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여정, 오키나와에서 | 1 설렘과 불안 사이

in #tripsteem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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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며드는 불안감


10월 초는 오키나와에서 바다에 들어갈 수 있는 마지막 적기라고 했다. 그 이후로는 날씨가 조금씩 추워져서 수영을 하기에는 조금 무리이기 때문. 오키나와에서 선택할 수 있는 해양스포츠는 여러가지가 있었는데, 스노쿨링과 스쿠버다이빙, 카야킹 등이 있었고 주변에 섬도 많아서 배를 타고 바닷속을 즐기러 가는 사람도 많은 편이다. 한여름이 지난 시기이기도 하고 굳이 짧은 3박4일의 여정 동안 내내 물속에 있고 싶진 않아서 고민 끝에 카약킹을 한시간 정도 즐기는 것으로 정하고 오키나와 전체 일정 계획을 세웠다.

저녁에 도착하는 첫 날은 공항 근처인 나하 시내에서 숙박을 하고, 다음날 아침 일찍 북쪽을 향해 출발해 이곳저곳을 들려 중부로 가기로 했다. 카약킹을 예약한 곳이 만좌모 근처 바다였기 때문에 그 주변에 숙소를 잡았고, 마지막으로 다시 나하 시내로 돌아와 숙박을 하는 일정. 일본 열도의 축소판 처럼 얇고 긴 모양의 섬인 오키나와는 보통 남부, 중부, 북부로 나누어 여행을 즐기는데, 스케줄에 쫓기고 싶지는 않아서 고민하다 나하 시내와 중부만 돌아보기로 한 것이다.

태풍 '짜미'가 오키나와를 지나갔다는 소식에 안심하고 있을 때 였다. 카약을 예약한 업체에서 태풍으로 인해 스케줄이 취소되었다는 메세지를 보내왔다. 태풍이 이미 지나갔는데도 아직 바람이 불어서 파도가 위험하다는 뜻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그 보다 카약에 맞춰 숙소를 예약한 것인데, 계획이 틀어지는 것이 더 심난했고, 중간 업체에서 수수료를 지불하라는 연락에 예민해졌다. '현지 사정으로 인해 취소하는건데, 제가 수수료를 부담하는건가요?!' 전화통화가 아닌 메세지라서 감정이 전달되진 않았겠지만, 난 충분히 날카로움을 담아 되물었다. 사정을 몰랐던 중간업체는 바로 환불해주었고, 기분이 조금 심난했지만 다시 여행 계획을 세우는데 몰두했다.

그러다 문득, 날씨를 검색해보면서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실시간으로 태풍의 경로를 알려주는 윈디(Windy)앱을 다운 받았는데, 이 앱은 3-4일 후 태풍의 예상 경로를 시뮬레이션으로 볼 수 있는 매우 편의적인 기능을 제공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불안과 공포감을 증폭시키는 데에 이 만한 앱이 없다는 것을 알게해 준 앱이기도 하다. 그렇게 나는 여행 내내 이 앱에 내 감정을 지배당하게 된다. 전날 밤 짐을 싸는 게 마냥 설레지만은 않았지만, 그래도 담담하게 캐리어에 옷과 세면도구, 충전기, 책 등을 담았다.








갈등의 시간


은행에서 환전을 마치고 집에서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하는 길. 그때부터 갈등이 시작됐다. 날씨를 검색하고, 윈디 앱에 몇 번씩 들락날락거리고, 인스타에 '#오키나와'를 검색해서 태풍 소식에도 여행을 떠난 사람들이 있는지 염탐했다. 텅빈 공항 사진과 함께 '그래도 간다'는 소식을 올린 몇몇이 발견되었다. 정말 많이 취소했나보다고 생각했고, 비행기랑 숙소의 환불 수수료를 떠올렸다. 다 환불하고 이 길로 그냥 국내 여행을 간다면 더 나은 선택일까 아닐까 고민했다. 고민하는 와중에도 일단은 공항으로 향하고 있었다.

모바일 체크인까지 미리 마쳐놓고도 짐을 부치지 않고 벤치에 앉아 잠시 고민했고, 결정을 미뤘다. 설마 목숨에 위험은 없겠지..라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내가 겁이 많은 건지, 유난인 건지도 판단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검색대를 통과해 면세점 안으로 들어와버리고 나니, 이젠 어쩔 수 없이 가야한다는 체념이 들기 시작했다. 누가 등떠밀어 가는 것도 아니고, 내가 내 돈과 시간들여서 가면서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애써 담담하게



이렇게 설레지 않는 여행길은 처음이었지만, 감정 과다로 여행을 망치고 싶지 않아 '이제 태풍은 그만 생각'하기로 했다. 커피 한 잔에 책도 읽고 팟캐스트의 다음 주제도 고민하면서 마음을 차분하게 정리했다.

그래도 비행기가 텅 빈 것은 아니었다. 다 취소한 줄 알았는데, 내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게이트에 들어섰다. 3분의 2이상 좌석이 차 있었고, 그들이 있어서 안심이었다. 내가 검색한 해쉬태그에 그들이 올린 소식은 없었기 때문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보고 듣는 것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가끔은 깜빡하게 된다는 걸. 아주 작은 퍼즐 조각을 보고 전부라고 믿어버리는 일은 생각보다 쉽게 일어난다. 내가 원하는 정보만 쉽게 얻어볼 수 있고 정보의 채널도 마음대로 큐레이션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건 어쩌면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만들어서 오히려 벽에 갇히는 셈이 될 수도 있겠구나.








맑음



무사히 오키나와에 도착했다.

귀여운 모노레일을 타고 숙소로 이동했다. 태풍은 여행2-3일째에 올 예정이었는데, 아직은 너무나 맑고 적당히 선선한 날씨의 조용한 오키나와의 모습이었다. 잠깐이라도 이런 날씨를 만끽할 수 있음에 감사해야하는 걸까. 아무리 봐도 태풍이 오기 전 '스산함'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막상 오니, 또 여행이 기대되는 것 같기도 하고 날씨 좋을 때 실컷 즐겨놓자 싶기도 했다.







호텔 앞에서 태풍 '짜미'가 남겨놓은 스산한 흔적을 발견하긴했지만, 어차피 지나간 일. 오키나와의 첫 인상은 단정한 일본 도시의 이미지에 조금 더 휴양지스러운 풍경이 더해진 예상 그대로였다.

그렇게 체크인을 하고, 짐을 풀고 바로 시내로 나섰다.











감정의 여정, 오키나와에서 | 1 설렘과 불안 사이



이 글은 스팀 기반 여행정보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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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이 기대되네요! 또 보러올게요:)

감사합니다. 반가워요. :)

읽는 내내 제가 오키나와로 가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연재 기대할께요~^^

감사해요, 다음편도 열심히 써보겠습니다. :)

안녕하세요 @tsguide 입니다. @emotionalp님 첫글 등록이시군요~! 트립스팀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이야기를 보다보니 엄청난 몰입감과 함께 긴장감이 몰려오네요ㅎㅎ 마지막에는 다시 고요해진 느낌입니다. 앞으로 이어질 오키나와 스토리도 기대됩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

그 시기에 오키나와에 있었군요!ㅋ
그때 갔던 사람들 이야기를 들었는데 무지 진한 추억이었다고..
P님은 즐거운 추억 많이 쌓고오셨기를!ㅎㅎ

네 저의 기억도 매우 진하고 진하였어요ㅠㅠㅎㅎㅎ

뭘까요. 이 현장감은. 여행 따라다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역시 잘 쓰셔 !!

ㅎㅎ감사합니다. 최대한 그때의 감정의 기억을 꺼내서 다음편도 써볼께요:)

우어 태풍이 오는데 오키나와라니..대단하십니다..ㅎㅎ
정말 찐~한 추억 남기셨겠는데요? ^^
다음편도 기대할게요~

네 감정의 기복이 매우 들쑥날쑥했더랬죠.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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