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 납량특집 - 산사람 5

in #busy6 years ago

DOOR2.png

지한은 단이에게 전화한 이유를 자문해 보았다. 그러자 노주와의 이별이 떠올랐다. 헤어지자고 말하며 펑펑 울던 그 모습은 낯선 것이었다. 그녀와의 키스는 매우 불쾌한 경험으로 남아있고 지한은 노주에게 몰입한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후각이 간직한 기억은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냄새, 그것이었다. 괴물은 그렇게 지한의 추억마저 윤색하고 있었다. 내면의 괴물을 불러내기 직전 왜 노주의 모습이 떠올랐을까. 왜 그녀를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어 했을까. 지한은 그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단이에게 전화한 이유도 알 수 없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는, 단이와 함께 가는 게 혼자 기차를 타고 가는 것보다는 낫겠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소래옥에서 돌아온 후 서울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다. 그곳은 대낮에도 어두컴컴하지만, 공기는 바싹 마른 솜이불 같은 느낌이었다.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코를 자극했던 향기는 다음날 하산하기 전까지도 은은하게 남아있었다. 지한은 그 향기가 무엇에서 비롯된 건지 아직 몰랐다. 치유 받는 느낌! 지한은 이렇게밖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내면의 괴물에게 쫓기기도 하고 대항하기도 하면서 지한이 받는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었다. 그러나 소래옥에서의 하룻밤은 불치의 환자가 생명을 이어갈 수 있게 해주는 새로운 치료법이었다. 소래옥이 부른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곳에 가서 치유 받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지한에게 남겨진 도시에서의 하룻밤은 더없이 길어지고 있었다.

지한과 단이는 지리산 자락을 앞에 두고 차에서 내려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굳이 너까지 올라갈 것 없다고 했지만 단이는 막무가내였다. 한 시간쯤 오르자 단이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동안 운동했냐?

단이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지한을 보고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회사를 뛰쳐나오기 전에는 식은땀 흘리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었다. 아무렇지 않게 거친 산을 오르는 지한의 모습은 단이에게 생소함을 넘어 경이에 가까운 것이었다.
집을 나서기 전 지한은 남아있던 생 선지를 남김없이 마셨다. 이 정도면 하루 이틀은 충분히 버틸 수 있었다. 문제는 소래옥에 도착한 다음이었다. 산 중에서 갈증을 해소할 방도가 없다면 큰일이었다. 그러나 지한은 그곳에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 같은 기대만을 막연하게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아직 절반밖에 오르지 않았다. 단이의 속도에 맞추자니 지한은 마음만 급해지고 있었다.
거의 도착할 즈음 소래옥의 향기가 먼저 마중 나왔다. 며칠 전 답사 아닌 답사를 할 때 지한을 치유해 주었던 그 향기였다. 기와를 얹은 고택에는 어울리지 않는 소파에서 잠들었지만, 심한 갈증에 잠이 깼던 예전 그날 이후 가장 편안하고 안락한 밤을 보냈었다. 지한은 날아오를 듯이 뛰어서 마당에 들어섰다. 그리고 그날 아침처럼 깊게 심호흡했다. 헉헉대며 따라 들어온 단이는 갑자기 코를 막더니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윽, 이게 무슨 냄새야!

왜 그래?

비린내 같은 거 안 나냐? 곰팡내 같기도 하고. 햇볕도 하나도 안 들잖아.

...

습기 장난 아니겠는데. 여기서 어떻게 살려고 그래?

지한은 인간과의 거리가 더욱 벌어졌음을 실감하며 말했다.

벌레는 없잖아.

둘은 청소를 간단하게 끝내고 마루에 걸터앉았다. 새소리에 실린 계곡의 물소리가 시원한 바람과 함께 마당을 질러가고 있었다. 단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해외 발령 났어. 조만간 나갈 거 같아.

잘됐네. 나가고 싶어했잖아. 얼마나 가는데.

3년. 내가 3년 동안 투자하는 셈 치고 저기 산 밑에 집 하나 살 테니까 거기서 사는 건 어때? 여긴 농사 지을 땅도 없잖아. 도대체 뭐 먹고 살려는 거야? 나야 땅값 오르면 좋고 너는 농사라도 지을 수 있으니 좋고.

지한은 못 들은 체했다.

너 내일 출근해야지. 내려가자.

섭섭함에 잠시 침묵하던 단이가 뭔가 결심한 듯 고개를 들었다.

저기 볕 좋은 데서 며칠 쉬어가면 좋겠다. 이 집은 말고. 에잇, 그래도 일은 해야지. 내려가서 밥이나 먹자. 아까 역전 지나는데 콩국수 집이 있더라고.

지한은 밥 먹자는 제안까지 거절할 수 없었다. 시골 콩국수 집이 의외로 맛있다며 단이는 국물까지 싹 비웠다. 해외 근무 끝나고 돌아오면 여기서 콩국수나 한 그릇 다시 하자는 말을 남기고 단이는 돌아갔다.

1부 끝...

산사람1
산사람2
산사람3
산사람4

Sort:  

주말에 시간내어 정주행해야겠어요! ㅎㅎ
유피님 더운데 고생많으시죠?
푹 쉬시고 내일도 화이팅입니다! ^^

날씨 진짜 덥습니다. 밖에 있다가 주방에 들어오면 후끈합니다. 이제 여름 시작인데 큰일이에요..ㅠㅠ

주방은 진짜 상상하기조차 힘드네요.. 지금 열심히 살면 나중엔 좋아지겠죠?? ㅎㅎ 그렇게 믿고 오늘도..ㅠ.ㅜ
유피님도 화이팅입니당!

Hi. %6 upvoted. Send 0.5 SBD To capari URL as Memo , Resteem to 20.100+ Followers ,and upvote,Upvote with min +34 accounts Upvotes. Good lucky...

아직은 남량이 아닌데요 ㅎㅎㅎ

그게 문젭니다. 걸기는 거창하게 납량이라고 걸었는데 전혀 무섭지 않아버렸습니다.

인간적인 뱀파이어...짠해요. 지한이 어서 뱀파이어로 살기를!

속 시원하게 그래야 할까봐요..ㅎㅎ

3년 전 지리산 들어올 때 이야기인거죠? 헷갈리네요 ㅎ
다시 정주행해봐야겠어요;;

맞습니다.. 필소굿님은 알아봐 주시네요..ㅠㅠ
이런 식의 구성은 아닌 듯 해요.. 제가 봐도 이해하기 어려움..

ㅎㅎ 제가 착각한건가 했는데 맞았군요
뭐든 시행착오는 있는 법이죠 ^^

소설을 쓰고 계셨네요.
무서운 걸 너무 싫어하지만, 그래서 납량특집이라고 써 있어서 주저했지만, 앞에부터 읽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렇게 친구의 안부가 궁금해 지리산까지 따라와 사는 곳을 확인하고 3년간 일하고 돌아온 단이를 콩국수 먹다말고...ㅜㅜ
무서웠지만, 우선 참고 정주행했습니다.
무섭지만, 2부도 기다려 보겠습니다.

이야기 구성이 엉성해서 다른 분들은 뭔 얘긴지 잘 모르시던데 다행스럽게 알아봐 주시는 분도 계시네요..ㅎㅎ 고맙습니다.

1편부터 다시 봐야 겠어요.
1편은 단이가 돌아온 장면이던데 .. 제가 머리가 나빠서 ㅎㅎㅎ

시점이 빨라진 거에요..ㅎㅎ 제대로 보신겁니다.

냄새에 민감하면 정말 힘들겠어요
시도 때도 없이 피 생각이...;;;
저는 소리에 예민한 편인데 그것도 좀 힘들 때가 많....
근데 지금 제가 왜 이 댓글을 쓴 거죠?!

사실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설정할려다가 말았어요. 첨 쓰는거라 그렇잖아도 머릿속이 복잡한데 이것저것 끌어오면 정신없을 거 같아서요. 지한이에게도 소리까지 민감해지면 성질을 자주 부릴 거 같아서 참아달라고 그랬어요..@@@

결석을 좀 했더니 몰아 볼 수 있네요^^;;
2부 기다립니다~!!

넘 오래 비우셨는데요..ㅎㅎ
그래도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단이가 안전해서 다행입니다...3년전이라 지한이 그때는 갈증을 참을 수 있었겠군요.

첫장면에서 이미 죽은 게 안타깝지만,, 소설이니까 이렇게라도 출연시켜야죠.. 가뜩이나 등장인물도 별로 없는데요..ㅎㅎ

Coin Marketplace

STEEM 0.17
TRX 0.13
JST 0.027
BTC 60133.79
ETH 2686.90
USDT 1.00
SBD 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