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본성에 대한 착취는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in #kr-philosophy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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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여러분들에게 당부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 확률형 아이템 규제라는 소재에서 출발하지만 게임에 관심이 없어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생각들을 담고 있으니 게임에 관심이 없어도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키워드는 도박, 소비자 기만, 인간의 본성, 뉴로마케팅, 간헐강화이며 예전에 썼던 무섭고, 무서운 세상이라는 연재글을 흥미롭게 읽으셨던 분들에게는 이 글도 재미를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게임산업에 대한 다양한 규제시도가 있었으나 이번처럼 게이머들 사이에서 찬반이 격렬하게 갈리는 순간은 없었다. 지금까지는 게임산업에 대한 모든 규제시도를 '꼰대들의 삽질'로 보았던 것과 다르게 국내 게임사들의 행태, 특히 모바일 게임에서의 행태에 분노한 게이머들이 확률형 아이템 규제에 찬성하기 시작하며 의견이 크게 갈리고 있다. 특히 예전에 입법부에서 게임산업에 대한 진입장벽을 형성하여 대기업을 보호하려는 의도를 내비친 적도 있었기에 더욱 찬반이 격렬하게 갈린다. 나는 세세한 정책과 거기서 엿보이는 의도는 다루고 싶지 않다. 따라서 특정 정책이 아니라 확률형 아이템 규제라는 행위의 본질에 대해서만 논의하도록 하겠다.

확률형 아이템 규제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도박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확률형 아이템 규제에 찬성하는 입장이 내세우는 근거 중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게 바로 도박과의 유사성이다. 분명 확률형 아이템은 도박과 닮아있다. 상품의 가치가 고정적이지 않다. 도박에서 베팅에 대한 보상이 매번 다르듯 확률형 아이템의 가치도 항상 다르다. 가치의 차이도 상당하다. 모바일 게임에서는 대박과 쪽박이 수십만배에 이를만큼 큰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이 외에도 유사한 점이 많다. 카지노에서는 칩을 사용한다. 매번 현금을 꺼내고 딜러가 위조지폐 검사를 하고 있는 것도 웃긴 일이니 실용적인 목적도 있지만, 현금이 아닌 칩을 베팅하는게 심적 부담이 덜하여 칩을 같은 가치의 현금보다 가벼이 여기게 된다고 한다. 모바일 게임에서도 마찬가지로 환전을 거치곤 한다. 현금을 게임 내 화폐로 전환한다.

즐거움을 주는 모든 행위에는 도파민이 따른다. 하지만 도박중독자들은 도박이 아닌 행위에서 도파민이 거의 분비되지 않으며 도박을 통해서만 쾌락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도박은 비합리적인 행동임에도 계속해서 도파민을 추구하며 도박을 하게 된다. 매몰비용과 인지부조화 또한 도박에서 돈을 잃은 사람을 묶어둔다. 그 외에도 동물에게는 없는 인간의 결함인 도박사의 오류도 있다. 여기서 출발하여 도박과 유사한 확률한 아이템도 비슷한 작용을 통해 중독되어 비합리적 행동을 유도할 수 있으니 규제하여야 한다는 것이 확률형 아이템 규제 찬성파의 주된 입장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도박에 중독될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본성을 알아야한다. 인간은 간헐적 강화에 영향을 크게 받는다. 간헐적 강화란 행위에 대한 보상이 규칙적이지 않고 간헐적인 경우에 일어나는 작용을 말하는데, 규칙적으로 행위에 대한 보상이 주어지는 경우보다 오히려 불규칙적이고 아무런 보상이 없기도 할 때에 그 행동에 대한 동기가 더 오래 유지된다.

사실 도박 외에도 간헐적 강화의 작용을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낚시에 한번 빠진 사람은 낚시가 주는 쾌감을 다른 곳에서 느끼기 힘들다. 낚시에 빠진 남편이 가정에 소홀하다며 불평하는 부인들이 참 많다. 간헐적 강화는 연애에도 작용한다. '밀당'이라는 표현도 이를 반영한다. 항상 잘해주는게 아니라 간헐적으로 잘 해주는게 유리하다는 것이다. 나쁜 남자 신드롬도 같은 맥락에서 나타난 신드롬이다. 교육에서도 간헐적 강화를 이용한다. 교사들은 불시에 공책을 검사하기도 하고 무작위로 학생을 불러 수업을 잘 따라가고 있는지 확인하곤 한다. 규칙적으로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순번으로 학생을 부르는 것보다 무작위로 부르는 것이 훨씬 학생에게 영향이 크다. 이를 이용한 상술도 도처에 널려있다. 예를 들어, 아이돌의 앨범을 구매하면 팬미팅에 응모할 수 있다. 팬들은 이를 위해 필요도 없는 앨범을 수십장씩 구매하곤 한다. 만약 앨범 수십장 가격에 팬미팅 참석권을 판매한다면 팬미팅에서 얻는 만족도가 운 좋게 당첨되어 간 것만큼 크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간헐적 강화는 사회 전반에 녹아들어있다.

이처럼 사회 전반에 녹아들어 있는 간헐적 강화를 이용한 사업 중 특별히 도박만 엄중하게 규제되는 이유는 인간의 인생을 파멸로 이끄는 비율이 가장 높은 사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아이디를 불러주는 것에 큰 쾌감을 느끼고 대출까지 해가며 인터넷 스트리밍 플랫폼에 돈을 탕진하는 사람들이 보도되곤 한다. 폭력적인 파트너에게 매력을 느끼는 이들이 결국은 피해자가 되는 일도 주변에도 잦다. 나와 친구들은 길을 가다 어떤 여성이 남자에게 머리채를 잡히고 얻어맞고 있는걸 보고 이를 말리려 한 적 있다. 그 여성은 우리에게 "씨X, 너네가 상관할 일 아니니까 갈 길 가지?"라고 말했다. 그 남자도 가끔은 다정했나보다.

이처럼 많은 이들의 삶을 망치곤 하는, 본성을 향한 착취에 대한 관심은 앞으로 높아질 것이다. 인터넷 스트리밍 플랫폼에도 결재한도를 두는 형태로 심각한 중독으로 발전하는걸 막으려는 움직임이 있다. 하지만 계속해서 확대된다면 언젠가는 "쟤는 되고 나는 안 돼?"라는 이야기가 나올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본성과 관련한 문제는 정말로 해결하기 어렵다. '무섭고, 무서운 세상'를 읽으셨던 분들은 3.5와 3.51의 딜레마에 대해서 기억하시겠지만 본성과 관련한 문제는 0이 되기가 어렵다. 연애할 때 '밀고 당기기' 전술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규제할 수 있을까? 간헐적 강화를 교육에 이용하는 교사들을 규제할 수 있을까? 규제하는게 옳은 일도 아니다.

확률형 아이템 규제에 찬성하는 측에서 제시하는 또 다른 규제의 근거는 소비자 기만이다. 이는 확률형 아이템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마케팅 전략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착취하여 소비자들의 합리적인 소비를 막는다는 점에서 간헐적 강화와도 맥이 닿아있지만 확률형 아이템과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소비자를 기만한다는 주장이기에 따로 이야기 해보겠다. 단 확률을 실시간으로 조작하여 소비자를 적극적으로 기만하는 경우는 논할 가치가 없으니 따로 다루지 않도록 한다.

사실 소비자 기만은 모든 산업에서 시행된다. 애초에 정가를 높게 써두고 높은 할인율을 제시한다. 그 어떤 시점에도 정가로 팔지 않을 상품이라도 "지금이 아니면 이 가격에 만날 수 없는" 할인 행사라며 적극적으로 소비자들의 눈을 가린다. 지나치게 남발한 마감임박, 주문폭주 등의 멘트는 조롱거리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는 확률형 아이템에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다. 인지부조화를 줄이기 위한 마케팅 전략도 다양하다. 당장 뉴로마케팅이라는 단어는 단어 자체가 신경과학적 본성을 착취하겠다는 의도를 포함하고 있지 않는가. 정책에 대한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당장 '탈원전'에서 '에너지 전환 정책'으로 이름을 바꾼 것만으로도 여론조사 결과가 얼마나 바뀌었는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는 기만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과연 우리는 우리의 본성에 대한 착취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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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게임에 대해 잘 몰라서 확률형 아이템이 뭔가 처음엔 좀 어리둥절했네요. 읽어보면서 알게 됐어요. 도박에는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사실 도박도 어디까지가 중독이고, 어디까지가 재미로 하는 건가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지요. 그런데 도박은 "도박장까지 가서 돈을 내는" 적극적인 행동이 들어가야 했다면, 핸드폰으로 할 수 있는 게임은 집안에서도 터치 몇 번으로 가능하다는 게 좀 더 위험해보이긴 하네요.

간헐적 강화에 대한 예시 재미있게 봤습니다. 밀당도 간헐적 강화였다니, 사람들이 간헐적 강화에 정말 폭~ 빠지나 봅니다.

근원을 따지면, 도박 규제의 근거는 모든 산업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이라는게 참 무섭습니다. 그러고보니 브리님이 처음으로 이해 할 수 있었다고 해주신 제 글이 '무섭고, 무서운 세상'이었지요. 이번 글도 재밌게 읽으셨다니 감사합니다.

확률형 아이템 규제에 대한 어떤 입장도 아니긴 하지만...
인간은 게임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일부 폭력성, 도박성을 게임으로 달래는 것 같습니다. 그 중 하나인 도박성을 더욱 키우기 위해서 확률형 아이템도 도입하려는 것 같네요^^ (잘 모르는 개인적인 의견입니다...ㅎㅎ)

게임으로 달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결국 형태만 다를 뿐 도박이 아닌 것에서 느끼는 쾌감이 무뎌지니 오히려 악영향만 끼칠 뿐이지요.

오히려 불규칙적이고 아무런 보상이 없기도 할 때에 그 행동에 대한 동기가 더 오래 유지한다니 놀랍네요 ㅎㅎ 생각해보면 그럴것도 같습니다. 인간 본성에 대한 착취라 제대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셨네요~

예. 조금 생각해보면 동물에게 왜 그런 본성이 필요한가를 알 수 있지요. 감사합니다.

알면서도 속는일인거 같네요.
지금아니면 이가격에 만날수 없는 행사라는 문구가 뜨면 나도 모르게 장바구에 넣고있는 모습이 선합니다.
오늘 올려주신글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kmlee님의 글을 읽은듯 합니다.
앞으로는 자주 들리도록 하겠습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kmlee님 ★

그러게요. 이전에는 항상 만났는데 플로라가 되시고 나서는 뵙기가 힘듭니다. 명성이 낮으면 Feed에 노출되지 않는다는데 아마 그 문제가 아닌가 싶네요. 앞으로는 페이지에 직접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인간의 욕구충족이 문화의 흐름을 형성하고, 그 문화의 흐름을 규제하기 위해서 문명의 틀이 형성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본성을 착취하고, 이것을 역으로 이용하는 상술적 기법들이 난무한다고 해서, 또 그것을 제지한다고 해서 근원적인 인간의 욕구충족사항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물론 시대마다 그 욕구충족적인 성향은 다르게 나타날 수 있지만, 인간의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력이 대중문화적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해결은 되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맞습니다. 본성에 대해서 대중적으로 깊은 통찰을 거치고 합의에 이르러야 진정 인간이 취해야 할 태도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요즘 대중을 보면, 사색을 통해 도달하는 것보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도달하는게 더 빠르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간헐적 뉴로 마케팅이라... 아이러니 하네요. 착취하고 착취당하고. 자본주의 삶은 어쩔 수 없는것인가요? ㅠㅠ 이번 글도 잘 읽었습니다.

자본주의 뿐 아니라, 인간의 삶이 어쩔 수 없는 것이지요. 감사합니다.

간헐적 강화가 이렇게 많이 작용하는지 몰랐습니다.
육체적 다이어트인 간헐적 단식도 생각나네요.

예전에 타던 셔틀버스 아저씨가 도박 중독이었거든요. 본인도 알아요. 그런데 멈출 수가 없다고 차를 타는 저희들에게 매번 하소연을 하셨죠. 도박으로 가정도 잃고 다 잃었음에도 도박을 계속하는 아저씨가 이해가 안 갔었는데 이런 인간의 본성이 뒤에 있을 수 있군요. 착취하고 착취당하는 ㅠㅠ

뉴로마케팅이라… 무섭습니다.

도박중독을 개인의 책임으로 모는 이들도 있지만 분명 도박은 인간의 본성을 착취하는 산업이기에 저항하기가 어렵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사연이네요.

간헐적 강화라는걸 처음배웠네요:') 근데 kmlee님 말씀이 넘재미있어요. 불규칙한대서 오는 보상을 더 크게받아들이고 그래서 더 오래유지하게되는.. 낚시도..돈만 안걸었다 뿐이지 도박과 아주흡사한 쾌락이였네요ㅎㅎㅎ 글 넘 재미있어요!!

무서운 글인데 재밌으셨다니요! 감사합니다 ㅎㅎ

표현에 '착취'가 포함되어 있어서 거부감이 생길 수 있지만,
실제로 모든 사회체제에는 착취가 근간을 이루고있고
단지 그 착취가 누구에 의해 행해지는 것인가에 따라
평가가 다를 뿐이지요.
착취없는 사회구조는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이
있을정도니까요.
본성에 대한 것도 그저 지배구조에 편입된 것이 아니기에
제재의 대상이 될 수 있는것으로 우리게 강요되는 것은 아닐까요?

잘 읽었습니다.

좀전에 간헐적 강화 글을 읽고 나쁜남자가 생각나 댓글 달앗는데

여기에 예시가 있군요! ㅎㅎ

역순으로 읽어주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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