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rwerq, photo] 오리

in #kr-pet6 years ago (edited)

Seoul, Apr. 2018, Nexus 5x


종종 들르는 곳에 연못이 하나 있는데, 여기에 오리 부부가 나타났다. 아마도 오리 부부일 것이다. 이 녀석들이 자연스레 어디선가 날아온 것은 전혀 아니고, 연못에 잉어들이 너무 많이 살아서 개체수 조절을 위해 가져다 놓았다고 한다. (어디선가 날아올 정도의 위치라면 얘네들 말고도 청둥오리나 두루미나 여러 새들이 같이 날아와서 여기에 자리를 잡아야 하겠지...)


Seoul, Apr. 2018, Nexus 5x


하지만 사람들은 이 연못에 처음보는 오리라며, 열심히 먹을 것을 던져주는 중이다. 그래서 이제는 사람들의 인기척만 있으면 열심히 수영을 하다가도 사람이 있는 곳으로 다가온다. 잡으라는 잉어는 안잡고 열심히 포식 중이다. 쫄레쫄레 따라다니는 것이 참 귀엽다. 이러한 것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사실 육식도 좋아하지만) 얘네들과 슈퍼에서 잘 포장된 훈제오리를 차마 연관짓지 못하겠다. (아니면 눈감고 있는지도 모른다. 쇠고기가 들어간 인도 카레를 바라보는 느낌이랄까...) 냉정하게 바라보면 사람들에게 닿는 동물의 위치는 상당히 관계 지향적이면서 차별적인 특성을 띨 것이다. 나와 관계를 맺은 동물들은 (인간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람의 수준으로 끌어올리지만, 나와 관계를 맺지 않은 동물들은 말 그대로 이용가치가 있거나 없는 순수한 동물의 생애로 남겨둔다. 그러니 애초에 정을 붙이지 않는 편이 속편할지도 모른다.


결국 오리들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안내판이 세워졌다. 예전에는 물가에 다가가면 잉어들이 쫓아왔는데, 지금은 오리들이 따라온다. 사람들이 항상 착하리라는 법은 없는데, 이 녀석들은 사람을 너무 믿게된 듯 하다. 이녀석들에게는 적절한 거리를 어떻게 가르쳐줄 수 있을까, 그런게 가능하기는 할런지 고민이 든다. 그 거리는 이 녀석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꼭 필요한 법이다. 언젠가 알들이 부화하고 새로운 새끼 오리들이 나다닐 광경을 상상한다. 그 때까지 개체수 조절이라는 것이 떠오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람의 개입이 어디까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인가 항상 고민한다.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적절함의 수준이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해보는 시점이다. 우리가 구현하는 적절함이, 얘네들에게도 적절함인지, 그리고 서로 바라보는 거리가 같은지 알기는 참 어려우니까 말이다.

Sort:  

우리 콘도 내 차량 진입로와 각종 움식점 커피숖을 사이에 두고 작은, 아니 정말 작은 인공 연못이 있는데 그곳에는 금붕어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살아여. 필리핀이 항상 그렇듯이, 부자들이 사는 곳에 그들을 위한 관상용으로 물리적인 사이즈나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집어넣은 물고기들은 매일매일 죽어나가고 매일매일 채워집니다. 어린 아이들이 유난히 많은 콘도라 아이들이 틈만 나면 가서 먹을 것을 던져주는데 배터져 죽고 오염되서 죽고ㅜ 사람의 개입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이곳은 좋은 환경을 가장하며 힘없고 작은 것들이 수많은 외국인들과 로컬부자들의 눈요기를 위해 희생되고 있습니다. 다른 공공 장소나 뮤지엄 같은 곳은 시에서 철저하게 관리하는 모양인데, 여기와 같은 사유 콘도는 부자들의 이익을 위해 모든 시스템이 돌아갑니다.

무거운 댓글입니다. 그 작은 인공 연못에서 어떤 미학적 쾌감을 느끼기에, 그들은 금붕어들을 그렇게 다루는 것일까요. 무척 많은 것들이 떠오릅니다. 가끔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가장 잔인해질 수 있는 것이 사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힘 없고 작은 것들이 쓸려나가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쓸려나가고 채워지고 또 쓸려나가고 채워지고 - 반복되는 모습이 정말로 안쓰럽네요. 이럴 때에는 피터 싱어의 책을 잡습니다. 어디까지 관망자의 영역일지, 어디서부터 개입해야할지 고민합니다.

오리와 잉어를 보며 침잠하셨군요. 개인적으론, 인간 관계만으로도 벅찬데 인간 아닌 생명체와 교류하기가 꺼려지더군요. 물론 정확히 그 반대 입장에서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분들도 있지요. 사람과 관계하느니 반려동물과 관계 맺는다거나,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반려동물과의 교감으로 치유하는 분도 있을 (것이고 이유는 다양할) 거예요. 그러나 제겐 그것조차 부담과 거추장스러움으로 다가와요. 생명체를 책임 진다는 것이 너무도 무거운 일임을 잘 알기 때문이죠. 반려동물을 사랑으로 대하며 그들과 너끈히 생활하는 분들을 존경하는 까닭이고요.
얼마 전까지 일산에 살 때 호수공원에 종종 들렀는데요. 그곳에서도 오리와 (대형) 잉어를 만날 수 있지요. 떠나오고 나니 일산 호수공원이 참 좋은 곳이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네요. 그리고, 저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흰 색 오리는 마주치기가 어렵더군요. ㅎㅎ 글 잘 읽었습니다.

'책임'은 정말로 무거운 일인 것 같습니다. 지금은 떠나보냈지만 예전에 반려동물을 키운 적이 있는데, 삶의 일부분이 되면서 좋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참 어깨가 무겁더군요. 하나의 존재와 같이 산다는 것은 정말로 단지 키우는 것 이상의 노력과 관심이 드는 것 같습니다. 반려동물을 마주하고 같이 사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결국 개인의 선택이며, 각자의 취향과 관심과 삶의 여건이 반영될 것이라 봅니다.

반려동물 중에 참 애매한 위치에 있는 동물들이 있습니다. 책임지고 키우는 것은 아닌데, 그렇다고 완전히 방기하지도 않는 동물들이 그렇습니다. 사람 사이에도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살기 쉽지 않다보니, 동물이라고 더 쉬울까 싶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고민이 드는 것 같습니다.

일산 호수 공원은 아주 가끔씩 들르는 곳입니다. 요즘엔 안가본지 꽤 되었군요. 이상하게 저는 그 곳의 가을과 겨울이 그렇게 좋더랍니다. :)

qrwerq님, 정성스럽고 깊이 있는 답변 고맙습니다. 반려동물과 동행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개인의 선택이라는 데 동의합니다. 말씀대로 애매한 위치에 있는 동물들도 있을 겁니다. 겨울의 일산 호수 공원은 가 본 기억이 없는데요. 기회 될 때 가 봐야겠습니다. 답변 고맙습니다. ^^

오리한쌍 너무 보기 좋습니다 ㅎㅎㅎ
사람들이 먹이를 주는건 좋은데 자칫 잘못된 먹이를 먹어서
탈이 나지 않을까 걱정은 되네요...ㅠ

저도 그 점이 종종 우려가 됩니다. 사실 저도 오리가 무얼 먹는지 잘 모릅니다. (잉어를 먹는다는 사실은,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아마 사람이 먹는 것도 먹을 수 있겠거니 짐작만 할 따름이겠지요.

저도 이번 오리 한쌍 참 보기 좋다고 생각합니다. 귀여운 새끼 오리들도 태어났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요즘 qrwerq 님의 글을 읽다보면 '거리' 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이번 글에는 오리(짐승)과 사람과의 거리에 대해 생각하게 되네요 :)

결론은 오리부부 참 귀엽게 생겼다. ㅋㅋㅋㅋ 꽥꽥

결론이 강력 합니다ㅎㅎ 실제로 보면 더 귀엽습니다. 이제는 오리인지 강아지인지 헛갈리는 것 같습니다. (...)

삶을 사는 데에 각 존재들 간에 적절한 거리가 있어야 자유롭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너무 먼 거리는 외롭고 고독하게 만들기도 하지요. 세계의 경계를 그리기 위해, 자유로운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언제나 거리를 조절하고픈 마음이 있습니다. 고군 분투 중이라고 할까요 :)

@qrwerq님은 작은 것 하나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많은 생각을 하시는 것 같아요~^^

좋게 봐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사실 제가 생각보다 마음이 작고 시선이 좁아서 그런지도 모릅니다. (ㅠㅠ) 실은 예민하고 까칠하고 그렇습니다. (ㅠㅠ)

저도 예민하고 까칠대마왕입니다~ㅎㅎ^^;;;

오리 부부 한 쌍을 보고 떠올리는 깊이감이 대단하네요ㅎㅎ
역시!

오늘도 큐레이팅 슥-
사진예술 잘 보고갑니다 :D

고양이도 옳지만 오리도 옳습니다ㅎㅎ 항상 감사합니다 :)

사람이 만든 곳에서 사람의 개입이 아예 없을수는 없겠지만...
잉어가 많다고 오리를 풀고 오리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고 하면 오리들은 다시 잉어를 먹게 될까요..
길들여진다는 말이 좋은 의미와 나쁜 의미가 같이 있는 말인데.. 이 글에서 그걸 생각하게 되네요.ㅎ
그래두 저 부부의 아기들이 생겨 아장아장 따라 걷는 모습은 보고 싶네요.ㅎㅎㅎ

길들여진다는 의미가, 상대에 대한 의존일 것이냐 상대와의 친밀함일 것이냐 - 사실은 이 두 가지 모두의 의미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길들여진다는 게 새삼 무섭습니다.

그나저나 추후에 아기 오리들이 탄생하게 되면 사진에 또 담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애초에 정을 붙이지 않는 편이 ...... “ 정이 무척 많으시고 따뜻한 분인 것같습니다. 순간 가슴이 애리네요. 저는 거의 채식을 하지만, 너무 틀에 얽매이지 않으려 합니다. 자연스러운 최선이라는 것이 가장 어렵습니다 :)

정을 줄 때는 참 좋지만, 결국 헤어짐을 통해 정을 억지로 떼어야할 떄가 저로서는 참 힘이 들더군요. 그래서 이제는 가급적 정을 붙이지 않으려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마음대로 잘 안되네요-

각자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기준이 있으면,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가장 편하고 자연스러운 것 같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원칙은 '불필요한 욕구나 욕망은 굳이 채우지 않는다'라서, 가만히 놓아두고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더 큰 희생을 원하지는 않습니다. 아마 먹는 것에도 그러한 것이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Coin Marketplace

STEEM 0.28
TRX 0.11
JST 0.031
BTC 68734.33
ETH 3745.98
USDT 1.00
SBD 3.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