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쯤 라다크] 에필로그 - 라다크는 여름의 시간이었다

in #stimcity6 years ago (edited)


음악을 들으면서 읽어보세요. 라다크가 더 가까워질거예요.


written by @zenzen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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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다크의 여름은 뜨겁고도 서늘한 흙내가 났다. 뜨거운 태양 아래 서서 서걱거리는 신발 안의 모래를 느끼고, 입안에서 꺼끌꺼끌한 모래를 맛볼 때면 라다크에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곤 했다. 짧고 강렬하게 지는 라다크의 여름이 가고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면 언제나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카페를 정리할 때면 그 여름 한 철의 기억들이 차르륵 흘러갔다.

손님이 없는 카페의 테이블은 온통 우리 둘의 차지였다. 바닥에 좌식 쿠션을 깔아놓은 자리는 꿀맛 같은 낮잠을 잘 수 있는 침대였고, 일곱 개의 창을 통해 저 멀리 설산을 감상할 수 있게 해주는 창가의 테이블은 독서의 공간이자 명상의 공간이었다. 나는 이 자리에 앉아 하염없이 손님을 기다렸는데 이유인즉슨 이 자리에서 카페로 올라오는 계단이 보이기 때문이었다. 저벅저벅 발소리가 나면 기대에 부풀어 고개를 빼꼼 내밀고 누가 오는지 살펴봤다. 절반은 건물 주인인 아룬의 사무실을 방문하는 사람들이었고, 또 그중 절반은 우리 카페 옆 과외방에 수학을 공부하러 오는 학생들이었다. 시간은 참으로 느리게 흘러갔는데 “손님 진짜 안 온다”, “전기 진짜 안 온다”는 말을 습관처럼 하다 보면 어느새 불이 켜졌고, 드문드문 손님이 왔다.

하늘이 어스름해질 때쯤 무슬림의 기도 시간을 알리는 아잔이 흘렀다. 아잔과 카페에서 흐르는 음악과 자동차 클랙슨 소리와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뒤엉켜 소음이 될 만도 하지만, 여느 골목길에서나 있을 법한 그 왁자지껄한 소리는 늘 친근하게 느껴졌다. 이 소리를 녹취한다면 제목은 ‘일곱 시 카페 두레’쯤 되지 않을까? 내게 자꾸만 꺼내 보고 싶은 카페 두레의 시간은 언제나 일곱 시경이었다. 떠들썩한 소리와 화력 발전소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연기, 카페를 따뜻하게 비추는 노란 백열등, 가끔은 새의 깃처럼, 가끔은 양털처럼 모습을 바꾸는 구름과 지는 해, 맛있는 음식 냄새... 카페 두레의 일곱 시를 떠올리면 귀에서 눈으로 눈에서 코로 감각의 기억이 도미노처럼 이어졌다.


사람들로 인해 북적이지도 소란스럽지도 않은 카페 두레였지만, 나는 모든 것을 사랑했다. 매년 카페 두레에 세 들어 지냈지만, 카페 두레는 내 마음에 세 들어 살았다.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기는커녕 더 또렷해지는 내 안의 다락방이었다.

“왜 라다크죠?”

사람들이 묻는 이 질문에 나는 앵무새처럼 준비한 답변을 하곤 했으나, 초반에 가졌던 계기나 생각은 점차 희미해졌다. 지금의 내가 알 수 있는 답은 애증이었다. 무조건 멋있어 보이고, 즐겁기만 하던 연애 초반을 거쳐, 서로의 단점을 꼬집어가며 지난하게 싸우는 연애 중기를 넘어, 약간의 권태로움을 느끼는, 하지만 너무도 익숙하고 편안한 연애 후기의 관계라고 할 수 있을까?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야.”

카페를 시작한 첫해부터 한국에서 정착하길 바라는 부모님께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이야기를 했으니 벌써 세 번째였다. 마지막이라고 항상 말은 했지만,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올해는 우리 둘 다 이별을 예감하고 있었다. 슬프지만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봄이 지나 여름이 오고, 가을과 겨울로 이어지듯 라다크에서의 ‘카페 두레’가 더 유효하지 않음을 깨달은 것이다.


공들여 만들고 애정을 쏟은 카페를 접는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이곳에서 충분히 행복했고 언젠가는 떠나야만 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생각보다 담담했다. 우리는 느릿한 손놀림으로 카페를 정리했다. 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카페를 구석구석 닦고, 접시와 컵을 종이 상자에 차곡차곡 쌓아 넣었다. 냉장고를 팔고, 오븐을 팔고, 다섯 상자의 쓰레기를 버렸다. 그렇게 모든 것을 팔고, 모든 것을 정리하고, 모든 것을 버렸다. 그렇게 카페 두레는 마침표를 찍었다.

라다크를 떠나기 전,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초모에게 된장, 참기름, 고추장 등을 한 아름 안겨주며 물었다.

“초모, 혹시 시계 필요해? 필요하면 가져가.”

“응, 그럼 너희 떠나기 전날 가져갈게.”

며칠 뒤 시계를 건네주는데 초모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며칠 전 오빠가 물어봤어. 지혜와 재은이 내년에도 오느냐고. ‘당연하지’라고 대답하고 곰곰이 생각하는데 좀 이상한 거야. 너희가 내년에 오면 시계를 써야 하는데 왜 내게 준다고 한 건가 싶어서. 너희 내년에 오는 거지? 맞지?”

“초모, 더 이상 카페 두레는 없을 거야.”

“뭐라고? 그럼 내년에 오지 않는다는 말이야?”

초모는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더니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울기 시작했다. 그제야 우리는 카페 두레의 마지막을 실감했다. 청소를 하면서도 애써 의연한 척하던 우리였다. 둘이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초모를 따라 엉엉 울었다.

“다시 올 거야. 카페 두레가 없어도 다시 올 거야. 그때는 다시 여행자로 오는 거겠지.”


2007년 처음 라다크에 왔던 때를 기억한다. 우리는 라다크에 한눈에 반해 그곳을 뜨지 못하는 여행자였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라다크가 그립고 그리워서 몇 번이고 다시 이곳을 찾았다. 하루하루를 특별한 것 없이 보내도 라다크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벅찼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시작한 카페 두레는 우리의 라다크를 풍요롭게 해주었다.

여행에서 일상으로 일상에서 노동의 공간으로까지 확장되었던 라다크에서의 삶은 다시 한 바퀴 돌아 여행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비록 라다크에서의 카페 두레는 끝났지만, 카페 두레는 어디서든 어떤 형태로든 다시 이어질 것이다.


이것은 결코 끝이 아니다. 시작이다.










책 한 권을 언제 다 포스팅 하나 했는데, 에필로그 올리는 날이 왔다.

이것은 결코 끝이 아니고 시작이라는, 젠젠(@zenzen25)이 쓴 에필로그의 마지막 줄을 읽고 또 읽는데 눈시울이...

그 시작을 시작하는 것이 참 힘들었다.

우리는 앞으로도 뒤로도 한 발자국을 떼지 못한 채 참 오랜 시간을 흘려보냈는데, 이제 모습을 드러낸 '그 끝의 시작'을 완성하기 위해 다시 여행을 떠난다.

나는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젠젠은 드디어 상하이에서 크루즈를 탄다.

매거진 춘자 삿포로호를 만들며 다시 보게 된 영화 [삶의 가장자리]의 마지막 대사를 나와 젠젠, 라다크와 카페 두레에서 만난 사람들, [한 달쯤 라다크]를 함께 읽어준 스티미언들, 스팀시티를 일구고 있는 나의 미친 동지들과 머지않은 미래에 만나게 될 스팀시티에게 바친다.



If you are going to try,
go all the way.
Otherwise don't even start.
This could mean losing girlfriends,
wives, relatives, jobs.
And maybe your mind.
It could mean
not eating for three or four days.
It could mean
freezing on a park bench.
It could mean jail.
It could mean mockery, isolation.
Isolation is the gift. All the others
are a test of your endurance.
Of how much you really want to do it.
And you'll do it, despite rejection.
And it will be better than
anything else you can imagine.
If you're going to try,
go all the way.
There is no other feeling like that.
You will be alone with the gods.
And the nights will flame with fire.
You will ride life
straight to perfect laughter.
It's the only good fight there is.


시도를 해 볼 의향이 있다면, 모든 것을 시도하라.
그렇지 않으려면 시작도 하지 말라.
그건 여자친구, 아내, 친척,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당신의 마음까지도.
그건 3, 4일씩 굶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공원 벤치에서 추위에 떨 수도 있고, 감옥에 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조롱이나, 고립을 의미할 수도 있고.
고립은 선물이다.
다른 모든 것은 당신의 인내를 시험한다.
당신이 그것을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
거부를 당해도 그 일을 할 것인지를.
그리고 그것은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그 어느 것보다도 더 좋을 것이다.
시도를 할 의향이 있으면, 모든 것을 시도하라.
어디에도 그런 느낌은 없다.
신과 마주하는 외로움이 있을 것이다.
밤은 불타오를 것이며 인생은 완전한 웃음으로 향할 것이다.
그곳엔 훌륭한 도전만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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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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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아터진 키친에 늘 바글바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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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두레 메뉴, 여행자 마인드로 가격 책정을 해서 라다크 친구들도 걱정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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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 두레의 위엄, 이건 일부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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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뇽하쎼요 곧잘 따라하던 동네 애들, 그때도 방탄소년단이 있었다면 한국어 클래스 다 뿌셨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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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두레 옆 과외방 다니는 애들과는 애증의 관계였다. 얘네들 때문에 골치 아픈 일도 많았지만 의자 고장나면 의자도 고쳐주고, 문 잠기면 막 담 넘어서 문도 열어주던 귀염둥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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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앉아있으면 시간이 흐르는 모양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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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곳에서 낮맥은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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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두레 오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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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바로 저녁 일곱시의 카페 두레


스팀문학전집 첫번째 작품 - 「한 달쯤 라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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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글을 읽으며 가슴이 일렁일렁했는데 마지막 덧붙임에 눈시울이 붉어졌네요. 함께면서 또 따로인 우리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합니다. 지구를 누비다가 머지않은 시일에 만나 손잡고 이야기하며 밤새 술 마실 날을 기다릴게요.

두처자 양볼에 술퍼서 아딸딸 酒터치한거 개구염
두레오픈 男은 갈색살에 분홍화색 덧칠 루돌프 더구염
고사이 끼어있는 혼자만 안마신듯 極强皮膚女ㅁ

시인은 대학 중퇴 후 접시닦이, 트럭 운전사, 하역부, 경비원, 주유소 주유원, 창고 일꾼, 주차장 관리원, 승강기 운전원, 개 사료 공장 직원, 도살장 인부, 우체국 집배원 등 온갖 종류의 밑바닥 노동자로 일하다가 '조직 생활을 하다 미쳐 버리느니 작가로 굶어죽는 편'을 택하기로 하고 쉰 살이 넘어 전업 작가가 되었다. '인간답게 산다는 것에 대한 치열한 추구' 혹은 '쓰레기에 불과한 작품'이라는 찬반이 엇갈리는 평가에 게의치 않고 시인은 자신이 살고 싶은 대로 살고 쓰고 싶은 대로 글을 썼다. 다른 사람들이 아름답게 각색하고 숨기는 것을 그는 거부감이 일 정도로 진실하게 썼다. 미국 현대문학의 '가장 위대한 아웃사이더'라는 별명답게 주류 문단과 거리를 두고 살면서 수천 편의 시와 수백 편의 단편소설, 6권의 장편소설을 썼다. _ 류시화



이 시의 원제는 <주사위를 던져라(Roll the Dice)> 라네요. 하지만 <끝까지 가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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