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em essay @jjy의 샘이 깊은 물 - 풍성함도 때로는 서글프다.

in #kr6 years ago

대문.png

풍성함도 때로는 서글프다.

하늘은 이른 시간부터 연회색 파스텔을 칠하고 있다.
다른 때 같으면 잠시 머물러 사진으로 담고 싶지만 마음이 급하다.

며칠 전 존경하는 선생님 안부를 전해 듣게 되었다. 여러 가지로
어렵던 문협에서 마음으로 많이 의지하고 가르침을 받던 선생님께서
병원에 계시다는 소식은 마음 한쪽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교단에서 평생을 바치시고 전원생활을 위해 제자의 주선으로 시골에
조그만 집을 장만하셔서 꽃도 키우시고 동물을 기르시며 노후를
자연 속에서 사시고자 솔안이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시골 마을로
오셨다.

제자들이 있어 낯설지 않으셨고 또 선생님 내외분께서 워낙 붙임성이
좋으셔서 금방 적응하시고 동네에서 존경 받으시며 재미있게 지내시며
틈틈이 우리를 지도해 주셨다.

황반변성이라는 안과 질환도 있으시고 서울 집에 머무시며 치료에
전념하시며 자연히 발길이 멀어지셨다. 그래도 이쪽으로 걸음하실
때면 꼭 찾아주시며 정을 주시던 선생님께 전화도 점점 뜸해졌다.

올 해도 유난히 더운 여름 어찌 지내시나 안부를 여쭈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답이 없으셨다. 자세히 보니 확인도 안 하고 계셔서 전화를
바꾸셨거니 혼자 편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우연히 듣게 된 소식은 선생님께서 사람도 몰라보신다는 너무
놀라운 소식이었다.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어 하지 않으시니 문병을
간다거나 절대 아는 체를 하지 말라는 당부를 했다.

일단 솔안으로 방문을 했다. 개들이 짖고 차 소리가 들리면 마당 가득
예쁘게 자라는 화초처럼 웃는 얼굴로 나오시던 선생님께서 안 계시니
잡초만 무성하다.

가지가 늘어지게 달린 대추나무 곁에 하얀 코스모스가 청순한 얼굴로
앉아있다. 개들은 여전히 주인 없는 집을 지키며 낯선 사람을 향해 목이
터져라 짖는데 선생님은 안 계시다.

혹시 용태가 호전되어 솔안에 계시는 않을까 했던 기대는 무너지고
가을이 익는 산골 백일홍이 비스듬히 누워 꽃을 피우고 포도의 단내가
스미는 길을 돌아 나오는 마음이 무겁다.

언젠가 햇살 바로 드는 툇마루에서 선생님께서 손수 심어 가꾸신 복분자로
담그신 복분자주가 익었다고 한 잔씩 주시던 추억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우리를 못 알아보셔도 복분자주 익었다고 귀에 대고 말씀드리면 지금이라도
우리 곁으로 오실 것만 같다.

대문을 그려 주신 @cheongpyeongyull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Sort:  

선생님께선 약초 마실하러 가셨을겁니다.
저 산중에 계심은 압니다만..
구름이 깊어 뵈올 수는 없네요

선생님 내외분께서 가꾸시던
오가피도 블루베리도 무성하고
꽃도 피고 있는데
선생님만 안 나오시네요.

산천은 의구하나
사람은 유무중에 명멸하는...

마음속에 선생님은 영원하실겁니다.

당신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으셔서
문병도 뿌리치신답니다.

Coin Marketplace

STEEM 0.17
TRX 0.15
JST 0.028
BTC 61651.16
ETH 2369.36
USDT 1.00
SBD 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