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rin's Diary] #54 - 시에 대한 나의 태도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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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시를 쓸 때는 그럴 일이 잘 없는데, 그렇지 않은 시들을 쓸 때면 고름을 짜내듯 내 감정을 짜내야 한다. 어떨 때는 피가 쏟아지듯이 나올 때가 있다. 그러면 그걸 고스란히 내 마음의 공간에 담아 잉크로 삼고 글을 쓴다. 그런데 그럴 때는 드물다. 왜냐하면, 엄청난 고통과 힘듦이 수반되어야 하는 일이 나에게 발생하여야 하는데 그런 일은 내 일상에서 잘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질문을 나에게 해봤다.

아픈데 왜 써? 너 아픈 거 싫어하잖아. 겁쟁아.

이런 말 하면 소시오패스 같겠지만, 나는 고독을 즐기는 편이다. 정확히 말하면 혼자일 때는 혼자임을 즐길 줄 안다. 시를 쓸 때는 온전히 나와, 내 기억들을 마주해야 하는 소모가 필요하다. 아픈 기억들을 마주할 때면 마음이 저릿저릿해지고 누군가가 내 가슴 안쪽을 쿡쿡 찌르는 기분이 든다. 그런 기분을 즐긴다기보다는, 내 감정이 살아있음을 느끼려고 한다. 감정이 용솟음치는 나를 보며 살아있음을 느낀다. 물론 중독까지는 아니다.

나도 상큼한 시들을 좋아한다. 진심으로 사랑을 지속해서 느끼며 시를 써보고 싶다. 근데 문제는, 어떤 이를 진심으로 사랑할 때만 원하는 만큼의 감정이 나온다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다. 물론 새와 나무, 꽃들을 보며 그런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지만 어떤 이를 생각할 때의 그 새콤함, 약간의 긴장과 간지러움은 매 순간 평범한 것들을 보며 느껴지기가 힘들다. 그런 시각의 존재를 잠시나마 내 인생에 두는 것을 지향하고 있지만 말이다. 내가 이러기에, 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너무나 소중하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 뮤즈가 된다니, 실로 아름다운 일이다. 그 사람과 옆에 서 있으면서 그냥 지금처럼 아플 때, 행복할 때 쓸 것이다. 사랑을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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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글을 써서 돈 번다고 떠드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본디 내 글에 대한 내 시각엔 부끄러움이라는 것이 항상 공존하기 때문이다. 부끄러움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부끄러운 마음을 항상 품고 있는 나 자신이 좋다.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도, 내 안엔 내 글에 대해 부끄러움이 있는 것이 좋다. 그래도 내 글에 내 감성, 애정이 있는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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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항상 무거워하려고 하는 강박감이 있었던 것 같다. 내 안에 약함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 진중하고 무거운 것들로 포장하려고 했던 경향이 없지 않아 있다. 그것을 발견했던 것은 시를 쓰면서였다. 막 시를 쓰기 시작했을 무렵, 시는 나에게 거창하고 위대한 것인 줄로만 알았다. 그야, 세간의 관심을 받는 시인들을 보면 나의 현실에서 되게 먼 사람 같았고, 나 또한 그들과 같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시의 감성에 대한 부분은 정말 차이가 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시는 나에게 가까이하고 싶었지만 먼 존재였다.

시를 쓰고 근 한 달쯤 지나서였을까. 사랑하는 사람의 전화를 끝내고 내 안에 뜨거운 것들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화는 아니었다. 난 그것들을 글로 써 내려가기 시작했고, 그것은 길었다. 글을 쓰는 내내 막힘이 없었다. 그저, 있는 그대로 적었기 때문이다. 시가 될지, 산문이 될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한 30분쯤 지났을까, 글을 다 쓰고 머리를 식히러 밖에 나갔다 왔다. 그리곤 다시 자리에 돌아와, 내 글을 읽어봤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지 길게 쓰는 것에 젬병인 나지만 이번 글은 꽤 괜찮은 것 같았다. 쓰는 시간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용은 간단명료했고 알맹이 같은 무언가가 있었다. 무언가를 계획하고 글을 쓴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이 글에 아파했을까.

그 이유는 진심으로 썼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문득, 내가 시를 쓸 때 소비했던 시간과 방금의 시간이 겹쳐 지나갔다. 그리곤 생각의 어느 지점에 도달했다.

무게는 내가 정하는 것이고, 글의 가치는 쓰는 시간에 관계가 없다.

난 이 생각에 머물러 있다. 내 글을 내가 쥐었을 때, 그 무게는 내가 정하는 것이고 글의 진정성은 쓰는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 독자에게 들려주었을 때, 평가는 독자에게 가야 하지만 내 글을 내가 쓰고 간직하는 일기장에서는 나만이 평가자가 될 수 있다. 난 내 장문의 글을 보고서, 내 글이지만 다른 사람이 쓴 글 같았고 내 글이지만 스스로가 가슴 아파했다. 글을 가끔 가벼이 써도 좋다. 오히려 무겁게 써야 한다는 강박감이 좋은 글의 탈출을 묶어놓는 것 같기도 해서. 사람의 마음을 울린다는 측면에서 봤을 때 무겁다고 해서 꼭 좋은 글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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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nesuk님이 sirin418님을 멘션하셨습니당.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연결되용~ ^^
ranesuk님의 스팀잇 kr-인명사전 UPDATE (2018.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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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poem| ystory sunghaw sirin418도서평론(book review) |ilovemy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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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공감합니다 쭉 읽고 나니 마음 한 편이 시려오네요 아마도 글 쓰는 것은 운명인지도 모르지요 감동적인 시 한 편 건져 올리시길 기원드려요 샘

응원 감사합니다.

상황에따라서 받아들여지는 감정들이 다 다르니 이것도좋고 저것도 좋지아니한가라는 말이 생각나네요 ㅎㅎ 시린님글은 읽는사람입장에서 가벼이느껴지진 않는것 같습니다~ 감정이 실려있는게 느껴져서 그런것 같다고 생각하고있었어요. ㅎㅎ

매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글은 잘 못 쓰지만 김작가님 말씀대로 늘 힘을 빼보려고 한답니다. 시린님은 글을 참 잘 쓰시니까 원하시는대로 잘 그려보시길 바랍니다! 때때로 가벼운 글도 좋고요 ㅎ

응원 감사합니다. 부끄럽습니다.

항상 좋은 시 잘 보고 있어요~ 앞으로도 많이 올려주세요!

항상 감사합니다.

kimthewriter님이 sirin418님을 멘션하셨습니당.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연결되용~ ^^
kimthewriter님의 [접수] 제1회 PEN클럽 공모전

...i>
  • 어느새 난 일기를 쓰고 있었다 / kimsungtee
  • 시에 대한 나의 태도 / sirin418/li>
  • 강낭콩을 심었다 / songvely
  • What is Love? 나에게 사랑이란...

    혼자일 때 혼자임을 즐길줄알고 함께일 때 함께임을 즐길줄 아는게 진정 즐길줄 아는자가 아닌가싶네요. 저는 혼자 밥은 잘먹어도 여행은 못가겠더라고요!

    하하. 저도 못하는 게 많답니다.

    시린님의 다이어리 오랜만에 읽고 갑니다. 글쓰기는 말씀하신 대로 고독 속에 내면의 제 자신을 마주하고 대화를 하는 과정이죠. 이게 감정이 잘 실릴때는 신들린 듯 글이 적힐 때도 있지만 아닐때가 훨씬 많은 것 같습니다.

    아마도 순간의 감정과 번뇌에 의존한다는 것은 아직 그만큼 제가 풋내기라는 말이겠죠 ㅎㅎ 하지만 풋내기이기에 쓸 수 있는 글들 또한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성장해나가는 과정이겠죠.

    마음이 닿는 문장들 앞에서 현실의 초침은 무력해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삶을 걸어나가는 과정에서 한 발 한 발 내딛는다는 것은, 결국 하나의 발은 무게를 지탱하더라도 다른 하나의 발은 좀 더 가볍게 나아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

    표현이 너무 좋으십니다. 좋은 글 잘 보고 있습니다.

    지금의 시간에 온전할때 창작이 유희가 되는 법이지요.

    제가 생각한 많은 말들이 이 한 문장으로 정의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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