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S와 나의 두 번째 만남은 강렬했던 만남과는 달리 서로의 안부 정도 묻는 사이 정도로만 정립되었다.

(5)

2학년 1학기, 이쯤 되면 인연이라는 말을 붙여도 될 정도로 형이상학적인 장소, 복싱 동아리에서 S와 나는 다시 재회했다. 과거 유비가 와룡관의 제갈량을 세 차례 찾아간 것도, 그 둘의 말 많은 야사는 차치하고라도, 호사가들은 그 둘을 운명이라고 지칭하지 않았는가. 우리도 우연이 3번 겹치니 운명이라 생각한 것인지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그 즈음해서 만들어진 룸카페는 우리의 아지트가 되기에 손색이 없었다. 넉넉한 테이블, 지하에 위치한 아늑함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양꼬치에 맥주를 먹을 수 있는 편의성 등등. 사실 이런 잡다한 이유는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S와 시간을 보내고픈 마음에서였을는지도 모른다.

<6>

그러던 어느 날, 정확히는 저번 주였다. 문득 최근 1년간 S와의 관계에 대한 정의를 내려보려 했다. 정신적인 교류를 통한 서로의 휴식처? 그저 데이트를 같이할 이성 친구? 그 마저도 아니면 육체적 쾌락을 목표로 한 과정? 그렇게 내 감정에 물음표를 던지며 나아갔지만 끝내 느낌표는 고사하고 쉼표조차도 받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은 ‘S’가 내게 '그녀'가 되어버렸다는 자각과, 그녀가 다른 누군가의 그녀가 되는게 싫다는 날것의 감정, 그렇게 배설하듯 고백해버렸다는 사실들만이 남았다. 그게 내가 이 시간 이 위치를 점유하게 된 발단의 전부다.

(7)

그러고 보니 우리의 수많은 날들 중 문득 그 날이 떠오른다. 여느때처럼 카페에서 밤을 새우고 스쿠터에 그녀를 태우고 새벽 5시 텅 빈 번화가를..

<8>

아..! 저 멀리서 그녀가 손을 흔들고 밝게 웃으며 들어온다. 카페의 시곗 바늘이 갑자기 멈춘듯한 것이 오늘따라 맘에 들지 않는다.

-끝-


카페

카페에 들려오는 노랫소리
비록 뜻을 알 수 없는 언어이지만…
노래에 담긴 감정은 저며온다

문득 바라본 창밖 나뭇잎들 사이엔
눈부신 햇살이 서로 앞다투어
카페 창문에 부딪혀 깨어진다

나의 힘들고 아픈 마음도 점점점
그 풍경속에 묻혀지고 삭혀져
이제는 단념해 보려 한다.

근데 왜 이리도 야속한지
저 멀리서 손 흔드는 그대가
또다시 내 맘을 흔들어 놓는다…

원문 링크


와.. 글 쓰기가 정말 어렵네요. 오늘 꽤 오랜시간 작성했습니다!

글자수 확인을 안해서 글 구성도 안하고 썼다가 3200자까지 썼었네요.
(어차피 글 구성할 줄도 모르긴 하지만요 ㅎㅎ)

뒤늦게 글자수 제한 확인하고 글 구성을 전체적으로 손보고 나니 이젠 퀄리티가ㅠㅠ

그래도 그냥 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나저나 이번 글 쓰면서 글쓰기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가는것 같습니다.

다른 쟁쟁한 분들 글과 비교될 까봐 걱정은 됩니다.

마무리도 마음에 들지않고 급히 끝낸 느낌도 있고 여러모로 아쉽긴하지만..

그래도 제출이라도 해봐야 첨삭이라던가 피드백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하고 참여해봅니다!


Sort:  

앗 이런 부러운 글이. ㅋㅋㅋ
그나저나 첨삭 지도라는건 생각도 못해봤어요.

텅 빈 새벽 백열등 거리 아래에서 타셨을 듯한 둘만 스쿠터. 하아.. 썸은 언제나 옳아요.

그날 이야기를 회상하던 중 그 분이 카페에 들어와버리셨네요^^

그날 새벽 청소차에 물세례를 흠뻑 맞아서 아침도 못먹었던 추억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결말은 어쩔수 없었지만.....거부할수 없는 인연인것만은 틀림없었던것 같네요...ㅎㅎ

엇... 열린결말입니다..! 읽으신분들 전부 차인걸로 생각하시려나요? ㅎㅎ

전 차인걸로 생각하지 않지만, 읽으신분에 따라 차인걸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을것 같아요.ㅎㅎㅎ

사실....

마지막 씬이 카페 아닌가요?ㅋ
그래서 어떻게 된거에요!!

유추하는 재미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ㅋㅋ 저도 궁금합니다!!

달달한 연애를 한 것이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아요..ㅠㅠ
올듯말듯한 그 긴장이 참 애간장을 녹이죠...

저도 이 글을 쓰게 된게 괜시리 길어지는 솔로 생활이 지겨워져서인것도 같네요.

달달한 연애.. 저도 다시 시작해야 할텐데요^^ 어떻게든 되겠죠?? ㅎㅎ

와 한편의 소설 같은 내용이에요.
8번 문단과 <카페> 시가 잘 어울리네요..
정말 잘읽었습니다. ㅋㅋ (진짜 잘 읽었는데 텍스트만으로 표현의 한계가 있네요.. 짱짱)

참고로 저 시는 실제로 저 시기에 그 '카페'에서 쓴 시입니다 ㅎㅎ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현명한 진로 선택을 기원합니다~

몇몇 표현들이 눈을 사로잡네요!

특히나 만나기 전까지의 과정 묘사가 좋아요...
이거 어떻게 소설로 연재안되나요 ㅜㅠ ㅋㅋㅋ뒷 부분도 궁금해집니다..

글은 꾸준히 써보고 싶고 단편부터 시작해보려고 했지만 매번.. 제 주제에? 라는 생각이 많았습니다.

이번에 글 쓰면서 그 벽이 더 크게 느껴졌구요. 그래도 뭔가 한편을 완성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앞으로도 기회되면 간간히 써볼 생각입니다^^ 분에 넘치는 칭찬 감사드립니다!

예전 대학 생활 할 때의 설레임을 느낍니다.
잘 읽고 갑니다. 충분히 잘 읽히고 좋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설레임을 느끼셨다니 감사합니다.. 여러모로 아쉬운 글이었는데 과분한 칭찬 감사합니다!!

간질간질하지 않군요. 초임님의 마음이 덜 보여요!! 만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만 있구... 심심...

네 ㅠㅠ 좋은 의견 감사드립니다!! 누군가 찝어주시지 않을까 했는데 역시 찝어주셨네요!!

원체 필력이 좋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르캉님 댓글 보고 확실히 알게 되었네요.

'심심'하다!!

글을 전체적으로 손보면서 중간중간 있던 감정선들이 다 사라지고,

제가 다시 읽어봐도 문체가 너무 담담하네요.. 처음에 썼던 3200자 글에서 고칠 때,

'음.. 쿨한 어투도 괜찮은데?'라고 생각했었던게 문제였을 수도 있겠군요!

진솔하고 솔직한 감상평 너무 감사드립니다. 정말입니다!!
(텍스트로 감사함을 표현하니 많이 부족하군요 ㅋㅋ 역시 필력이 ㅠ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람마다 스타일 다르지만 저는 감정이 많이 들어간 글들이 좋아요 ㅋㅋㅋㅋㅋㅋㅋ 초임님의 글쓰기를 응원합니다!!

"엠티라는 주변환경 덕에 당연한 수순으로 음주를 하며 서로를 알아가게 되었고, 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피라미드도 이렇게 차근차근 쌓으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양의 술병이 쌓여갔다. 그날 난 S가 우리 학교라는것, 나보다 선배인데다 1살 연상이였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엠티장에 쌓인 초록병들이 눈에 선하네요 ㅎㅎ 대학가만의 정서를 글로 잘 녹여낸 것 같아 저도 잠시 추억에 빠졌습니다.

쨌든 다음편이 기다려지네요 ㅋㅋ

글 읽어주셔서 정말 소중하네요^^ 대학시절.. 저도 너무 그립네요!!

다음편...이요? ㅎㅎ 음.. 혹시 기회가 되면, 위에 @lekang님 피드백 참고해서!

확장해서 다시 써볼까 생각중입니다!!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대학시절의 향수가 아련하게 느껴지는 글이네요.
사실 현실에서의 만남이 영화나 소설처럼 극적일 수 없다는 것도
정말 공감이 갑니다.
1번이 카페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장면에서 시작되고
8번에서 그녀가 카페로 들어오는 것을 보면
2번부터 7번까지는 그녀를 기다리는 동안 회상하는 장면으로 이해했습니다.
연애감정이 싹틀 때의 설레임이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근데 결국 S와는 어떻게 되신 건지가 궁금하네요.ㅎㅎ

네 맞습니다!! 글을 보시면 두가지 숨겨진 요소가 있죠!!

<> 는 현실을 ()는 회상입니다! 마음이 생긴 시점부터 S가 그녀로 불리고요^^

글 꼼꼼히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당첨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Coin Marketplace

STEEM 0.20
TRX 0.12
JST 0.028
BTC 64275.63
ETH 3502.79
USDT 1.00
SBD 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