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공연리뷰) 얍 판 츠베덴 Jaap Van Zweden의 차이코프스키 No.5 _180323 예술의 전당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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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필하모니오케스트라(뉴욕필)의 신임 음악 감독 '얍 판 츠베덴 Jaap Van Zweden'
2018년 9월부터 직책을 시작하지만 이미 뉴욕필과 행보를 함께 하고 있다.
일단,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의 신임이라니 눈길이 안 갈 수가 없고, 또한 사진상 풍기는 외모에서 단단한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어서 섬세하고 유려한 차이코프스키 교향곡을 어떻게 표현할 지 궁금했다.

뉴욕필 하면 가장 먼저 번스타인이 떠오른다.
세계적인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은 뉴욕필과 함께 성장했고,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재밌는 사실은 그런 번스타인과 얍 판 츠베덴의 인연이다.
얍은 베를린 필하모니와 함께 줄곧 세계 1, 2위 오케스트라를 다투는 네덜란드의 로얄 콘체르트 허바우 오케스트라의 악장이었다.
번스타인과 말러 1번 협연을 앞두고 리허설 중이었을 때, 갑자기 번스타인이 악장인 얍에게 지휘를 한번 해보라고 권한다. 처음 지휘봉을 잡은 얍은 진땀으로 지휘를 겨우 해냈지만, 번스타인은 바로 그의 재능을 알아본 후, 지휘자를 할 것을 권한다. 얍은 그 후로 단 한번도 바이올린을 잡지 않고 지휘에 매진하고, 현재 차세대 명장 중 하나로 손꼽히게 된 것이다.
뉴욕필이 5년간 음악감독 직을 맡기는 것만으로도 그의 뛰어난 지휘 실력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이다.
단한번에 얍을 꿰뚫어 본 번스타인도 뛰어나고, 그 말 한마디에 인생을 걸고 결국 지휘자로 우뚝 선 얍도 참 대단하다.

이처럼 얍의 운명을 가른 번스타인의 상징 뉴욕필 자리에 서게 된 얍 판 츠베덴이라니.
참 대단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그 또한 감회가 어떨지. 물어 볼 수 없으니 아쉬울 따름이다.(인터뷰를 굳이 찾아보지 않았지만 분명 세계 어딘가에서 인터뷰 하지 않았을까?)

사실 경기필은 작년 성시연 지휘 말러 9번을 참관하고 적지 않게 실망을 한 탓에 망설임을 주는 존재였다.
말러를 자주 연주하는 성시연이 단장이었음에 연습을 많이 할 기회가 충분했음에도 소리가 좋지 않음에 더욱 실망했던 것.
특히 호른의 빈약함에 실소를 금치 못했다.
전반적으로 관악기의 소리가 불협적이고, 연주 스킬에서도 부족함을 느꼈다.
참고로 성시연 지휘를 좋아하는 편이다. 남자 못지않은 아니 오히려 더욱 파워 넘치게 지휘하는 그녀의 익사이팅이 흥미를 주기 때문이다.

어쨋든! 그래도 차세대 뉴욕필 감독이라면 조금 다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마음이 가장 컷다.
생각보다 풍채가 좋은 얍의 등장에 아, 차이코프스키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스쳤다.

스읍. 잔뜩 웅크린 덩치에서 두꺼운 손에 쥐어진 작은 지휘봉이 하늘을 향해 올랐다가 밑을 향하는 순간 음이 하늘로 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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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렬하게 시작한 첫곡.
바게나르,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 서곡.


역시 경기필은 지휘자가 바껴도 어쩔 수 없는 건가. 관악의 불협은 여전했고, 심지어 호른에서 음이탈 소리가 집중을 흐트려 트렸다.
서곡 특유의 경쾌함을 살리기에는 타격감이 부족한 팀파니 주자의 연주도 힘에 부쳤다. 현은 안정적이었지만 역시 관악파트가 문제였다.
트럼본, 플룻,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 호른의 소리의 균형이 살짝 씩 어긋나니 산만하게 느껴졌다.
얍의 잘못 일 수도 있겠지만, 기존 경험으로 경기필을 탓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참고로, 난 오케스트라에서 팀파니와 호른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특히 호른은 현과 관악 사이의 중간을 매우는 키(Key) 악기라 할 정도로 소리의 비중이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메탈음악에서의 베이스처럼. 뚜렷하게 존재감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음이 벗어나거나 중심을 놓치면 전체 균형을 단번에 흐트러 뜨리는 존재.
(난 음악을 전공하지 않았고, 이제 막 클래식을 듣기 시작해서 나만의 아주 주관적인 생각임을 밝힌다.)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Op. 77 (최예은- 바이올린)


최예은의 연주가 돋보였고,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소심했다.
협주곡은 악기 대 오케스트라의 대결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즉, 한 메인 악기와 전체 오케스트라가 조우하며,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또한 경쟁하기도 하는 음악인 것이다.
혼자 여러명을 상대하기에 솔리스트는 분투해야하고, 때론 균형을 위해서 오케스트라는 움추릴 줄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의도적 소심함과 그냥 소심함은 다르다.
연주자들의 소리냄 자체가 소심했고, 이것은 연습 부족을 의심케 했다.
정확히 음이 맞아 떨어져야 하는 부분에서나, 서로 음을 주고 받는 부분에서 여실히 불협이 드러났다. 최예은에 오케스트라는 분명 졌다.
브람스 특유의 장엄한 느낌은 느끼기 힘들었다.
이런 불협은 자유롭게 음에 몸을 맡기는 대신, 의식적으로 지휘자의 지휘봉과 연주자 타이밍을 계속 비교해서 듣도록 강요하고 말았다.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의외였다. 1부 연주곡들에 적잖게 실망했기에 나도 모르게 기대를 포기했던 마음 때문이었을까?
아니다. 확실히 연주는 훌륭했다. 특히 현의 유려함에 놀랐고, 자연스럽게 내 몸 마음을 음에 온전히 실을 수 있었다.
얍의 지휘봉을 따라 현은 파도를 탔고, 춤을 췄다.
세계적인 오케스트라 로얄 콘테르트 허바우 최연소 악장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달까?
그의 인터뷰에서 음과 음 사이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했는데, 1부에선 볼 수 없었던 그 음과 음 사이를 느낄 수 있었다.
특히, 교향곡 5번 2악장의 핵심은 솔로 호른의 연주다. 화려하고 경쾌한 1악장으로 모두가 주목한 상황에서 조용한 2악장은 그 실력이 여실히 드러난다.
불안함에 나도 모르게 긴장된 어깨를 내리느라 애쓰며 호른을 듣는데.. 만족스러웠다.
경험 상 작은 소리를 낼때 호른의 음이탈이나 균형이 무너지는 것을 많이 보았던터라, 더욱 긴장했는데. 적절한 연주였다. 마지막 살짝 풀어진 음 빼고는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4악장에서 현의 춤사위와 관악의 축포가 어우러져 화려하고 강렬한 피날레를 연주했다.
현이 자유자재로 음을 응축 했다가 폭발시켜 확장하는 유려함이 압권이었다.

경기필은 2016년 무티와 같은 곡 연주로 당해 최고의 연주로 뽑힌 바 있다.
2014년에도 성시연 지휘로 연주를 했고, 자주 연주했던 곡이라 그런지 듣기 좋은 연주를 보여줬다.
역시 익숙함에서 오는 연주는 차별화를 선사한다.

1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여유가 느껴졌다.
어떤 곡이든 연주해 낼 수 있는 것이 오케스트라라고 말한 얍의 의도를 따라주진 못했지만, 차이코프스키 5번으로 만족한 하루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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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랬동안 관객의 박수가 터져나왔고, 이에 화답하며 합창석 까지 인사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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