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 문명의 두 얼굴

in zzan4 years ago

오늘도 엘리베이터 앞에 모인 사람들을 지나쳐 계단으로 향한다.
집에서도 그렇고 회사에서도 계단을 이용했다. 언제나 계단을
이용하는 그를 두고 처음엔 의아하게 생각했고 별종이라느니
사람에 운동중독이라느니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그런다느니 하며
꽤나 쑥덕거렸다.

이 삼 층이면 모르지만 그 이상이면 다리도 아프고 힘도 들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고 싶은 충동이 일기도 했다. 그 때마다
악몽이 떠올라 머리를 흔들며 주먹을 쥐었다. 깊은 숨을 쉬고
다시 힘을 내어 묵묵히 걷다보면 가고자 하는 곳에 도착했다.

고등학교 때쯤으로 기억한다. 계단을 이용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하며 한 계단에 수명이 얼마씩 늘어난다고 했고 밟으면 음악이
나오는 계단도 생겼다. 매일 계단을 걸었다. 그 덕에 대학에
입학하고 엠티에서 단연 돋보였다. 피구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이
면서 선배들 눈에 띄고 이후 모든 게임에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지칠 줄 모르고 뛰는 그를 서로 자기 동아리도 오라고 러브콜이
줄을 이었다.

그 인기는 군대를 가면서도 빛을 발휘했다. 휴가를 나온 친구들이
들려주는 무용담으로 어느 정도의 공포를 안고 갔던 논산훈련소는
한 겨울 추위가 맞아주었다. 처음으로 술을 따라주시며 남자답게
잘 참고 견디면 금방 지나간다는 아버지 말씀을 기억하며 열심히
했다. 그 결과 중대장 훈련병으로 언제나 열심이던 그는 동료들의
부러움 속에 수료식에서 소장 표창을 받았다.

지금의 여친과는 등산모임에서 가까워졌다.
처음부터 여친이 등산을 좋아 했던 것은 아니라 친구를 따라
나선 날 호감을 갖게 되었다. 남들처럼 커피라도 한 잔이 식사가
되고 영화도 보고 여행도 가면서 서로를 알게 되고 가까워졌다.
서로의 모임에 동행하게 되고 등산도 자주 따라 다니게 되었다.

마음이 가까워지면서 모든 것을 공유하고 싶은 단계에 이르렀다.
여친에게 프로포즈를 했고 늦은 시간 집까지 바래다주면서 잠깐
들러 차 한 잔 마시기로 했다. 여자 형제가 없는 집에 여자만의
공간은 상상 속에만 존재했다. 더구나 혼자 사는 여자의 집을
방문하는 일은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주차장으로 들어서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그동안 여친을 집까지
바래다주는 일은 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주차장 분위기가 왠지
모를 긴장감이 돌고 오피스텔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차들이 줄지어
있었다. 경찰차의 경광등이 주차장 벽을 훑고 지나갔다.

노란색 바탕에 새겨진 폴리스라인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이곳이
범죄현장 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변심한 동거녀를 살해했다는
얘기를 뒤로 하고 자신의 집으로 여친을 데리고 갔다. 그곳에 여친을
두고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여친은 불안한 내색을 애써 감추면서도
다른 선택을 할 여지가 없었다.

휴대폰을 대자 스르르 문이 열린다. 습관처럼 엘리베이터를 지나쳐
가려는데 여친이 잡은 손을 당기며 의아하게 바라본다. 그제야 아직
둘 사이에 다가가지 못한 거리가 느껴졌다.

예쁜 옷을 입은 엄마는 현관에서 뽀뽀를 했다.
“우리 아가 맘마 먹고 할머니랑 잘 놀아, 안녕!”
손을 흔드는 엄마를 따라 가고 싶었다. 울면서 매달리면 할머니는
엘리베이터 앞까지 나를 안고 갔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아무리
울면서 엄마를 향해 손짓을 해도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고 엄마는
조금씩 사라지고 보이지 않게 되었다.

아침마다 엘리베이터가 엄마를 빼앗아 갔다.
어린이 집을 가게 되면서 노란 버스가 할머니에게서 떼어놓았고
버스 유리창을 두드리면서 울면 할머니도 눈물을 훔쳤다. 엄마를
졸랐다. 엄마 조금 더 보게 엘리베이터에 유리문 달려 있는 집으로
이사 가자고 졸랐다.

재미있게 놀고 있는 아래층 세미를 데리고 간 것도 엘리베이터 였고
어느 날 눈을 감고 대답도 안 하는 할머니를 데리고 간 것도
엘리베이터였다. 할머니는 그 후 다시 우리 집으로 오지 않으셨다.
오래 전에 본 외화 타워링에서 엘리베이터의 문이 서서히 닫히면서
눈앞에서 사라지는 페이더나웨이의 모습을 바라보던 폴뉴먼의 모습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전철의 슬라이딩도어가 엘리베이터를 연상하게 하면서 근육에 경련이
일기도 여러 번이었다. 전철을 타고 내릴 때 차라리 눈을 감고 싶었다.
취업을 하고 바로 차를 사게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 였다.

“당신을 남겨두고 가지 않아.
지금부터 같이 타고 같이 내릴 거야!”

여친이 단호하게 손을 끌고 엘리베이터 앞에 선다. 깍지 낀 손으로
상향 버튼을 누르고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면서 손을 꼭 쥔다. 문이
열리자 재빠르게 탄다. 그의 손가락을 끌어 직접 층수를 누르게
한다. 엘리베이터가 미동과 함께 움직이기 시작하자 문을 닫고 와락
끌어안고 포옹을 풀지 않았다. 동공으로 로즈마리향이 스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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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좋습니다.
"그 결과 중대장 훈련병으로 언제나 열심이던" 군대 안다녀온 티가 확 나타나는 이 부분만 수정하면 최고의 작품입니다.

잘 보았습니다.

미필자 정곡을 찌르시는 한 마디세요~^^;;

저 징집 면제 받았습니다.^^

시간 공간 추억 속으로...

상상과 현실을 연결하는 통로~!

짠~! 💙 합니당~!

편안한 밤 보내셔유~!

!MARLIANS

항상 행복한 💙 오늘 보내셔용~^^
2020 스팀 ♨ 이제 좀 가쥐~! 힘차게~! 쭈욱~!

엘리베이터가 편하긴 하지요.^^

재밌게 읽었습니다.
멋진 작가님이셨네요.
야릇한 상상을 했고 엘리베이터에 무거운 기억 ~~
평은 잘 못하니 이해해 주시고요 재미있었다는게 중요^^

워킴맘에겐 가장 힘든 일이 되겠지요.
이미 좋은 평을 해 주셨습니다.^^

작가님 작품은 언제나 헤어나올 수 없는 매력이 넘쳐요^^
오늘 하루도 즐겁게 보내세요~!

그렇게까지요.
저는 육아일기에서
사랑에 흠뻑 빠집니다.^^

산문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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