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결정적 순간

in #kr-pen7 years ago (edited)

ⓒkimthewriter







   “프랑스인은 절대 자살하지 않아!”
   아버지는 그렇게 소리쳤다. 엄마의 장례식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다. 그가 취했는지 어땠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이후로 그는 비슷한 말조차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결코 잊은 적이 없다. 엄마를 죽인 것은 질병이나 사고가 아닌 그녀 자신이었다.

   물론 프랑스인도 자살을 한다. 사실 프랑스인들이야말로 자살의 유혹에 취약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현재의 즐거움을 뒤로 미루지 않는다. 햇볕 좋은 오후에 카페 테라스나 강가에 앉아 술과 커피와 담배를 즐기는 걸 참을 이유가 있을까? 여름 휴가 때, 물론 4월의 부활절과 9월의 만성절 휴가 때도, 니스나 베니스 혹은 모로코로 떠나는 걸 유보할 이유가 있을까? 사랑도 마찬가지다. 상대에게 애인이 있든 배우자가 있든 개의치 않는다. 서로 마음이 맞으면 언제든지 불타오를 수 있다. 그걸 위해 결혼을 두세 번 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삶을 즐길 준비가 돼 있다. 좋아하는 와인 한 병과 담배 한 갑, 최근 가방 한 구석을 차지한 소설책 한 권만 있으면 된다. 우리는 축제를 찾아다니지 않는다. 우리가 있는 곳이 축제의 장이 되니까. 그렇다고 미국인들처럼 미래의 것까지 당겨 써서, 그래서 더 이상 뭘 해야 할지 몰라 온갖 기괴하고 멍청한 짓거리들을 창조하다가, 마침내 스스로를, 아니 그보다는 다른 이들을 그렇게 할 가능성이 높지만, 어쨌든 결국 파멸시키는 우를 범하진 않는다. 우리는 그보다 똑똑하니까. 언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균형의 바다에 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른 나라에 비해 자살률이 높지 않다. 그렇게 낮은 편도 아니지만. 자살률조차 평균에 있달까.

   고개를 끄덕였는가? 반대로 갸우뚱거렸다 해도 상관없다. 위에 한 말은 잊어라. 다 헛소리다. 이곳 역시 우울한 일은 차고 넘쳤다. 상급 대학에 가려고 예비 학교에 들어가 머리 좋은 애들과 경쟁한다. 비싼 등록금은 덤이다. 대학에 들어가면 본격적인 지옥문이 열린다. 최소 석사는 따야 하고, 졸업 전까지 의무적인 인턴십을 몇 번이고 해야 한다. 인턴십 자리를 구하는 건 하늘의 별따기라 일가 친척에 옆집 앞집 이웃까지 다 동원해도 장담할 수 없다. 결국은 비행기를 타야만 한다. 같은 유럽땅이면 그나마 감사한 일이다. 내 친구들 중에는 싱가폴까지 간 녀석도 있다. 그렇게 석사를 따면 비로소 구직 전쟁의 최전선에 뛰어들 수 있다. 운 좋게 직장을 구하고…… 그러면 이제 주당 근로시간을 늘리니 마니 하는 문제로 거리의 행진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그 외의 문제는…… 나도 잘 모르겠다. 사실 위의 일들로 자살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은 없다. 우리는 저런 이유로는 자살하지 않는다. 저런 일은 그냥 좀 성가실 뿐이다. 우리가 곧잘 하는 말, 이게 인생이지, 그렇게 툭 내뱉고 지나갈 수 있는 정도다. 우리가 자살한다면 원인은 아마 정신병일 것이다. 우울증이나, 충동적으로 무언가를 저지를 수 있는 그런 병 말이다. 어느 10대 아이가 살던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는 뉴스를 최근에 들었다. 가족간 불화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 아이가 정신질환을 앓았고 그래서 한동안 학교를 안 나갔다는 얘기에 주목했다. 국가나 사회가 해결해 줄 수 없는 개인적 상실감이 어느 정도에 달해야 자살을 하게 될까? 그 아이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어쨌든 프랑스인도 자살한다. 그게 내가 방금 전 욕조 한가득 받은 물 위로 헤어 드라이기를 떨어뜨린 이유다. 콘센트에 코드를 꽂은 채 말이다. 나는 욕조에 누워 있었다. 죽기 전에 보는 마지막 풍경은 꽤 괜찮았다.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열어둔 창문에, 또 목욕물 위에 투명한 수채화를 그리고 있었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는 끊이질 않았다.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은 또 어떠한가. 지구 역시 살아있다고 할 수 있다면, 존재가 만들어내는 생동감 한 가운데 내가 있는 것이다.

   이 헛소리를 믿는가? 죽기 직전에 누군가를, 혹은 세상을 원망하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노력이었을 뿐이다. 나는 정말이지 평화로운 죽음을 맞고 싶었다. 그게 내가 나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 될 터였다.
   하지만 실상은 어떠했는가. 나는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을 떠올렸다. 그들과의 일화를 하나 하나 곱씹었다. 그들이 내 죽음에 일조한 이유들을 애써 생각해냈다. 그 시작과 끝에는 엄마가 있었다. 나는 정말이지 엄마를 원망하고, 이해한다. 죽음 다음의 일은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어쩌면 그저 나라는 존재가 소멸하는 것뿐이겠지만, 다행히 사후 세계가 있다면, 그래서 엄마를 만날 수 있다면, 나는 그녀와 두터운 유대를 쌓을 수 있겠지.

   “이 순간에 와인이 없다니, 이 무슨 끔찍한 일인가!”
   그렇게 말한 건 내가 아니다. 내 머릿속에서 들린 소리도 아니다. 골치아픈 일들이 자고 나면 뚝딱 해치워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한 때 자아 분열을 꿈꾼 적도 있지만 지금 이 순간 들려온 목소리는 분명 타자의 것이다. 왜냐하면 발화의 주체가 내 눈앞에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환상이 아닌 게 틀림없다. 내 빈곤한 상상력으로는 감히 만들어낼 수 없는 그런 모습이니까.
   그 모습은 완벽했다. 그는 욕조 수도꼭지 위에 발끝을 가지런히 모으고 앉아있었다. 거기에는 중력에 대항하는 어떠한 노력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 관해 설명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그 밖에는…… 잘 모르겠다. 그가 사람이라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아니면 제 3의 무엇인지, 어떤 인종인지, 심지어 옷을 입었는지 안 입었는지, 그런 것조차 나는 알 수 없다. 다만 그가 완벽하게 멈춘 시공간 속에서 내게 말을 걸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 완벽히 멈춘 시공간……. 어떻게 그걸 인지할 수 있었을까? 방금 떨어뜨린 드라이기가 만들어낸 왕관과, 그것을 가시처럼 둘러싼 파란 스파크가 그 어떤 미동도 없이 굳어있고, 날아가던 한 무리의 새들이 파란 하늘에 박제된 것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나는 그들이 몇 마리인지 셀 수도 있다. 그런 시공간 속에 그는 하나의 특이점으로 존재하고 있다. 삶과 죽음이 동시에 그의 두 눈동자에서 빛나고 있다.
   눈앞 존재의 갑작스런 출현과 시공간의 정지…… 나는 이 기이한 현상을 죽음에 이르는 과정, 그 중 첫 번째 단계로 인식했다. 천국이냐, 지옥이냐? 어느쪽 문을 열어줄 것인가. 그 의문은 그가 꺼낸 두 번째 말에 묻혔다.
   “죽는 와중에 경황 없게 만든 것 같군. 하지만 보게나. 이 완벽한 무드를 깨뜨리는, 존재의 부재를. 상상할 수 있겠나? 완벽해질 수 있었던 순간을 망쳐 버리는, 무엇의 없음을? 와인, 와인, 언제나 와인이지!”
   그의 목소리는 어느 순간에는 남자처럼 들렸다가, 쭉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여자로 바뀌었다가, 그것을 눈치챌즈음 다시 남자로 바뀌곤 했다.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하려고 애 쓰다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말이 이어진다는 것, 그리고 내 생각, 내가 머릿속에서 이러쿵저러쿵 말한다는 건 시간이 흐른다는 증거다. 시공간이 정지된 상태라고 여겼지만 사실 나는 얼마간 시선을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내 몸이 움직이지 않는 건 분명했다. 나는 육신에 껌처럼 들러붙은 채 주위를 살피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영화에서처럼 영혼이 빠져 나간 자신을 내려다보는 일은 할 수 없는 것이다.
   “이쯤에서 네가 눈치챘다면 얘기가 좀 더 빨라지겠지. 우리 주변의 시간은 매우 느리게 흐르고 있어. 느린 거지 멈춘 게 아냐. 언젠가 이 푸른 불꽃이 네 심장에 비수를 꽂을 거야.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결국 그렇게 되겠지.”

   그래, 결국 그렇게 될 일이다. 거기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죽음의 순간을 똑바로 마주친 지금, 내가 좀 전의 결정을 후회한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내 다급한 뇌가 꾸며낸 게 아니라면 초월적 존재가 분명한 그의 출현으로 결심이 흔들렸다고 여긴다면 아주 잘못 본 것이다. 다만 그가 아까부터 계속 지적한 사실이 거슬릴 뿐이다.
   “저는 술 안 좋아하는데요.”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내가 놀란 것 이상으로 그는 내가 말한 내용에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게 네가 자살하는 이유야?”
   그는 손을 휘휘 저으며 곧바로 덧붙였다.
   “사실 그런 것 따윈 관심없어. 들어 봤자 공감 못 한다고. 누가 그딴 걸 이해하겠어? 가족? 친구들? 정신과 의사? 집어치우라고.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인생이야.”
   애초에 자살 이유를 어필하고픈 마음이 없었기에 다소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걸 피력하는 건 피하고 싶다. 아무렴 어때.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저 초월적 존재는 이미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와인이든 맥주든 코냑이든 위스키든 내가 술을 즐기지 않는 것을, 언제 죽어도 좋을 만큼 즐기며 살았던 건 아니라는 것을, 남들은 절대 공감 못할, 그들에게는 찌질하게 보일 이유로 죽는다는 것을 그는 안다. 말한다 한들 어차피 죽음은 되돌릴 수 없다.
   “그런 얘기나 하자고 온 건 아니니까 본론으로 들어가지. 미리 말해두지만…….”
   그는 그렇게 운을 뗐다.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든 부끄러워할 거 없어. 마음을 읽는 재주 같은 건 내게 없거든. 그러니 충분히 생각하고 대답해.”
   그는 마치 자신이 대답을 생각해내야만 하는 듯 눈을 감았다. 하려던 질문을 까먹은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드는 찰나 그가 눈을 떴다.
   “딱 한 명. 저승 가는 길동무로 삼을 수 있게 해 주지. 누구라도 상관없어. 지금 살아만 있다면.”

   수많은 얼굴이 즉각 떠올랐다. 욕조에 드라이기를 떨어뜨리기 전에 이미 한 번 떠올렸던 인물들과 그땐 미처 떠오르지 않았던 인물들이 뒤섞였다. 첫 번째는 아버지였다. 우리는 가까운 사이가 아니였다. 아버지는 죽은 엄마를 오랫동안 원망했고, 나는 그런 그를 질리도록 싫어했다. 증오까지 이르지 않은 건 그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약해지고, 그래서 측은지심이 느껴졌기 때문이 아니다. 그저 내가 다른 것에 흥미가 생긴 탓이었다. 고등학교에 올라간 뒤부터 나는 여자애들 꽁무니를 따라다니느라 바빴다. 일렉기타를 잡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 무렵 나는 락 밴드를 하면, 그 중 보컬이 최고지만 노래는 영 잼병이니 그 다음 가는 기타를 치면 인기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건 정말이지 인생 최대의 오판 중 하나다. 여자애들은 락 밴드 따위에는 관심없었다. 그 당시 여자애들의 관심사가 뭐였는지 나도 모른다. 같이 제대로 놀아본 적이 없으니 알 턱이 있나. 정확히 같은 이유로 랩을 시작했던 친구 녀석도 같은 꼴이 됐으니 종목의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어쨌든 대부분을 비슷한 부류의 찌질한 남자애들과 보냈던 고교 시절에서 문득 기억에 남는 애가 있다. 첫 화학 실험 시간에 내게 무안을 줬던 놈이다. 나와 같은 조였는데 그가 무슨 과제의 해답을 찾아냈을 때다. 진짜 똑똑하다는 내 말에 그는 그걸 모르는 게 멍청하다고 했다. 다른 조원들은 침묵했고, 나는 수업이 끝날 때까지 쥐구멍에 숨고 싶은 심정을 고스란히 견뎌야 했다. 하지만 그게 사형을 선고할 만한 일일까? 그건 상대방은 기억조차 못할 작은 사건일 뿐이다. 살아가는 동안 수없이 마주쳐야 하는, 그래서 견뎌내고 털어내지 못하면 오히려 지탄 받게 되는 그런 일들 중 하나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 수치심을 죽을 때까지 극복 못한 셈이 되었지만 아무래도 좋다. 내 면전에서 내가 찍은 사진들을 신랄하게 깠던 사람들에 비하면 그가 준 무안은 너무 오래되고 낡은 거니까. 나는 사진 작가가 되고 싶었다.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인턴십과 석사를 하는 기나긴 과정에서 사진 작업이 없었다면 나는 이미 죽어 있을 것이다. 사진 작가로 성공하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사진 관련 유명한 학교를 나와 전시회를 하고 유명 회사의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유명인들과 협업하는 것으로 이름을 날리는 것이다. 둘째는 사진 관련 유명한 학교를 나와 세계 각지의 분쟁 지역을 돌아다니며 고발적인 사진을 찍어 유명 매거진에 싣는 것이다. 셋째는 사진 관련 유명한 학교를 나와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자연이 만들어내는 기가 막힌 순간을 포착해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보내는 것이다. 유명한 학교를 나오지 않고도 성공할 방법은 있다. 공신력 있는 공모전에서 수차례 입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공모전들은 의례 150유로씩 하는 참가비가 따라붙는다. 나는 매달 한 번씩 1년 동안 공모전에 돈을 퍼부었다. 포트폴리오는 늘어났지만 잔고는 비어갔다. 성공에 대한 의구심이 늘어난 대신 의욕은 사라져갔다. 공모전에 냈던 사진을 그러모아 갤러리들을 돌아다니는 동안 내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였는지 깨달았다. 나는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둔 게 전혀 없었다. 유명한 학교를 나오지 못했고, 수상도 못했으며, 큐레이터들의 마음을 움직일 만한 사진을 찍지도 못했다. 내게 남은 마지막 방법은 소셜 네트워크였다. 권력을 가진 소수가 작품의 가치를 오판한 사례는 셀 수도 없이 많지 않나. 반 고흐가 겪었던, 조앤 K. 롤링이 겪었던 일이 내게 일어났던 게 아닐까. 그렇지 않았나 보다. 인생의 마지막 1년을 공들였던 소셜 활동은 고작 80명 남짓한 팔로워를 끌어모은 것으로 끝났다. 그 중 충성스럽게 좋아요를 눌러준 건 예닐곱에 지나지 않았다. 한 마디로, 대실패다.

   애초에 나는 왜 사진 작가를 꿈꿨을까. 사진 찍는 게 즐거워서, 그 행위를 통해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어서, 유명해지고 싶어서……. 나는 왜 유명해지고자 했을까. 성공해서 부와 명성을 얻는 게 내게 무슨 의미가 있었던 걸까. 실패를 꿈꾸기 보다 성공을 꿈꾸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생각해보면 나는 그저 내 인생의 온전한 주인공이고 싶었던 것이다. 흔히들 자기 인생의 주인공은 자신이라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다. 불공평한 각각의 인생을 대단히 공평한 것으로 포장하는 마법의 말에 불과하다. 누구나 인생이란 무대에서 삶을 연기하지만 역할은 잔인할만큼 칼 같이 나뉘어있다. 이 땅의 주인공은 각국의 지도자, 특히 미국 대통령, 헐리웃 스타, 실리콘 밸리의 신흥 갑부들이지 평범한 우리가 아니다. 우리는 지나가는 행인1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화면에 나오면 다행인 삶들이다. 엑스트라의 도전과 좌절, 분노, 극복, 성공, 실패…….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나는 엑스트라였다. 내 이야기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내 삶에 영향을 끼친 그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을 원망할 이유가 이제는 없다. 여러모로 볼 때 내가 죽일 대상은 나밖에 없는 것 같다.

   “됐어요. 그 정도로 원수진 사람은 없어요. 있다 해도 내키지 않네요.”
   그쯤은 예상했다는 듯 그가 바로 입을 열었다.
   “꼭 네가 아는 사람이 아니어도 돼. 지구 반대편의 아무개라도 상관없다고. 이를 테면 지독한 독재자나 악명 높은 마약왕은 어때? 영웅이 되고 싶지 않나?”
   마음을 읽지 못한다는 건 거짓말이었을까? 그가 내 심중을 정확히 찌른다. 현실에서 가능하기만 하다면 슈퍼 히어로야 말로 가장 특별한 존재 아닌가.
   “별로 당기지 않나보군. 무슨 일이 있어도 사람이 사람을 해쳐선 안 된다는 부류인가? 아니면 선과 악을 무슨 기준으로 나눌 것인가를 고민하는 부류인가?”
   “실질적인 고민을 하는 쪽인데요. 그들을 죽여도 다른 이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어쩌면 더 큰 혼란을 불러오겠죠.”
   “내가 보증한다면? 자네가 하나를 같이 데려가면 천만 명의 사람이 고통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다른 혼란은 없음을 보장하지.”
   갑자기 그들이 부러워졌다. 그 정도로 타인의 삶에, 세상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존재라니. 주인공보다 돋보이는 악역. 최소한 행인1보다는 낫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이야기를 주도해 나가는 위치니까. 그들이 성공하고 내가 실패한 이유는 뭘까. 악명도 명성이라는 걸 내가 인정하지 않아서? 아니다. 그건 이미 알고 있었다. 유튜브에는 그런 사람들이 넘쳐 난다. 나는 그들처럼 살 배짱이 없었을 뿐이다.

   나는 잠시 몇몇 이름을 떠올렸다.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아시아의 독재자와 수많은 사람을 학살한 중동과 아프리카의 군벌들, 거국적인 차원에서 그런 자들을 떠올리다가 사회적으로 떠들썩했던 범죄자들쪽으로 초점을 옮겼다. 아동을 납치해 죽이거나 성범죄를 일삼았던 강력범들,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간 테러범들…….
   “제가 정확히 신변을 모르는 사람도 가능한가요? 예를 들어 도서관 폭탄 테러범이라든지……. 범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거든요.”
   “그런 거라면 전혀 문제될 게 없어. 그 사람으로 하겠나?”
   “아뇨, 아뇨. 가능한지 궁금했을 뿐이에요.”
   어쨌든 이건 명백한 살인이다. 죽음 이후에도 죄책감이 남을까? 그것을 물어보고 싶진 않다. 내게는 아직 두려움이 남아있다. 이 다음에 어떻게 될지 미리 알고 싶지 않다.
   “역시 그만 두는 게 좋겠어요.”
   “그렇군. 잘 알겠어.”
   그럴 줄 알았다는 투였다. 죽는 와중에도 깔보이는 것 같아 기분이 언짢아졌다. 아무래도 그게 표정 혹은 기색, 아무래도 좋다, 어떻게든 드러난 모양이다.
   “죽기 전에 좋은 일 하나 하는 게 어렵지? 억울한 게지. 나는 이렇게 죽는데, 나를 죽음으로 몰고 간 이 빌어먹을 세상에 선물이라니. 가당키나 한 말이야?”
   “아닌데요.”
   “아니야? 그럼 이제 생각해 봐. 너는 여기서 죽는다. 그건 바꿀 수 없어. 그리고 넌 마지막으로 세상에 지대한 공헌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네가 한 일을 알리진 못해. 아무도 네가 영웅적 심판을 내렸다는 걸 모를 거야. 그래서 넌 이제 이렇게 생각하는 거지. ‘그럼 뭐하러?’ 이게 네 머릿속에서 일어난 일이야.”
   “아닌데요.”
   아닐까? 나도 잘 모르겠다. 의식의 영역에선 그런 식으로 논리가 전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무의식은? 그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어떻게 알겠나. 과연 내 무의식은 살아생전의 명성만을 추구하는가? 모를 일이다. 가능성은 있다. 나는 예술가들의 사후 성공을 긍정적으로만 보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이건 다른 차원의 일이다. 많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니까. 주인공의 활약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채 끝나는 영화도 허다하다. 내가 그런 이야깃속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누군가 꼭 죽어야 할까?
   “그냥 도와주는 건 안 되나요? 복권에 당첨되게 하거나, 병을 낫게 하거나, 하다못해 원하는 직장을 구할 수 있게 해 주거나……. 좀 더 생산적인 방향으로요.”
   “오, 그런 쪽이면 된다 이거지? 누구를 어떻게 도와줄 건데?”

   나는 멈춘 것과 다름 없는 기나긴 시간을 할애해 내가 아는 얼굴들을 떠올렸다. 이번에도 아버지가 먼저였다. 아버지는 옛날 집에서 혼자 지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보러 갔을 때 정원은 무성히 자란 수풀과 그 안으로 행인들이 던지고 간 쓰레기로 엉망이었다. 한 때는 하얀 페인트가 눈부셨던 나무 담장은 검은 때와 누런 이끼에 부식되고 있었다. 아버지는 무슨 도움이 필요할까. 집을 다시 말끔히 원상 복구 하는 것? 모르겠다. 집이 어떻게 되든 관심이나 있을까. 엄마가 살아 돌아온다 해도 지금의 그는 별로 신경쓰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누가 있을까. 문득 작년에 만난 여자애가 떠오른다. 그녀는 패션을 공부하러 온 중국인 유학생이었다. 그녀가 좋았다. 잘 웃던 그녀. 그녀의 미소. 나는 끝내 그녀에게 사귀자는 말을 하지 못했다. 믿기지 않겠지만 아시아인을 사귀는 건 별종 취급 받을 만한 일에 속한다. 진짜다. 이곳은 런던이나 뉴욕이 아니다. 언젠가는 결혼하고 싶어- 아이는 둘 가지고 싶어- 정부에서 허용했거든- 그녀는 서툰 프랑스어로 그렇게 말했었다. 얼마 전 그녀의 근황을 건너건너 들었다. 그녀는 중년의 프랑스 남자, 솔직히 나는 그가 프랑스인이 맞는지 의심스럽지만, 아무튼 그와 함께 툴루즈로 떠났다. 그는 특별한 직업 없이 그녀의 유학자금으로 놀고 먹었다. 그녀는 학교를 그만뒀고, 임신을 했다. 모든 친구들이 뜯어말리고, 급기야 집에 알리기까지 했지만 소용없었다고 한다. 한때는 코코 샤넬을 꿈꿨던, 지금은 놈팽이의 애인인 그녀를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유명 공모전 수상? 샤넬 디자이너 입사? 그 꿈은 그녀에게 여전히 유효할까. 그렇다고 해도 그걸 바라는 게 맞을까? 국적불명의 놈팽이는 그녀를 이용해먹을 것이다. 도리어 그녀의 안전도 위험해질 수 있다. 그리고 애초에…… 그녀는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째깍째깍.”
   눈앞의 존재가 시간을 움직인다. 창밖의 새들은 미동도 없는데, 드라이기에서 일어난 스파크가 수면을 타고 내 가슴팍으로 기어온다. 숲에서 뱀과 마주치면 쭈뼛 소름이 돋고 몸이 굳는다는 데 지금이 딱 그짝이다.
   “미안하지만 마지막 선택의 순간이야. 앞서 제안한 옵션은 잊어. 그건 이미 기한이 종료됐으니까.”
   그는 뱀처럼 웃으며 말했다.
   “사실 진짜는 이거지. 얼마 안 있으면 소행성이 날아와서 지구와 충돌할 거야. 지금껏 아무도 발견 못한 게 신기한 일이긴 한데, 인간은 누구든 실수할 수 있으니까. 하필 그 실수가 이것인 게 치명적이긴 하지만. 아무튼 너에게 결정권을 줄게. 너는 이 충돌을 막을 수 있어. 아까 우리가 고려했던 군벌과 테러범, 독재자, 마약왕들을 죽인다는 옵션은 날아가는 거야. 그들은 살아남아. 그들이 만든 생지옥도 여전히 존재하겠지. 대신 인류, 아니 모든 생명은 잠시간의 삶을 이어갈 수 있어.”
   “잠시간?”
   “인류가 수억만 년 존재할 거라 생각한 거야? 별도 수명이 있다는 건 이제 상식 아닌가? 태양이라는 불이 꺼지면 프로메테우스가 훔쳐온 불도 꺼지는 거야. 그게 세상 이치라고.”
   그는 짧게는 수천만, 길게는 수억 년 후에 일어날 일을 말하고 있다.
   “다른 선택은 뭔데요?”
   “충돌을 안 막는다는 거지, 당연히.”
   “그게 어떻게 당연해요? 막는 게 당연하죠!”
   “막는 게 당연하다고?”
   그는 기가 찬 듯 말을 이었다.
   “너무 오래돼서 잊은 모양인데 너는 곧 죽어. 그리고 네 죽음이 덜 억울해질 기회가 주어졌어. 그런데도 망설임 없이 저쪽을 선택하겠다고?”
   “그래요. 솔직히 말하면 저라고 이렇게 죽는 게 속 시원한 결정은 아니에요. 그렇다고 무고한 사람들을 끌어들일 순 없어요.”
   “그들은 너와 상관없지, 안 그래?”
   “세상에는 아직 제 가족과 친구들이 있다구요.”
   “그들에 네게 무슨 의미가 있는데? 널 위해 뭘 해 줬는데?”
   이쯤에서 나는 그의 정체가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는 천사일까 악마일까. 아니면 그보다 초월적인 존재일까. 아니 사실 그보다 형편없는 존재일지 모른다.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내 상상력이 만든 허상. 죽음에 이르는 순간, 마지막 불꽃처럼 뇌가 제 기능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일종의 주마등처럼. 그렇다면 어떤 선택을 하든 무슨 상관이랴.

   상관이 없을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것이 허구든 아니든 결정은 내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다. 나는 아직 죽은 게 아니므로, 죽는 순간까지 안고 가야 할 것들에는 책임이 있다. 게다가 일말의 가능성, 그가 실재할 가능성을 배제하는 건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은 인생에서 유일한 초자연적 경험이라 비교할 데이터가 없다. 무조건 아니라는 쪽에 거는 건 도박일 뿐이다. 다시는 재기 불가능한 올인. 내게는 아직 두려움이 남아있다.
   “다시 말하지만 네가 지구를 구해도 그들은 1도 몰라. 네가 한 고민 따위 1도 모른다고. 너는 청년 자살자 중 하나로 집계되는 게 고작이야. 네 죽음은 그들에게 아무 의미도 없어.”
   그럴지도 모른다. 나는 사람들 주변에서 겉돌다 간 어떤 남자로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는 그조차 희미해져서 아무것도 남지 않겠지.
   “한 번 더 상기해 주자면, 이 소행성이 날아오는 건 아무도 몰라. 충돌할 때까지. 네가 오늘 자살하지 않았다면 너 역시 몰랐을 테지. 원래는 다들 죽는 게 자연스러운 일정이라는 얘기야. 그래도 막을 거야?”
   그녀는 산다. 그녀의 아기도. 놈팽이 역시 살아남겠지.
   내게 사진은 취미로 하라던 큐레이터도 산다. 그녀의 권력도 당분간 이어지겠지.
   화학 시간, 나를 무안케 했던 그 녀석도 산다. 아니 그건 장담 못한다. 고등학교 이후 그의 소식을 들은 적이 없으니까. 그가 지금 살아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아버지. 그는 아무 잘못이 없다. 그는 엄마가 죽은 후에도 착실히 생활했고, 내 대학 학비와 생활비를 책임졌다. 그는 모든 의무를 다했다. 그가 엄마 몫까지 할 책임은 어디에도 없다. 그건 먼저 간 엄마의 몫이고 책임이다. 그가 아직 살아있는 것에 나는 감사한다.

   “결정의 순간이야, 친구."
   뱀처럼 교묘한 미소는 가고 진지한 얼굴만 남았다. 초월적 존재는 자기가 허상이 아님을 증명하려는 듯 심중을 꿰뚫는 눈빛으로 나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 눈빛이 내 안에서 수렴될수록 나는 오히려 그 존재와 나를 분리하는 데 이질적인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눈앞의 존재가 실존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보다는 내 결정이 어느 쪽으로 흐르느냐가 더 중요했다. 나는 최대한 무의식에 주도권을 내줬지만, 그렇다고 의식을 방관자로만 놔두지는 않았다. 그건 다소 무책임하게 여겨졌기에 의식이 관여하고 있음을 때때로 드러내야 했다.
   나는 시간을 들여 내 삶을 다시 돌이켜보았다.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혹은 원망하지 않으려 하거나 하던 일은 이제 중요치 않았다. 어쩌면 내 삶은 지금의 결정을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겪은 모든 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서, 나를 낳기까지의 엄마와 아버지가 겪은 우여곡절, 또 그들을 낳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삶, 그들에게 영향을 준 모든 사람의 그것이 지금의 나를 만든 거니까. 그렇다면 태초 이래 모든 인류의 삶이 내 어깨 위에 있는 것이다.

   “결정했어요.”
   내가 어떤 결정을 했는진 굳이 말하지 않겠다. 결말을 아는 영화는 재미가 반감되기 마련이니까. 기억나지 않는 많은 일들이 죽음에 닿는 순간 살아나 결정을 후회하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까지는 어쩔 도리가 없다. 나는 인간이기에 인간의 한계 안에서 생각하고 판단할 뿐이다. 그것이 내게 결정을 요구하는 존재가 바라는 일 아닐까. 나는 아직 살아있고, 살아있는 존재다. 인간을 넘어선 결정은 지금은 할 수 없다.
   내게는 초월적으로 느껴졌던 그가 실존하는지 어떤지는 나도 잘 모른다. 그의 실존과 내 결정이 어떠한지는 당신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당신이 내일 아침 눈을 뜰 수 있다면. 그 다음날, 또 그 다음날 아침에도 눈을 뜰 수 있다면 당신은 점차 확신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오늘 일어나지 않은 일이 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법은 없다. 그가 말했듯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으니까. 지금 이 땅에는 살기를 원하는 사람만큼 죽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다. 영원한 삶을 꿈꿀 만큼 아름다운 세상인 동시에 당장 공멸하기를 바랄 만큼 끔찍한 세상인 것이다. 양쪽이 만족할 결정은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건 아마 죽어서도 못할 것 같다.
   이런 나라서 미안하지만 부디 내가 한 결정이, 초월적 존재의 실존 여부가 당신에게는 유익한 것이기를. 그래서 행여 내 존재가 당신에게 약간이라도 인상적이었다면, 부디 기억해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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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r Up!

  • from Clean STEEM activity supporter

잘 읽었습니다.
마치 외국 작가의 글을 읽는 기분이었어요. 프랑스가 나와서가 아니라, 문체가 그렇게 느껴지네요. 개인적인 느낌이니 크게 신경쓰진 마세요. ^^;

정확히 보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잘 번역된 문학작품의 번역체'를 좋아하는 탓에 제가 수용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그런 느낌으로 쓰거든요. 개인적으로 이걸 좋아하시는지 싫어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한 번은 교정하시는 분이 이 문체를 다 갈아엎어서 저도 출판 계획 자체를 엎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처음에 '번역 투의 문장'처럼 보인다고 쓰려다가, '번역 투'라는 말이 기분 나쁘실까봐 '외국 작가의 글'이라고 돌려 썼습니다. ^^; "잘 번역된 문학작품의 번역체"를 지향하시는 군요. 전 한글로 쓸 때와 영어로 쓸 때가 다른데요. (영어로도 글을 쓰고 싶어서요. ^^) 한글로 쓸 때는 그냥 자연스러운 한글을 좋아하지만, 영어로 쓸 때는 딱 저 문체의 영어판을 좋아해요. 그러니까 굳이 표현하자면 '번역하기 전의 원본' 같은 느낌이랄까요. ^^;

저는 처음에 번역투를 철저하게 지양하다가 그런 방식이 대중의 언어와는 너무 동떨어져있다는 걸 깨닫고 적당한 선에서 수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습니다😅 이걸 두고 언어의 확장이나 오염이냐 교정교열자들 사이에서도 입장차가 있습니다. 제 기준에선 번역투를 적절히 쓰는 게 더 일상어에 가까운, 자연스러운 느낌으로 다가오네요 :)
완전 번역체를 흉내내려는 건 아니지만 하드보일드가 베이스인 점에 국내 작가들은 가급적 배제하는 주어 사용 빈도가 높은 것도 더 번역체처럼 보일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듭니다 ^^;

프랑스인이라기 보다 일본인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례한 감상평이 아니길.

괜찮습니다. 글이 손에서 떠나면 감상은 온전히 독자의 몫인 걸요. 고정관념상의 일본인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프랑스인도 개인차를 떠나 세대별 민족별의 전형이 많이 다르다는 걸 차치하고도 말이죠.

워낙 일본이 프랑스를 동경하니 실은 별 차이가 없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전반적인 성향을 놓고 볼 때 한국인을 가운데 두면 프랑스인과 일본인은 양극단에 있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 통계입니다😅

문학에서 나타나는 성향은 굉장히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 소설과 일본 소설은 굉장히 비슷한 느낌인데요. 현지에 계신 분께 프랑스의 느낌을 운운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긴 합니다.

스테레오타입으로만 다룬다면 모를까 저는 여전히 '이곳은 이래, 이곳 사람들은 이래' 정의내리는 걸 경계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구요. '지금까지 내가 겪은 건 이랬어' 정도로만 얘기할 뿐입니다. 일본 문학은 크게 관심없어서 몰랐는데 한 번 비교해보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처음에 답변한 것도 국적이나 인종에 따른 감상이 아니었습니다. 일본 문학에서의 "일본인"이라는 의미였는데, 워낙 표현력이 부족해서 평소에도 손짓, 발짓 해가며 겨우 의사소통하는 사람이라 표현이 서툴렀네요.

아.. 제가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그 부분도 캐치를 했었는데 말이죠. 표현이 서툰 건 저인 것 같습니다^^; 일본 문학에서의 일본인이라는 건 자의식 과잉적 인물로 해석하면 될까요? 첫 댓글 주셨을 때 딱 그 말씀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노을이 정말 이쁘게 방안으로 들어오네요. 빛이 신비로운 느낌입니다.
소행성의 충돌을 막아서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네요. ^^
기억하겠어요. :)

이야기의 배경인 욕실의 창문입니다 :D 욕조에 누우면 각도가 달라지지만 파란 하늘이 보이는 게 또 나쁘지 않죠. 저도 저 친구를 기억하며 오늘도 감사한 마음을 한 구석에 담아두고 있습니다 :)

잘 읽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숨 죽이고 읽었네요.
특히 마지막

부디 기억해 주기를.

이 글을 읽는 순간 다른 어딘가에서 정말 누가 겪은 일인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네요. 이 작품의 제목은 정하셨나요?

게시글 제목인 '결정적 순간'이 작품 제목입니다. 재미있게 읽으신 것 같아서 기쁘네요 :) 감사합니다!

아 저게 제목이었군요ㅋㅋㅋ 링크 타고 들어올 때는 아무 생각없이 들어왔다가 다 읽고 나니 궁금해졌었네요. ^^;
짧고 자극적인 글이 난무하는 인터넷 공간에 단비같은 글이었습니다! 앞으로 단편도 많이 올려 주세요 :)

과찬에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재밌게 즐겨주셔서 기쁠 따름입니다.

갑자기 있어빌리티가 폭발하는군요. 이게 제 신통력입니다.

제 말이 틀리지 않았죠? 역시 능력자이십니다👍

시체 되시기 전에 성공하셨군요. 저는 정착에 4개월은 걸린 것 같은데 호강하시는겁니다. 분위기가 통 흉흉한 것 같아도 옛날보단 낫습니다. 옛날 얘기는 눈물 없이는 시작도 못 합니다.

운 좋게 대호황기에 들어와서 덜 고생한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어제인가 오늘인가 스팀 1/40 토막났었던 글도 봤습니다. 그때를 버티고 지금껏 일궈주신 분들이라 셀봇 문제도 마냥 비판하기엔 뉴비 입장에선 좀 애매합니다. 히스토리를 정독해도 머리로 이해한 것과 체감한 것은 다르니까요. 계속 공부 중입니다.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신경 쓰신다고 바뀔 일도 아니고, 오히려 불에 기름 붓는 격이지요. 개인적으로 피드에 너무 격한 감정이 넘치는 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한명쯤은 느긋하게 남아도 좋다고 생각해요. 그냥 별 일 아니라 생각하시고 제가 보팅파워를 소모하게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네. 저도 오늘은 사태 파악하는 선에서 그치고, 나머지 시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좋은 글 찾는 데 쓰려고 합니다.

스팀잇에서 단편 소설을 읽게 될 줄은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굉장히 몰입해서 읽어서 기분이 좋네요. 저는 언제나 해피엔딩을 좋아하는데 이런 새드 엔딩(어쩌면 메리 배드 엔딩일까요? 결국에는 화자가 선택한 대로 자신이 뜻하는 바를 이루었으니까요)도 읽는 맛이 있네요. 재미있게 읽었어요. 감사합니다.

저도 해피엔딩을 선호하는데요. 특히 영화는 새드/배드/열린 결말 보면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아서요. 근데 소설은 그나마 영화보단 충격이 덜 느껴지요. 재미있게 읽어주져서 감사합니다. 종종 놀러오세요 :)

누구를 죽이거나 누구를 돕거나, 아니면 그러한 선택이 아무런 의미가 없을만큼의 세계의 붕괴를 바라거나. 그 세가지의 선택 중 하나를 죽음 앞에서 해야한다면, 그 초월적 존재는 그러한 선택을 목전에 둔 인간의 반응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그 존재는 권태를 잊기 위해 그러한 놀이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군요.

세계는 아직도 돌아가고 있고 다양한 삶과 죽음과 운이 존재합니다. 아직까지 세번째 선택은 6천5백만년 전 이후로는 없는 모양입니다. 혹은 그 존재가 그럴만한 힘이 없거나요.

잘 읽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권태감을 느끼는 신이 컨텐츠에 종종 등장하는 걸 보며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신이라면 그런 권태를 느낄 틈이 없을 것 같은데... 뭐 신도 자기 나름의 입장이 있겠지만요😂

마치 번역한 것 같은 문체로 쓰는 창작소설이라.. 외국어를 전공한 문학도라면 한 번 쯤은 해봤을 만한 상상이자 목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한때 볼테르와 시몬드보붸르, 붸르나르 붸르붸르를 좋아라했던 일인으로써 님의 포스팅을 발견하게 되어 아주 땡 잡았다 생각되어 글 남깁니다

continuez votre bon travail!

vous parlez français ? super ! 사실 이 글은 화자가 프랑스인이라 의도적으로 프랑스식 문체를 써서 더 오버한 경향이 있습니다 ^^; 말씀하신 작가들은 저도 한때 좋아했습니다 :) 자주 들러주세요. merci bc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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