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A mother’s reckoning) - 수 클리볼드(Sue Klebold)

in #kr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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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by 수 클리볼드

1999년 4월 20일, 미국 콜로라도 주 리틀턴에 위치한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는 무장을 한 두 학생에 의한 총기 난사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으로 열두명의 학생과 한명의 교사가 사망하고 20명 이상의 학생이 부상을 입었으며 그 중 다수의 학생이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할만큼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고, 가해를 한 두 학생은 900여발의 총알을 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바로 에릭 헤리스(Eric Harris)와 딜런 클리볼드(Dylan Klebold)이다.

그 중 딜런의 어머니인 수 클리볼드(Sue Klebold)가 바로 이 책을 쓴 저자이다.

엄청난 충격을 세상에 안긴 총기 난사범의 어머니가 '나는 가해자의 어머니입니다'라는 제목의 책을 썼다고 했을 때(원제는 'A Mother's reckoning-엄마의 추정/탐구/앎/인식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 나를 비롯한 많은 독자들은 엄마로서의 자아와 한 인간으로서의 자아가 나아가는 방향으로 먼저 그 내용을 짐작하거나 의도를 파악하려고 할 것이다. 살인자의 어머니로서 그녀는 아마 아들을 변호할지도 모르고, 수많은 희생자들을 추모할지도 모를 일이며, 나아가서는 총기 난사 사건의 상상할 수 없는 결과에 대해 파헤치고 학교 내 폭력이나 따돌림 등의 현안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내놓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 책은 사랑하는 내 아들에 대한 내가 어머니로서 상상할 수도 없었던 깊은 아픔과 상처를 앎으로서 그 내면에서 끝없이 싸웠던 아들을 발견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지만, 모성애로서의 이해를 표방하며 감정적으로 호소하는 성격의 글이 아니다.

"내가 쥐고 있을지 모르는 조각들이 많은 사람들이 풀려고 절박하게 매달리는 퍼즐의 열쇠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배운 것이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생기자, 내 이야기를 공개하는 일이 힘겹더라도 피해서는 안될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글의 첫 장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는 제목으로, 그날의 참혹했던 기억을 잔인하게 떠올리며 담담하게 적어나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종이접기를 좋아했고 영재교육을 받았던 총명했던 아들 딜런, 사고가 있던 날까지 가족 어느 누구도 그 안에 깊숙히 자리 잡았던 우울과 세상에 대한 분노를 눈치채지 못했다. 사건을 내아이가 저지른 일이라고 받아들이고 무너지고, 눈을 뜨고 마음을 열어 희생자 가족들의 엄청난 분노를 보고 다시 무너지고, 내 아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다시 차근차근 생각하고 지난 날들을 복기하다가 끓어오르는 분노와 참담함에 다시 무너지고... 를 반복하는 동안, 비록 내 몸과 마음은 다시는 올라올수 없는 심연으로 내몰아쳐디고 가라앉고 말았지만 결국에 나는 엄마의 눈으로 보게된다. 내 아이는 죽고 싶어 했다는 것. 사람들을 죽이고 다치게 했지만 결국에 딜런이 이루려고 했던 마지막 목표는 '자살' 이었다는 것을, 힘겹지만 받아들이게 된다.

"자살하려는 사람은 자기고통을 더이상 감내할 수가 없는 사람이다. 죽고싶지는 않더라도, 죽으면 이 고통이 끝나리라는 걸 알기 때문에 그길을 택한다."

그날 이후 끝없이 날아 들어오는 법적인 문제들과 현실적인 문제들을 안고도 어머니로서 나는 스스로 알고자 했다. 내 아들 딜런이 왜 그렇게 우울해 했는지, 그리고 그 우울을 벗어나고자 했던 수많은 행동들과 말들이 어쩌면 세상에다 말하고자 했던 아이의 마지막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뒤에 이어진, 보고도 그저 십대들의 통과의례 정도로 가볍게 여기고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따듯하게 안아주며 그 아이의 분노를 눈치채고 치유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다시 무너지고를 반복한다.
"내가 가장 후회하는 점은 딜런의 내면이 정말 어떤지를 알기 위해 해야 할 무언가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신경과학 전문가들이 아이가 생전에 적었던 글과, 아이들이 남긴 비디오 등의 자료를 수집해서 내린 결론은 바로 아이의 뇌에는 병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급성 및 일과성 정신병적 증상을 동반한 주요우울증 그리고/또는 급성 및 일과성 정신병적 증상을 동반한 경계성인격장애"

딜런의 범죄 과정에는 항상 친구 에릭이 있었다. 딜런이 우울하고 유약한 성향을 가진, 부모로서는 그저 내성적인 아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그런 아이였다면 에릭은 폭력과 범죄에 관련된 웹싸이트를 만들고 운영했었던 다분히 폭력성이 강한 아이였다는 것이 밝혀지자, 우리들이 흔히 쉽게 얘기하는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그렇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이론이 슬쩍 고개를 든다.

"딜런에게는 살인범의 특징이 없지만 살인범과 얽힐 수 있는 취약성이 있습니다."

"에릭은 사고 자체가 심란한다. 딜런은 사고 과정이 산란하다. 에릭은 무슨 생각을 하느냐가, 딜런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문제였다."

"에릭이 사람을 죽이러 학교에 갔고 그러다 자기가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반면, 딜런은 죽으러 학교에 갔고 그러다 다른 사람이 같이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FBI 조사반 자문

하지만 저자는 함부로 그런 이야기를 입에 담음으로써 아이의 범죄를 정당화 시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전문가들의 학술적인 연구와 그에 따른 결과에 저자는 궁극적으로는 동의한다. 폭력적이고 분노에 가득찬 에릭이 우울하고 우유부단한 딜런에게 영향을 주고 그러한 엄청난 범행계획에 동참하게 이끌었다는 것은 뻔하게 나오는 결론이기도 하니까. 빠져나올 수 없는, 밑으로 밑으로 가라앉은 내면이 가끔은 다른 사람에 대한 분노를 가져오기도 하니까. 그것은 굳이 뇌 신경학 적으로 따져보지 않더라도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내 처지가, 내 모습이 지극히 비 정상적으로 열등하다고 느껴질 때면, 타인의 고통에 더 빨리 반응한다는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 자신의 부끄러운 진실이기도 하니까.

이 책을 쓸 당시는 이미 16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어떻게 한 평범한 엄마의, 여자의 인생이, 사랑하는 자녀의 엄청난 범죄행위 때문에 산산조각 나는지를 아프게 아프게 들여다 보아야 한다. 가족이 있었다. 사랑하는 남편과 또다른 아들이 있었기에 나는 견딜 수 있었다. 그렇지만 끊임없이 찾아오는 공황발작이 내 인생을 지배했고, 끔찍한 불면과 위장장애, 그리고 여전히 엄습하는 "왜"라는 질문에 꿈속에서도 나는 그 답을 찾아 해매야만 했다. 어떠한 의학적인 근거는 없지만 가슴에 커다란 상처를 안았기 때문에 나는 유방암을 앓아야만 했다. 삶에 대한 기대도 희망도 없는 상황에서 삶을 살아나가야 한다는 잔인하고 부조리한 명제 하에서 나는 끝없이 세상을 부유하여야만 했다.

그리고 찾아낸 해답은 바로 "왜"가 아니라 "어떻게"라는 물음이었다. 그동안 찾지 못한 '왜'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에의 갈구가 '어떻게'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서 상쇄되었다. 딜런에게는 왜 그런 힘겨운 우울감이 찾아왔는지에 대한 해답은 없었지만 그러므로 딜런이 사고하고 행동했던 어떻게에 대한 해답은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이미 내 삶이 박살이 나고 난 이후였다. 하지만 수Sue는 다시 일어서서 마지막으로 남은 그 '어떻게'를 부여잡는다. 그리고 딜런이 앓았던 뇌의 병을 연구하고, 결국에는... 자살을 향해 달려갔던 아이를 품에 안는다.

저자는 현재 미국 자살예방협회(American Foundation for Suicide Prevention)의 패널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미국 10대 주요 사망 원인 중 하나가 자살이라고 한다. 모든 우울증을 가진, 뇌건강에 문제가 있는 아이들이 자살을 하거나 딜런과 같이 엄청난 학살을 저지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아이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그들의 삶을 파괴하는 무언가에 의해 조종 당하며 불행한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수 클리볼드는 수많은 딜런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그보다 더 많은 자신과 같은 부모들을 만나 안아주고 눈물을 흘린다.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녀의 아들 딜런이 저지른 범죄행위가, 엄마라는 이름으로 글을 써서 다른 방식으로 고백했다 하더라도, 결코 정당화 될 수 없다. 잔혹하고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될 극악한 범죄행위며, 어떤 식으로든 지탄 받아 마땅하다.

그럼에도,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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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끔찍한 사건!
오히려 말썽장이였다면 부모와 많이 부딪칠 기회가잦아 그런일은 없었을거란 생각이 드네요. 마음속에 꽉 담아두는 것들이 결국 병이 된다는것이 실제로 보여지는실화였군요.
엄마가 힘을내고 좋은 일을 하고 있는것도 참 기적이네요. 그것도 남아있는 가족에대한 사랑의 힘이겠죠.

애석하게도 아니 잃은 부모들이 흔히 그러하듯, 남편과는 이혼을 했어요. 그야말로 홀로 인생 전체응 통해 사투를 벌이며 살아 왔을 듯..

반갑습니다 글 잘읽었어요~
팔로우&보팅하고 갑니다~^^
시간나시면 맞팔 부탁 드릴께요!

앞으론 열심히 활동하시길^^

삶을 파괴하는 불행한 인생들의 슬픈 이야기네요.

정신적 아픔이나 슬픔이 고통을 낳고 고통이 육체적 병과 이어지고 ....

가해자의 또 다른 이면을 볼 수 있어서 도움이 되네요. 감사합니다.

네 한국 제목이 좀 더 자극적으로 붙었어요... 책의 초점은 가해자 피해자 보다는 한 인간으로서 딜런의 범죄와 질병을 연관시켜 해부하는 것이에요. 백프로 동감하고 공감하기는 아마 많은 이들이 힘들거라 봐요.

잘 읽어보고 갑니다. 대화할 상대가 없는 아이들을 보면 가끔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는 동료강사의 말이 생각납니다.

ㅜㅜ 아이들을 가까이서 지켜보시니 가능한 생각인것 같네요. 부모로서도 상당히 생각을 하게되는 책이었어요.

미안하지만,,, 안타깝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이야기일것 같네요 ㅠㅠ 오히려 책을 냈다는게 분노 게이지를 높이는 행위로 해석한다면 제가 너무 옹졸한 걸까요? 그 부모는 얼마나 처벌을 받았는지도 궁금하네요. 불특정 다수를 향한 범죄는 용서하기가 힘듭니다.

백프로 이해해요ㅜ 저 역시도 읽는 내내 계속 힘들었어요. 책을 읽을 때는 철저하게 독자의 입장에서 읽고싶있거든요. 절대 용서할 수 없는 범죄행위임은 분명해요. 실제로, 읽어보겠다고 책을 빌려갔던 한 친구는 분노하며 돌려주더군요ㅜ 더이상 못읽겠다고 ㅜㅜ

긍정적분노의 한방향이겠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네요~

네. 출판될 당시에도 광장히 화제가 되었고 지금도 갑론을박이 계속되고 있지요. 저자의 노력이 조금은 사회에 전달이 되었으면 해요.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글이니 갑론을박은 어쩔수 없겠지만 그래도 좋은 방향으로 발전되었으면 좋겠네요~ㅎㅎ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늘 우리 주변에서도 일어날수 있고 나의 울타리 내에서도 일어날수 있는 일인데 정말 서로에게 진심어린 관심을 가지는 관계가 되면 좋겠습니다. 간섭이 아닌...

네 모든 문제는 소통의 부족에서 오는 것 같습니다.

수 클레볼드는 징후와 예방에 초점을 맞췄죠. 전적으로 공감하는 관점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읽는 내내 독자로서의 마음과 엄마로서의 관점이 부딪쳐서 힘들었습니다.

일단 가해자의 입장에서 책을 쓰거나 하는게 쉽지 않았을 텐데 저런 책을 썼다는 것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평생 죄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텐데.... 그래도 다른 사람들을 위한 저런 저술을했다는게.... 참.... 어찌보면 위대한 것 같습니다.

흠...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다른 자살을 하려는 아이들을 돕겠다는 마음 자체도 일종의 자기 위안의 확장된 표현이기도 하지 아닐까 생각도 돼요. 어떻게든 살아 나가야 하고... 계속 양쪽 입장을 동시에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저는. 대단하다... 안됐고 이해도 되다가... 또 다른 생각도 들고...

사실 저정도 어머니만 되어도 훌륭한 분 아닐까요...? 저렇게 되면 자식 부끄러워하고 원망하고 오히려 욕할것같은데요 거의 대부분의 부모들은....저분은 자식에 대해 깊은 사유를 하셨네요.

워낙 양측 의견이 극명하고 피해자 가해자의 선이 확실해서 답하기가 굉장히 신중합니다. 저역시 책을 읽으면서 약간 연민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많은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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