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 납량특집 - 산사람 1
갈증을 참아야 했다. 햇볕 속으로는 발을 들여놓고 싶지 않았다. 그늘이 내린 곳이라면 아무데나 주저앉을 작정이었지만, 저기 코너에 보이는 느티나무 그늘까지는 참고 걷기로 했다.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 시골 인심처럼 투박한 작은 평상에 자리를 잡았다. 부서지는 햇살을 원망스럽게 응시했다. 담쟁이덩굴이 담을 넘지 못하고 축 처져서 벽을 간신히 붙들고 있었다. 먼지와 뒤섞인 햇살 부스러기가 시골길을 뿌옇게 채우고 있었고 그는 열기에 숨이 막혀 얼굴을 찡그렸다.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오랜만의 하산길이라 너무 서둘렀다. 지한은 계곡 바위에서 선선한 낮잠을 더 즐기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3년 만의 만남이다. 왜 세상 끝에 매달린 이런 시골을 택했냐며 이해 못 하겠다고 했던 단이는 막상 이사할 때가 되자 마치 자기 일처럼 도와주었다. 산 중턱에 자리 잡은 보금자리를 청소하던 날, 해외발령 받아서 한동안 한국을 떠나있을 거라고 했었다. 읍내 역전 근처의 콩국수 집에서 둘은 무더위와 이별하듯 시원한 국수 한 사발을 들이키고 서로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 후 지한은 꼭 필요하지 않으면 산 아래로 내려오는 일 없이 산사람으로 살아왔다.
3년 만에 돌아온 단이를 그 콩국수 집에서 보기로 했다. 그러나 오후의 태양은 반가움조차 시들게 했다. 한 시간은 더 걸어가야 할 거리였기 때문에 깊은 갈증을 참아야 했다. 뒷산이 해를 삼킬 때까지 넉넉하게 기다리며 지한은 지난 3년을 잠시 되짚어 보았다.
도시를 덮은 인파의 숲을 그는 견디지 못했다. 한여름 밤 심한 갈증에 잠이 깼던 그 날 이후, 도시의 삶은 그에게 끝없는 인내만을 요구했다.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그는 사람의 숲을 헤매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 오히려 안도했었다. 데이트 약속 잡기도 어렵고 만난다 해도 시선조차 외면한 채 식은땀만 흘리는 남자를 사랑해주는 여자가 있을까. 그래서 일방적인 이별 통보를 받아야 했지만, 그는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심리와 욕망의 변화를 제자리로 돌리는 것만이 당시 그의 유일한 관심사였다.
회사를 그만둔 것도 다행이었다. 점점 타들어 가는 여름 햇살을 피할 수 있었으니까. 그는 어느날 아침 직원들이 모두 모인 연례 단합대회 도중 동료들의 땀 냄새를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왔다. 회사와는 그것이 끝이었다. 입사 동기였던 단이만이 그를 설득하느라 애썼으나 그는 돌아가지 않았다. 단이는 고달픈 귀양길의 말동무가 되어 주었다. 그 친구의 도움으로 이곳에 정착했을 때도 여름이었다. 3년이 지나 다시 만나는 오늘은 더 지독한 여름이다.
그림자가 길어져서 지한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해는 먼 산 위에서 붉은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는 앞서가는 그림자를 더욱 재촉했다. 어수룩한 어둠이 짙어갈수록 날 듯이 가벼워졌다. 그래도 타는 듯한 갈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콩국수 집 문을 열자마자 손으로 입을 막아야 했다. 표현하기 힘든 역겨움이 온몸을 기어 다녔다. 이제 사람의 냄새는 귀신같이 알아챈다. 냄새에 섞인 그들의 감정까지도 구별할 수 있다. 사람의 땀 냄새를 맡는다는 건 타인의 몸 구석구석을 핥는 기분이어서 그를 수치심에 빠지게 한다. 콩 비린내까지 더해 지한의 머리는 더욱 어지러웠다.
'마지막으로 하산했던 게 언제였지?'
증세가 눈에 띄게 심해진 걸 보면 꽤 오래전인 듯했다. 그러고 보니 1년 전 손도끼를 사기 위해 시장통 철물점에 들린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 후 1년 동안 그는 산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여기야!
반가운 손짓이 지한을 불렀다. 단이는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지한은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온 듯 어색하게 자리에 앉아서 쉰 목소리로 화답했다.
잘 다녀왔어?
응, 3년 금방 가네. 본사로 발령받아서 다음 주부터 출근이야. 넌 어때? 얼굴이 하얘졌어. 나무 그늘만 찾아다니나봐. 그렇게 외딴곳에서 잘 버티네. 무서워서 금방 내려올 줄 알았는데 말야. 하긴 이런 무더위에는 거기가 천국이겠다.
여기 콩국수 두 개요.
종업원에게 주문을 전달하고 말을 이었다.
그런데 목소리가 왜 그래?
식당 안의 온갖 냄새 중 두려움의 냄새는 없었다. 약속 장소를 잘못 잡았다. 식당 안을 메운 사람들의 역겨운 냄새는 그의 후각을 예리하게 자극하고 있었다. 그는 벗어날 궁리를 하며 대답했다.
목이 말라서.
단이는 어이없이 쳐다보다가 종업원이 이미 갖다 놓은 얼음 물병을 들어 컵에 따라주었다.
컵 쓰는 법도 잊어먹었냐?
거기서 어떻게 살고 있는 거야?
목구멍의 점액질이 바싹 말랐고 그의 목에서는 낙엽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멧돼지나 잡아먹고 있지 뭐.
지한은 입천장이 갈라지는 듯한 극심한 갈증과 구토가 나올 것 같은 냄새를 가까스로 참고 있었다. 그 앞에 놓인 물컵을 들이킨다고 해도 이 갈증은 전혀 가시지 않으리란 걸 알고 있었다.
맑은 유리컵을 물끄러미 보는데 문득 붉은 물결이 일었다. 컵 바닥에서 붉은 씨앗이 터진 듯 엷은 붉은색이 소용돌이쳤다. 긴 꼬리를 만든 붉은 물결은 솟았다가 곤두박질치며 유리컵을 물들여갔다. 온통 진홍색으로 물들자 붉은 물결은 그 안으로 사라졌다.
멀리서 무의식을 깨우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뭘 그렇게 보는 거야? 콩국수 나왔잖아.
하마터면 물컵을 들어 벌컥벌컥 마실 뻔했다. 유리컵에는 맑은 물이 찰랑거리고 있었고 다시 이어지는 단이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덥다, 어여 먹자.
계속...
흥뮈뒨뒨...ʕ•ᴥ•ʔ
다음편도 기대돼요, 역시 여름하면 납량특집인가요ㅎㅎ
진짜요!! 감사합니다. 시원해지지 않는다 해도 납량특집이니까 최대한 많이 죽여보도록은 할게요...ㅎㅎ
납량특집인데... 아직은 안무섭군요 ... 뭔가 무서울 복선이 있을 것 같은데. 본래 사람 냄새를 못이기는 것은 귀신이 아니던가요? ㅋ
사실 앞으로도 무서울지는 장담 못합니다. 귀신이라면 좀 무섭....
연재 시작하시는군요. 산사람 지한.. 어떤 인물일지 궁금해요
다음 편 기다릴께요 ㅎ
고맙습니다. 지한이 누군지는 곧 밝혀집니다.ㅎㅎ
이름에 뭔가 비밀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에요. ㅎㅎㅎ
이름의 의미를 밝히면 스토리와 전혀 매치되지 않아서....
갑자기 웬 남량특집?? ㅋㅋ
글게요..ㅋㅋ 덥잖아요..ㅋㅋㅋ 안 무섭다는게 함정입니다만...
보팅만 하고 스크롤 내렸습니다...
내일 대낮에 볼 거예요!
아..물론 무서워서 그런 건 아닙니다;;;;
밤에 보셔도 됩니다. 납량특집이라고 항상 무서울 필요는....ㅎㅎ
지한이 퇴마사인가...
단이는 또 누구일까?
누군지 곧 밝혀집니다..
기대기대되므니다😀😎
기대하시기까지... 감사하므니다..ㅎㅎ
산(生)사람을 기대해 봅니당~ ^^
'스파'시바(Спасибо스빠씨-바)~!
죽는 이도 있어야 납량특집이죠..ㅎㅎ
다시 살아난
reborn
의 生 ㅋㅋ'스파'시바(Спасибо스빠씨-바)~!
시원한 남량특집 기대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