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說 스팀시티 영웅전] 03. 천국같이 따뜻한, 천사처럼 친절한 보팅의 힘

in #stimcitylast year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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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보지 않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도 있고,
아무도 듣지 않는 노래를 부르는 가수도 있습니다.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을 쓰는 작가도 있습니다.

다 힘들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을 쓰는 것은
미친놈 같아 보이고
마음을 지치게 합니다.

그림도, 노래도..
연습이라면 연습일 텐데,
글을 쓰는 이는
대상이 없이 중얼대는 것 같아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그래서 늘 편지를 쓰거나,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거나,
읽어주는 이들이 있는 곳에서만
글을 써 왔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도박이니 사기니 하지만
이 새로운 시스템이
제게는 반갑습니다.
글을 쓰면 읽어주고,
그 가치를 화폐로 보상해 주는..
제 글의 가치를 부여해 주는..
이런 시스템은
그 수익률에 상관없이
말을 하고 싶은 작가들의
용기를 북돋워 주는
멋진 일인 것 같습니다.

이제 시작해서
뭐가 뭔지 모르지만,
암튼 많이 가르쳐 주세요.
잘 적응해 볼랍니다.

감사합니다.
휘리릭~

_ [가입인사]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을 쓰는 것에 대하여 (@mmerlin)



이게 뭔가


"이렇게 쓰고 스팀잇을 시작했어요. 글 쓰면 돈을 준다니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면서도 댓글이나 보팅이 빠르게 달리자 신기했죠. 뭐 다들 잘 아시겠지만, 어디라고 스타작가가 아닌 이상 반응이 썰렁하기 그지없잖아요. 허공에 대고 말하는 것 같은.. 그래서 그동안은 블로그니, 포스팅이니 잘 하지 않고, 대부분 확실히 읽어 주는 사람들이 있는 커뮤니티나 지인들 간의 모임을 통해 글을 써 왔는데, 생전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이렇게 반갑게 맞아주니 반가우면서도 이게 뭔가 싶기도 하고.."



'이게 뭔가', 그게 뭐였을까요? 외로운 마법사를 따뜻하게 맞아준 이들은 왜 그랬을까요? 스팀잇의 초창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아마 모두들 '이게 뭔가' 싶었던 감정을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여기는 모두가 활짝 마음을 열고, 그 흔한 디스나 악플도 없이, 따뜻하고 애정이 넘치는 댓글들이 줄줄이 사탕이었죠. 그것은 아마도 보팅의 힘! 다시 말해 돈의 힘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시작하는 사람들이 굳이 상대를 적으로 만들 이유는 없었을 겁니다. 탐색기와 환상기에 돌입한 커뮤니티의 초기 모습은 언제나 따뜻하고 친절하기 마련이니까요.


"암호화폐 보상 시스템의 장점이었던 것 같아요. 나도 보팅하고 상대도 보팅을 해 주어야 이득이 되니, 일단 기본적으로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할 필요가 없는 거죠. 아니 잘 보이면 좋은 일이에요. 보팅이 많아질수록 노출의 확률도 높고 점점 명성이 올라가니까요. 수익은 당연하구요. 스팀잇의 보상시스템은 좀 마약 같다고 할까? 아님 강제된 마니또 게임 같다고 할까? 하지만 일단 좀 어려워요. 시스템을 이해하는 데 한참 걸렸죠."



Bandwidth의 제한, 7일 보상방식, 명성도 시스템.. 이해할 게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게다가 복잡한 보상체계는 작가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글쓰기를 시작할 수 없게 만드는 커다란 장애물이었죠. 하지만 천국같이 따뜻한(?) 환대와 친절이 넘치는 댓글들은 뉴비의 마음을 붙드는 강력한 마력으로 작용했습니다.


"글을 대하는 태도가 어떠냐에 따라서 반응도 달라지게 마련이죠. 포털의 댓글 창은 기본적으로 진입하는 순간 일단 긴장하게 되잖아요. 온갖 욕설이 난무하고 유언비어와 자극적인 언사들이 일반이니까. 그런 분위기에 적응하고 나면 일단 모든 텍스트를 비난적으로 대하게 돼요. 뭐 씹을 게 없나, 이건 또 얼마나 가짜일까 하고 말이죠. 괜히 시비 걸어보고 싶은 충동도 들고. 그런 반면에 일단 친절을 장착한 채로 대하게 되는 스팀잇의 글들은 다르게 보게 되더라구요. 이 글에서는 무얼 배울 수 있을까? 이렇게 얘기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 나하고 의견은 다르지만, 일리가 있는 걸 꺼야 하는 도덕 교과서적 태도가 자동탑재된다고 할까. ㅎㅎ 아무래도 분위기상으로도 계산적으로도 나쁜 댓글을 달 수가 없으니까요. 게다가 Bandwidth*의 제한폭 안에서 댓글도 달고 보팅도 하고 해야 하니, 아까운 대역폭 낭비하지 말고 댓글 하나라도 좋은 관계, 아니 호혜보팅적(?) 팔로워 형성을 위해 달 수밖에 없는 거죠. 그것도 왜곡이면 왜곡이고 편향이면 편향인데.."
(*뉴비의 Bandwidth 체험기)



천국같이 강제된



사회의 분위기라는 게 그래서 중요하긴 합니다. 어떤 분위기가 조성되느냐에 따라 관계의 질도 달라지니까요. 폭력이 난무하는 분위기에서는 일단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지 않을 수 없고, 반면에 친절과 환대가 넘치는 분위기에서는 바닥에 침 한 번 뱉기도 머쓱하고 그렇죠. 그런 면에서 스팀잇은 굳이 '선플달기' 운동 따위 할 필요도 없이, 친절과 환대의 천사로 다시 태어날 수 있게 해주는 아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분위기를 반겼어요. 악플 무서워 글쓰기가 힘들었는데 어쩜 이렇게들 친절하냐고, 모두들 처음에는 감탄 일색이었죠. 하지만 좀 들여다보면 천국처럼 강제되었다고 할까? 뭐 그렇지 않겠어요? 누가 천국에서 욕하고 비난하고 그러겠어요. 그런 일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 만족의 상태가 천국일 테니 당연한 얘기겠지만, 그것은 애초에 강제된 것이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히 통제된 사회. 100% 만족의 상태. 배부른 돼지의 삶 같은.. 이해와 관용이 넘치는 가면무도회 같달까? 양의 탈을 쓴 늑대들의 세족식 같달까?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ㅎㅎ 그래서인지 그런 분위기를 모두가 반긴 건 아니었어요. 어떤 이들은 역겹다며 일찌감치 발을 빼기도 했죠. 가식적이라며. 그런데 또 어떤 이들은 그걸 악용하기도 했어요. 아, 그 유명한 사건이 생각나네요. 한 사람이 여러 계정으로 소수자인 척 하며 사기를 쳤던. 심지어 성별도 속였었죠?"



맞아요. 한 사람이 여러 개의 다른 계정으로 미혼모, 장애인, 왕따 피해자 행세를 해서 물의를 일으킨 일이 있기도 했죠. 블록체인의 익명성이 가져다주는 단점이긴 하지만, 천국이 아닌 이 세상에서는 어디에서나, 어느 시스템에서나 일어나는 일이기도 합니다. 다만, 경계를 해체시키는 스팀잇의 분위기는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는 소지를 근본적으로 탑재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긴 하죠. 그렇다면 스팀잇은 처음부터 천국은 아니었네요.


"천국이 아닌데 천국인 척하면 탈이 나지 않겠어요. 그게 웃긴 게, 그걸 누가 추적해서 적발을 했어요. 사기행각을 발견해서 커뮤니티에 주의를 준 것은 당연히 잘한 일인데, 그걸 방지하겠다고 경찰, 자율방범대 같은 역할을 하자, 당신이 뭔데 완장질이냐며 한쪽에선 또 난리가 났죠. 당장 멈추라고. 영웅이었다가 한순간에 완장질하는 관심종자가 되기도 하고.. 친절과 환대의 이면에는 질서와 체계가 잡히기 이전 인류의 원시 모습 같은 혼란이 가득했죠. 아, 인류의 원시시대라면 에덴동산? 천국 맞네요. ㅎㅎ"



새로운 사회, 커뮤니티가 생성될 때에는 언제나 자신들만의 규칙이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현대의 조직과 단체들은 정관과 규칙을 먼저 세우고 그에 따라 조직과 단체를 성숙 시켜 나가게 됩니다. 그것보다 느슨한 개인들 간의 친목 모임 같은 경우에는 보통 그런 규칙을 먼저 세우고 시작하지 않다 보니 혼란의 과정을 겪기 마련인데, 그럼에도 오프라인에서의 모임은 암묵적인 합의와 규칙들이 자연스럽게 생겨나기도 합니다. 그걸 뭘 굳이 따지고 복잡하게 세칙을 정할 필요도 없이, 한두 번 모이다 보면 합의 구조가 대충이라도 생겨나고, 한두 마디 대화를 나눠보면 성향과 취향들을 어느 정도 알 수 있기 때문에, 단체의 질서가 자연스럽게 형성되기 마련인 것이죠. (뭐 스타일과 미모, 차종 같은 것들이 기준이 되기는 하지만 말이죠.) 그러나 온라인의 커뮤니티, 특히 그것이 민감한 경제적 보상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는 스팀잇과 같은 커뮤니티는, 글만으로 그런 것들을 형성해 가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도대체 저 글 뒤의 누군가가 뭐 하는 사람인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너는 누구냐


"그게 어떤 인간인지, 인간이긴 한지 알 수가 없죠. 그건 좀 실존적인 문제에요. 게다가 인공지능 봇들이 등장하면서 이게 지금 인간의 글인지, 기계의 글인지 알 수 없게 되는 지경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말이죠. 그건 기술이 발전할 수록 더욱 심각한 문제로 대두될 겁니다.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에서의 실존의 문제 말이에요.. 어쨌든 그런 건 미래의 문제라고 차치하더라도,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에서 익명성의 문제는 그것이 보상 시스템과 결부되면 더더욱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명예훼손이나 감정싸움의 사적 문제를 넘어서 경제적 손익의 문제가 당장 대두되니까요. 앞의 사례에서도 그게 단지 관심을 끄는 문제였다면 사적으로 해명하고 해결하면 될 일이지만, 그걸로 유저들의 보팅을 유도했다면 그건 경제적 사기에 해당하는 문제로 확대되는 거니까요. 이게 어찌 민감하지 않은 문제겠어요. 사기를 쳐서 나한테 와야 할 보상을 가로챈 셈이 되니 눈에 쌍심지를 켜게 되는 거죠."



친절과 환대, 마치 유토피아가 도래한 듯 넘치는 관심과 열정적인 반응을 유도해 낸 것은 돈과 보상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물론 그런 것 없이, 신념과 이상만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열고 상호작용하여 혁명과 변화를 이루어낸 역사도 있습니다. 그러나 스팀잇의 이상적(?) 반응을 유도해 낸 가장 큰 힘은 돈과 경제적 보상이라는 것을 우리는 먼저 인정해야 합니다. 물론 누군가는 탈중앙화의 이념을 따라, 그리고 유시민 선생 류의 비아냥과 비난에 분하여, 이 세계로 뛰어들어 동지들을 만났다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추동의 근원이 돈의 힘에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결국 블록체인/암호화폐 생태계의 절반만을 이해하고 절반은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공정과 보상, 연대와 개성, 이념과 본능.. 이 비슷하면서도 이질적인 가치들이 마구 혼재되어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는 곳이 스팀잇, 블록체인/암호화폐의 생태계이니 말입니다.


"그것은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칠 수 없어요. 우리는 마음에 드는 한쪽 편만을 붙들고 진보로 보수로, 사회주의로 자본주의로 세상을 추동해 왔어요. 그럼에도 완벽한 한쪽은 없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실패하고 도전하며 인간사회를 발전 시켜 온 것이죠. 한 사람의 생에도 전혀 타협하지 못할 듯한 양면이 자리와 순서를 바꿔가며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숙해 가게 돼요. 탈중앙화의 이념을 따라 시작된 블록체인 그리고 새로운 투자의 방식으로 각광받게 된 암호화폐의 이질적 특성을 어떻게 조화하고 소화해 낼지가 이 시스템의 운명을 가르게 되겠죠. 그래서 누군가는 말도 안 된다 하고 우리들은 흥분했던 거 아닌가요? 그러나 그것은 천국과 지옥의 결혼처럼 참으로 적대적이고 이질적이에요. 과연 가능하기나 할까 싶은.. 그런 전쟁터에 뛰어든 이들이죠. 아직도 남아서 글을 쓰고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들 말이죠. 어리석거나 용감하거나.."



어리석지 않으면 어떻게 용감하겠습니까? 알 거 다 아는 사람들은 한 발도 움직일 수가 없죠. 그러나 어리석은 자가 산을 옮기듯. 스팀잇의 어리석은 자들이 무언가를 하지 않겠어요? 그렇지 않나요? 마법사가 [스팀시티]를 시작한 것도 그런 기대 때문 아니었나요?


"하하 글쎄요? 그때의 마법사는 너무 지쳐 있던 터라.. 글 써서 닭 한 마리 먹을 수 있다고 하니 혹해서 시작했을 뿐, 아무 의도도 없었어요. 그때는 너무 지쳐 있었어요. 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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