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장 참여] 나의 반쪽, 당신께

in #wc3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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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정심을 아주 높은 가치로 여깁니다. 강한 인간이라면 부화뇌동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확히는 감정적 혼란은 내면에서 그치며 밖으로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당신도 마찬가지겠지요. 그래서 나는 당신이 세상을 떠났을 때도 슬픔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일체의 감정적 동요를 차단하고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런 훈련이 계속되니 감정적 동요도 그다지 없었습니다. 당신께는 죄송하지만 당시에는 슬프다는 감정이 생기지도 않았습니다.

당신과는 무던히도 충돌했습니다. 어릴 때는 좋은 기억도 많지만, 조금 크고부터는 계속 충돌만 했던 것 같습니다. 나는 당신에게서 내 어두운 면을 보았습니다. 내가 극복하려고 그토록 애를 쓰던 면을 당신이 계속해서 지닌 것을 보며 내 미래상을 엿보는 것 같았습니다. 당신도 아마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당신이 그토록 저버리려던 면을 그대로 지닌 나를 보며 당신이 느꼈던 감정이 무엇이었을까요. 죄책감일까요? 당신이 싫어하던 사자성어가 생각납니다. 부전자전.

당신은 나를 강한 사내로 키우고 싶었습니다. 병을 가진 나를 방치했습니다. 사내가 그정도도 참지 못 하냐고 계속해서 나를 몰아붙였습니다. 당신은 내 병에 대해서 알았지만 자세히 알지는 못 했습니다. 어떻게 참았냐고, 어째서 이렇게 오래토록 방치했냐는 의사의 말을 듣고 당신은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그래도 당신이 둔감했던 덕에 나도 내가 병자라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당신은 손해도 많이 보는 인간입니다. 당신 덕에 나도 손해를 많이 보고 삽니다. 당신은 애사심에 회사를 믿었다가 특허를 도둑 맞았습니다. 당신은 부하직원의 실수로 생긴 사고를 당신의 적금으로 덮어주었습니다. 이 건으로 가족의 삶에 굴곡이 생겼음에 당신은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신과 나는 스스로에게 엄격한 면이 있습니다. 우리 둘 모두 속에 불을 품고 곁에 태양도 두었음에도 어찌 서로의 그림자만 보고 있었을까요. 우리는 웃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까. 락과 째즈를 좋아하고 산과 바다를 좋아하지 않습니까. 당신의 친구분들과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습니다. 당신을 추억하며 우시던 분도 계셨지만 저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감정적 동요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한마디에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친구분께서는 당신이 내가 택한 전면장학 입학을 이야기하며 우셨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내가 전면장학을 택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자신의 탓이라 여겼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내 선택인데 자기가 왜..."하면서 무너졌습니다. 아니, 정말로 내 선택인데 당신이 왜 상관했습니까? 당신은 왜 그리도 스스로에게 엄격하셨을까요. 당신 탓에 나도 손해 보는 성격을 지니지 않았습니까.

당신은 내 약점입니다. 몇년간 감정적 동요 없이, 감정적 동요가 없는 척 살았음에도 당신을 추억하니 평정심을 잃을 수 밖에 없습니다. 나도 당신처럼 죄책감을 가지고 삽니다. 당신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스트레스가 심장에 해가 된다는 연구를 접할 때마다 나는 이것이 꼭 내 탓인 것처럼 느낍니다. 내가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무너진 것도 당신과 나의 유사성을 또 다시 절실히 느낄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실감하지 못 하던 나를 형성하는 절반의 상실을 실감한 것일지 모릅니다. 아마, 내가 죄책감을 느낀다는 사실에서도 당신은 죄책감을 느낄 것입니다. 좋습니다. 우리의 관계는 모두 당신의 탓입니다.

이 글을 마지막으로 당신에 대한 죄책감을 접고자 합니다. 당신의 절반은 여기 살아있습니다. 아니, 감히 말씀드립니다. 당신의 개선된 반쪽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전 백일장에서 사용했던 그림이 여전히 어울리는 것 같아 그대로 이용합니다. 그림을 올리고보니 해당 심볼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나, 마음이 편치는 않네요.

글을 쓰며 감정적 동요가 컸습니다. 한동안 잊고 살았던 감정을 되살릴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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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lee님의 글을 읽고 덜컥 겁이 났습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주제를 던졌던 것이 아닌가. 사람들에게 상처일지도 모르는 기억을 감히 듣고자 청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온 몸을 기울여 듣겠다는 말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날카로운 기억을 꺼내 주셨다면, 한 자도 허투루 읽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하며, 몇 번이고 다시 읽습니다.

사람들은 때로 슬픔을 드러내는 것이 나약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울거나 소리지르는 것은 강한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슬픔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야말로 가장 강한 것이라 믿습니다. 내가 지금 슬프다는 걸 인정하고, 약한 모습을 남에게 드러낼 수 있는 용기보다 강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kmlee님이 써 주신 글은 용기로 가득 차 있는 글입니다.

kmlee님, 그 동안 많이 힘드셨겠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누르는 것 그리고 죄책감처럼 괴로운 일이 어디 있을까요. 인생의 절반을 차지하던 아버지의 상실, 부채감, 죄책감 등은 kmlee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저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환경이 나빴을 뿐. 직장 후배의 실수를 자신의 적금으로 덮어 줬다는 아버님의 모습을 보며 '참 멋진 분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가족의 인생에 굴곡이 생겼다는 걸 보고 너무나 안타까웠으며, kmlee님의 선택이 자기 탓이라고 책하는 걸 보자 두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아버님이 너무 착해서, 그러면서도 엄격해서. 죄책감을 느끼는 성격이셔서. kmlee님이 느끼는 죄책감도, 아버님의 마음도 모두 이해가 갔습니다.

살다 보면 일어나는 우연한 일일 뿐입니다. kmlee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저 빗방울이 때 되면 내리는 것일 뿐.

kmlee님을 응원하고 위로합니다.

한 낮이지만 싸늘한 새벽같은 기분입니다. 이런 글을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위로 받으려고 쓴 글 아닌데 왜 이렇게들 안타까워 하시는거에요! 그만큼 잘 쓰여졌다고 받아들이겠습니다 ㅎㅎ

your post looks interesting
wish there was an english translation
anyway thanks for sharing and keep up the hard work

This post is about mourning my father. I wish I could traslate every post of mine, but my English is not fluent enough for it. Anyway, thanks for your opinion.

oh ok thanks for the response

글을 읽으면서 한동안 멍해졌습니다. 솔직한 글이 마음에 와닿은 것 같습니다...읽으면서 마음이 아팠고 또 이해도 가고 (복잡 미묘한 감정이)
잘 보고 갑니다....

올린 시간대가 정말 문제에요. 새벽에 감성에 젖는건 정신건강에 좋지 않고, 일과를 시작할 때 감성에 취하면 하루종일 힘이 안 나잖아요. 역시 저녁에 써야했습니다. 하지만 케이님은 유쾌함으로 떨쳐내고 기운 차게 하루를 보내실 것이라 믿습니다.

공감하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화이팅하셔야합니다 @kmlee

저 가볍게 뛰고 아침 먹으러 가고 있는걸요... 충분히 화이팅하고 있는데 응원해주시니 왠지 약한 척 해야할 거 같아요. 아무튼 감사합니다! ㅋㅋ

소중한 이야기 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마 지금은 당신의 개선된 반쪽을 자랑스럽게, 흐뭇하게 보고 계실 겁니다.

이런... 아직 만족하시기엔 이른걸요.

아... 참 이런 마음의 글에는 뭐라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아무쪼록 그 마음속에 감정을 잘 추스리셔서 행복한 삶을 영위하시기를
바랍니다. 마음에 와 닿는 좋은글 너무 감사드립니다.
저도 더 열심히 사랑하고 열심히 배려하면서 살도록 해야겠네요.

감사합니다.

마음이 참 많이 먹먹해집니다.
그리고 마치 떨리는 손으로 펜을 잡고 힘주어 덤덤하게 쓴 느낌도 듭니다. 아버지를 떠올리고, 아버지 앞에 서 있던 자신을 다시금 바라볼때 @kmlee 님의 마음도 참 무겁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웃는 것도 좋아하고, 락과 재즈를 좋아하고, 산과 바다를 조아하던 부자의 모습이 참 보기 좋았을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저의 반쪽이 부모님인 것 같습니다.
좋은 부분도, 싫은 부분까지도요.
부모님을 닮지 않은 저의 모습조차도 사실 부모님의 모습을 '역'으로 반영하는 것이기에 어쩌면 온전히 부모님의 모습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듭니다.

당신의 개선된 반쪽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 말 또한 참 인상깊었습니다.

이렇게 쨍쨍 더운 여름날 정오에 읽는데도
새벽에 읽는 기분이 드네요.

부모의 유전자를 받고, 부모의 양육을 받으니 달라질래야 다를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후에 교육이나 인간관계에 따라 부모와 다른 사고를 지닐지 모르지만, 교육과 다른 인간을 대하는 태도부터가 부모로 인한 것이니까요.

오늘 하루 잘 보내셨나요? 아, 자정까지 공부하시나요...

네 잘 보내고 있습니다.
아직 할일을 다 못하고 있어서 자정까지 해야할 것 같네요....
눈이 빠질 것 같습니다...ㅎㅎ
아침에 댓글로 힘주셨으니 마지막까지 짜내봐야겠습니다.

일주일전이 아버지 기일이였습니다. 정말 보고싶네요. 감사합니다 글 정말 감명깊게 읽었어요 ㅜ

아니, 불을 품고 있다는 표현이 방금 댓글로 다신 영상에 나온 표현과 같군요? 표절 아닙니다! 처음보는 영상이에요!

그리고 새벽에 감성적인건 정신건강에 해로우니 빨리 즐거운 생각을 하세요! 저도 감정을 거두고 다시 건조한 딱딱한 글을 쓰고 있답니다. 새벽에 이런 글 올리는게 아니었어요.

하하 주무세요!! 전 다시 일하러 갑니다 ㅋㅋㅋㅋ

이 시간에 일을 하시는군요. 힘내십시오! 저는 지금이 일어나서 설치는 시간이랍니다...

분명 많은것을 닮고 많은 것을 배우셨을겁니다.

"당신의 개선된 반쪽이 여기에 있습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글인것 같습니다.

이렇게 때로는잠시 평정심을 잠시 뒤로 미루고
내 감정에 몸을 맡기는 것도
나에게 조금의 휴식을 주는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좋은글 잘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힘든 이야기를 해주셔서 감사해요~ 가슴이 먹먹합니다~ 부디 @kmlee님께서 힘들어 하시지 않았으면 합니다~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위로는 필요 없습니다!

하..진짜 제 온마음을 담아 길고긴 댓글을 썻건만 날아가고나니 눈물이 날것 같네요 ㅠㅠ 다시금 제 진심을 담습니다..

읽어내리는 내내 kmlee 님께서 어떻게 그런 냉철함이나 철학에 대한 깊은 고찰들을 하게 되셨는지 분명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너무 현실적이고도 가식없는 담담한 글을 보며 제 속이 너무 쓰라리고 울렁댔습니다.

kmlee님께서 삶을 살아오시며 겪고 느낀 그 감정들의 1%도 못느꼈을테지만 그만으로도 제 속이 진탕이 된것을 보면 얼마나 많은 인고의 노력이 있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괜히 제가 지난번에 도전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주제라며 참여를 강요해 아픈 기억과 마음을 꺼내시도록 한게 아닌가 싶어 죄책감이 듭니다.. 타자의 감정과 경험을 함부로 재단해서 이야기하면 안됐던 것인데 죄송합니다..

아, 제발! 내가 원해서 쓴 글이에요! 심장이 제자리에 붙어있음을(비유적 표현이며 심장은 감정과 아무런 연관이 없음을 명확히 알고 있음) 확인할 기회가 되어 정말 좋았습니다. 아마 마진숏께서 그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면 '에이, 난 못 쓰는 주제야.' 하고 탄생하지 못 했을 글이에요. 감사합니다.

휴.. ㅠ 그래도 마음이 슬프고 안좋습니다! kmlee 님께서 그렇게 넓은 아량으로 좋게 말씀해주시니 조금이나마 마음의 짐을 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내 유머가 먹히지 않았어...

ㅋㅋㅋ제 마음이 무거운데 유머가 먹히겠습니까! 당분간 묵언수행을 하던가해야겠습니다 나댐력이 너무높아졌는가 봅니다ㅠㅋㅋ

ㅋㅋㅋㅋㅋㅋㅋ 묵언수행 ㅋㅋㅋㅋㅋㅋㅋ 대학생때 있었던 일인데 묵언수행을 하겠다고 ㅋㅋㅋㅋㅋㅋ 미리 교수들에게 보고를 했는데 교수가 Meditation을 Medication으로 읽고, 무슨 약을 먹기에 말을 못 하냐고 ㅋㅋㅋㅋㅋㅋ 덩달아 학생들도 걱정하고 ㅋㅋㅋㅋㅋ

스팀잇 와서 쓴 초성을 합쳐야 이정도 나올까요? 너무 우스운 기억입니다. 끝없는 질문에도 무표정으로 답했으니, 말만 없이, 인생에서 가장 크게 나댔던 경험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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