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rwerq, essay] 타인의 불행을 창작하고 소비하는 당신을 위한 면죄부

in #kr6 years ago (edited)


"자, 보아라, 망할 나의 두 눈아, 이 아름다운 광경을 맘껏 즐겨라"

플라톤의 '국가'의 4장에 실린 레온티우스의 일화. 레온티우스는 어느날 사형수의 시체가 널려진 곳을 지나며, 이러한 참혹한 광경을 보고 싶어 하는 자신의 욕망과 보고싶지 않아하는 자신의 이성 사이에서 갈등한다. 하지만 결국 두 눈을 가린 두 손을 치우면서 절규한다. 호기심과 자극이, 이성을 이겼다.


@sleeprince 님의 빈곤 포르노에 관한 이야기@thelump 님의 창작과 재현의 윤리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며 생각했다. 우리가 타인의 고통을 소비하는 것에 대한 논의는 사실 조금은 이제 고루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생산하는 주체로서의 창작가들과 소비하는 주체로서의 관중들은 언제나 존재하고, 우리는 너무도 쉽게 이러한 사실을 잊으며, 또 잊어버린 채 창작과 소비를 반복할 수 있기에, 이러한 논의는 우리의 '태도'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일전에 나는 남의 불행이라는 글을 통해서, 사실 나의 불행보다 남의 불행을 다루는 작업이 훨씬 어려운 작업이며, 그 것이 증식되고 수치화되는 순간 상당히 위험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자극과 전율이 시각적 쾌감을 안겨주는 현대에서 타인의 고통과 불행에 관한 서사는, 자신의 손을 떠난 순간 각자 소비하는 주체들에 의해 다시 창작되거나 확대되고 재생산될 수 밖에 없으며, 결국 자신의 불행에 대한 사회적 전파의 범주와 범위를 주체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자신이 내어놓은 자신의 불행은, 타인 관점에서 결국 타인의 불행이다. 자신의 불행이 사회의 어디까지 닿으며 어떻게 창작되고 소비될지 예측할 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존재할 수 있을까. 그 것이 가능하기는 한 일인가. 그래서 사실은 자신의 불행을 조심히 내어놓는 것보다, 타인의 불행을 조심히 다루는 것을 좀 더 중요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나는 언제나 그 마주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타인과 자신 사이에는 삶의 경험이 다르다는 (애초에 존재와 세계의 경계가 다르다는) 근원적인 제한점이 있기 때문에, 타인의 불행에 대한 창작과 소비는 결국 우리가 가진 감각을 바탕으로 타인의 경험과 감정을 더듬어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더듬는 과정을 통해 조형하는 타인의 불행은 애초의 불행과 완벽히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 것은 오로지 우리의 경험과 감각을 통해, 타인의 삶을 조형하는 작업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조형하는 작업, 조형의 결과물을 세계에 드러내는 작업, 드러난 결과물을 감상하고 소비하는 작업에는 항상 메시지가 담겨있다. 그 조형물이, 조형물을 창작하고 소비하는 자들이, 괴물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불행을 가진 주체에 대한 배려와 오롯한 청취와 끊임없는 소통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하여, 당신이 타인의 불행에 대해, 고통에 대해 창작하고 소비하는 것에 대해 미안함을 느낀다면, 불편함을 느낀다면 그들에게 닿기 위해 조금이라도 노력해보라.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맥락을 파악해보라. 직접 찾아가보라. 후원할 기회가 있으면 충분히 후원하라. 그들의 불행에 대해서 우리가 확대-재생산 할 때의 태도를 다시 한번 그리고 끊임없이 점검해보라.

너무 뻔한가? 그렇다. 하지만 그 뻔함조차 행해지지 않으면서, 가벼운 창작과 소비는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나는 그렇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는" 안전한 심리적 거리와 함께. 당신의 고통에 대한 서사를 나의 성장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추릴만한 것은 추려 나의 삶의 교훈으로 삼겠다는 얄팍한 비장함과 함께.

Sort:  

긴 글을 썼다가 다시 지우고를 반복했네요. 다만, 태도에 관한 문제, 참 어렵습니다. 읽고 보는 사람들이나 창작하는 그 둘,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문제니까요.

네. 그렇습니다. 저도 사실 소비자의 입장으로서, 항상 어떠한 태도를 지닐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고민하곤 합니다. 우리는 어떠한 사람의 불행에 대해서, 대체로 구경꾼에 가깝다고 보고 있어서, (그 것은 타인의 삶을 대신 살 수 없다는 근원적인 한계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인의 불행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매우 세심한 태도를 가져야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래서 애초에 앞서나서서 언급하는 편을 꺼려하는편 이기도 합니다.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경우 말고는요.)

저역시 그 두분의 글을 읽고 상당히 공감했어요. 창작자와 대중의 입장에서 굉장히 흥미로운 주제였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다른 사람의 불행에 관하여 창작하고 소비하는 입장에서, 두 분의 글이 참 와닿았습니다. 사실 이번 제가 적은 글에서의 당신은 결국 우리 모두에 해당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기도 합니다.

말씀하신 '스스로에 대한 다짐' 이란 부분 또한 글의 내용과 더불어 마음에 와 닿습니다.
레온티우스의 "자, 보아라, 망할 나의 두 눈아, 이 아름다운 광경을 맘껏 즐겨라" 가 그만의 욕구는 아니기에.

사실 저는 매일매일 다짐용 글쓰기를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글로 남겨 놓으면, 좀 더 생각들의 윤곽이 잡히게 되거든요 :)

그들에게 닿기 위해 조금이라도 노력해보라

이 노력이 바로 “인간됨의 염치” 아닐까 싶어요.

네. 두 단어로 표현하자면, 그 표현이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닿기 어렵더라도 노력은 해봐야겠지요.

염치라는 단어에 깊은 공감을 느낍니다. 그런 염치 없이 살아가는 저를 돌아보게도 되네요.

타인의 고통을 소비하는 것 ..많이 생각해야 겠군요. 잘 읽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은연중에 타인의 고통을 소비합니다. 뉴스만 봐도 그렇지요. 뉴스를 보면 대체로 좋은 이야기보다는 좋지 않은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좋지 않은 이야기들을 통해, 지금 보다 조금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관점과 시선을 얻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만, 꼭 그러한 것은 아니니까요...

예 동의합니다. 소비하는 건지 강요당하는건지 모르겠어요. 좋은 뉴스를 생산하면 행복을 나눌텐데 말입니다 .

정신없는 일상에 놓치고 간 글이 있어 뒤늦게 읽었습니다.

제가 한창 심신이 힘들었던 시기에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는 방송을 챙겨봤었어요. 그걸 보며 나만 힘든게 아니구나 하는 공감을 얻기도 했고, 내가 저 사람들보다 낫지라는 못된 위안을 얻기도 했던 게 솔직한 마음입니다. 일부러 그러려고 했던 건 아닌데 보다 보니 제가 좋은 쪽으로 그렇게 타인의 불행을 소비하고 있더군요. 이건 아니다 싶어 어느 순간부터 그 방송을 그만 보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마음도 몸도 조금은 단단해졌지만 그 때의 비겁했던 제가 떠올라 글을 읽고 한참 마음이 씁쓸했습니다.

그 때의 미안함과 죄책감 때문인지, 아니면 그 시기의 제가 떠올라서인지, 요즘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 아이들을 보면 더 몰입하고 감정을 이입하게 됩니다.. 이런 매커니즘으로 만들어진 선행이 과연 옳은 것인지 의문이 들 때도 있습니다..

저는 타인의 불행에 대한 거리두기와 비교를 통해 스스로의 삶에 대한 새로운 다짐과 활력을 얻는다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편은 아닙니다. 자신의 삶을 가늠하고 좀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비교라는 작업이 바탕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제가 언제나 경계하는 것은, 그 지점에서 딱 멈추는 것, 타인의 불행을 소비하는 것에 그치는 것, 더이상 타인의 불행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소비 만큼 다시 되돌려주어야 한다고 믿는 입장이라 그렇기도 합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몰입과 관심에 대해 완벽한 선의는 사실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제가 예전에 적었던 착취에 관한 글에서도, 저는 이타주의 또한 결국 자신의 무형적 이득을 취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는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언제나 그러한 이득이 과연 우리 사회에 긍정적일지 아닐지에 관해서만 판단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얄팍한 비장감에 젖어 있는 제 자신과 후원이 올바르게 닿지 않을 거라는 의심에 불행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지 않음이 되돌아 봐집니다. 단순한 일견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그 창작물을 음미하고 그에 소통하고 그 대상일 사람들에게 닿아보려는 노력을 해 봐야겠습니다. 댓글에서 말하신 거 처럼 저 역시 이 글에서 제 스스로의 다짐을 하나 하게 되네요. @qrwerq님의 피드를 통해 슬리프린스님과 럼프님 글도 만날 수 있었음에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고통에 대한 서사를 나의 성장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추릴만한 것은 추려 나의 삶의 교훈으로 삼겠다는 얄팍한 비장함과 함께.>

참 와닿는 부분입니다...ㅜㅜ

Coin Marketplace

STEEM 0.30
TRX 0.12
JST 0.033
BTC 64400.33
ETH 3140.71
USDT 1.00
SBD 3.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