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판관의 투기일지 7차] 포트폴리오 및 대응전략은 필요 없고 일단 반성
내가 하는 행위가 투기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매우 병신스럽게 아름다운 하루였다. 이를 기념하고자 쓰는 글이니 목차 따위는 생략한다.
말한 것처럼 어제 풋옵션을 매수했다.
근데 뭘 매수했냐면 7월물, 그것도 만기일이 당일인 것을 매수했다.
옵션을 잘 모르는 사람을 위해 간단히 설명하면 풋옵션 295.00를 매수할 경우 만기일까지 코스피 200이 295.00 아래로 내려가지 않으면 모든 투자금이 제로가 된다. 즉 수익률이 -30% 이 정도가 아니라 -100%가 되는 것이다.
만약 8월물을 매수했다면 8월물 만기 전까지 가격 변동에 따라 익절을 하거나 또는 손절을 할 여유가 충분하지만, 오늘 산 옵션매수는 산술적으로 매수 시점부터 12시간 안에 0원이 될 가능성이 무려 50%나 되었던 것이다. 즉 홀짝 게임에 해외 여행에서 제법 괜찮은 숙소에서 숙박하며 1주일 이상 버틸 수 있는 돈을 걸어버린 셈이다.
나는 코스피가 대세하락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지만 어느 날짜를 콕 찝어서, '이 날은 코스피가 떨어진다.'고 예상하고 베팅을 한다면 그건 명백한 투기다. 하긴 원래 시간이 자기 편이 아닌 3X ETF 따위의 종목을 참 쉽게도 산다는 점에서 원래 투기를 하고 있긴 했지만 이번 건은 그 중에서도 제일 한심했다.
옵션에 만기일이 있다는 것을 깜박한 덕분에 나는 몇 시간 동안 신세계를 보았다.
오늘 오전 코스피는 상승했고 나는 1시간 만에 투자한 금액이 -90%가 되는 것을 보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왜 코스피가 소폭만 상승했는데 이렇게까지 손해가 큰 줄 몰랐다. 당연하지. 앞으로 몇 시간 뒤면 코스피가격보다 위에 놓여진 풋옵션의 가격이 0원이 되잖아.
투자에서 200만원을 잃는 것은 병가지상사지만, 말 같지도 않은 실수로 1시간 만에 200만원이 20만원이 되는 걸 보니 매우 불쾌했다. 반면 콜옵션 쪽은 1시간 만에 +90%를 찍고 있었다.
이미 20만원 밖에 남지 않은 것을 손절할 수도 없고 그냥 놔두기로 했다. 장 마감까지는 이제 두 시간.
그냥 속이라도 든든하게 채우려고 냉장고에서 양고기를 꺼내 구웠다. 나는 생활비로 투자를 하는 그런 절박한 부류의 인간은 아니지만 투자에서 돈을 잃으면 보통 오욕칠정을 끊어서 이걸 보충한다.
'앞으로 한 달 동안 라면만 먹어야할듯'
당분간 못 먹을 귀한 고기로 배를 채워도 기분은 매우 좋지 않았다. 가뜩이나 제대로 되는 일도 없는데 이런 개 같은 실수나 하다니.
나라는 인간이 얼마나 형편 없는 동물이냐면, 한심한 건 맞는데 고기랑 쌀밥 먹었다고 그냥 침대에 누우니까 잠이 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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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퍼질러 자고 일어나보니 아래와 같은 일이 생겨있더군요.
직선이 곡선보다 섹시하다!!
막판 코스피가 외인들 장난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내 풋옵션은 휴지가 되는 신세를 벗어나게 됐다. 동시호가 전 회복량을 보니 20만원이 몇십분 사이에 6배가 됐더라. 물론 나의 경우는 만기청산이라 해당 사항이 없지만, 그 저점 외가격에 이걸 매수한 사람은 그대로 로또를 맞은 셈이 된 것이다.
여하간 나도 200만원이 휴지가 되는 걸 막고 거기 소액이나마 수익을 올렸으니 운은 좋았다. 내가 제대로 계산한 게 맞나 싶어 더운 날 증권사를 찾아가 다시 물어봤다. 내가 계산한 것이 맞더라. 투자를 하며 하루에 몇천만원을 벌어도 보고 잃어도 보았지만..... 어쩐지 오늘이 더 '휴 살았다.'라는 기분이 들었다.
귀가하며 이 노래를 들었다.
반복적으로 들리는 "We can fight"가 좋았다. 오늘 돈을 잃지 않은 덕분에 몇 번인가 더 옵션 매수를 해볼 수 있어서 기쁘다. 내가 생각하는, 옵션에 집어넣어볼 수 있는 금액의 상한선은 분기별 300만원 정도이다. 즉 오늘 돈을 다 잃었다면 나는 가을까지 1계약 정도를 시범적으로 매수해보는 데에 그쳐야 했을 것이다.
[결론]
옵션이 얼마나 위험한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 죽을 때까지 옵션 매도를 할 일은 없을 것 같고, 매수 역시도 매우 주의해야 할 듯. 8월물은 달랑 한 계약만 샀다.
제가 이렇게 허술한 인간입니다. 제 글 읽고 따라 투자하시면 절대 안 되요.
풍류판관의 투자일지 1차
풍류판관의 투자일지 2차
풍류판관의 투자일지 3차
풍류판관의 투기일지 4차
풍류판관의 투기일지 5차
풍류판관의 투기일지 6차
투자금이 200만원인 순간 이미 잘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100%이 되든간에 뭔가를 배우기만 했다면 의미있는 일이죠. 물론 그냥 잃었을 때 기분이 개짜증나는것은 모든 인간이 같지만요.
좋은 댓글입니다... ㅎㅎ 여하간 이번에 운으로 잘 넘겼으니 앞으로는 한 계약만 헷지용으로 해둘까 합니다 무섭더군요
이런...벌써 반성하게 되시다니...
저는 늘 반성한답니다
반응 안 좋은 이야기 포함 ㅋㅋㅋㅋㅋ
풍류판관님 천연가스 투자 관련 블로그 글 보고 봄에 스팀잇 계정을 만들었었는데 우연히 이렇게 최신글에서 뵙네요! 녹지않은 풋옵션 축하드려요. 운도 실력~ ^^
ㅋㅋㅋㅋㅋㅋ 그냥 세상에 비기너스 럭만큼 위험한 것도 없더군요^^;; 제 부족한 글을 보시고 스팀잇 계정도 만드셨다니 참 영광이네요 ㅎㅎ 감사합니다 자주 뵙겠습니다
누구나 허술하지요.
다만 그 허술함을 숨기않고 드러내는 건
굉장한 용기와 자기 치유에 큰 힘을 발휘하지 않을까요?
ㅎㅎㅎㅎㅎ 너무 좋게 말씀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다만 옵션이라는 건 너무 위험한 만큼 용기는 앞으로 더 적게 부릴 생각입니다 ^^
다른 분야에서 그 허술함이 힘이 되길 바래야겠죠 ㅎㅎ
옵션은 무서운 것이지요... 이유가 어찌되었건 교훈도 얻고 투자 결과도 나쁘지 않았으니 다행입니다.
ㅎㅎㅎ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이번 교훈은, 앞으로 극 보수적 관점에서 옵션을 접근해야겠다는 것입니다 ^^;;
잠깐이지만 마음 고생 하셨네요. 그래도 다행히 수익 내셨으니 위로와 축하 드립니다. ㅎㅎ
이런 짓은 아마 다시 안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200만원이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호기롭게 단위를 올려버렸다면 어땠을지 참 투자에서 많은 걸 경험해봤지만 한 시간 만에 -90은 처음 봤습니다
오...다행이네요 ㅎ
양고기 드시고 주무시길 잘하신듯 ㅎ
평범한 투자이야기보다 스펙타클하니 재밌네요 ㅋㅋ
감사합니다 ㅎㅎ 그나마 해피엔딩이라 다행이고 앞으로는 극보수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려고 합니다
따라하고 싶어도 능력이 안되네요 ㅠㅠ
돈을 잃는 능력 ㅋㅋㅋㅋ 아마 옵션을 계속하면 다 잃을 것 같습니다;;
하하 가끔 숫자 잘못입력하거나 숫자 잘못보고 매수/매도 할때마다 정신이 번쩍 들곤 하죠……
그래서 아예 한 계약만 이제 하려고 합니다 ^^
주의해야겠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