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공연리뷰) 지휘자 성시연의 정체성과 서울시향과의 궁합 '환상적' @2018 교향악축제 (18.04.06 예당)
- 언제나 파워풀한 그녀의 지휘 스타일은 관객의 흥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연주 : 서울시립교향악단
지휘자 : 성시연
바이올린 : 클라라 주미 강
[프로그램]
브루흐 M. Bruch
스코틀랜드 환상곡 Op.46 Scottish Fantasy, Op.46
베를리오즈 H. Berlioz
환상교향곡 Op.14 Symphonie Fantastique, Op.14
어제의 행복한 기운이 과연 오늘까지 이어질까? (대만국가오케스트라와 백건우의 향연을 즐긴 어제 https://steemit.com/kr/@arteo/with-18-04-05)
같은 장소지만 그 주체에 따라 매번 다른 소리를 들려주기에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은 늘 낯설고 설레임을 주는 장소다.
난 성시연의 지휘를 좋아한다. 말러 지휘 콩쿨에서 우승을 했고, 우리나라에서 말러를 가장 많이 연주하는 지휘자중 한 사람이기 때문에 말러를 좋아하는 나에게 당연히 애착이 가는 지휘자이다.
또한 여성 지휘자라는 낯선 길, 안타깝지만 어려운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모습이 보기 좋고, 온몸으로 응원하고 싶기도 하다.
처음 그녀의 지휘를 접하기 전 프로필만을 보고 고운 외모와 미소에 걱정아닌 걱정을 하기도 했다. 소리가 약하면 어쩌지? 말러인데? 물론 선입견이었다.
프로필 사진과 다른 풍채(?) 좋은 모습을 한 그녀의 등장과 시종일관 지휘석에서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격정적인 지휘스타일에 곧바로 빠져들었다.
대한민국에서 정명훈 선생님의 노년의 부드러운 카리스마 지휘와는 대조를 이루는 젊은 카리스마의 대표 주자 중 한 명임이 틀림없다.
물론 정명훈 선생님도 젊은 시절에는 꽤나 격정적이었다. 유투브를 찾아보면 90년대 풍부한 표정의 젊은 그를 만날 수 있다.
정명훈 -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 (Philharmonia Orchestra, 1995, Tokyo)
정명훈과 성시연을 이렇게 묶어서 생각하는 바에는 이유가 있다.
공연 전 유투브에서 1995년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일본에서의 베를리오즈 연주와 비교하기 위함이다.
명연이다. 섬세하면서도 열정 가득한 젊은 정명훈의 베를리오즈는 런던의 Philharmonia Orchestra를 만나 꽃을 피운다.
과연 지금의 서울시향이. 정명훈 선생님을 잃고 방황하는 그들이. 성시연을 만나 잘해 낼 수 있을까?
그들의 전 수장이 잘 표현해 냈던 그 곡을?
공연 전까지 내 머리 속에서는 이런 비교의 잣대를 내밀고 공연 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결과는. 정명훈과 다른 성시연의 베를리오즈를 느끼고 그녀에 만족한 명연이었다.
반신반의를 지워버린 그녀에게 감사하기 까지 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성시연의 연주를 좋아하게 되었고. 그녀의 음악 해석에 대한 확고함이 생겼다.
사실 2017년 말 경기필과 함께한 말러 9번 연주. 앞 리뷰에서도 누차 언급했던. 관악의 실망이 성시연 전체를 오해하게 만들었던 공연. 매우 아쉽지만 말이다.
하지만 연주력의 부족 그 것을 뛰어넘는 지휘자의 열정이 있음을 이번에 깨달았다.
베를린 필, 빈 필이 아니기에. 각 연주자들의 한계는 분명하고, 그것들을 통솔하는 지휘자에게 결과에 대한 책임이 있지만,수십명의 단원의 그날 컨디션 등 세밀함까지 모든 것을 통제해 낼 수는 없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새삼 다시금 깨닫게 된다. 사람은 역시 단순하기에 경험해야만 알 수 있는 것이다.
당일 어떤 주자가 컨디션이 너무 안 좋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연주자 하나의 작은 실수가 그날 연주 전체를 나락으로 빠뜨릴 수도 있다.
그럼 그 지휘자를 욕해야 하는 것일까? 그의 손을 벗어나 벌어진 모든 일까지? 연습과 짜여진 틀 안에서 움직이는 단원들인데, 지휘자가 공연 도중 유기적으로 하나하나를 컨트롤 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 단체의 대표이기에 지휘자를 욕할 수 있다. 그러나 조금 더 들여다 보면 다른 관점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성시연의 베를리오즈는 내 기준에서 성공적이었다.
사실 그동안 방황하며 계속된 실망감을 안겼던 서울시향에 대한 마지막 기회였다.
바로 직전 서울 시향의 베토벤 영웅 연주는 최악의 기억을 안겨 주었기 때문이다. 규모면에서 균형면에서 연주면에서 모든 면에서.
성시연이 과연 그들을 심폐소생하고, 함께 상생할 수 있을까?
그것도 쉽지않은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을?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은 각 파트들이 분주하게 엮이며, 연주력이 떨어지는 오케스트라에겐 어려운 과제이기 때문이다.
만약 성시연이 해낸다면. 시향의 개별 연주자들의 실력 칭찬보다 우선적으로 그들을 통솔해낸 성시연, 그녀의 공으로 돌리고 싶었다.
그녀는 오늘 그것을 해냈다. 열렬히 박수를 보냈고. 창자끝부터 올라오는 브라보를 보냈다.
어쩌면, 외국인 계약제 지휘자들로 운영되고 있는, 실질적 수장이 없는 서울시향의 자리가 그녀의 자리가 아닐까하는 생각까지 머물렀다.
이번에 성시연이 떠난 경기필은 외국인 지휘자를 받아 들였다.
정명훈이라는 세계적인 마에스트로를 잃은 서울시향에게 정명훈 만큼의 지휘자를 바라고 찾고 있다면 그 비용이 만만찮을 것이다.
또한 전세계적으로 지휘자 대이동이 벌어지는 판국에 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비싸다는 이유(클래식 주변인들에게)로 그밖의 사건들로 얼룩진 채 떠나보낸 정명훈. 그 만큼의 돈도 지불할 여력이 안되면서, 더 나은 외국인 지휘자를 찾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실력이 모자란 사람을 받는 다면, 추후 클래식 팬들에게 여러모로 비난의 칼날을 막기 어려울 것이다.
성시연. 그녀가 혹시 그 부담의 자리에 대안이 될 것인가. 아무래도 당연히 정명훈을 지켜보았던 우리에게 적합한 기분은 아니다.
그리고 바로 직전 이력이었던 경기필을 대단히 성공적으로 극적으로 끌어올리지는 못했다고 본다.
하지만 오늘 같은 궁합이라면...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도 궁합이 있다.
내가 좋아해 마지 않는 지휘자 아바도와 베를린 필은 그래서 헤어졌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지휘자라도 단원들과의 호흡이 매우 중요하다. 오케스트라는 인간이 주체가 되는 하나의 생명체 덩어리이다. 인간에 의해 움직이는 하나의 유기체라 볼 수 있다.
어떤 작은 이유에서 시너지가 발생할 수도, 마이너스가 발생할 수도 있다.
조심스럽게, 이번 연주를 계기로 본다면. 서울시향과 성시연 조합에 조금 더 많은 기회를 주었으면 한다.
일년에 한 두번 연주 계약을 맺은 두 명의 상임 외국인 지휘자들이 빌 때, 그녀에게 시향을 맡겨 봤으면 한다.
부지휘자를 말하는 건 아니다. 성시연이 부지휘자를 할 위치는 절대 아니니까.
그저 그 조합을 클래식을 즐기는 팬 입장에서 조금 더 많이 보고 싶은 것이다.
화려한 환상교향곡 3악장, 5악장에서는 폭발하며 화려함 그 자체를 마음껏 뽐냈고, 고요한 격정의 1악장에서는 그 진중함을 뽐냈다.
2016년인가 성시연의 서울시향 말러를 듣고 완전 매료된 적이 있다.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여성 지휘자라니. 놀란 가슴 부여잡았지. 뒤늦게 클래식에 입문한 나의 귀여운 반응이었다.
말러와 베를리오즈. 그녀는 격정을 강약을 장엄함을 격변을 잘 표현할 줄 안다. 그런면에서 두 곡은 교집합을 형성한다.
맑고 밝은 곡보다 그 반대의 곡들을 잘해내는 것 같다. 성시연의 모차르트, 멘델스존 궁금하긴 하지만 기대되진 않는다.
장점이 많은 성시연이기에. 그리고 그런 그녀의 연주가 나와 맞기에. 더욱 편을 들어주고 싶다.
흰머리 휘날리는 노년의 성시연의 모습과 같이 늙어 관객석에 앉아 있을 나를 생각하면 미소가 지어진다.
참, 클라라 주미강을 빼먹었다.
그녀 또한 격정적인 활기찬 연주를 하는 바이올리니스트로 항상 좋은 연주를 들려준다.
하지만 오늘은 베를리오즈에 잊혀졌다. 나에겐 그렇다.
그리고... 다음날 듣게 된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의 소리를 듣고, 또 한번 잊혀 졌다.
[지난 클래식 공연 리뷰]
(클래식 공연리뷰) 샤오치아 뤼 with 백건우, 그들의 농익은 합주. 대만국가교향악단 (18.04.05 예당)
https://steemit.com/kr/@arteo/with-18-04-05
(클래식 공연리뷰) 2018 교향악 축제 : 신세계로부터 멀어지다.. 대구시립교향악단 (180403 예당)
https://steemit.com/kr/@arteo/2018-180403
꼭 지켜야 할 클래식 공연 관람 에티켓
https://steemit.com/kr/@arteo/4dtdg9
(클래식 리뷰) 스타콘서트 :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 with Tamas Palfalvi (2018.03.30 예당)
https://steemit.com/kr/@arteo/with-tamas-palfalvi-2018-03-30
(클래식 공연리뷰) 얍 판 츠베덴 Jaap Van Zweden의 차이코프스키 No.5 _180323 예술의 전당
https://steemit.com/kr/@arteo/jaap-van-zweden-no-5-180323
글 읽고 지난 클래식 공연 리뷰 또한 읽고 싶어지네요^^ 팔로우할게요 자주뵈요~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맞팔했습니다. 자주 뵈요 ^^
경기도민으로서^^ 성시연 씨가 경기필 있는 동안 행복했었는데요...ㅎㅎ 아직 젊으니만큼 세계적인 지휘자로 쭉쭉 성장하길 기원해 봅니다~
그럴수 있을거라 믿어요 ㅎ 믿음도 가구요!
보팅했습니다. 말러 좋아하시는 군요? ^^ 저랑 취향이 비슷하신듯 해요.
현재 말러리안이라고 스스로 외치고 있습니다. 요즘 브루크너가 들리더군요. ㅎㅎ 반갑습니다!
!!! 힘찬 하루 보내요!
^^ 항상 응원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