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념에 대한, 잡념에 찬 오마주

in #kr6 years ago (edited)

내가 옛날 문화를 좋아하는 것은 어릴 적부터 클래식 음악으로 시작해, 내 조부모님이 즐기셨을법한 문화보다도 오래된 것들을 즐긴 탓에 '익숙'하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현대가 시시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것들에는, 심지어 대중문화 상품에도, 창작자들이 직접 경험한 인간의 잔혹함과 희망으로 찢어진 모습이 담겨 있다. 대부분의 경우 오리지널리티를 쉽게 찾아볼 수도 있다.

물론 과거의 인물들 역시 대부분은 얕은 인간들이었지만, (허상이든 아니든) 발전이라는 것에 대한 희망이나 절망을 보다 맑은 형태로 가지는 것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지금은? 서사는 대다수가 재탕 또는 바뀐 입맛에 맞춰서 조미료 팍팍 뿌려 데워낸 한 끼이다. 학자는 그냥 선생이자 직장인이다. 고작 영화 화면 속에서 뛰어난 기술을 즐길 뿐, 현대인의 삶은 더더욱 쳇바퀴에 가깝다. 편리의 이름으로 작은 화면 속에 갇혀 있기도 하고, 좋은 곳을 가도 알지도 못하는 이들에게 사진으로 보여줄 생각부터 앞선다.

나도 상당히 자유로운 삶을 산다고는 하지만 말 그대로 통상적인 쳇바퀴로부터의 자유인 것이지, 넘을만한 어떤 대단한 산은 없다. 바다의 공기와 동물들의 모습 등, 감각에 의한 즐거움이 낙이다.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즐거움은 이제 찾기 어렵다. 시간이 흐르는 한 무엇을 해도, 안 해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세상의 축적된 지식들을 제법 관심을 갖고 들춰는 보지만, 한번씩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서 빼꼼히 내려다보는 일은 나름 감동적일지는 몰라도 결코 업적은 될 수 없다. 업적 자체에 대한 욕심이 없다고 생각하는데도 별로 유쾌하지는 않다.

높이에 대한 인간의 목표는 대략 다 이루어진 셈이라고 보인다. 새로움을 가장하여, 딱히 더 편리함을 주지도 못하는 장치들을 그저 팔아먹기 위한 시대이다.

아직 채 이루지 못한 넓이에 대한 목표 역시 이루어가야 할 과제지만, 개인적으로 재미는 없다.

높이에서 한계에 다다르면, 결국 기초를 의문시하고 무너뜨리게 된다. 해체니 뭐니 이제는 한참 철 지난 용어까지 사용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다시 개인적인 문제로 돌아가자. 나는 단상을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 글을 쓰는 일이 매우 드물다. 만일 쓴다면, 그 이유는 충동이다.

과거의 인물들이 다 풀어놓을 대로 풀어놓고 용어 하나로 그 무수히 많은 페이지들을 떠올리게 하는 이 세상에서, 그것들을 읽지 않은 입장이라면 뭔가 자신이 대단한 생각을 해낸 것 같이 설렐 수도 있겠지만, 익숙한 입장에서는 이미 다 씹고 뱉고 다시 먹고 토하고 또 매일 두뇌와 정신이 요구하는 식량을 다시 먹는...그런 것들을 새로이 깨달은 이야기마냥 풀어가기는 다소 괴롭다.

현대인에게는 얕음이 예정되어 있다. 이왕 얕을거, 매우 깊이 얕아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눈에 거슬리던 모공 하나가 사라져도, 순간 세상이 아름다워 보일 수 있다.

물론 내가 항상 이 정도로 냉소적인 것은 아니다. 그냥 오늘 특히 그런 것이다. 이런 날에는 성질 건드리지 마라, 숀, 루새끼, 몽땅. 물론 실제로는 귀여우니 화를 못 낸다. 역시 시각적 즐거움에 질질 끌려다니는 인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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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과거의 거인들이 직접 보지 못했던 것이 있다면 역시 현대와 미래의 양상들일 것이다. 어쨌든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으로서 두 눈 뜨고 바라보고 있으니까, 보이는 것들에 대해 가끔은 써볼 수 있겠다. 그래서 아주 가끔씩은, 싫어하는 단상을 써본다. 간식 먹듯이.

아래는 미래에 대해 내가 과거에 한 잡다구리한 생각들이다. 정말 시시껄렁한 현상들에 대한, 필연적으로 얕고 잡다한 생각들이지만, 적어도 과거의 거인들이 직접 보지 못한 양상들을 보고 있다는 얄량한 위안은 가능하다. 이제 바다 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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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vs. 가짜가 사라진다

가까울 수도, 멀 수도 있는 미래에 대해 요즘 드는 잡념들이다.

뭐 꼭 인공지능이다, 암호(가상)화폐다, 등등을 구체적으로 거론하지 않더라도, 앞으로의 시대정신은 진짜와 가짜의 구분이 없어지는 것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시대정신이라고 거창하게 표현했지만 특정 철학자 이론에 맞춘 것만은 아니다.

진짜 돈, 자산은 무엇인가? 인간성(인간이라는 자격)은 무엇인가?

암호화폐는 돈 개념의 근간을 흔들고, 인공지능은 인간과 비인간(심지어 동물 등 다른 생물)을 나누는 기준으로 월등한 지능을 꼽지 못하게끔 할 것이다.

미국에는 벌써 동물의 아이덴티티로 신분증 발급 받은 사람이 있다고 한다. 인간성을, 아니 인간됨을 버리고 자기가 선택한 것이다. 자연 파괴와 인간 사이의 갈등 등, 인간에 대한 회의가 인간성을 기꺼이 버리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다. 인간을 가장 우월한, 또는 가장 중요한 존재로 보는 것이 점차적으로 금기시될 수 있다.

나는 누구인가? (그러니까 진짜로.)

인공지능과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정말 감쪽같이 누군가의 얼굴로 영상물을 제작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기존의 합성물들이 거의 조야하거나, 최소한 조사했을 때 가짜로 알아볼 수는 있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들이 보일 것이다.

권위자나 유명인, 공인, 연예인 등의 행동과 발언이 나오더라도, 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가려낼 수 없게 되면, 결국 그 누구도 그 어느 내용도 믿지 않게 될 것이다. 아니, 반대로 모든 것을 믿게 될 수도 있다. 일단 어떤 영상이 세상에 유통되고 모두가 거기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그게 진실인가, 거짓인가? 그냥 공유된 그 무엇이다.

누가 진실을 밝히려고 할 것인가? 누군가가 밝힌다고 해도, 별로 의미는 없을 것이다.

이 점은 생각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우리는 이미 그런 정교한 영상 없이도, 확인을 할 수 없는 많은 것들에 대해 그렇게 믿고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그럼 내가 한 말이나 행동이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다면? 그리고 모두가 그걸 믿는다면? 그것이 곧 그 사람들이 보는 “나”가 되는 것이다. 나 혼자 나를 정의하고 나 자신을 믿고 그것만으로 위안을 얻을 수 있으려면, 지금 사람들이 거론하는 자존감 정도로는 쉽지 않을 것이다. 소위 “멘탈”이 굉장히 강해야 한다. 자아가 엄청나게 확실해야 한다. 당신은 그런 사람인가?

성별이라는 것은 무엇인가?(카테고리화, 비교에 의한 정의가 금기시되는 세상)

성전환 같은 외과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더라도, 남성성, 여성성은 갈수록 정의하지 못하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다수의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구분은 여전히 하는데, 사회적으로 못 하게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요즘 헐리우드에 대한 최신 음모론 중 하나로 Transvestigation이 눈에 띈다.

Trans(gender)+Investigation의 신조어인데, 유명 여배우들이 사실은 남자가 여자로 성전환을 한 케이스라는 주장이다.

한번 재미로 근거를 찾아본 적이 있는데, 보다보니 일단 그게 진실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의혹을 제기할 나름의 근거는 있었다. 목젖, 골격, 가슴이나 골반 등 체형, 심지어 두개골 모양, 등등.

그렇다고 그런 주장들이 반드시 진실이라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만큼 남성적(또는 여성적)인 얼굴이나 남체(여체)의 전통적인 기준이 식단조절이나 호르몬 변화, 패션을 비롯한 컨셉에 의해 희미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의혹도 생기기 마련이다.

아이들을 입양한 걸로 유명한 몇몇 배우들이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의 정체성을 바꾸어가면서 키우고 있다는 의혹도 있다. 평소에 관심을 안 가져서 모르겠지만, 지금 여자로 길러지고 있는 아이의 매우 어린 시절을 기억하고, 분명히 남자 아이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의 요점은 그 사람들이 옳으냐의 문제가 아니라, 점점 양성성이 화두가 되고 유행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는 것이다.

어느 시상식에선가, 핑크라는 가수가 자기 자신의 모습은 물론이고 자기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자기 딸이 남자 아이 같다는 소릴 학교에서 듣고 왔는데, 자기는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고 가르쳤다는 식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모든 변화들이 새로운 시대의 특징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매우 오래 전부터, 매우 서서히 그러나 매우 확실히 전통의 파괴라는 형태로 전개되었던 변화들이다.

가치 판단은 하지 않겠다.

하지만 미래를 볼 때, 기술적 발전이라거나 몇 차 산업이라거나 하는 것에 집중하는 시각으로 보더라도, 결과적으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우리에게 더 “좋은” 쪽으로 흘러가고 있는것인지는 모른다. 겪어 봐야 알게 될 것이다.

난 애초에 역사의 흐름의 방향이 진보적이라고 믿지 않는다. 정반합이 가장 현실에 가까운 흐름을 묘사하는 용어가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제한된 인간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우리에게 더 좋은 쪽으로 변화하는 것을 발전이나 진보라고 정의하는 사람에게, 미래란 그렇게 녹록치 않을 것이다.

앞으로는 그 우리라는 것이 과연 누구인지의 문제도 재정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우리(인간)의 생존에 유리한 쪽으로 발전이 이루어질지는 모른다. 그냥 그저 그렇게 흘러가고 있을 뿐이다.

요즘 가끔 간식 먹듯이 그저 해보는 생각들이다.

사진 아래의 본문은 2018년 3월 23일자 글로, [오마주] 프로젝트로 재발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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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 바다 가까운 곳에 사시는 것 같군요..

읽기 힘든 글은 아닌데,

요즘은 머리가 복잡한지,
몇페이지 넘어가면,
읽다가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자꾸 들어서,

일단
타잔과 제인 그림? 까지만 읽고 다음에 또 읽기로..
ㅋㅋ

넵, 그럴 때가 있죠. 저 타잔은 반인반수입니다. ㅎㅎ

#nsfw [19금]
이것 댓글 목록에서는 먹는데,
댓글 자체에서는 요즘은 안 먹던데, 그래도 태그는 달아 봅니다.

반인반수라..
제인이 행복할 듯..

난 제이미형이 올리는 단상도 좋을 것 같음ㅋㅋㅋ
근데 오늘 뭔가 전체적인 글 분위기가 굉장히 냉소적으로 느껴지네ㅎㅎㅎ
날씨 때문에 그런가?? ㅋㅋㅋ

숀!! 오늘은 제이미형 건들지 말고 얌전히 있어ㅋㅋㅋㅋㅋ
아니면 나한테 잠시 오렴 +_+ ㅋㅋㅋㅋㅋ

ㅋㅋ사실 기분이 나쁘거나 그런거하곤 좀 다름. 숀 막 반죽처럼 주물러야지.

ㅋㅋㅋㅋ 숀 반죽처럼 주물러주면 막 좋아해??ㅋㅋㅋ

아니. 슬그머니 일어나서 가버리는데...못본 척 하고 있으면 먼저 와서 부비부비할 때도 있음ㅠㅠ

ㅋㅋㅋ역시 우리 숀ㅋㅋ 밀당을 아네ㅋㅋㅋㅋ

고양이들은 다 그러나봐
지인의 고양이도 그런다던데 ㅜㅜ
아 밀당 천재들

난 몬티처럼 와서 안아달라고 조르는 애가 더 좋긴 한데, 몬티도 고양이라서 그런지 금방 안 안아주거나 뭔가 자세가 불편하면 포기가 빠름 ㅋㅋㅋ

가끔이 이정도면 맘먹으면 형 지구최강자가 될수있을것같아 지구정복같은? ㅋㅋㅋ
제이미형 책 여러권 냈을것 같은데 한권만 소개시켜줘 독후감포스팅 갈게 ㅋㅋ

책, 예명으로 쓰는데 다 영어기도 하고, 비밀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악 원서라니! 다행이다 비밀이라서 ㅋㅋㅋ 독후감 발언 취소!

뭐 굳이 쓰고 싶다면 다른 책으로 숙제 내줄까?ㅋㅋㅋㅋㅋ

잘못했습니다 형님 ㅋㅋㅋㅋㅋㅋ
그냥 형 글만 열심히 읽겠습니다 ㅎㅎㅎ

제이미님은 간식 먹듯이 이런생각을 하네요ㅠ
무튼 미래에 살아남을려면 제 자아를 확실하게 찾아야 겠네요.

지금도 피칸을 와작와작 씹어먹고 있는데 사실 1일 1식 하느라 간식이 아니라 디저트입니다(또르르...)

자아가 확실해서 더 살아남기 힘들 수도 있어요. 핍박 당하지 않게 기도합시다. ㅋㅋㅋㅋㅋ

나는 수의 얕음이 부끄럽지는 않아요. 그게 나니까. 다만 바닥이 금방 드러나는게 문제죠 ㅋㅋㅋㅋㅋ

ㅋㅋㅋ이렇게 유쾌하게 '바닥'이야기를 하실 수 있는 게 가장 좋은 태도입니다. 저도 평소엔 '자조'로 이런 생각들을 물리치죠. ㅋㅋㅋ

역시 제이미님의 글은 느낌이 색다릅니다.. 그래서 팬들이 많은 건지도요. 남,녀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 같기도 한데.. 남성 ,여성 ,서로의 성을 넘나드는 과학은 발전하지 않는 게 인류를 위해서 이롭지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는 발전 자체가 아니라 산업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가 되었기 때문에...성별을 포함해서 모든 경계를 허무는 것도 산업으로 성공할 수 있는 배경이 마련되면, 이미 있는 기술로 산업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봅니다.

지나친 탄수화물과 여러 끼의 식사가 권장되는 식품 산업, 건강식품 산업, 다이어트 산업, 성형 산업과 그에 따른 각종 뫼비우스의 띠 스타일의 산업들이 그래왔던 것처럼요. 물론 각종 신체/정신의 질병/치료 산업도 거기 포함이고요. 성별 체인지를 여러 번 겪은 사람도 이미 존재하던데...정체성에 대한 고민이겠지만, 그게 물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손쉬워지는 시대가 오면 어떨지...

산업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느끼는 바가 많네요. 감사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이미님의 글을 읽을 때, 문득, 오래된 것들에 대한 탐닉의 정도가 깊고도 넓어, 이분의 이러한 성향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궁금했던 적이 있었는데 오늘 그 답을 읽었네요. 사유의 깊이에 압도 당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조곤조곤 제이미의 이야기에 빠져ㅜ읽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ㅎㅎ 사실 시작은 그냥 문자가 좋아서였겠지만, 계속 그쪽을 고수하게 된 이유는 역시 신체/정신과 역사(문학)/현실과의 괴리였던 것 같아요. 10대 시절엔 꽤 심각하게 괴로워했던 듯도...지금은 (항상은 아니더라도) 농담 소재가 될 정도까지는 온 것 같네요. ㅎㅎㅎ

같은 글을 써도 이렇게 차이가 나는군요...
글 쓰는 능력이.... 부럽습니다..

아뇨, 해라님 글도 잘 읽고 왔습니다. 저도 뭔가 외적인 난방을 켜지 않고도 저 자체가 따뜻하다는 걸 느껴봤으면 좋겠네요. ㅋㅋ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좋은하루돼세요

넵. 이따 파이 구경하러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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