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했던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때

in #kr6 years ago (edited)

가끔은 애초부터 내 주위에 있는 모든 지침, 지시들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엄마한테는 자매끼리 잘 지내야 한다, 언니 말 잘 들으라는 말을 어릴 때부터 들었다.

하루라도 빠지면 큰일나는 줄 알았던 학교에서는 무작위로 나에게 운명적으로 배정된 선생님의 성향에 맞춰 그 분의 지침에 따라 행동해야 했다.

중학교 복장 검사 때 학교 뱃지 다는 것을 잊어버려 따귀를 맞았던 나는 ‘이거 뭐지? 나 큰 잘못을 한건가? 도대체 누가 잘못인거지?’란 생각에 혼란스럽기만 했다.

고등학교 때는 동그랗고 하얀 얼굴에 항상 입술을 새빨갛게 바르셨던 깐깐한 말투의 영어 선생님의 깜지 숙제 덕분에 그나마 가장 좋아했던 과목인 영어가 싫어지기도 한 적도 있다.

대학교 때는 정말 지금 생각하면 완전 어이없는, 겨우 한두살 차이의 선배들한테 기합 훈련(?)같은 것을 받았는데 그때 그 선배들은 자신들이 무슨 군대 조교라도 된냥 엄청나게 엄격한 얼굴을 하며 갓 들어온 어리벙벙한 신입생들을 기죽이기 바빴다.

대학원 때는 학과장 교수님께서 평소에는 허허 하며 사람 좋은 모습을 보이시다가 학생들 중 어느 한명이 그 교수님의 교수 방식에 대한 비판을 한다 치면 빈정이 상했음을 온몸으로 표시하셨다.

그 장면을 몇번 목격한 후 그 분의 성향에 맞춰 미소와 존경하는 척, 친한 척 하는 행동을 해드린 결과로 딱히 공부는 별로 하지 않았으나 교수님 역량으로 중간 성적은 받아 간신히 졸업은 했다.

한국에서 회사를 다녔을 때는 회사에서 받지 못한 미수금을 독촉하는 전화도 했어야 했는데 남한테 싫은 소리하는데 익숙하지 않은(싫은 소리를 듣는 데는 익숙하지만)성격으로

“그렇게 하면 나 같아도 돈 안 주겠다”라는 차장님의 핀잔을 들으며 또 한번 나는 여기에 적합한 사람이 아님을, 여기 지침에 따를 수 없음을 다시금 느꼈더랬다.

결혼 후에는 집안일을 강조하시는 시어머니의 지침을 따르지 못해(따르고 싶지 않아)또 한번 나의 가치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으며

두 아이를 낳은 지금은 내가 어떤 지침을 가지고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지 그 문제로 가끔 진지하게 생각에 빠져들곤 한다..

내가 얼마나 오래 살지는 모르겠으나 거즌 반평생 가까이 살지 않았을까 싶은데 이 반평생동안 나는 무작위로 나에게 운명적으로 주어진 지침에 따라 행동해왔으며 (그 지침에 따르지 않을 시에는 따귀, 깜지 등 혹독한 대가가 따랐다..)

그 지침은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이제 나는 예전처럼 주어진 지침을 무조건 수용하기 보다는 나에게 주어진 이 지침이 과연 옳은 것인지, 내가 이 지침에 따라 사는 것이 나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갖고 있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져왔던
여러가지 지침들. 제약들.

그것들 때문에 우리는 더 발전했을까.
아니면 우리의 새싹이 자라기도 전에 잘려버렸을까.

우리의 지침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당연시 여겨졌던 것들이 이상하게 여겨지기 시작하는 때가 있다.

그때가 우리의 삶을 다시 한번 돌아볼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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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메스님.
잘 지내셨나요?

저는 지침이 일종의 가이드라인이었다고 생각해요. 어릴 적에는 외박도 금지하며, "잠은 집에서 자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던 부모님이 이해가 안 되었었는데요. 남들은 쉽게 쉽게 친구 집에서 자고 그랬으니깐요.

그런데 조금 나이를 먹고?! 나서 보니, 제가 혹시라도 만약에 "여동생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상상을 해보던 때가 있었는데, 어휴 ㅎㅎㅎ막 아무것 못하게 묶어놓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있죠 ㅋㅋㅋㅋ 걱정도 되고, 뭐랄까 뭔가 때 타지 않게, 순순하게 유지시키고 싶고..

요점은 이게 아니고 ㅠㅠ
생각이 자라는 동안, 성숙해지기 전까지 기본적인 틀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러다 저항점을 만나면, 거기에 대해 고민해보고, 다른 의견과 반목도 해보고, 따라도 가보다가 점차 자신을 찾는 것처럼요.

만약에 아예 없었다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찾아가는 길이 더 어렵고, 험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을까요?

나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어떠한 반응을 하는 객체인지 무언가 이벤트가 있어야 하는데, 이런 지침이 이벤트가 되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물론 그 지침들이 꼭 발전적이지만은 않고, 구시대적인 방법들도 있었을 것을 동의합니다. 지침 안에서 잘 성장하기를 바랬지만, 오히려 더 엇 나갈 수도 있고, 혹은 그 지침 자체가 이상해서 우리가 가치를 밟아버렸을 수도 있고요.

그래도 우리는 '사고'라는 것을 하는 인간이기 때문에, 올바르던 올바르지 않았던 우리가 가질 방향에 대한 기준이 될지도 모르는 지침의 존재는 필요했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르바님~^^

<저는 지침이 일종의 가이드라인이었다고 생각해요. 어릴 적에는 외박도 금지하며, "잠은 집에서 자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던 부모님이 이해가 안 되었었는데요. 남들은 쉽게 쉽게 친구 집에서 자고 그랬으니깐요.>

사실 저도 밖에서 늦게 들어오는 것에 대해 심하게(?) 과민반응을 보이셨던 아버지 덕분에 대학 때도 저만 통금시간 때문에 딴 친구들은 다 늦게까지 술먹고 젊음을 즐기는데 저는 시작할만하면 집에 와야 되서 불만이 많았는데요..

시간이 지나고보니 아버지의 교육 중에서 이 부분은 결과적으로 저한테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어요..

덕분에 제가 험한 꼴 안 당하고 이렇게 무사히 좋은 남편 만나 평안하게 잘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지침이 없다고 다 험한 꼴 당하는 건 아니지만 미리 조심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험한 상황으로 스스로를 밀어넣을 수 있으니까요.. 지나고보니 미리 조심하는게 상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남자에 대한 경계가 심했는데요.. 그게 꼭 나쁜 영향만 미친 건 아닌 거 같아요.. 경계심이 강했기에 결과적으로 그래도 저를 지키며 살아올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저의 딸아이도 나중에 크면 통금시간은 꼭 지키게 하려고 해요.. 물론 제가 그랬듯이 반발은 있겠지만 그것이 좋은 영향이 많다는 것을 알기에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올바르던 올바르지 않았던 우리가 가질 방향에 대한 기준이 될지도 모르는 지침의 존재는 필요했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올바르던 올바르지 않았던, 기준이 될지도 모르는 지침의 존재는 필요했을 거라는 말씀 맞는 말씀인 것 같아요..

우리는 사고를 하는 인간이기에 기준이 전혀 없었다면 오히려 더 혼란스러웠을거라는 생각이 저도 르바님 댓글을 보며 드네요..^^

쿠션 효과를 보는 것 같아요.
꼭 어떠한 효과를 보리라 장담을 할 수는 없지만,
매번 이롭지 않는 행동에 대한 나쁜 영향에 대해서 들으면
그에 대한 행동을 절제하게 되는 것처럼요.

앗 이것은 예가 잘못 되었나..모르겠네요.
어제부터 피곤함이 쌓여서 포스팅도 하루 쉬고ㅎㅎㅎ
생각이 정리가 안 되네요.
아마 이틀 뒤에 올라 생일이어서 그에 대한 것 때문에 마음 속 여유가 없나 봅니다
얼른 청소 하러 가야겠어요 ㅎㅎㅎ

내안에 '초자아' 라 불리는 것들을 처음 발견했을때 느꼈던 충격이란.. 매트릭스의 네오가 빨간약을 먹고 나서 이런 기분이었을까 가늠해봤던 기억이 나네요.
각자의 에티카는 다시 쓰여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삶을 한 번 돌아봐야 하는 것 같습니다.
너무나도 피동적인 삶의 자세를 가지고 살고 있는 것을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입사하고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니 큰 후회가 됩니다. 정말 선생님과 선배들, 직장 상사들이 하는 말이 맞아서 그들의 말을 따랐어야 했는지, 당시에는 아무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에서야 그들조차도 그 윗사람들로 인해 주체적인 삶을 살았던 것이 아님을 알게되니 허탈감이 느껴지는 것은 피하기 정말 어려운것 같습니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우리는 아직 삶을 살고 있고, 이를 알았고, 문제의식을 가져간다는 것에서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어야 할 것 같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시는 글 감사드립니다.

뭐랄까 제 생각에는 일종의 '윗사람들이 편하기 위한' 작은사회에서만 적용되는 한정된 룰 같습니다. 조금만 바운더리를 벗어나도 그 룰은 통용되지 않거든요.
단지 그들이 그 룰을 지키는 이유는 자신들도 상위자로부터 시달림을 받아왔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 자신이 상위자가 되어 억눌렸던 시절을 보상받고싶어하는 심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누군가 끊지않으면 반복되는 쳇바퀴처럼 계속 돌아갈껍니다. 중요한건 누가 악순환을 끊어내느냐...겠죠?

그것들은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당연하다고 잘못 생각 한 것입니다. 이상한게 정상입니다. 이상한게.

한국 사회에서 회사 생활을 하면서..
술을 멀리 하는 제가 지내긴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었습니다.
요즘은 많이 변화하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종종 제가 만일 술을 꽤 즐기는 사람이었다면, 나의 인간관계 및 지금의 인생이 아주 많이 바뀌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이 좋은 방향이라고는 생각하진 않습니다.)

지금은 그런 나를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사람들에 둘러 쌓여서 부담없이 함께 할 수 있음에 만족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회사 생활에서는 나름 마이웨이 라이프를 살고 있지만 다행이 외국계 회사라 할 일만 하면 일단 눈치는 좀 덜 보는 입장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40이 불혹이라고 했죠..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고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을 나이..
이제 내 삶의 지침을 내가 만들어가는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반대로 꽤나 술을 잘 했답니다. 그럼에도 직장생활은 그닥 좋지 않았어요.
술이 긍정적인 작용을 하긴 했지만 워낙 성격이 내성적이라 의견을 잘 이야기하지 못했어요.

그런 제가 28년간 직장생활은 한 건 거의 기적에 가깝다고 봐요.^^

당연하게, 그냥 그래야한다고 했던 많은 것들이 이제 와서는 당연하지 않았음을 압니다.
그 때도 당연하지 않았지만 그걸 이야기할 용기가 없었던거죠.

앞으로도 한동안 이런 세상일거에요.하지만 천천히 바뀌어가니 앞으로는 더 좋은 사회가 되겠죠.
나이가 불혹을 넘어가니 세상이 조금은 다르게 보입니다. 점점 더 좋아지는 거라고 봐요..^^

제 몸은 나쁜짓 하지 적합하지 않은 몸인 것 같습니다.
담배와 술을 온몸으로 배척하려고 노력하더라구요 : )

전 제가 술을 먹지 못하는 사람이라서 다행입니다.
술을 좋아하는 이들은 점점 저에게서 멀어지고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남게되더라구요.

저는 회사생활에 적합하지 않고 바라지 않는 사람이라서
그냥 떨어져나왔습니다 : )

이제껏 당연하다 여겨오던 것들이 이상하게 여겨지는 때야말로 성장이 시작되는 시기인 것 같아요.

'엄마는 원래부터 엄마였고, 그렇기에 밖에 나가 일도 하고 집안일도 하고 아기도 돌봐야 한다'는 어린 시절의 당연함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철이 드는 순간'인 것처럼요.

그리고 대학시절 내내 당연히 받아오는 용돈이 끊기는 순간, 진짜 사회인으로서의 삶이 시작되는 것처럼요. (제 이야기 아님)

대학시절 내내 당연히 받아오는 용돈이 끊기는 순간, 진짜 사회인으로서의 삶이 시작되는 것처럼요. <제 이야기 아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순간의 막막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스팀잇에 '강제 존버'가 있다면, 사회에는 '강제 사회인 만들기'가 있네요..

soju.jpg

돈이 끊기면 자동으로 사회인 모드가 되는거 같아요 ㅎㅎ

어유 메가님 댓글공격에 잠시 정줄좀 부여잡고.. 오늘 글은 혹시 얼마전 제가 쓴 글의 (멋진) 아이디어를 차용하여 쓰신 글 아닌가요? (자뻑)

저의 모든 아이디어의 원천은 스님이시죠..^^

이런.. 더욱 열심히 글을 써야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도 메가님 글 읽으면서 인사이트 많이 얻는데, 그런 면에서 한 1년치 소재걱정은 없겠군요 +_+

커미션 1년치 입금 바랍니다.

살다보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던게 이상하다고 느껴질 때가 종종있죠.. 아마도 그 분야에 대해 좀 더 알아감에 따라 당연하게 생각 했던 것들에 의문이 들기 시작하고, 더 좋은 방향으로 개선 & 발전해가는 계기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생각을 해보게 되는 글이네요 팔로하고 종종찾아뵐게요!~ ^ ^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의 기준을 만들어야하는 부담감은 커지는듯 해요ㅜㅜ. 전 아직은 7개월 딸 한명이라 그나마 괜찮은듯한데 뭔가 못해주는건 아닌지 항상 고민하네요^^
시간되시면 저희 딸 사진 구경오세요^^
팔로우 보팅 하고 갑니다~!!

지금에 와서는 그 지침이 따를 만한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해볼 수 있는 판단의 능려과 환경적인 여유가 있다는 것이, 정말 많이 발전하신 것이고 행복해지신 거잖아요.

양목님 댓글을 보니 정말 제가 많이 행복해졌다는 걸 다시금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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