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사육 14. 자유의 상징

in #kr-novel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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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외국인 노동자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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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선문답
8. 내면의거울 -9.
10.생태계 -11.
12.요순시대
13.카나리아


14. 자유의 상징

남자의 방은 내 생각보다 단순하다. 아니, 그냥 방이다. 막연하게 남자의 방에는 수백개의 모니터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수많은 기계장치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곳에 있는 사람이 몇명인가. 고작 수백개의 모니터를 가지고 이들을 모두 보살필 수 없다. 아마 남자의 방식은 내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었을 것이다.

남자는 손으로 의자에 앉기를 권한다. 처음 만났을 때와 같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다. 여전히 남자의 표정은 읽을 수 없다. 너무 불리한 대화다. 의미가 없어 굳이 불만 가득한 표정을 숨기지 않는다.

"그래서 나를 왜 데리고 왔습니까?"

굳이 카나리아가 없어도 남자는 유독가스를 알아챈다. 나에게는 용도가 없다.

"나는 위선자입니다."

여전히 알겠고, 모르겠다. 자식의 자유를 구속하며 도덕을 주입하는 부모는 위선자인가. 자유의 이름으로 자유를 해하는 남자는 위선자인가. 나는 가족들에게 돈을 대가로 자유를 앗았다. 그저 돈이 없을 뿐인 이들의 자유를 돈으로 샀다. 남자는 나보다 훨씬 많은걸 주었다.

"나보다는 낫습니다."

나는 추악한 위선자다. 나에게는 진정 자유로운 삶을 되찾아 준다는 대의는 없었다. 힘든 이를 도우며 나 자신이 선하다고 믿고 싶었다.

"당신은 가족들을 모두 앗아간 제가 누군지 알아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당신은 자의로 이 곳에 왔다고 할 수 있을까요?"

구분이 필요한가. 결정이 필요한 순간 자체가 내가 바라던 바도 아니며 내가 정할 수 있었던 일도 아니다. 내가 오지 않겠다고 결정했어도 그건 자의로 한 결정이 아니다.

"이 곳에서의 삶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짐작하겠지만 어떤 방법으로도 관찰할 수 없습니다. 그저 제가 내건 슬로건만이 노출되었습니다."

정말 미친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왜 필요합니까."

이제는 답을 듣고 싶다. 선문답은 지겹다.

"당신은 나와 많이 닮았습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대신 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까?"

"당신은 자유의 상징입니다."

남자는 솔직하다. 솔직한 위선자다. 말이 되는가.

"당신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도 있잖습니까."

"그 사람들은 너무 즐거워합니다."

결국 미친 놈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럼 뭘 하란 소리입니까?"

"곧 알게 됩니다. 지금은 돌아가십시오."

더 묻고 싶은게 많았지만 도저히 선문답을 이어갈 자신이 없어 등을 돌렸다. 많은 의문이 해소되기는 했다. 어떻게 이런 사회를 유지할 수 있는지 이제는 안다. 돌아가는 길은 간단했다. 의식할 필요 없이 자연스레 집으로 도착했다. 남자의 능력은 참 대단하다. 그런 능력을 갖고 자유 운운하는 걸 보니 솔직한 위선자도 가능하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속박하면서도 자유를 보장한다. 이 곳에 있는 사람은 이 사회 자체 외에는 아무 것에도 억압 받지 않는다. 정확히는 남자 외에는 그 누구도 이 사람들을 억압할 수 없다. 하지만 남자가 삶의 모든 면에 영향을 끼친다.

새장 속에 있지만 새장이 넓다. 필요한 것이 다 있다. 먹이도 모든 종류가 놓여있다. 원한다면 사료를 먹어도 되고 사냥을 해도 된다. 발톱이 닳을 때까지 무언가를 할퀴어도 되고 필요하다면 발톱을 깎아주기도 한다. 원한다면 노래를 부른다. 날아 다닐 공간도 충분하다.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는 자유의 상징이다. 하지만 자연에서는 생태적 한계를 지닌다. 먹이를 구하기 힘들다. 질병에 노출되어 있다. 환경의 변화를 통제할 수 없다. 생물적 한계를 넘어서는 서식지에 살 수 없다. 힘들게 구한 한정적인 먹이와 질병의 위험, 모든 종류의 먹이와 질병으로부터의 완벽한 격리, 어느 한쪽이 자유라고 할 수 있다면 다른 한쪽도 자유다.

이 곳에 부족한 것은 천적 뿐이다. 천적에게서 도망치는건 자유로운 행동일까, 아니면 천적에 의한 억압인가. 가장 미친 사람인 내가 자유의 상징이다.


29일만에 올립니다. 표지를 그려주신 율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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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r Up!

  • from Clean STEEM activity supporter

Thanks for all your arduous work, here's a bunch of token of appreciation! Fallow me @rayanfearon

제가 드디어 내용을 이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닷! :)
이런 내용이었군요. 앞부분의 내용까지 더 잘 이해가 갑니다. 전에 읽었던 "기억전달자"라는 책도 떠오르네요.
과연 진정한 자유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무리 좋은 의도라고 하지만, 그리고 그들이 동의하고 스스로(?) 들어왔다고 하지만 사육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표지 참 멋집니다! 이번엔 "사육" 글씨가 추가됐네요. 근데 글씨가 거꾸로 써진 줄 몰랐어요. 처음 보고 "뇽개"라고 써진 줄... -_-;;;

기존 연재 분량만으로 이리 멋진 표지를 뽑아주셨지요! 특별한 주문 없이 느낀 바를 그려달라는 무리한 요구에도 주제를 정말 잘 살려주셨습니다.

그리고 한달을 쉬고도 수준이 낮다는 자책을 하고 있었는데 이해가 잘 된다니 기쁩니다. 물론, 이해가 쉽다고 꼭 좋은 글은 아니지만요...

수준이 낮다고 자책하시는 글이 제 수준에 맞는 간가요. ㅠ.ㅠ (농담입니다 ^^;;)
제가 이해했다고 한 건 소설 사육의 큰 그림(?), 주제를 이제 확실히 이해한 거 같아서요. 생각해볼 만한 멋진 주제입니다.

'무섭고, 무서운 세상'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죠! ㅎㅎ

소설의 형식이 제게 더 크게 영향을 미치나 봅니다. 이야기를 따라가다가 주제를 스스로 깨닫게 되니까요.

사실 이제 15페이지쯤인가요? 연재로 찔끔찔끔이 아니라 한번에 읽으셨으면 금방 주제를 파악하셨을거에요.

새장 그리고 자연..
여러가지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자연스럽다는 말이 곧 약육강식을 품고 있기도 하지요.

저두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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