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여정, 오키나와에서 | 7 걱정에 공포를 얹어

in #tripsteem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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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나하 시내로 돌아왔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려도 도심에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 있다는 것은 알 수 없는 안도감을 주었다. 하지만, 차는 시내에 다 와서 막히기 시작해 꽤나 큰 인내심을 필요로 했다. 고가다리 위에서 2-30분간 정도는 머물러야 했는데, 비와 바람은 미세하게 그 강도를 높여가고 있었다.






고조되는 공포심



시련은 렌트카를 반납하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최고조에 이르렀다.

호텔에서 렌트카 업체까지 차로 7-8분 정도 되는 거리였는데, 출발 할 때는 호텔 앞까지 데리러 오는 무료 송영 서비스를 이용했다. 검은 스커트 수트를 갖춰 입은 중년의 여성의 흰 장갑에서 이 직업과 내가 받는 서비스에 대한 알 수 없는 우아함을 느꼈었다. 계약서에는 렌트카를 반납한 후에 근처 역까지 데려다 준다는 말이 쓰여져있었는데, 그 말이 시련의 시작이 될 줄은 처음엔 몰랐었다.

렌트카에 차를 반납하고 직원에게 요금을 지불할 테니 우리를 호텔까지 데려다 줄 수 있는지 물었다. 그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 서비스를 해줄 수 없다고 했다. 업체에서 가까운 역은 호텔에서 멀어지는 방향이라서 택시를 불러달라고 했다. 그는 전화를 걸었고, 택시는 오지 않았다. 우리 앞 손님들에게 택시를 불러주어 타고 가는 것을 보았기에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지만, 희망의 끈은 끊어졌다. 바로 옆 주유소에서 택시잡기를 시도했지만, 차가 많이 다니지 않는 인적이 드문 곳이었고, 순간순간 귀를 울릴 정도의 강풍 소리와 머리카락으로 시야를 가로막게 만드는 세찬 바람은 공포심만 키울 뿐이었다.

다시 렌트카 업체에 들어가 택시를 불러달라고 했다. 직원은 모노레일 역까지 데려다 줄테니 거기서 모노레일을 타거나 택시를 잡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했다. 오키나와는 지하철이 아닌 모노레일 뿐인데, 태풍이 센 날에는 운항하지 않는다. 그는 아마 운행중일거라고 말했지만, 정확하지도 않았고 타고 가다가 어느 순간 모노레일이 옆으로 넘어가도 하나도 이상할 것 없는 날씨였기에 고민했다. 이럴 시간에 호텔로 데려다 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팬케이크집에서도 느꼈지만, 당신들의 융통성에 박수를 보낸다. 그것조차 그 정갈한 감성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난 좀 덜 정갈하게 사는게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다. 그렇게 나는 예민하고 억울한 혼돈의 카오스를 겪고 있었다.

결국, 렌트카 업체의 차를 타고 모노레일 역으로 가서 택시를 잡았다. 10분도 안되는 호텔로 가는 그 시간이 참 길었다. 바다에서 강으로 이어지는 초입에 있는 다리를 지나갈 때 가장 큰 강풍이 불어 택시가 양옆으로 흔들렸다. 겁보 중 겁보인 나는 심장이 내려앉았다. 택시가 바람에 뒹굴어 강에 빠지는 상상을 했다.






어쩌면, 스스로 자초했을까



어쨌든, 무사히 호텔로 돌아왔다.

그제서야 몸에서 힘을 뺄 수 있었다. 다행히 룸은 리셉션 바로 위 2층이어서 다른 룸보다 바람의 세기를 덜 느낄 수 있었고, 창문도 생각보다 덜컹거리지 않았다. 태풍 콩레이가 그 만큼 강력해서였기도 했겠으나, 내 공포심이 극에 달하게 된 원인의 80%는 이 윈디앱때문이 아니었을까 책임을 전가해본다.

이 앱은 실시간으로 태풍의 경로를 보여주는데, 2-3일 뒤 태풍이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진행되는지 시뮬레이션을 해볼 수 있기 때문에 어떤 날씨 예보보다 태풍의 영향권을 체감할 수 있었다. 셋 째날 밤은 보라색이 표시되는 영역에 있었던 셈인데, 태풍이 이곳을 집어삼키고 있음을 극단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바로 앞 편의점에서 해결하고, 공기청정기 소리도 바깥 바람이 아닌가 의심하다 지쳐쓰러져 잠이 들었다.

그렇게 이 여행의 절정이 지나갔다.








감정의 여정, 오키나와에서


시작에 앞서
1 설렘과 불안 사이
2 비워냄과 채움
3 호기심이 압도감으로
4 스며드는 빈티지함
5 서서히 밀려오는 엄습감
6 혼란 속 평온





감정의 여정, 오키나와에서 | 7 걱정에 공포를 얹어



이 글은 스팀 기반 여행정보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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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이어 글에서 몇 사람 본 것으로 류쿠국 사람들에게 선입견이 생기기 시작했어요...ㅎㅎㅎ본토 사람들은 가식적으로라도 친절하다는데 오키나와 사람들은 조금 다른가보네요.

ㅋㅋㅋ어디든 사람마다 다르니, 너무 선입견을 갖진 마셔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친절하답니다. (참고로 렌트카업체 직원은 일본인이 아니었어요ㅎㅎ;;)

호텔까지 가는길이 아주 험난했네요~

지금 떠올리면 웃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땐 정말 혼란 그 자체였어요.ㅎㅎㅎ

안녕하세요.@trips.teem입니다. 바람이 저렇게 불면 너무 무서울거같아요..특히나 오키나와에서는;;ㅜㅠ 요즘 드는 생각인데 미래를 미리 알 수 있는게 좋은건지 모르겠어요~(지하철 도착시간을 미리 아니까 뛰게 되더라구요 ) 오히려 더 불안하고 초조하게 만드는거같아요 ㅋ 앞으로도 멋진 여행기 많이 소개해주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미리 안다는 것이 실제로 닥칠 일보다 더 걱정하게 되는 것 같아요.ㅎㅎ

지난 편 외출 후에 돌아오기까지 순탄하지 않으셨네요ㅜ

일기예보 잘보고 여행가야겠습니다.

네, 알고도 선택했지만 쉽지는 않았네요.ㅎ

윈디앱 사진 보니까 현장에 없어도 쫄게 되는데요?ㅎㅎㅎㅎㅎㅎㅎ 앱이 잘못했네!

모든 것이 마음가짐에 달려있다는 것을 또 한번 깨달을 수 있는 기회였죠.ㅋㅋㅋ

윈디앱의 일기도는 정말 공포스럽네요. 오키나와의 태풍은 더 강할 거 같은 기분ㅎ
호텔까지 무사히 가셔서 다행입니다. 겁 먹었겠어요.

혼자서 시트콤을 찍은 기분이랄까요. ㅎㅎ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저 앱 지웠습니다. :)

융통성이 참...
분명 말단 직원이었을 거예요.
매니저였다면 달랐을 수도..

제가 일본어를 할 수 있었다면 좀 더 뭐라고 했을 것 같아요. 아무렇지도 않게 진지하면서 왠지 어리버리한 그 눈빛들에서 의사소통의 의욕을 놓아버렸습니다.ㅋ

같이 긴장하면서 읽었어요.

이럴 시간에 호텔로 데려다 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팬케이크집에서도 느꼈지만, 당신들의 융통성에 박수를 보낸다.

emotionalp님의 억울함과 두려움, 짜증이 느껴집니다. 진짜 저럴 시간에 데려다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세상이 내 맘같지 않죠. 혹독한 오키나와 같으니라구ㅠㅠ

좀 무리해서 돌아다녔더니, 후폭풍을 제대로 맞았던 것 같아요. 태풍이 미울 뿐이었어요. 그래도 언젠가 날씨 좋은날에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어요. ㅎㅎㅎ

이런 경험 언제 하겠습니까..ㅎㅎ 정말 공포의 도가니였을듯...
대신 다신 하지 마셔요..
택시 정말 무서우셨을듯..ㄷㄷ

다음엔 태풍이 온다고하면 예약을 취소하는 편을 선택하려고요. 더 심한 태풍이 아니어서 그나마 무사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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