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듣지 않는 곡들. 나의 방어기제

in #kr6 years ago (edited)

스팀잇을 보던 중 @hermes-k님의 글 한 편을 보게 되었습니다.
[헤르메스, 나만의 명곡]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을까? - 제프 버클리 Jeff Buckley, Hallelujah


이제는 듣지 않는 곡이 많습니다. 너무나 좋아했지만, 너무 좋아한 나머지 이제는 듣지 못하게 된 몇 곡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 김광석 -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

스무 살 넘어 뒤늦게 입시 준비를 했을 때. 일을 마치고 돌아와 작은 골방에서 캔맥주 한 잔과 함께 무던히도 많이 보던 영상입니다.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아 대학에 들어가는 날까지도 파란색 배경의 콘서트 영상을 수없이 돌려봤습니다.

< Bill Evans - B Minor Waltz >

빌 에반스에게 아주 깊게 골몰했던 적이 있습니다. 빌 에반스의 상실이 담겨있는 것 같은, 어딘가 애조띤 듯한 이 연주를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 Jeff Buckley - Hallelujah >

전 이 곡을 들으면 죽을 것 같았어요. 제프 버클리의 한숨 소리를 들으면 온몸이 차가워집니다.

< Chet Baker - My Funny Valentine >

체트 베이커를 아주 깊게 사랑했습니다. 시드 비셔스를 좋아하던 마음으로, 커트 코베인을 좋아하던 그런 마음으로요. 언제든 깊게 빠져들 수 있는 마법 같은 곡이었어요.

< Muse - Unintended >

음울한 여중생. 그런 저를 붙잡고 있던 뮤즈입니다. 저를 뒤덮었던 매튜 벨라미의 목소리입니다. 가사의 뜻도 모르면서 많이 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 뮤즈를 듣지 않는 것은 음악적 성향 차이 때문이지만, 이 곡만큼은 조금 다른 느낌이 드네요.

< Elliott Smith - Say Yes >

< Sean Lennon - Parachute >

두 곡을 같은 시기에 참 많이 들었습니다.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던 곡들. 이제는 그토록 좋아하던 엘리엇 스미스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습니다.

< 백현진 - 무릎베개 >

이 곡은 미처 이뤄지지 않은 지나온 사랑과도 관련이 있는 곡입니다. 이 곡만큼은 특정한 상황을 떼놓을 수 없게 되었지만, 그때의 절절했던 마음과 캄캄했던 밤도 같이 떠오르는 곡이에요.


이제는 듣지 않는, 더이상 들을 수 없는 곡들을 오랜만에 더듬어보았어요.

마음이 서늘해진다는 공통점이 있군요. 괜한 오한이 들고, 안절부절못하게 되네요. 이 곡들은 저의 어둠과 맞닿아있던 것들이겠죠. 슬픈 음악이 아니면 듣지 않던 때가 있습니다. 슬프지 않은 곡을 쓰지 못했던 때가 있습니다.

이 곡들을 떠나오게 된 연유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답은 간단했어요. 제가 행복해졌기 때문이지요. 지금 이 곡들을 듣지 못하는 것은 일종의 방어기제 같습니다. 그때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제 마음이겠지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제 모습이, 저 곡들을 떠나오게 된 제 마음이 저도 믿기지 않습니다. 언젠가 제가 행복해진 계기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네요.

이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글이기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기를 바랍니다. '난 아직도 이 곡들이 너무 좋은데'라고 말이죠. 행복하다고 해서 밝은 음악만 듣는 것도 아닐 테고, 슬프다고 해서 슬픈 음악만 듣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제가 이 곡들을 이제는 듣지 못하는 건 아마 어두웠던 그때가 떠오르기 때문이겠지요.

새벽 감성을 빌어 부끄러운 자기 고백을 했습니다. 당장 내일 자고 일어나면 지우고 싶겠죠. 스팀잇은 글을 지울 수도 없으니 평생 구글 어딘가에 둥둥 떠다니겠군요. 언젠가 잊고 있다 이 글을 불현듯 다시 마주하게 될 날까지 제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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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부터 김광석님의 모든 노래를 정말 좋아했습니다. 지금도 운전 중에 자주 듣지요. 제가 좋아하는 노래도 몇곡 추천해주셨네요. 나중에 들어봐야겠어요. ㅎㅎ 저는 이렇게 다른 분들이 음악을 추천해주면 모르던 음악을 알게 되는 것이 좋아요. ^^

우앗! 초등학교 때부터 김광석을 좋아하셨다니 신기합니다. 음악 추천을 좋아하시는군요. 한동안 음악글은 올리지 않았는데 부지런히 올려보겠습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ㅎ 꼬박 꼬박 챙겨 보지는 못할 것 같지만 종종 들러서 잘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행여 부담이 된 건 아닐지 모르겠네요. 가끔 생각날 때 들러주시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합니다.

부담은요. 원래 제가 이런 스타일인데요. ㅎㅎㅎ 종종 들러요. ^^

Resteemed your article. This article was resteemed because you are part of the New Steemians project. You can learn more about it here: https://steemit.com/introduceyourself/@gaman/new-steemians-project-launch

노래들이 좋습니다. 그냥 감정에 충실하되 뒷끝만 남기지 않으면 되지요.

思無邪
생각하되 삿됨이 없다 -공자

ps. 저는 김광석님의 맑고 향기롭게가 특히 좋습니다.
[21세기 時景] 광석이 법정을 노래하다 / 맑고 향기롭게(淸香)

글 잘 읽었습니다. 이 곡을 노영심씨가 만들었다는 건 몰랐는데. 참 많은 곡을 만들었네요. 생각하되 삿됨이 없다. 되뇌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너무 좋아한 나머지 이제는 듣지 못하게 된 곡.... 와닿네요. 저도 제 심정을 반영했던 지나간 곡들이 있습니다. 이제는 듣지 못하는ㅎㅎㅎ

저만 그런 것이 아니었군요. 이런 날이 올거라곤 생각지 못했는데 이것도 나이 들어감의 일종인 듯 합니다:)

피드에 김광석님 영상 뜨자마자 바로 들어왔습니다. 정말 제가 가장 사랑하는 뮤지션중에 한분이시고 좋은 곡들이 많지요.
포스팅을 통해서 다른 곡들도 많이 알고 갑니다 ~ 좋은 포스팅 감사드려요 앞으로 자주 들를게요! ㅎㅎ

감사합니다. 김광석을 좋아하시는군요. 저도 무척 좋아했던 가수입니다. 목소리에 힘이 있죠. 앞으로 자주 봬요:)

저도 지금 삶에 만족하고 행복함을 만끽하고 있는데 때로는 이런 우울한 노래에 빠져서 허우적 대던 그 시절의 감성이 그리울 때가 있어서 듣게 되는 것 같습니다. 덕분에 모르고 있던 좋은 노래들 알고 갑니다 ^^

네. 저도 가끔은 위태위태하던 그 때가 그리워지기도 해요. 지금은 너무 삶이 밋밋하다는 생각도 가끔 듭니다.(힘들면 힘들다고, 행복하면 행복하다고 불만이네요 ㅎㅎ) 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음악 시간 내서 다 들어 보렵니다 .
자주 놀러 올께요.
팔로우 보팅하고 갑니다 ^^

좋으실진 모르겠지만 잘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곡들 리스팀해서 제 블로그에도 박제해 두었습니다.
김광석, 빌에반스, 챗베이커 ... 그리고 모르는 사람들
모든 곡들을 듣고 저도 제 아픈 과거를 생각해 보렵니다. ^^

아픈 과거를 돌아보는 일도 참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일종의 회피겠죠. 늦은 새벽에 저 곡들을 틀어놓고, 그때의 감정에 잠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아직까진 좀 힘들 것 같지만요. 리스팀 감사합니다:)

김광석 님 보고 들어와서 좋은곡들을 추천받았네요. 요즈음 아예 음악을 안듣고 살았네요. 오늘부터 다시 들어야겠습니다.
팔로우합니다~

저도 음악을 듣지 않게되는, 음악이 소음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었어요. 그럴 땐 안듣다가 생각나면 또 듣고, 그러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음악을 들어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창작을 하시는 분이니, 너무 좋은 곡이 오히려 방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대신 @ab7b13 님의 추천곡이다 생각하고, 하나씩 찾아서 들어봐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창작을 하는 사람이니 더욱 좋은 곡 많이 들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ㅎㅎㅎ 제 추천곡 잘 들어주세요. 필사자님의 추천곡도 궁금합니다. 나중에 기회되면 한 번 올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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