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em essay @jjy의 샘이 깊은 물 - 어제가 대설이라

in #kr6 years ago

어제가 대설이라 @jjy

더운데 얼마나 혼나?

뵐 때마다 손부터 잡아주시는 할머니가 몇 개 남지 않은 이를 보이며
웃으신다.

글쎄 어제가 대설이라 그렇게 뜨겁다는데
뭐, 어쩌겠어. 다 하늘이 하는 일이니 참고 살아야지

할머니 어제가 대설이면 큰일 나요.
눈이 펄펄 날리고 추워서 농작물 다 얼어 죽어요.
어제는 대설이 아니고 대서예요.

그래, 대설 말이야.

연신 땀을 닦으시며 흰머리 나온다, 그 이쁘던 얼굴 다 망가진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내내 걱정을 하신다.

그냥 가신다는 할머니 손을 끌고 가게로 들어와 녹차에 얼음을 넣어
시원한 냉녹차를 한 잔 만들어 드리니 단숨에 들이켜시고 얼음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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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경상도 상주가 고향이신데 일제강점기에 처녀공출에 딸 신세
망칠까봐 걱정하던 부모님이 상투를 들고 남장을 하고 농사일을 거들며
살았다.

깊은 산골에 체 장사로 떠도는 사람들이 와서 하룻밤 묵어가게 되어
그 무리에 끼어 온 아들과 그 밤으로 혼례를 치렀다. 처녀공출을 당해
신세를 망치고 사느니 일부종사 하고 살려면 떠돌이 장사치라도 연분
닿을 때 짝을 맺어야 한다며 결혼이 뭔지 남자가 뭔지도 모르는 열다섯
서른이 넘은 남자에게 철부지의 머리를 올렸다.

신랑이라고는 해도 처음 본 남자를 피해 온 방을 도망을 다니다 구석에서
졸다 깨보니 신랑은 첫 새벽에 장삿길을 떠난 뒤였다. 그리고 계절이 몇
번 바뀌었다. 이제 출가외인이니 네 신랑 찾아 떠나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물어물어 떠돌며 찾아 간 곳이 영월이었다.

신접살림이라고 숟가락 두 개로 시작한 집에 신랑은 한 달도 못 채우고
떠났다 몇 해 만에 돌아왔다. 그리고 또 훌쩍 빈 베개만 남기고 떠났고
그 때마다 아들 하나씩 낳았다. 셋째 아들을 낳고 몇 해를 종무소식이다
어느 날 딴살림을 차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화도 나지 않고 서운한 마음도
없었다. 이미 그러려니 했던 일이라 남의 얘기처럼 들렸다.

아들 셋을 혼잣손에 키우자니 못 할 일이 없었다.
농사일을 하면서 남자 한 몫을 해내는 할머니에게 혀를 내둘렀다.
아이들 공부 많이 못 시킨 게 제일 미안 하다고 하시며 특히 큰 아들은
운동도 잘 하고 공부도 잘 해서 반장만 했는데 나중에 전교회장에
뽑혔는데 하지 말라고 해서 못하게 하고 중학교 입학시험에 붙었는데도
못 보내고 동생들 뒷받침 하고 집안 일으키려면 공부보다 기술 배워야
한다고 우는 아들 등 떠밀어 화물차 조수로 보낸 게 두고두고 마음 아파
그 세월을 다 지내시고도 씀벅씀벅 눈물을 몰아넣으신다.

큰 아들 객짓밥 먹고 있는 차에 작은 여자에게 연락이 왔다.
한 번 다녀가시라는 말에 어찌 살고 있는지 꼬락서니를 보려고 갔더니
영감님 편찮으셔서 수발하느라 입에 풀칠도 못하니 이제부터 본댁이
모셔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에 슬그머니 나가 양잿물을 사들고 오셨다.
한 덩이씩 먹고 좋게 해결 하자고...

집으로 오신 할머니는 모든 게 걸렸다.
젊은 시절 밖으로만 돌다 중풍으로 누워 대소변 못 가리는 영감님도
딱하고 아버지 얼굴도 제대로 모르고 자라 험한 세상 살아야 하는 아들
셋도 그 아들들 기르며 꽃 같은 시절 다 보낸 자신도 애처롭기로 하자면
마찬가지였다.

늦가을 이웃집 고사떡으로 저녁을 먹고 잠을 청하는데 이상하게 문밖으로
신경이 가서 나가보니 기함을 할 광경이었다. 누더기를 뒤집어쓰고 벽에
기대고 누워 있어 거지로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영감님이었다.

방에 눕히고 밥을 떠먹이고 시중을 들며 보살피기를 자그마치 십 육년을
아들 셋 낳게 해 준 품값을 받아내고 문고리가 얼어붙는 섣달 눈보라를
뚫고 떠났다.

그 중에도 아들들은 아버지에게 극진했다. 받지 못한 사랑은 모두 잊고
못 다한 효도를 하며 누워있는 아버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해드렸다.
큰 아들은 대형화물을 하고 착한 며느리를 만나 손자를 안겨 드리고 작은
아들들도 형의 도움으로 공부를 해서 둘째는 공무원이 되었고 막내는 공군
장교로 군 생활을 하며 모두가 제 몫을 하며 우애 있게 잘 살고 있다.

할머니를 뵈면 주어지는 모든 일을 다 그분 뜻으로 여기고 받아들이신다.
정 힘이 드시면 내 탓이라 하시고 좋은 일은 남의 덕으로 돌리신다. 알고
보면 아들들이 잘 된 것도 지혜로운 할머니께서 어려운 살림에도 배고픈
설움을 잊고 깊은 사랑으로 채워주시고 앞날을 보며 꿋꿋이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덕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대서와 대설을 구별하지 못한다고 무슨 허물이 되랴.
벌써 몇 해를 두고 혼자 사시지만 마음에 태양보다 뜨거운 사랑을 지니고
굳세게 그러나 자애롭게 사시는 할머니 말씀대로 하늘이 하는 일이니
백 십 이년만의 폭염도 아무리 길어도 한 달이면 지나갈 것이다. 어차피
견뎌야 할 더위라면 징징거리지 말고 잘 견뎌야겠다.

20180708_093540.jpg

대문을 그려 주신 @cheongpyeongyull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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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
고개 꺾여요. ㅠㅠ

이제 됐나요

감사합니다. ^^

대舌.......크게 혓바닥 빼물고 핵핵대는 날이라는 심오한 말씀인게죠.ㅎ

역시 타타님 다우신 말씀
기왕이면 붓툰으로 한 컷 올려주셨으면 ^^

감히 상상도 못해볼 삶이네요. 모든 것을 수긍하고 받아들이시게 되기까지 얼마나 고단한 하루하루가 존재했을가요...

감히 흉내도 못 내볼
그런 마음을 지니셨습니다.

정말 우리네 할머니들 삶은
살아있는 역사입니다.

그 역사의 어두운 면을 안고
꿋꿋이 살아내신 분들
그렇게 고생하시고도
새끼들 키우고 사느라
나라를 위해 한 일이 없으시다고
치과도 안 가시는 그런 분이십니다.

우리부모님세대까지는 정말 못배운게 한이였나봅니다.
반대로 우리세대부터는 대학을 왜 가야만 하는거지?
...라고 물음표를 붙이며 공부를 거부하기 시작한 세대죠.

그만큼 시대가 변했다는 얘기지요.
공부도 필요를 느낄때부터 열심히 하면 됩니다.

그모진세월 살아내신 할머니 그러고도 남편도 자신에게 돌아오니 열첩이 있으면.
뭐하오리 조강지처 하나가 진정 내사랑이네 ^^

영감님께서도 뒤늦게 후회하셨지요.
할머니 서운하게 하시고
아들들 고생하게 만들 일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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