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rwerq] 손목 시계의 뚜껑을 여는 일에 관하여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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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Apr. 2018, Nexus 5x


스마트폰을 항상 챙겨가지고 나가게 되면서, 손목 시계를 찰 일이 생각보다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중요한 일이나 회의가 있다거나 재빠르게 시간을 체크해가며 일을 진행할 필요가 있을 때, 스마트폰을 보기 어려운 상황일 때 손목 시계를 통해 시간을 살펴보곤 한다. 요즘 스마트 워치가 나오면서, 시계를 분해하는 일은 예전 시계의 전유물이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전자 책이 나왔다고 해서 종이 책이 사라지지 않듯, 기계적 장치(무브먼트 등)를 통해 시간의 흐름을 파악하고 시각을 보여주는 손목 시계 또한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믿고 있다.

종종 시계를 분해하곤 한다. 시계의 배터리를 갈거나 시계줄을 교환하는 정도의 작업은 굳이 시계방에 맡기지 않는 편이다. 시계의 내부 장치들을 완전히 분해했다가 조립하는 것은 하지 않더라도 (이건 위험한 작업이다. 세심한 작업을 위한 여러 도구들이 필요하다) 손목 시계의 뒷 뚜껑을 열며, 이 시계는 어떻게 생겼을까 상상하는 과정이 즐겁다. 물론 뚜껑이 제대로 열리지 않을 때엔 좀 난감하긴 하지만. 내가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난관에 맞닥뜨리기도 하고, 생각보다 쉽게 열려서 맥이 빠질 때가 있다. 위 사진의 경우에는, 뚜껑을 열고나니 하얀색 플라스틱 부분으로 배터리가 감싸져 있어, 어떻게 교환해야하나 고심했던 상황인데 의외로 쉽게 풀렸다. 그냥 플라스틱 전체를 들어내면 되었다. 그걸 모르고 가운데 길쭉하게 생긴 하얀 부분만 따로 떼어낼까 한 5분정도 고심했었다. 아마 강제로 그리 했었면, 내부가 상했을 것이다.

시계 뚜껑은 다양한 방식으로 닫혀있다. 나사를 풀어서 분리하는 방식은 양반이다. 홈을 잘 맞추어서 돌려서 여는 방식은 그래도 힘을 적절히 주면 할만하다. 제일 난감한 것은 스냅 오프(snap off) 방식으로서, 예리한 칼날 같은 장비로 날을 뚜껑과 시계 본체 사이의 틈에 끼워넣고 뚜껑을 들어올리듯이 열어야 한다. 당연히 쉽사리 잘 열리지 않고, 자칫하면 손을 베일 수 있다. 이번 시계도 그러한 방식이었기 때문에 애를 조금 먹었다. 물론 열고 나서의 쾌감은 상당히 즐겁다. 하지만 이 방식의 문제는 닫을 때에도 존재한다. 애초에 뚜껑이 가지고 있는 금속의 응력(stress)같은 것을 이용해서 닫혀있는 것이므로, 프레스를 이용하여 닫아야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아예 닫히지 않을 것이다.) 열었을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닫을 때는 아니란다 같은 이상한 문구가 떠오르는 과정이다.

비단 시계만 그럴까. 사람이 마음을 여는 방식도 다양할 것이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형상은 각기 달라서, 그 경계를 이루는 뚜껑 또한 사람마다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언제나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억지로 열기 위해 무리하지 않고, 마음을 열었다가 다시 닫아야할 때 잘 닫아야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닫는다는 의미는, 철벽을 친다는 의미가 아니다. 관계를 지속할 때 잘 마음을 열었다가, 관계를 마무리할 때 마음을 잘 닫고 오롯이 보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우리가 일상을 지속하면서, 마음을 열었다가 닫는 과정을 반복한다고 생각한다. 마음을 항상 열고만 있으면 다치기 쉽고 상하기 쉽다. 그렇다고 마음을 완전히 닫고만 있으면 애초에 속을 드러내는 일도 없을 것이다. 멈춰버린채 정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여, 나는 마음을 잘 닫는 법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음을 닫는 것은 정말로 중립적인 표현이다. 우리가 흔히 마음을 여는 것은 긍정적이고 닫는 것은 부정적이라고 생각하곤 하지만, 사실 마음을 열고 닫는 것은 상황과 맥락에 따라 자유로이 이루어져야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상대방을 배려하기 위해서도 그렇다. 나는 언제나 '적절한' 거리를 강조하는데, 그 적절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모드를 모두 기꺼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몇 년동안 멈추어져 있던 시계의 바늘이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고작 배터리, 그 배터리 때문에 시계는 몇 년 동안 멈추어져 있던 것이다. 나는 배터리가 오래되었기 때문에, 누액으로 인하여 내부가 상해있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뚜껑을 열었다. 다행히, 온전히 그 자리에 보존되어 있었다.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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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열고 잘 닫아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적절한 경계를 유지하는 일이 중요하죠. 이 경계가 얼마나 무너져 있는지가 정신병을 판가름하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고요. 시계 관련 글인 줄 알고 무심코 읽었는데 한방(?) 맞았네요. 멋진 에세이에요.

이 글은 시계 관련 글이라고 열심히 주장(?) 해봅니다.

경계가 무너진다고 생각하면, 본인 뿐만 아니라 주위 세계 마저도 무너져내리는 느낌이 듭니다. 경계가 있는 세계와 경계가 없는 세계가 마주한다고 생각하면, 경계가 있는 세계가 서서히 경계가 없는 세계에 잠식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글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사회에 나와보니 마음을 열고 닫아야 할 일이 생깁니다. 문제는 잘 열고 닫는 것도 중요하지만 타이밍도 관건인 것 깉아요. 열어야할 때 열지 못하고, 닫아야 할 때 그러지 못해 어려움에 처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마음이긴 하지만요. :-)

시간을 읽어주시니, 역시 시계 입장에서도 좋은 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빨리 닫거나 빨리 열거나, 열지 말아야할 때 열고 닫지 말아야할 때 닫는다면, 역시 어렵겠습니다. 다른 것은 그나마 마음대로 되는데, 마음이 마음대로 되지않는 이 역설적인 상황이 언제나 미묘합니다.

다행입니다. 저도 시계 좋아합니다 :)

처음 시계를 열었을 때, 긴장을 많이했습니다. 다른 상한 부위가 없어 저도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종종 시계를 챙기면 마음에 안심이 되는데, 자연스럽게 일상에 시간이 녹아드는 느낌이 들어서 입니다. :)

생각을 하게 하는 좋은 글입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시계 뚜껑을 열다가 든 생각이 여기까지 닿았네요 :)

저 어디 나갈 때 항상 손목시계를 차고 다닙니다. 핸드폰을 들고 있긴 하지만 시간을 본다는 느낌이 시계가 훨씬 좋거든요.ㅎ
그리고 그 시계의 배터리가 다되어 시계방에 가는 것도 좋아해요.
왠지 제 시간을 어떻게 썼는지 보여주는 거 같아서.ㅎㅎ
한번도 직접 해볼 생각은 못해봤네요.
시계에서 풀어내시는 글이 너무 놀랍네요. 생각의 흐름이라고 해야하나요? 마음을 닫는다는 의미가 새롭게 느껴져서 정말 좋았습니다.
감사해요~

저도 시계의 배터리가 다 되면, 그래서 서서히 느려지거나 멈추게 되면, '이만큼 시간을 보냈구나' 하는 느낌이 들면서, 새 시간을 받는 느낌이 들곤 합니다. 저도 예전에는 시계방에 맡기다가, 시계 내부가 궁금해서 한번 해보자는 식으로 시도해봤는데, 생각보다 그리어렵지는 않더군요. 그래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시계의 뚜껑을 닫을 때 상당히 애먹기도 하는지라, 그러한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보니 이러한 생각이 나온 것 같습니다. 열심히 배터리를 갈고 나서도, 제대로 닫지 못하면 꽝이거든요. 방수 기능을 잃어버리거나, 심한 경우, 뚜껑의 결이 엇나가서 무브먼트가 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좋게 봐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열어놓고 닫는 법을 모를때가 참 많습니다. 열지 말걸.. 하고 소용없는 후회만 하곤 하네요.

저도 간혹 무심코 대책없이 열었다가 뚜껑을 닫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할 때에, 가끔 후회하곤 합니다. 사실 뚜껑 정도는 괜찮은데, 분해를 하는 경우에 조립이 정말로 난감합니다. 세세하게 그 과정들을 반대로 돌리는 것을 해야하는데, 주의깊게 하지 않다보면 결국 망가져버리고 말지요. 닫는 법을 고려하지 못한 여는 법은, 어쩌면 반쪽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늘 좋지만 오늘 이 글은 유독 참 좋은 글이라고 생각해요.
잘 읽고 가요,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도 이번 글이 참 마음에 듭니다. 일상들이, 상념들이 무사히 닿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뜬금없이 이형기시인의 낙화라는 시의 싯귀가 떠오릅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오래만에 이형기 선생님의 시(詩)들을 펼쳐 놓고 보아야겠습니다. 시기를 분명히 안다는 것은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아야, 그 때 그 시기가 분명했었지 라고 짐작할 따름입니다.

시계 뚜껑과 마음을 연결시키는 멋진 글!

하여, 나는 마음을 잘 닫는 법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음을 닫는 것은 정말로 중립적인 표현이다. 우리가 흔히 마음을 여는 것은 긍정적이고 닫는 것은 부정적이라고 생각하곤 하지만, 사실 마음을 열고 닫는 것은 상황과 맥락에 따라 자유로이 이루어져야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상대방을 배려하기 위해서도 그렇다. 나는 언제나 '적절한' 거리를 강조하는데, 그 적절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모드를 모두 기꺼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바운더리가 중요하다고들 하더라구요. 공감하고 갑니다.

제가 종종 집중하는 대상이 경계와 거리라서 더 그런것 같습니다. 오롯이 저 스스로를 유지시키는 데에는 이러한 요소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관계의 측면에서는 그러지 않을까 합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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