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in #stimcity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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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파키스탄이다. 버스를 타고 길기트라는 곳으로 가는 중이었고. 낙석으로 길이 막혀서 서너 시간 기다리는데 길이 뚫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협곡을 기어 내려가 막힌 길을 우회하기로 했다. 절벽까지는 아니지만 가파른 경사에 미끄러져 죽는 줄 알았다. 파키스탄 아저씨들이 도와주어서 겨우겨우 다시 도로까지 기어 올라와 트럭을 잡아탈 수 있었다. 날이 이미 늦어 가까운 동네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 날 버스를 타고 길기트로 이동하기로 했다. 아저씨들은 숙소는 물론 맛집까지 알려주고 떠났다.

차가 고장 나거나 산사태로 폭설로 도로가 막히는 것쯤은 이런 곳을 여행하다 보면 흔하게 겪는 일이다. 나중에는 ‘아 또?’ 하게 된다. 그런 순간을 여러 번 마주하면서 세상에 길은 하나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여러 개의 길 중에서 쉬운 길 하나가 막혔을 뿐이다. 아 또? 운이 좋으면 잠시 기다렸다가 차를 타고 간다. 그게 아니라면 삥 돌아서 가든 날아서 가든 굴을 파서 가든 기어서 가든, 내가 가면 그게 길이다. 쉬운 길이든 어려운 길이든 나아가는 모든 길은 좋은 길이고 멋진 길이다. 숨을 고르며 잠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어도 괜찮다. 다만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일은 되도록 없어야 한다.

길 위에서 배운 것들이 새삼 소중하다. 길 위에서 보낸 시간,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들이 들려준 이야기들, 그게 내 재산, 내 능력, 내 지혜, 내가 가진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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